1. 조선으로의 여정과 '서서평'이라는 이름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녀는 간호학을 공부한 후, 1912년 32세의 나이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일제가 지배하던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광주(光州)를 중심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그녀는 조선에 오자마자 이름부터 한국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천천히 평평하게, 즉 **"고통받는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평평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담아 **서서평(徐舒平)**이라 지었습니다.
2. 조선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한 사랑
서서평 선교사의 사역은 언제나 '가장 소외된 이들'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여성 교육의 어머니: 당시 이름도 없이 '큰년이', '작은년이'로 불리던 조선 여성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글을 가르쳤습니다. 그녀가 세운 **이일학교(현 한일장신대학교의 전신)**는 여성들이 교육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요람이 되었습니다.
조선간호부협회 창설: 한국 최초의 간호학 교과서를 집필하고, 1923년 조선간호부협회(현 대한간호협회)를 창설하여 초대 회장을 지내며 체계적인 간호사 양성에 힘썼습니다.
나병(한센병) 환자와 고아들의 어머니: 버려진 나병 환자들을 돌보았고, 갈 곳 없는 고아 14명을 수양자녀로 삼아 직접 키웠습니다. 또한 사창가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을 구해내어 자립을 도왔습니다.
3.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Not Success, But Service)
서서평 선교사는 미국 선교부에서 보내주는 생활비의 대부분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고, 자신은 늘 무명베 옷을 입고 고무신을 신으며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었습니다.
1934년 6월, 그녀는 오랜 영양실조와 과로로 인해 54세의 나이로 광주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방 안에서 발견된 유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동전 7전
강냉이가루 2홉
낡은 담요 반 장 (나머지 반 장은 이미 다리 밑의 거지에게 찢어줌)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남겨진 글귀: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Not Success, But Service)
4. 광주 최초의 시민사회장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광주 시민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수많은 한센병 환자들과 영세민, 고아들이 "어머니, 어머니"를 부르며 눈물로 상여를 따랐고, 이는 광주 최초의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시신마저 의학 연구용으로 병원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서서평 선교사는 단순히 종교를 전파한 선교사를 넘어, 조선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온몸으로 사랑을 실천한 참된 인간이었습니다.
첫댓글 그녀가 믿은대로 아는대로
온몸으로 삶을 살아간
작은 예수 서서평 선교사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