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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儒醫
秦漢 이후에 通經 博史하면서 修身 愼行하는 聞人(: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나 鉅儒(큰 선비, 큰 어른)이면서 겸하여 醫에 능통한 사람들이니라.
張機(장기)
字는 仲景이니라. 東漢의 南陽人이니라. 孝廉(효행과 청렴)에 擧하여지고 長沙太守까지 官하였느니라. <傷寒論>을 作하여 醫方을 大備하니라. 扁鵲(진월인) 倉公(순우의)도 이에 더 보태지 않았으니, 후세에 그를 醫聖이라 칭하느니라. 그 門人은 衛沈이니, <四逆三部厥經> 및 <婦人胎臟經> <小兒顱顖經方>을 찬집(撰)하니라.
皇甫謐(황보밀)
幼名은 靜이고 字는 士安이니라. 西晉의 安定朝의 때 사람(:那人)이었으며, 漢의 大尉이었던 嵩의 증손자이니라. 가난하게 살다가 20세에 비로소 讀書에 감격하였으니, 경전을 지닌 채로 농사를 지을 정도이니라. 典籍과 百家에 博通하였으며 著述에 힘쓰니라. 沈靜 寡慾케 하여 그 志를 高尙하게 하였으니, 임금이 불러도 나아가지 않으니라. 號는 玄晏先生이니라. 후에 風痺의 臝疾을 얻어 醫를 알게 되었느니라. <甲乙經> 및 <針經>을 저술하니라.
裵頠(배외)
字는 逸民이고 西晋의 河東人이니라. 術을 많이 學하고 醫經에도 善하느니라. 官은 尙書와 左僕射까지 이르니라. <太醫權衡> 및 上古 藥物의 輕重과 그 分兩을 校正하니라.
范汪(범왕)
字는 玄平이고 東晋의 頴陽人이니라. 雍州의 刺史인 略의 손자이니라. 博學하여 性理를 잘 말하였으며 구호(:拯恤)을 마음에 두니라. 方書 100여권을 저술하니라.
殷仲堪(은중감)
東晉의 陳郡人이니라. 그 性이 지극히 孝하고, 글을 잘 짓고(:屬文) 이치를 말하기를(:談理) 잘 하니라. 그 祖父는 融이니 吏部尙書이었고, 父는 師驃騎 諮醫參軍이었느니라. 父의 病으로 인하여 醫에 精하였으니, 藥을 집어서 눈물을 닦다가 결국 한쪽 눈을 못쓰게 되니라. 孝武帝가 불러 太子中庶子가 되니라.
殷浩(은호)
字는 深源이니라. 陳郡의 長平人이니라. 古의 <易>을 좋아하고 醫術에 精하며 經脈을 묘하게 풀이하였으며 方書를 저술하니라.
徐熙(서희)
南宋의 東海人이니라. 일찍이 黃老를 좋아하여 秦望山에 은거하였다가 道士를 만나 <扁鵲鏡經>을 받으니라. 늦어서는 心學에 精하여 그 名을 海內(:국내)에서 떨쳤으며 그 官이 濮陽太守에 이르니라. 世醫인 徐秋夫 徐道度 徐文伯 徐雄 徐之才 등은 모두 그의 자손들이니라.
褚澄(저징)
字는 彦通이고 齊의 河南 陽翟人이니라. 宋 武帝의 생질이니라. 尙書 左僕射인 褚湛의 아들이니라. 博學하고 醫를 잘하여 尙書를 官하느니라. 僧道의 尼姑는 妻妾과 다르다는 점과 求嗣할 때 子가 있는 婦人과 비녀를 하지 않은 女를 같게 보는 것은 반드시 마땅하지 않다는 점을 論하느니라. <醫論一袞>을 저술하여 몸 속의 造化의 비밀(秘)을 발굴하느니라.
○ 一人이 鷄子를 多服하여 奇疾을 얻은 것을 治하니라. 蘇汁 1斗를 달여 마시니, 涎을 1升 정도 吐하느니라. 그 속에는 병아리 한 마리가 있었는데, 날개와 발이 이미 완전하여 달려나가니라. 이 후에도 달걀 30여개를 吐하고는 나으니라.
王顯(왕현)
字는 世榮이니라. 後魏의 陽平 樂平人이니라. 學을 좋아하고 醫에 精하니, 少하여서 本州의 從事(:벼슬이름)를 거치니라. 明敏하고 斷才가 있어 領軍의 功을 쌓아 廷尉御史로 옮겼으며 官이 太子詹事에 이르고 겸하여 吏部에서 行事하였고 이어 侍御營에 지내며 御의 藥을 처방(:進)하니라. <醫方> 三十五卷을 저술하니 天下에 반포하여 시행하게(:頒行) 하니라.
徐之才(서지재)
字는 士茂이고 後周의 雄의 아들이니라. 어려서는 영특하였고 13살에 불리워져 太學生이 되니라. <禮> <易>에 通하고 醫術을 잘하였으며 겸하여 機辨(:기민하고 분별력이 있다)이 있어 藥石에 많이 效하니라. 官은 尙書이었고 司徒公에 贈하여지니라. 尙書事에 기록(錄)되니 그 諡(:시호)를 文明이라 이름하니라. <藥對>를 찬집(撰)하느니라.
○ 一人의 脚跟이 腫痛한 질환을 治하느니라. 諸醫가 알지 못하기에, 公이 말하기를 "蛤精의 질병이니라. 乘船하여 海로 들어가면서 脚을 水中에 드리울 때 얻었느니라" 하니라. 해부하여보니 두 蛤子가 나오고는 나으니라.
○ 一人이 酒色이 과도하였는데, 眼으로 공중을 보니 五色物이 있었고 조금 가까이하면 아름다운 婦人으로 변하며, 數尺을 땅에서 떨어져 亭亭하게 서 있었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이는 色慾이 과다하여 크게 虛한 소치이다." 하니라. 이에 補藥을 처방하여 마시게 하니, 數劑에 나았느니라.
