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고랑
어머니가 돌밭에 사시네 등에서 서쪽 햇살 기울 때까지 풀을 뽑고 도랑을 내고 돌을 주우시네 종일 굴러도 성자의 사리 그림자도 밟을 일 없는 못난이 돌들이 밭고랑을 돌돌 따라 다니네 고랑 몇은 큰 놈 키우시고 나머지 고랑으로 작은놈 키워 내셨네 계절은 구부정했고 대처에 내보낸 알토란 같은 자식들은 밭고랑처럼 반듯했네 아직도 돌밭은 휘어진 허리를 한 번도 편 적이 없고 그늘 한 점 없는 밭둑에는 늙어가는 질경이가 호시탐탐 하얀 유목을 꿈꾸고 있다네
문상
친구가 소풍 가던 날, 꾸역꾸역 눈물을 소고깃국에 밥 말아 먹었네 몸도 마음도 어디론가 떠나갈 것만 같은 소풍 길 유부초밥에 김밥은 구경도 못 했지만, 모둠전에 홍어 무침은 맛이 일품이었네 건배사 한번 없어도 소주는 절로 넘어가더니만 온몸이 발그레 달아오를 때 문득 생각했네 내일이면 저 친구도 오동나무 상자 안에서 빨갛게 활활 타오를 텐데 곧 죽어도 친구는 친구라고 그래 친구는 단물 다 빠졌다고 뱉을 물건도 아니고 불어서 터지는 국수도 아닌데 우리 사이, 대충 금방 사라질 인스턴트는 아니라고 꼭 말해주고 싶은데 친구에게 잘 먹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비틀거리며 마냥 문을 나섰네 친구야 덕분에 오늘 밥 한 그릇 잘 먹고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