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중창단은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 4대 종단 성직자가 만나 꾸린 남성 중창단..
종교 자유가 있으니 우리는 어떤 종교이든 믿을 수 있고, 그러다 보니 한 그룹 안에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이 섞여 있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인 공공 행사나 대형 사고로 희생자가 생기면 장례식을 한 자리에 차리고..
각기 다른 종교인이 참석하는 것은 가끔 보았지만..
음악과 토크로 평화와 사랑과 화합을 위해 각가 다른 종교 성직자가 모여 중창단을 만들어 연습하고 공연을 한다는 것은..
과연 그것이 잘 유지될 수 있을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나는 평소 개인적으로 일본인을 좋아하는 이가 있지만, 정치적으로 일본은 싫어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개인적으로라면 스님과 목사님이 얼마든지 좋은 사이가 되지만, 공적인 공간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지난 일요일 김진 목사님은 법당에서 기독교는 영성을 깨달으려는 종교로 보아..
보통 불자가 생각하는 무조건 유일신[하나님,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종교만이 아님을 보여주며 시작하였기에..
불성을 이해하고 있는 불자들은 김진 목사님 말씀에 거부감보다는 적극적인 동의와 동화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무조건 불보살님을 믿고 의지하려는 불자들에게는 경종인 죽비 울림으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는 영성의 종교요, 영성을 깨달으려는 종교라면..
그런 기독교는 불교와 별 거부감 없이 함께 모여 대화하고 함께 수행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다고 본다.
그것은 기독교는 유일신에 복종하고 따르는 종교로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만 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와 같은 불자에게는
기독교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 고마운 목사님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를 영성의 종교로 영성을 깨닫는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근거를 말하라고 하면..
나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떠올린다.
먼저 오른손이 하는 일이란 살인이나 도둑질과 같은 악행이 아닌 남을 이롭게 하는 선행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선행을 하지만 왼손이 모르도록 해야 하니 일반적으로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은밀히 하라는 것으로 새기는데..
나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의식함이 없이 평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고 새긴다.
나눈 수시로 핸드폰이나 열쇠를 어디다 두었는지 잊어버리는데.. 그렇게 할 때는 나름 다른 생각에 집중하고 있었을 때다.
다른 것에 집중하다 보니 핸드폰을 그 자리에 내려놓으면서도 왼손이 모를 만큼 잊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핸드폰을 내려놓듯.. 선행을 하면서도 내가 선행을 한다는 의식 없이 숨 쉬듯 하는 것을..
예수님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라고 설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은밀히 하면 남은 모르겠지만 자신은 알고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선행을 했음을..
영성을 깨닫는 것은 바로 오른손이 하는 선행을 왼손이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그리 되려면 평소 선행을 또는 수행을 열심히 해야만 한다.
저절로 그리 되는 게 아니다.
마침 김진 목사님과 함께 잠깐 얘기할 시간이 있었는데.. 자신은 독일 프랭크프르트에서 신학을 공부하셨다고 한다.
프랭크프르트라는 도시는 무엇이든 열린 마음으로 시작하는 학문 도시라고 하면서..
신학도 그런 분위기 속에 배우고 가르치는 모양이다.
그러니 김 목사님은 불교에 쉽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올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알다시피 세계는 갈등을 대화나 평화적으로 풀려하기보다 갈등을 증폭시켜 상대를 꼼짝하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폭력이나 강제 무력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런 흐름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하면서도 그냥 바라보고만 있다.
이때 만남중창단이 나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출발인가..
나도 한 달에 한 번쯤..만나면 반가운 지인들 몇이 만나는데.. 종교가 다르다.
해서 만나 즐겁게 웃고 얘기를 하지만.. 종교에 대한 대화는 거의 하지 않는다.
자칫 자기 종교에 대한 선전이 되어 상대와 대립하거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만일 상대의 영성이나 불성을 알고 호기심이 있고.. 그것을 이해하고 깨치려는 종교인임을 서로 알면..
영성이나 불성을 중심으로 종교에 대한 얘기도 얼마든지 가능할 터인데..
그러나 불자는 불성을 잘 모르고.. 불성을 깨치려 하지 않고..
기독교인은 영성을 잘 모르고.. 영성을 깨치려 하지 않는 현실이다 보니..
기독교인과 불자는 사회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대화를 할지언정.. 자기 종교에 대해 진실한 대화하기는 아주 어렵다.
사회가 진정으로 평화로워지고.. 자유가 펼쳐지는 세상을 바란다면..
불교나 기독교가 가운데 하나가 없어지기를 사회를 지향하는 게 아닌..
불자는 불성을 이해하고..
기독교인은 영성을 공부하며..
상대 종교에 불성과 영성이 있음을 알면..
종교를 통한 진실한 대화가 가능할 뿐 아니라..
각기 종교가 꿈꾸는 멋진 신세계가 여기서 가능하다고 본다.().
기독교 영성이란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삶'이라고 한다.
불교의 불성이란 '불보살님 마음으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 불보살님을 체험하고, 그 불보살님과 교제하며 사는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열린 마음으로 바라본 하나님은
오만하고 폭력적이며 이기적인 자로 자기만이 최고일 뿐으로.. 자기가 아닌 것은 무조건 아래 것으로 취급하는 분일까?.
아니리라.
일체이시며 이타적인 하나님은 사랑과 평화로 충만한 우주로.. 지금 여기서 항상 하리라.
불성은 말한다.. 일체는 유심조이니 일체는 마음의 조작이다.
마음이 오만하면 일체가 오만과 폭력으로 드러나고, 마음이 겸손하면 일체가 겸손과 사랑으로 드러난다.
만남 중창단이 지금 여기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세상이 점점 더 사랑보다는 증오와 이기심으로 차오르는 것을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불자이든 기독교인이든..
우리가 종교인이 된 것은.. 이기적이 아닌 이타적일 발길로..
험악해지고 흉폭해지는 사회를 다시 사랑이 늘어나는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우리 각자는 횃불이 아니더라도..
남이 보던 아니던.. 자기 자리에서 촛불이 되어 주위를 밝히는 이타적인 종교인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지.
내일이라도..
나와 다른 종교인과 만나면..
선한 궁금함 속에 상대 종교 안부를 묻고, 자기 종교를 말할 수 있는 평화로운 사회를 꿈꿉니다.()^^..
노래와 토크..
이 둘이 어울린 것만으로도 멋진 만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