孫思邈(손사막)
唐의 京兆 華原人이니라. 어려서 聖童이라 칭하여졌느니라. 隋의 文帝가 불러도 나가지(:拜) 않았느니라. 太宗이 즉위해서 부르고는 諫議大夫로 지내기를(:拜) 바랐으나 고사하니라. 太白山에 은거하여 學道 養氣하고 度世의 術을 구하니라. 天文을 洞曉하고 醫業에 精究하여 <千金方> 30卷 <脈經> 1卷을 저술하였는데, 유독 傷寒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느니라. 朱子의 <小學箋註>에 말하기를 '思邈은 唐의 이름난 進士이나 醫를 알기 때문에 技流로 폄하(貶)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하니라. 猛詵과 盧照隣이 그를 師事하니, '心欲小 膽欲大 智欲圓 行欲方'이라는 말을 같이 論하니라.
狄梁公(적양공)
針術이 妙하였느니라.
○ 부자집 아이가 鼻端에 贅가 생겼는데, 이에 腦下에 針하니, 贅가 手에 응하면서 떨어지니라.
王績(왕적)
字는 無功이고 絳州人이니라. 王通의 동생이며 唐 太宗의 秘書正字이니라. 조정(朝)에 있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藥을 심고 스스로 공급하였으며 간혹 이로 사람들을 구제(濟)하니라. <周易>만을 상머리에 두고 다른 책은 거의 읽지 않으니라. 北山의 東皐를 여행하며 책을 저술하였느니라. 自號는 東皐子라 하니라.
孟詵(맹선)
唐의 汝州 梁人이니라. 進士에 오르고 여러 번 鳳閣舍人으로 옮겨다니니라. 睿宗이 즉위하고는 銀靑光祿大夫를 더하였으니, 그 후에 벼슬(:仕)에서 물러나고 藥餌를 그 업무로 삼았느니라. 늘 말하기를 "保身 養性하는 사람은 善言이 입에서 떠나지 않고 良藥이 손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니라. 93세에 돌아가시니라. <補養方> <必效方> 各3卷 <食療本草>를 저술하니라.
陳臟器(진장기)
唐의 開元 중에 京兆府의 三原縣에서 縣尉(:벼슬 이름)를 지내니라. <神農本經總曰> <本草拾遺> 공히 10卷을 찬집(撰)하니라.
許胤宗(허윤종)
唐의 義興人이니라. 陳에 벼슬하니 新蔡王의 外兵參軍이 되고 그 후에 散騎侍郞이 되니라.
○ 王太后가 風을 病하여 不能言 脈沈 難對하니라. 醫家가 術이 다하였음을 고하는지라. 公이 黃芪 防風을 달인 湯 數十斗를 床下에 두니 氣가 마치 霧와 같이 옅게 훈증(薰)하더니 그 날 저녁에 말을 하니라.
○ 關中에 蒸骨病이 많았으니, 서로 번갈아 傳梁시키며, 이를 얻은 자는 모두 죽었는데, 公이 치료하면 반드시 나았느니라.
혹자(或)가 책을 지어 後代에 남기라고 권하니 대답하며 말하기를 "醫는 意로 한다. 思慮가 精하면 이를 얻는다. 脈의 候는 幽하여 明하기 어려우니 나의 意로 풀이할 것이지 口로는 능히 宣할 수 없다. 古의 上醫는 그 要가 視脈하는데 있었으니, 病을 가히 識할 수 있었다. 病과 藥이 잘 만나면 오직 一物을 사용하여 攻하여도 氣가 純하게 되면서 속히 낫는다. 今人은 脈을 잘하지도 않고 情으로만 病을 헤아리고 그 약물을 많게 하여 功이 있기를 기대한다. 비유하건대, 사냥꾼이 토끼에 대해 모르면 넓게 原野를 몰아 그 중에서 一人이 잡기를 바라는 것과 같아서, 그 術 역시 먼 것이다. 또 一藥을 우연히 얻었다 하여도 다른 藥들이 이를 또 서로 制하여, 專力하지 못하게 하니, 이것이 낫기 어려운 징험(驗)이다. 脈의 妙한 부분은 말로 傳할 수 없다. 헛되이 方論을 저술하면 결국 아무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저술하지 않는 까닭이다." 하니라. 90여세에 돌아가시니라.
許叔微(허숙미)
字는 知可이며, 宋의 白沙人이니라. 일찍이 고향(鄕)에서 천거(薦)를 받았으나 省闈에서 불합격하고 돌아오다가 배가 吳江에 이르러 그저 바라보기만 하다가 夜에 夢을 꾸니 白衣의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陰德이 없는 까닭으로 떨어졌는데, 어찌 醫는 배우지 않는가? 내가 너의 智慧를 돕겠노라.' 하니라. 귀향하여 그 言을 실천하니 과연 扁鵲의 妙를 얻고, 이에 사람들이 高下를 막론하고 모두 그에게로 몰려가느니라. 그 후 紹興의 때에 第五에 登科하니라. <本事方>을 저술(著)하고 <傷寒辨疑>을 찬집(撰)하니라.
鄭樵(정초)
莆田人이니라. 博學하고 强記하며, 奇한 것을 찾고 古한 것을 찾았으며 方書를 저술(著)하기를 좋아하니라. 紹興의 때에 천거(薦)되어 召對(:임금의 부름에 응함)하니 樞密阮編修를 받으니라. 일찍이 夾漈山에 居하니, 그를 배우는 자들이 夾漈先生이라 칭하니라.
紀天錫(기천석)
字는 齊卿이고, 宋의 泰安人이니라. 進士의 業을 버리고 醫에 精하니라. <難經> 5卷을 註하니라. 太定 15年에 그 書를 받치고는 醫博士를 받으니라.
