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곳
정현수
나무가 우거진 숲 계곡, 넓지 않은 냇가에 하늘 높이 공중 잡이 하는 종달새의 찌찌르 찌르찌르 소리가 정겹다. 동시에 건너 숲 속에 생뚱맞은 낮 소쩍새의 천연스럽고 구성진 울음이 초여름 한낮의 정적을 깨뜨린다. 잠시 박자까지 맞는 종달이와 소쩍새의 이중주는 관현악의 바이올린과 플루트를 듣는 듯, 소리의 어울림이 기가 막히다.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슬프고 애련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경상도 지방 설화에 의하면 냇가에서 큰 물에 휩쓸려 죽은 딸이 생(生)으로 돌아가고 싶은 처절한 절규라 한다. 딸을 잃은 아비의 간절한 뜻이 담긴 그리움의 설화이다.
폭이 15미터 정도 되는 작은 개울에 100여 미터 아래에는 수중보로 막아 놓아 여름 내내 내가 멱을 감고 울적할 때 찾아오는 장소다. 이곳은 동내 사람만이 아는 천혜의 휴양지다. 축 늘어진 버드나무와 드문드문 벚꽃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둑 밑 냇가, 서늘하고 맑은 물속에는 피라미, 쏘가리 등 물고기가 제법 많다. 저녁에 어항을 묻어 놓고 아침에 가 보면 물고기가 그득하다. 매운탕 거리는 따로 돈 들일 없이 책과 막걸리와 함께 넓적한 바위에 앉아 오후의 한낮을 즐길 수 있다. 조선 시대 옛 화가들이 회화한 신선놀음 그대로의 모습이다. 곱게 접은 종이배와 나뭇잎을 잔잔하게 흐르는 물 위에 띄어본다. 햇빛에 의해 감실감실 한 물결에 종이배는 아무 방해 없이 수중보까지 떠내려 와 개울로 낙하한다. 애틋하고 아련한 내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 낙하하는 종이배가 아쉽고 허전하다. 냇가 가장자리 물결 파장에 햇살도 함께 흐트러진다.
이곳 수만리 산골에 들어온 지도 벌써 3년째다. 북적대고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홀로 생활하고 있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이제 어지간히 단련이 되어 생활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동내 어르신들과도 허물없이 지내고 특히 이곳 할머니들께서는 반찬이나 특별한 것이 있으면 가지러 오라 하신다. 내 차로 10분쯤 가면 내가 좋아하는 은퇴하신 신부님도 살고 계신다. 벨기에가 고향이신 디디에 신부님(지정환)은 70년대 반정부 시위대에 가담하시고 체포되어 추방 위기에 몰리기도 하셨다. 호암상 사회 봉사상 수상자이기도 하신 신부님은 임실 치즈를 아니 우리나라에서 치즈를 처음 개발한 분이다. 농촌이 어려울 때 우리를 위하여 고생한 분이시기도 하다. 신부님 댁과 담 하나 사이인 성 요셉 양로원에도 일주일에 두 번은 마실을 간다. 영어 선생님이었던 약간 깐깐하신 루시아 할머니, 안 해본 장사 없으신 수더분한 노엘 할머니, 항상 조용하신 수산나, 마리아 할머니 등 특히, 요한 할아버지의 6.25. 전쟁 무용담을 듣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랫동네 백씨네 댁에서 기르던 진돗개 새끼를 한 마리 분양받아 키운 지 일 년이 넘었다. 어지간히 성년이 된 미더운 내 벗 달래와 함께 오늘도 무작정 산속을 헤매고 있다. 몇 년을 살다 보니까 산 구석구석이 내 눈 안이다. 조릿대 숲을 지나면 나만을 위해 허락해 준 것 같은 잘 숨겨진 자연생 참취 밭도 있고, 떡갈나무 단지를 지나 은근한 향을 뽐내는 산 두릅 군락지도 알고 있다. 두릅은 쇠어버려 한 물 갔지만, 취는 초여름까지 내 입맛을 돋우어 준다. 살짝 데쳐서 고추장과 참기름을 섞어 돌나물과 비벼 먹으면 입속의 향과 함께 최고의 별미다.
