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의 인물>
○부훤당 김해(負暄堂 金楷, 1633~1716)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칙(正則), 호는 부훤당(負暄堂)이다. 사득(士得)의 손자이며 광호(光灝)의 아들이다. 28세 때인 1660년(현종1, 庚子) 식년시(式年試)에서 생원(生員) 1등(一等)으로 입격하여 성균생원으로 있었으나 벼슬에는 오르지 못하여 고향으로 내려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27세 때인 1659년 안동(安東)에서 상주(尙州) 산양현(山陽縣) 대도촌(大道村)으로 이거(移居)하여 당대의 명사들과 널리 사귀었으며, 유림에 관한 글을 많이 남겼다. 61세 때인 1693년에는 산양현 군자봉(君子峰) 아래 근암촌(近嵒村, 현 산북면 서중리)으로 이거한 뒤 오랜 벗 권이칭(權以偁, 청대 권상일의 조부)의 도움으로 마을 북쪽을 개척하여 '보가리(保家里)'라 칭하였다.
만년에는 역학(易學)과 예학(禮學)을 깊이 탐구하여 심오한 경지에 이르니 명성이 높았다. 또한 천문(天文), 지리(地理), 법률(法律), 율려(律呂), 산수(算數)에도 정통하였다. 저서로 《부훤당문집(負暄堂文集)》 4권 2책이 전한다. 특히 그의 문집 3권에 <영빈서당이설기(潁濱書堂移設記)>를 남겨 근암서원(近嵒書院) 및 영원사지(鸰原寺址)의 연원을 밝힌 것은 학술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다.
첫댓글 權以偁 권이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