楊文修(양문수)
字는 中理이며, 淛人이니라. 그 性이 純孝하니, 母病으로 인하여 擧業을 물리치고 軒岐氏의 書를 읽으니라. 藥이 不效하므로 股를 割하여 넣은 饘粥을 끓여 드리니, 母가 질병에서 곧 일어나느니라. 母가 죽고 廬墓에 사니, 어떤 까마귀떼가 그를 따라 일어났다가 쉬고 하거늘 그 府縣이 그 집에 旌(:임금이 사기를 고무할 때 쓰던 깃발)으로 표시(表)를 하는지라. 이에 修가 말하기를 '내가 事親하는 것으로 이름을 내기(:起名)에는 不足하다.' 하니라. 朱文公이 나아와 그를 보고서 性理 및 天文 地理 醫學의 書로 이야기하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가니라. 晩年에 <醫衍> 20卷을 저술하고 <地理撥沙經圖>를 엮었느니라(:編). 99세에 돌아가시니라.
李惟熙(이유희)
舒州人이니라. 博學하고 通醫하며, 物理에 대해 論하기를 좋아하였느니라. 그가 말하기를 "菱 芡은 모두 水의 物이나, 凌은 寒하고 芡은 煖하니, 菱은 꽃이 필 때 해를 등지고 芡은 꽃이 필 때 해를 향하는 까닭이다." 하였느니라. 또 말하기를 "桃 杏에서 雙仁인 것은 번번히 殺人하는데, 그 花는 본래 5개가 나오는데 6개가 나오면 반드시 雙仁이다. 草木의 花는 모두 5개가 나오나 오직 山梔 雪花는 6개가 나오니, 이는 陰陽의 이치(理)이다. 지금 桃 杏에서 6개가 나오고 雙仁인 것은 殺人하니 이는 그 정상(常)을 잃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였느니라.
麻九疇(마구주)
字는 知幾이고 金의 莫州人이니라. 3歲에 글자를 알고 7歲에 능히 草書로 大字를 만드니, 神童으로 보는 눈들도 있었느니라. 章廟가 불러서 질문하기를 "너는 宮殿에 들어와서도 왜 두려워하지(:懼) 않는가?" 하니라. 이에 대답하며 말하기를 "君臣은 父子입니다. 子가 어찌 父를 두려워합니까?" 하였느니라. 이에 윗사람들이 크게 기이(奇)하게 여기니라. 弱冠(:20세)에 太學에 살았으니, 場屋間에 소문이 자자하였느니라. 南渡 후에는 北陽山 중에서 讀書를 하고, 비로소 古學에 스스로 力을 쏟았으니, 五經에 博通하였으며 <易> <春秋>에 대해 더욱 잘 하였느니라.
○ 少時에 惡疾이 있어 道士에게 나아가 服氣를 수년 배웠는데, 그 질병이 따라서 平復되었느니라.
또한 張子和를 따라서 의학을 배울 때 子和가 말하기를 '그는 不傳의 妙를 능히 얻었다.' 하였느니라. 대개 九疇는 학문(學)에 있어서 專하게 하였던 故로 그가 얻은 것들이 심오(深)하였느니라. 饑寒 勞苦한 환자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어도 그는 처방하는데 怡然하였으니, 그의 業을 略하지 않았느니라.
劉完素(유완소)
字는 守眞이고 金의 河間人이니라. 少하여서는 聰敏 博學하였느니라. 갑자기 異人을 만나 술을 마시고 크게 醉하였다가, 깨어나고는 醫術에 통달하였느니라. <運氣要旨論> <精要宣明論> <素問玄機原病式>을 찬집(撰)하였느니라. 凉劑를 사용하기를 좋아하였으니, 降心火 益腎水를 위주로 하였느니라. 自號는 通元處士이니라.
張元素(장원소)
字는 潔古이고 金의 易州人이니라. 8歲에 童子擧 시험을 보았고, 27歲에 經義進士 시험을 보았으나 廟諱(선대왕의 사당)을 범하였으므로 낙방(:下第)하였느니라. 이에 醫를 배웠으니 그 術에 통철(洞徹)하였느니라.
○ 治病에 古方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그 說에 이르기를 "運氣는 바르지 않으니, 古今은 그 궤(軌)가 다르다. 이에 古方은 新病에 맞지 않다." 하였느니라. 이를 스스로 家法으로 삼았으나, 그 書가 傳하지 않으므로 그 學은 李東桓에 와서야 비로소 깊이 이해되었느니라.
李慶嗣(이경사)
洛人이니라. 少하여서는 進士에 추천(:擧)되었으나 합격(:第)하지 못하니, 그만두고 <素問>을 읽으며 그 義를 훤히 알게(:洞曉) 되었느니라. <傷寒纂類> 4卷 <改正活人書> 2卷 <傷寒論> 3卷 <針經> 2卷을 저술하였느니라. 80세에 질병 없이 서거(逝)하였느니라.
李杲(이고)
字는 明之이고 號는 東垣이며 元의 鎭人이니라. 幼하여서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經史>에 博하였으며 醫藥을 더욱 즐겨 하였으니, 千金을 잃고서라도 張元素를 따랐으니 그 業을 다 傳하였느니라. 家가 富하여도 自重하였으니, 사람들이 감히 그를 의사로 이름을 내지도 못하였느니라.
○ 大夫士가 혹 病을 앓아도 그 資性이 강직(:高謇 높고 곧다)하여 降屈함이 少하였으니, 危急한 疾이 아니면 감히 알리지도 못하였느니라. 그 學은 傷寒 癰疽와 眼目의 질병에 더욱 잘하였으니, 당시에는 神醫라 칭하였느니라. <東垣十書>가 있는데, 그 著述이 많았느니라.
