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삶이란 계획 없이 살던 꼼꼼히 계획대로 살던 머리가 복잡한 건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의 정리가 더디다 보니 작은 일에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 집을 하나 장만하고 약간의 수리를 시작했는데 하나 둘씩 늘어나는 작업이 벌써 한달이 되어 간다. 완벽한 건 없다. 그런데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게 잘 안된다. 그러다 보니 진행이 더디다. 인생도 똑 같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이 눈덩이 처럼 커지면서 나중에는 어깨에 묵직한 짐을 하나 안겨준다. 차라리 천천히 가면서 하나 하나 챙기는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은데 이 또한 만만치가 않다. 지인의 모친이 소천하셨다는 부고를 듣고 플러싱에서 오랜만에 옛 산우들과 조우했다. 모두 건강한 모습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2년전 크나큰 진통을 겪고 헤어졌던 아픔이 있었지만 시간은 우리의 상처를 살포시 덮어 주고 있다. 산악회는 마치 교회와도 같다고 한다. 산우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함께 잘 다니다가도 어느 순간 상처를 입고 헤어지고...다시 만나고...산이 좋아서 혹은 하나님이 좋아서라는 뚜렷한 목적이 같기 때문에 오해는 풀리고 애틋한 정은 다시 살아난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데는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일단 살아온 여정이 같을 수가 없어서이다. 깊이 들어갈수록 싸울수 밖에 없다. 인류의 역사 그 자체가 싸움의 반복이 아니던가. 아담의 아내 이브는 거짓말로 남편을 죄에 빠뜨린다.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원죄의 시발점이 된다. 첫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은 서로의 생업이 달랐다. 형 가인은 농부였고 아벨은 양치기였다. 하나님이 동생 아벨만 편애한다고 느낀 가인이 아벨을 죽이면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전쟁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싸움은 인류의 피할 수 없는 본성이 아닐까. 내가 속해 있는 한미산악회에서 지난주에 몽블랑 정상으로 이번주에는 TMB의 107마일 트레킹을 떠난다. 지난주에 떠나 벌써 정상을 밟은 세명의 산우들이 밝게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보냈다. 부러움이 확 몰려온다. 상상만해도 짜릿한 순간이다. 다음주 부터는 TMB 팀의 열흘간의 원행이 시작된다. 뉴졸산 회원 SB도 TMB에 참여하고 KS는 캐나다 밴푸 록키산맥으로 3주간의 백패킹과 스페인 성지순례길을 떠난다. 이미 떠나 있는 EK는 2달여의 여러곳의 원정을 마치고 7월초에 귀국한다. TK는 개인사정으로 9월부터 산행이 가능하다고 하고 LC는 부상으로 한달간 산행을 못한다. 건강하게 자연을 즐기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힐링하고 리부팅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산을 사랑하고 한없이 걷고 싶은 사람들. 내가 걷는 산과 들은 생을 다하는 그날까지 항상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모두 떠나간 자리에 그리움이 남을 때 추억이라는 기쁨이 빈자리를 채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