대부산 7부 능선에는 안도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이곳 약수 물맛은 일품이다. 일상의 집에서 마시는 물맛과는 확 다르다. 그래서 약수라 하나보다. 올라오느라 갈증 속에서 벌컥벌컥 마시는 물 맛은 몸속의 노폐물을 쓸어내 듯 산뜻함을 준다. 갈증을 달래며 헉헉대며 따라오느라 힘들었던 달래에게도 간식을 준다. 나를 닮아 자유분방하여 잠잘 때에만 집에 들어오는 이 녀석은 충직하게도 산보에서만은 꼭 나를 따른다. 그 암자 가까이에는 양감이 풍부하면서 새초롬하게 서 있는 통일신라 말의 마에 불이 있다. 꽤 넓적한 바위에 양각으로 볼륨 있고 너볏하게 새겨진 마에 불이라 전국 각지에서 탐방을 올 정도로 꽤 유명하다. 마파람이 시원한 대부산 정상에서 보는 동상 저수지가 있다. 아늑하면서 상당히 범위가 넓어 그야말로 내 마음의 호수다. 호수에 비치는 은은한 산 그림자는 한 장의 수채화다. 물속에 스며든 6월의 짙푸른 녹색은 내 마음을 감성에 젖게 하고 애잔하게 한다. 이곳은 해 질 무렵에 오면 석양이 장관이다. 낮은 하늘의 검붉음과 호수에 비치는 낙조의 그림자가 잔잔한 물결과 함께 하는 그림이, 애틋한 서정시를 읊조릴 수 있을 것 같아 설렘을 준다. 잔잔한 호수를 내려다보면 몇 해 전 먼 이국에서 나를 떠나간 내 아이와의 오붓한 시절이 추억이 되어 떠오른다. 자기한테 좋은 일이 생기면 열정적으로 뽀뽀 세례를 퍼붓던 어린 시절, 유명 가수 콘서트에 가겠다고 떼쓰던 중학교 시절, 성년이 되어 항상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지성미가 넘쳤던 다소곳한 모습 등이……
"산속의 스산한 공허함 속에서
사랑의 슬픔은 흘러나오고
못다 한 아쉬움에 범벅이 돼 버린
오래전 기억
오늘도 저만치 그리움만 남는다.
다시 못 올 긴 여정을 떠나간 내 아가!
오늘도 보고픔에서 너를 기다려 본다.
꿈길에서
내 딸아!!"
6,7월은 꽃의 계절이다. 되바라지는 모란은 농염한 자태를 잃어가고 탐스러운 수국, 그냥 뻔한 장미, 클라리넷을 닮은 핑크빛 인동초, 하얀 제비꽃, 수국과 닮은 소담한 달래 꽃, 코발트색이 우아한 붓꽃, 달리아, 그리고 꾸밈이 없고 오롯한 능소화는 여인이 분홍 연지를 찍은 것처럼 처염하다. 아, 참!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름을 알리는 자귀나무 꽃도 있다. 꽃나무 개념을 넘어 고목인 이 자귀나무는 가지마다 촘촘하게 초롱초롱 씨도 함께 매달아 논다. 모두가 내 거처에서 버스를 탈 수 있는 아랫동네까지 피어 있는 꽃 들이다. 어느 것은 들녘에, 어느 것은 산 길에, 또 어느 것은 집 뜨락이나 돌담 밑에 피어 있다. 제각기 자기를 과시하고 뽐내고 있다.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도 하고 평안을 주기도 한다.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산중 생활이 구차하지 아니하고 거리낌조차 없다. 이만하면 내 맘껏 자유로움을 즐기는 삶이 아닐까? 무미건조한 나태의 삶이 아닌 샅샅이 음미하며 즐기는 나이브 한 삶이 아니겠는가?
내일은 존경하는 신부님께 취나물 좀 나누어 드리려 마실을 가야겠다.
2012.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