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4. 27.
- "주주도 고통분담 동참하라"
- 각국정부 `단서` 달아 지원
- 배당·임원 보수 등 제한
- 일자리 유지가 최고 복지
- 정부·기업·근로자 협력 중요
코로나19가 불러온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세계적으로 나타난 커다란 변화는 주주 자본주의의 퇴조인 것 같다.
영국은 중앙은행의 배당지급 중지 압력에 따라 모든 은행이 올해 배당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금융 지원을 받는 기업에 자사주 매입 중단을 조건으로 붙이겠다고 밝혔다. 주주도 고통을 분담해야 하고 위기 극복의 결실을 주주만 가져가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다.
'주주 홀로 이익 챙기기'의 대표적 사례는 제너럴모터스(GM)다. 경쟁력이 떨어지고 회사 자금을 파생상품에 잘못 굴려 손실을 보고 있던 중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터지자 GM은 파산으로 몰렸다. 미국 정부가 긴급자금을 투입해서 회생시켰다. GM이 '정부 자동차(Government Motors)'가 됐다는 비아냥까지 받았다.
미국 정부는 2013년 GM을 민영화하면서 지분을 팔았고 112억달러(약 12조원)의 손실을 봤다. 근로자들의 피해도 컸다. 그사이 2만1000명이 해고됐고 노동비용에서 110억달러, 연금지급액에서 30억달러가 줄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헤지펀드들이 개입했고 GM은 주주에게 돈을 대폭 나눠주기 시작했다. 2015~2019년 자사주 매입에만 106억달러를 썼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위기가 터지자 직원 1만4000명을 해고해 45억달러를 조달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주가 이사를 선임하고 경영진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이유는 배당이 잔여(residual)이기 때문이다. 임금, 이자, 세금을 다 내고 남은 이익 중에서 일부를 받는 것이다. 돈 받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니까 형평을 맞추기 위해 다른 채권자에게 없는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주주들은 '주주가치 극대화'를 내세우며 이 잔여 권리를 최우선 권리로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구조조정'한다며 보유 자산을 매각하고 임금을 삭감해서 모은 돈을 주주가 마구 가져가기 시작했다. 미국 상장대기업들은 1995년 이후 평균적으로 순이익의 거의 전부를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으로 주주에게 나누어줬다.
이 과정에서 주주가치론자들은 기업이 사내유보를 많이 갖고 있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며 주주에게 나눠줘야 돈이 효율적으로 돈다고 주장했다. 기업은 필요하면 언제든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고 합리화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사내유보금이 기업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주주가치론자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되고 편협된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한국 정부도 이번에 40조원 규모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제공하면서 "임직원의 보수 제한과 주주 배당 제한, 자사주 취득 금지 등 도덕적 해이를 막는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적 흐름에 한국도 발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과 근로자를 함께 살리는 것은 일회성 위기 대책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평상시의 정책이 돼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이에 대해 '분파적(分派的)'으로 접근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을 성장 방정식에서 제외했다. 한편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이름으로 국민연금을 동원한 주주 행동주의에 적극 나섰다. 배당을 적게 주는 기업을 '나쁜 기업'으로 낙인 찍어 기업 돈 빼내기 압박을 강화했다.
이것은 시민운동이나 노동운동의 배경을 많이 갖고 있는 현 집권층이 재벌을 최대 개혁 대상으로 꼽았고 이를 위해 주주행동주의와 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기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근로자가 연대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이제는 고용을 지킨다는 공동의 목표를 놓고 정부·기업·근로자의 연합체가 작동해야 한다. 정책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효과적으로 도와주면서 고용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신장섭 /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