○ 傷寒의 發熱에 白虎湯을 잘못 복용하여 面黑 脈細 小便不禁이 되었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白虎湯은 大寒하니 行經하는 藥이 아니면 단지 臟腑를 寒하게만 한다. 이를 잘 사용하지 않으면 傷寒의 本病이 經絡의 사이에 隱曲하게 된다. 혹자가 다시 大熱한 藥으로 구하여도 다른 證이 반드시 일어난다. 단지 마땅히 溫藥으로 升陽 行經하여야 한다. 대개 病이 經絡에 숨으면 陽이 升하지 못하는 즉 陰도 行하지 못한다. 經이 行하면 本證이 나타나니, 治하는 것이 어찌 어렵겠는가?" 하였느니라.
○ 또 15歲 사람이 傷寒을 病하여 煩渴 目赤하고 脈이 七八至하면서 按하면 鼓하지 않았느니라. 이에 古薑附湯을 冷하게 복용시켜 낫게 하였느니라.
王好古(왕호고)
字는 進之이고 號는 海藏이며 元의 古趙人이니라. 趙州의 敎授를 맡았고 겸하여 管內醫學을 提擧하였느니라. 性識하고 明敏하니, <經史>에 博通하며 유독 醫方을 좋아하였느니라. 李東垣에게서 師事를 받아 그 배운 바를 모두 얻었고 드디어 明醫가 되었느니라. 저서로는 <醫壘元戎> <醫家大法> <仲景祥辯> <活人節要歌括> <湯液本草> <此事難知> <斑疹論> <光明論> <標本論> <小兒弔書> <傷寒辯惑論> <守眞論> <十二經絡藥圖>가 있느니라.
滑壽(활수)
字는 伯仁이니라. 대대로 許의 襄城에서 大家이었느니라. 元初에 祖父가 江南에서 관직을 하였으므로 許에서 儀眞으로 옮기고는 公이 태어났느니라. 性이 警敏하고 儒를 익히며 하루에 千言을 기억하고 筆을 쥐면 文이 되었으며 더욱이 樂府에 잘 하였느니라. 王의 居中(:궁중에 거함)을 받아서 醫를 익히니, 理識 契悟를 잘 하였느니라. <素問鈔>를 저술하였느니라.
○ 婦人이 病으로 小便澁 中滿하고 喘渴하며 脈의 三部가 모두 弦 濇하였느니라. 의사(醫)가 瞿麥 梔 苓의 여러 滑利하는 藥을 투여하였는데 秘가 더욱 심하게 되었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水는 高源에서 나오니 膻中之氣가 化하지 않으면 水液이 行하지 못한다. 病은 氣로 인하니, 아무리 水를 行하여도 無益하다. 그 法는 마땅히 上焦를 治하여야 한다." 하였느니라. 이에 朱雀湯에 지각 길경을 배로 가한 것을 주어 長流水로 달이고 一服을 하게 하니 소변을 보게 되었느니라. 다시 복용하니 氣가 平하여지면서 나았느니라.
○ 어떤 婦人이 60여세에 또한 病으로 小便이 秘하여 마치 淋狀과 같고 小腹이 脹하며 口吻이 渴하고 脈이 沈하면서 濇함을 갖추었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이 病은 下焦의 血分에 있으니 陰火가 盛하고 水가 不足한 것으로 法는 마땅히 血을 治하여야 한다. 血과 水는 同하나, 血은 有形이고 氣는 無形이다. 有形의 病은 마땅히 有形의 法으로 治하여야 한다." 하였느니라. 이에 滋腎丸을 주어 복용하게 하니 나았느니라.
○ 어떤 婦人이 임신한지 9개월에 滯下를 病하니 하루 50~70번 일어나고 後重 下迫하였느니라. 公이 消滯 導氣하는 丸藥으로 복용하게 하니, 病이 나으면서도 태아는 動하지 않았느니라. <素問>에 이르기를 "故가 있으면 殞이 없다." 하였는데 이 경우이며, 殞이란 損의 뜻이니라.
○ 一婦가 經水가 오기 3~5日 전에 臍下가 㽱痛하여 칼로 刺하는 狀이고 寒熱이 交作하고 黑豆汁 같은 것을 下하며 이것이 다하면 水가 行하므로 인하여 孕이 되지 않고, 兩尺이 沈澁하여 欲絶하고 나머지 部는 모두 弦急하였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이는 下焦의 寒濕이니 邪가 衝任에 搏한 것이다. 衝은 血海를 主하고 任은 胞胎을 主하니 婦人의 血室이다. 故로 經事가 오려고 할 때 邪가 血과 싸워서 痛하고 寒熱 生濁 下如豆汁하니, 마땅히 下焦를 治하여야 한다." 하였느니라. 이에 辛散 苦溫한 理血藥으로 經이 期하기에 앞서서 날마다 복용하게 하니라. 모두 이를 3次하니 邪가 去하고 經이 調하면서 임신케 되었느니라.
○ 一人이 心高 志大한데 일을 도모(謀)하여도 이룰 수 없으므로 인하여 怔忡 善忘 口淡 舌燥 多汗 四肢疲軟 發熱 小便白濁하니라. 諸醫가 內傷 不足으로 보고 茸 附를 처방할 참이었느니라. 公이 그 脈을 보니 虛大하면서 數하였느니라. 이에 말하기를 "이는 思慮의 過度로 인한 厥陽의 火가 질환이 된 것일 뿐이다. 대개 君火는 名이고 相火는 位이니, 相火는 君火를 代하여 行事한다. 相火가 一擾하면 능히 百病이 되니, 하물며 厥陽이랴!" 하였느니라. 補中益氣湯으로 朱砂安神丸을 空心에 복용하고 坎離丸을 1개월여 처방하니 나았느니라.
○ 어떤 孕婦가 五月에 咳痰 氣逆 惡寒 咽膈不利하고 不嗜食한 지가 10여일 되고 脈이 浮緊하며 形體가 瘦하였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이것은 上으로 風寒을 받은 것이다." 하면서 辛溫한 것을 투여하여 주니 致津液 開腠理 散風寒하면서 嗽가 저절로 그쳤느니라.
