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여행 기초 중의 기초를 몰랐다
태안은 강원도와 경북 일부 지방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제일 긴 직선거리를 가진 군이다. 남북 직선거리는 약 70㎞이며 해안선 총길이는 530.8㎞나 된다. 직선거리가 긴 건 안면도가 서해안을 따라 길쭉한 모양으로 뻗어있기 때문이며, 해안선 길이가 긴 건 안면도와 태안반도의 리아스식 해안이 바다와 맞닿은 구간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때문에 태안을 하루나 이틀 만에 다 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도로도 넓지 않아 차로 이동하더라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주말여행을 한다면 태안에서 특정 한 지역을 정해 집중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낫다.
하지만 당시 태안 여행 초짜인 나는 무리하게 태안에서 가고 싶은 곳만 정해 일정으로 넣었다. 태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지 해변과 태안의 유일한 국보 태안 마애삼존불, 그리고 태안반도 북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천리포 수목원을 보기로 한 것이다. 이 세 곳을 선으로 이으면 태안군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을 정도로 넓으므로 당시의 내 선택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었다.
국립공원 이야기 53 - 민병갈
민병갈 (閔丙渴, 1921~2002)은 한국 최초의 사립 수목원을 세운 미국계 한국인이다. 귀화하기 전 이름은 칼 페리스 밀러 (Carl Ferris Miller)였다.
그는 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 피츠턴에서 태어났고, 버크넬 (Bucknell)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징집을 하게 되자, 그는 징병을 피하기 위해 1944년 콜로라도 해학의 해군 정보학교에서 일본어 과정을 수학했다. 덕분에 그는 1945년 4월에 일반 병사로 근무하는 대신 일본 오키나와 섬 미군사령부의 통역 장교로 배치되었다.
민병갈이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건 1946년에 한국에 연합군 중위로 근무하게 되면서였다. 당시 그는 25살이었고, 그 후 다시 1947년 1월에 주한미군사령부 사법분과위원회 정책 고문관으로 지원해 한국에 왔다.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으며, 1953년 한국은행에 취직해 자리 잡을 때까지 한국과 미국, 일본을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그는 일평생 한국에서 살면서 독신으로 지내며 천리포 수목원을 조성하는데 힘을 쏟았다. 서울의 증권사에서 근무하며 한국과 식물에 대한 공부를 병행해 수목원을 세운 것이다.
그는 1979년에 민병갈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했으며, 수목원 조성뿐 아니라 남해안을 답사하며 완도에서 만 자라는 희귀종인 '완도 호랑가시'를 발견하는 등 학술적인 성과도 거두었다. 천리포 수목원은 다양한 식물 품종으로 주목받았고 2000년 아시아 최초로 국제 수목 학회가 지정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되고, 미국 호랑가시 학회가 선정하는 '공인 호랑가시 수목원'이 되었다.
천리포 수목원을 돌아보며
전날 안면도 꽂지 해변 앞에 위치한 아일랜드 리솜에서 하루를 보낸 뒤 숙소로 정한 곳은 다름 아닌 천리포 수목원이었다. 천리포 수목원은 수목원으로서 관광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목원 내 위치한 한옥을 비롯한 아늑한 숙소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천리포 수목원이라는 이름답게 천리포 해변 바로 앞에 위치해 바다와 수목원을 함께 감상하며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일랜드 리솜에서 천리포 수목원까지의 거리는 무려 50km였으며, 자동차로 가도 꼬박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아일랜드 리솜에 짐을 두고 태안읍의 태안 마애삼존불을 보고 다시 안면도로 향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태안읍에 짐을 보관하고 비가 내리는 열악한 날씨 속에 태안 마애삼존불을 본 뒤 옆동네 서산까지 다녀오니 기진맥진한 상태로 천리포 수목원으로 향했다.
천리포 수목원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노을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천리포 수목원의 숙소도 도착할 당시에는 좋은지 나쁜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수목원의 밤은 조명 하나 없이 어두컴컴해 뭐가 있는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수목원의 풍광을 바라보니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리포 수목원은 다른 사립 수목원과 달리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된 풍경을 볼 수는 없었다. 봄이면 철쭉, 여름이면 수국, 가을이면 단풍 등으로 현란하게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수목원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대신 천리포 수목원은 쉽게 만날 수 없는 다양한 품종의 꽃들을 보유하고 있어 그 가치를 뽐내고 있다.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조금만 걸어도 새로운 식물을 만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천천히 걸으며 다양한 식물의 모습을 비교해보고 향기를 맡았다. 식물원이 개방하는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식물원 내부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행운이었다. 천리포 해변이 지척에 있어 파도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식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천리포 수목원을 설립한 민병갈 씨는 한국을 사랑해 숙소를 비롯한 몇몇 건물들을 한옥으로 지었다. 비록 우리가 묵은 숙소는 한옥은 아니었지만 아늑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건 비슷했을 것이다.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는 걸 즐겼던 우리 선조의 정신을 미국에서 온 한국인인 민병갈 씨가 이어받은 듯했다.
도시에의 빽빽한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의 소중함을 간과할 때가 많다. 태안해안 국립공원에 가서 아름다운 해변에서 한국의 자연을 만끽하는 것에 더해 천리포 수목원에 가보는 건 어떨까. 한국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한국인들의 정신까지 계승하고 귀화한 민병갈 씨의 걸작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꽃이 한창인 봄, 안면도로 향하다
태안해안 국립공원은 한려해상 국립공원,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경주 국립공원과 함께 내가 가장 많이 방문한 국립공원 중 하나다. 넓이도 크고 수많은 해변을 갖추고 있어 매번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에 언제 가도 후회하지 않았다. 여행 일정 내내 비가 내려 햇살 한 번 보지 못 한 게 여름 태안 여행의 흠이었다. 다시 태안에 가면 날씨가 좋은 날에 가자고 다짐했다. 그 바람이 이루어진 건 5월 봄 안면도가 튤립으로 뒤덮였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