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본 총독부 압력 뿌리친 조선 화가들의 명품
창덕궁 벽화
20대 시절 海岡·以堂·靑田·心汕의 웅장한 필치
유석재기자
입력 2005.06.23. 18:05
85년 만에 세상에 공개된 창덕궁의 대형 벽화들은 세월의 흐름에도 아랑곳없이 선명한 색채와 웅장한 규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문화재청이 23일 언론에 공개한 창덕궁 벽화들은 ▲임금의 집무실인 희정당(熙政堂) 안에 그려진 '총석정 절경도'와 '금강산 만물초 승경도' ▲황후의 침전인 대조전(大造殿)의 '봉황도'와 '백학도' ▲대조전의 부속 건물 경훈각(景薰閣)의 '조일선관도'와 '삼선관파도' 등 모두 6점이다. 이 그림들이 있는 창덕궁 건물들은 출입이 금지돼 있어 그동안 벽화의 존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창덕궁 희정당 내부에 있는 해강(海崗) 김규진(金圭鎭) 화백의 벽화‘총석정 절경도’. 높이 195㎝, 길이 880㎝에 이르는 대작이다
희정당 벽화의 경우 높이 2m, 길이 9m에 가까울 정도로 이 그림들은 국내 유례 없이 큰 규모다. 또 놀라운 점은 이 벽화를 그린 사람들이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희정당 벽화),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백학도),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삼선관파도),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조일선관도) 등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대표적 작가들이라는 사실이다.
1917년에 일어난 창덕궁 화재로 희정당·대조전과 같은 주요 전각이 불타자 왕실에서는 건물 복원 계획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총독부는 일본인 화가가 그림을 그리도록 압력을 넣었지만 순종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영친왕의 스승 김규진과 갓 서화미술회를 졸업한 김은호·이상범·노수현 등 20대의 젊은 화가들에게 이 일을 맡겼다. 작품은 1920년에 완성됐다.
안휘준(安輝濬) 문화재위원장(서울대 교수)은 벽화들에 대해 "전통적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파노라마와도 같은 근대적 시각을 갖춘 뛰어난 작품들"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벽화들의 현재 상태를 진단해 문화재 지정 여부를 결정하고, 희정당 등 창덕궁 전각 내부는 복원 공사를 거쳐 내년 하반기에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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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흔히 있는 실내벽화가 무린암에도 있었고 창덕궁에도 이런 벽화가 그려질 뻔 했으나 고종과 순종은 어진화사 이당 김은호에게 이 벽화프로젝트를 맡기면서 서화미술회 학생들과 스승인 해강 김규진이 참여하게 되었다. 해강은 고종황제의 명으로 일본에 사진유학을 다녀왔고 소동동에 천연당 사진관을 개업했던 고종의 친한 지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