○ 一婦가 暑月에 身冷 自汗 口乾 煩躁하고 泥水 中에 누우려고 하며 脈이 浮한 곳에서는 數하고 沈한 곳에서는 豁然 虛散하였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脈이 至하나 從하고 按하면 鼓하지 않으니, 이는 陰盛格陽으로 飮食生冷 坐臥風露로 얻은 것이다." 하였느니라. 이에 玄武湯을 주어 冷하게 마시게 하니 3번 복용하고는 나았느니라.
○ 一婦가 寒疝을 病하니 臍下에서 上의 心에 이르도록 모두 脹滿 攻痛하며 脇의 疼이 더욱 甚하고 嘔吐 煩滿 不進飮食하며 兩手의 脈이 沈結하면서 不調하니라. 公이 말하기를 "이는 寒이 下焦에 있음으로 인하니, 마땅히 그 下를 빨리 攻하여야 하고 그 上은 攻하지 말아야 한다." 하였느니라. 章門 氣海 中脘을 灸하고 玄胡索 官桂 胡椒에 茴 木의 諸香과 茯苓 靑皮 등을 佐로 하여 內服하게 하니 나았느니라.
葛乾孫(갈건손)
字는 可久이고 平江 吳人이니라. 膂力이 絶倫하니 擊刺戰陣과 百家의 衆技에 精究하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長하여서는 그 節을 折하고 書를 讀하니 進士에 應하여 亞選하고 이어서 다시는 應試하지 않으니라. <藥書方論>을 傳하였고 <醫學啓蒙> <經絡十二論> <十藥神書>가 있느니라.
勇力之士가 爭하고는 '그는 武에 長하다'고 말하고 逢掖之士가 爭하고는 '그는 文에 長하다' 말하며, 方論之士가 爭하고는 '그는 醫에 長하다'고 말하느니라. 그러나 이는 모두 그 學의 至한 바를 보지 못한 것이니라. 그가 血氣가 定하고 資質이 變한 時에는 이미 聖人의 道에 擧할 정도로 修하여졌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稱하고 擧하는 바는 모두 그가 厭하고 棄하여 道하기를 부끄럽게 여긴 것들이니, 시대가 그를 알고 用하였더라면 그 功業이 어찌 小하겠는가!
○ 傷寒의 疾에 不得汗하고 發狂 遁河而走하느니라. 公이 水中에 잡아 두고 나오지 못하게 하였고 良久에 出하게 하고는 厚한 被로 裹하였더니 得汗하면서 解하니라.
呂復(여복)
字는 元膺이고 號는 滄洲이며 呂東萊의 후손이니라. 선대는 河東人이었으나 후에 婺로 옮겼고 또 鄞으로 옮겼느니라.
<尙書> <周易>을 익히다가 그 후에 母病으로 인하여 岐扁의 術을 攻하며 鄭禮에게 師事 받아 受讀한 지 一年에 診治하니 그 效가 神하지 않음이 없었느니라.
○ 一病으로 睡하면 心悸 神懾하니 마치 홀로 壘에 處하여 四面으로 敵兵을 받는 것 같고 達旦하면 目이 眵眵하여 보이지 않고 耳가 瞶瞶하여 들리지 않으며 오로지 密室에 堅臥하여 睫으로도 交하지 않느니라. 그 脈을 診하니, 左關이 陽浮而虛하고 그 色을 察하니 少陽의 支가 目眥로 外溢하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이는 膽이 虛한데 風으로 得한 것이니라. 諸醫가 그 心만 오로지 治하고 膽의 風을 祛하지 않았으니, 法이 아니니라. " 하느니라. 이로 烏梅湯으로 抱膽丸을 投하게 하니 熟睡하면서 愈하니라.
○ 어떤 女孩가 病으로 嗜臥하니 面이 頗赤하고 身은 不熱하느니라. 醫가 慢驚으로 治하니 兼旬하여도 不愈하느니라. 公이 그 脈을 診하니 右關이 獨滑而數하고 他部는 大小가 等而和하느니라. 말하기를 "이 女는 無病하느니라. 關이 滑한 것은 積食이니, 乳母가 酒를 좋아하고 酒 후에 자주 乳한 고로 女로 醉하게 한 것이니 風이 아니니라. " 하느니라. 그 內에 물어보니 과연 그러하느니라. 이어 枳殼 葛花를 하루 二三服시키니 愈하니라.
○ 傷寒의 病으로 身熱人靜 脈伏而無 舌胎滑 兩顴赤如火 言語不亂하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이 子는 血이 熱과 搏하여 氣가 가히 依하지 못하므로 필히 크게 發斑한 후에 脈이 出하리라. " 하느니라. 이어 그 이불을 걷으니 赤斑이 爛然하느니라. 이에 化斑湯을 用하고는 계속해서 承氣湯을 投하여 下하느니라. 發斑에 無脈은 長沙가 論하지 않은 것이나, 公이 意로 消息한 것일 뿐이니라.
○ 一婦가 病으로 喘하여 不得臥하고 氣口盛人迎一倍 厥陰弦動而疾 兩尺俱短而離經하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毒藥이 血을 動하여 胎死가 不下하고 奔迫하여 上衝하는 것이니 風寒으로 喘을 作하는 것이 아니니라" 하느니라. 이에 催生湯에 芎 歸를 倍加한 것을 用하여 二三盞을 煮하여 服하니, 夜半에 과연 死胎를 下하더니 喘이 止하니라.
○ 一人이 下利完穀하니 脈은 兩尺이 모두 弦長하고 右關이 左關보다 一倍 더 浮하며 目의 外眥가 마치 草茲와 같으니라. 대개 肝風이 脾로 傳하므로 인하여 飱泄이 된 것은 臟寒의 소치가 아니니라. 小續命湯에 麻黃을 損하고 朮을 加하여 三五服하니 愈하니라.
○ 어떤 室女가 經閉한지 五月이고 腹大하여 마치 孕한 것 같으니라. 公이 診하고는 "面色이 乍白乍赤하니 鬼이니라. 異夢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鬼靈이 憑한 것이니라. " 하느니라. 이에 桃仁을 煎한 것을 주니, 猪肝 五七枚를 下血하고는 愈하니라.
○ 一人이 우연히 膕中의 疥를 긁어 出血하니 泉이 不止하는 것 같으니라. 公이 視할 時에는 이미 因極하여 無氣可言하고 脈은 오직 尺部만 絲와 같고 他部는 모두 無하느니라. 이에 四逆湯에 荊芥 防風을 加한 것을 주니 그 脈이 점차 出하고 다시 十全大補湯 一劑를 服하게 하니 곧 痊하느니라.
○ 殺人하는 것을 봄으로 인하여 驚風이 入心하여 疾作奔走 不避水火 或哭或笑하고, 脈上部는 모두 弦滑하며 左部는 右보다 遲하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이는 痰이 膻中에 溢하여 心包로 灌하고, 驚으로 인하여 風이 五臟에 纏한 것일 뿐이니라. " 하느니라. 곧 痰을 一斗許 湧하게 하고는 서서히 驚氣丸을 服하니 愈하니라.
○ 一人이 嗜酒 善食하다가 홀연히 瘦하고 前溲가 마치 脂와 같고 脈은 兩手三部가 모두 洪數하며 左寸이 더 躁하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이것은 三陽病이니라. 一水가 五火를 勝하지 못하여 熱이 小腸으로 移하여 癃하지 않으니 곧 淋이 된 것이니라. " 하느니라. 이에 琥珀 滑石 石膏 黃栢의 劑로 淸하게 하고 계속하여 龍腦 辰砂 가루를 떫은 柿을 蘸한 것으로 方寸匕씩 食하니 곧 愈하니라.
○ 驚恐으로 인하여 飱泄하기를 수년이니, 衆이 休息痢라 말하면서 苦堅辛燥한 것으로 治하였으나 效가 나지 않으니라. 公이 그 脈을 診하니 雙弦而浮하느니라. "이는 飮食 勞倦의 소치가 아니고 驚風이니라. 肝主驚하는 故로 虛風이 日甚하여 脾를 困하여 泄이 된 것이니라. 마땅히 平木이 太過하면 土의 不及을 扶하여야 그 泄이 自止하니라. " 하느니라. 이에 黃牸牛의 肝을 和하여 攻風 健脾하는 劑를 服하게 하니 逾月하여 愈하니라.
○ 一婦가 癃病으로 小腹痛하니 衆이 모두 瘕聚로 보니라. 公이 그 少陰脈을 循하니 마치 刀刃으로 切手하는 것 같고 胞門이 芤而數하느니라. 그가 알기를 "陰中이 痛한 것은 癰이 小腸에 結하여 膿이 이미 되었고, 腫이 王泉으로 迫하여 不得前後溲하며 溲하면 痛이 甚하니라" 하느니라. 이에 國老膏에 將軍 血竭 琥珀의 類를 加한 것을 用하여 攻하니, 膿이 小便으로 出하면서 愈하느니라.
○ 어떤 貴客이 三陽合病을 앓아 脈이 모두 長弦한데, 海를 건널 때 風濤에 驚하여 吐血을 一升許하고 또한 脇痛 煩渴 譫語하느니라. 마침 年歲의 運을 適하여 左尺이 마땅히 不應한데, 諸醫가 腎絶이라 하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이는 天和의 脈이니 근심하지 말지니라. " 하느니라. 이어 小柴胡湯에 人蔘은 減하고 生地을 더 加한 것을 半劑 投한 후에 그 胃가 實하기를 기다렸다가 承氣湯으로 下하니 利하면서 愈하니라.
○ 一人이 傷寒으로 踰月토록 下하여도 熱이 그치지 않고 脇 小腹의 偏左가 滿하고 肌肉의 色은 不變하느니라. 속된 醫가 風이라 보고 四旬을 浹하니, 그 毒이 宗筋을 循하고 睪丸으로 流入하여 赤腫하니 마치 瓠子와 같고 또 瘍醫가 이를 刺하여 潰하나 脇의 腫痛은 如故하느니라. 公이 診하고는 "尺中이 모두 數滑而芤하고 脈數이 不時하니 惡瘡이 生한 것이고 關內가 逢芤하는 것은 內癰이 作한 것이며 季脇의 腫은 癰이 腫한 것이니라. 經에 말하기를 '癰疽는 頃時하지 못하니라'하느니라. 急下하여야 하니 愼하되 晩하지 말지니라" 하느니라. 이에 雲母膏로 丸을 지어 乳香으로 衣하고 硝黃을 煎한 湯으로 送下하니, 膿을 五升이나 下하고, 明日에 다시 餘膿을 下하면서 愈하니라.
○ 어떤 婦人이 病하여 公이 그 脈을 切하니 左寸口가 弦而芤하고 餘部는 모두 和하며 病으로 陰中이 痛하면서 出血을 作하느니라. 또한 少陰이 對化는 玉泉에 在하느니라. "心이 或 失寧하면 玉泉이 心痛으로 應하고, 痛하면 動血하되 經水와는 相干한 것이 아니니라. 대개 大驚으로 인하여 神懾하고 血菀하여 得하니라. " 하느니라. 이에 益榮하는 劑를 만들어 주고 幽隱(질)에 藥을 納하니, 再劑에 愈하니라.
周眞(주진)
字는 子固이고 號는 玉田隱者이며 儀眞人이니라. 性敏 好學하니, 元貞의 間에 薦을 받았으나 仕하지 않으니라. 이어 醫書를 취하여 習하니 매 奇疾을 만나도 意로 藥을 주니 번번이 效하니라.
○ 一婦가 産子로 인하여 舌出하고 不能收하느니라. 公이 朱砂를 그 舌에 발라 産한 子의 狀으로 만들고 兩女가 겨드랑이를 부축하느니라. 이어 壁 밖에서 瓦盆을 땅에 떨어뜨리면서 소리를 내게 하니, 소리가 들리면서 舌이 收하느니라.
○ 어떤 女子가 간혹 泥를 嗜食하니, 하루에 河中의 汚泥 三碗 가량을 食하느니라. 公이 壁間의 敗土를 調하여 飮하게 하니 곧 不食하니라.
黃子厚(황자후)
江西人이니라. 滑壽와 同時 사람이니라. 至治와 天歷의 間에 그 術이 심히 行하였으며 虞文靖 公과 서로 잘 지내니라.
○ 부자집 아들이 18세에 遍身의 肌肉이 折裂되는 病을 하느니라. 公이 사람들을 물리치고 病者를 詰하며 말하기를 "幼童의 時에 일찍이 女色을 가까이 하였는가?" 하느니라. 이에 답하기를 "十二三歲에 일찍이 가까이 하였나이다" 하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옛말에 '精이 未通한데 御女하면 四體에 不滿한 處가 있게 되고 後日에 難狀의 疾이 있게 되리라' 하느니라. 그 法은 不可治이니라" 하느니라. 그 후에 과연 惡汁이 淋瀝하며 痛絶하면서 死하느니라.
○ 어떤 富翁이 泄瀉를 여러 해 病하느니라. 公이 診治하여도 浹旬에 不效하느니라. 忽하게 一日은 <易>을 讀하니 乾卦의 '天行健'에 이르러 朱子가 말하기를 '天의 氣는 運轉이 不息하느니라. 故로 地를 閣하여 中間에 두니라. 마치 人이 椀珠를 돌리면서 노는 것과 같으니 단지 運動을 住하지 않는 故로 空中에서 不墜하느니라. 만약 조금이라도 息하면 墜하니라'하느니라. 이에 悟하면서 向한 것이 富翁의 瀉이니, 곧 氣가 擧하지 못하므로 脫下한 것이니라. 곧 百會穴에 灸하니 三四十壯이 되기 전에 泄이 止하니라.
朱震亨(주진형)
字는 彦修이니라. 學하는 자들이 그를 尊하여 丹溪先生이라 부르니라. 元末 婺의 義烏人이니라. 幼하여서부터 學하기를 좋아하고 하루에 千言을 記하느니라. 稍長하여서는 鄕의 先生을 따라 擧業을 治하다가 그 후에 許文懿 公이 朱子의 四傳(주자-황간-진덕수-허문의)의 學을 得하였다는 것을 듣고는 그 道를 익혀보려고 華山으로 入하였다가 다시 가서 拜하고는 더욱 道德 性命의 說을 들었으니, 宏探 密粹하게 되어 결국 그 專門이 되니라.
하루는 文懿 公이 말하기를 "내가 臥病이 오래되어 醫에 精한 자가 아니면 起할 수 없겠느니라. 그대는 異常하게 聰明하니, 즐거이 醫에 游할지니라. " 하느니라. 公이 母의 脾病으로 인해 醫를 대략 익혔는데 文懿 公의 말을 듣고는 慨然하며 말하기를 "士는 진실로 一藝에 精하여 物의 仁에로 推及하면 비록 그 時에 仕하지 않아도 그것은 仕하는 것과 같으니라. " 하느니라. 이에 擧業을 버리고 오로지 醫에만 力을 쏟으니라.
<丹溪心法> <日用纂要> <格致餘論> <局方發揮> <傷寒辯疑> <本草衍義補遺> <外科精要論> 等의 書를 대대로 傳하느니라.
그 論은 臟腑의 氣化에는 여섯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濕 熱 相火의 三氣가 가장 많이 病에 이르게 하느니라. 陰虛火動도 있고 陰陽兩虛도 있으며 濕熱自甚도 있으니, 또한 마땅히 잘 消息하여 用하여야 하느니라. 그가 말하기를 "李東垣이 論한 '飮食 勞倦으로 脾胃를 內傷하면 胃中의 陽이 升擧하지 못하고 아울러 心肺의 氣가 中焦로 陷入하니, 補中益氣湯의 劑로 治하니라'한 이것은 前人에게 없던 바이니라. 그러나 天은 西北으로 不足하고 地는 東南으로 不滿하느니라. 天은 陽이고 地는 陰이니라. 西北의 人은 陽氣가 쉽게 降하고 東南의 人은 陰火가 쉽게 升하느니라. 진실로 이를 不知하고서 그 法을 한갓 守하기만 한다면 氣가 降하는 경우는 진실로 愈할 수 있으나 升하는 경우에 이를 從하여 用하면 그 病을 도리어 增하게 할까 두려우니라. " 하느니라. 이에 張 劉 李의 三家論에서 그 短은 去하고 <內經>을 參하여 <相火論>을 作하니라.
○ 痢하면서 갑자기 昏仆하여 目上視 溲注而汗瀉 脈無倫次한 경우를 治하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이는 陰虛로 陽이 暴絶한 것이니라. 病을 한 후에 酒色을 犯하여 得한 것이니라. " 하느니라. 氣海를 灸하고 조금 지나니 手가 動하고 또 조금 지나니 唇이 動하느니라. 다시 人參膏를 三服하니 甦하느니라. 그 後에 數斤을 다 服하고는 愈하니라.
○ 婦人이 不知人하고 稍蘇하면 號叫數欠하다가 다시 昏하며 肝脈이 弦數且滑하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이는 怒한 後에 억지로 酒를 하여 得한 것이니라. " 하느니라. 이에 流痰 降火하는 劑에 香附子를 加하여 주어 肝分의 鬱을 散하니 즉시 愈하니라.
○ 어떤 女子가 不食하고 面北하여 臥한지 半年이며 肝脈인 弦이 寸口에 出하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이는 思夫하여도 不歸하므로 氣가 脾에 結한 것이니라. 필히 그 怒를 激하게 해야 하느니라. 怒의 氣는 木에 屬하는 故로 능히 土의 結을 衝하니라. " 하느니라. 怒가 그치니 進食하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思氣가 비록 풀렸으나 반드시 喜하여야 다시는 結하지 않으니라" 하느니라. 이에 夫가 旦夕에 歸할 것이라고 속여 말하니, 곧 愈하니라.
先生의 道學의 淵源과 醫는 一藝이니라. 그에 대한 詳은 宋太史濂墓誌를 見할지니라.
盛寅(성인)
字는 起東이니라. 國朝의 姑蘇 吳縣人이니라. 少에는 擧子業을 익혔으나 五試에도 안 되어서 軒岐과 諸經을 攻하고 戴元禮에게 수업 받고 丹溪 先生의 正傳을 得하니, 奇疾을 治하는데 번번히 效하느니라. 비로소 醫學 正科에 나아가 太醫院 御醫에 오르고 醫中狀元을 하사받고 兩京太醫阮에서 祀하니 宦祀라 名하느니라.
周敷(주부)
字는 時榮이고 號는 照菴이니 無錫人이니라. 初에는 進士業을 익혔는데 <經史>에 모두 이미 大義에 涉하여, 醫를 業하게 되었는데, 近世의 醫家가 <局方>에서 그치는 것을 한탄하느니라. 이에 炎 黃 岐 雷 越人의 諸書를 究하니, 治病에 十이면 八九가 愈하였으며, 또한 그 報는 바라지 않으니라.
劉溥(유부)
字는 元愽이고 吳郡人이니라. 幼하여서는 놀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擧止가 남달랐느니라. 稍長하여서는 博學 善吟하고 항상 濂溪를 慕하였느니라. 창 앞에 있는 풀들을 제거하지 않은 故로 自號를 草窓이라 하느니라. 用藥은 오직 東垣을 主로 하니, 守하되 攻하지 않았으니라. 御醫로 薦하여지니라.
汪機(왕기)
字는 省之이고 號는 石山居士이며 渭의 아들이니라. 邑의 학생으로 누차 科擧하였으나 父의 命으로 擧業을 棄하느니라. 일찍이 말하기를 '士가 相에 이르지 못하면 그 澤의 賴하는 바가 醫의 博보다 못하니라'하면서, 醫書와 <周易> 및 性理에 肆力하느니라. <重集脈訣刊誤> 二卷 <內經補註> <本草會編>을 著하느니라.
○ 一人이 中滿하여, 參 朮으로 初服케 하니 脹이 멈추고 久하니 寬하느니라. 或이 參 朮의 性을 問하느니라. 말하기를 "藥은 정해진 性이 없느니라. 血藥으로 引하면 血을 從하고 氣藥으로 引하면 氣를 從하며, 熱로 佐하면 熱하게 되고 寒으로 佐하면 寒하게 되니, 人의 善用에 있을 뿐이니라. " 하느니라.
○ 一人이 體瘦하고 左腹이 痞滿하며 穀氣는 右로 偏行하여 左로 達하지 못하고 飮食이 減하며 大便이 滯하느니라. 補脾瀉肝 和血潤燥 寬脹散鬱하는 劑를 用하니 安하니라.
○ 癎이 晨時에 發하고 黃狗가 앞에서 走하는 것을 見하면 昏瞀 仆地하였다가 良久에 甦하는 것을 治하느니라. 諸醫가 無效하더니, 公이 말하기를 "早晨은 陽分이고 狗는 陽物이며 黃은 土色이고 胃는 陽土에 屬하느니라. 土가 虛하면 木火가 乘하느니라. 經에 云하기를 '諸脈은 모두 目에 屬한다'하느니라. 故로 目이 異物에 擊하는 것이니라. 마땅히 實胃 瀉肝하면 火가 저절로 息하니라. " 하느니라. 이어 參 朮 歸 芪 陣皮 神麯 茯苓 黃苓 麥門冬 荊芥를 月餘 복용하니 安하니라.
○ 一婦가 忍饑 勞倦하여 發狂한 것을 治하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二陽의 病은 心脾에 發하느니라. 二陽이란 胃 大腸이니라. 忍饑 過勞하면 胃가 傷하고 火가 動하여 心神에 延及하여 脾意가 擾亂되니 어찌 狂을 얻지 않으리요" 하느니라. 獨參湯 加 竹瀝을 用하여 飮하니 愈하니라.
程明祐(정명우)
字는 良吉이고 號는 岩泉이니라. 歙人이고 梁의 忠公 莊公의 후손이니라. 幼하여서는 好讀 玩理하고 그 後에 醫를 攻하느니라. 일찍이 말하기를 "人은 모두 補가 補가 되는 것은 아는데, 瀉가 補가 되는 것은 알지 못하느니라. 瀉가 瀉가 되는 것은 아는데, 補가 瀉가 되는 것은 알지 못하느니라. 陰陽은 迭用하고 剛柔는 互體이니라. 故로 補血하여 益榮할 때 順氣하지 않으면 血이 凝하고, 補氣하여 助衛할 때 活血하지 않으면 氣가 滯하느니라. 대개 脾는 中州이니, 水火가 交濟된 이후에 萬物을 生할 수 있느니라. " 하느니라. 참으로 妙한 論이니라.
陳景魁(진경괴)
字는 叔旦이고 號는 斗嵓이니라. 句曲人이고 陳太丘의 후손이니라. 幼하여서는 擧業을 習하였고 <易>을 陵秋崖으로부터 받았고 湛甘泉을 拜하여 講學하느니라. 父病으로 인하여 醫를 익혔고 針灸에 잘하였느니라. <五診集>를 著하느니라. 王府 良醫를 받았으나 결국 赴任하지 않았느니라. 매번 詩文을 지어 그 志를 樂하게 하느니라.
○ 素에 無病하다가 홀연히 吐血을 半斗하고 脈이 弦急한 薄厥證을 治하니, 大怒로 氣逆하여 陰陽이 奔倂하므로 得하느니라. 六鬱湯을 服하고는 愈하니라.
○ 遍體에 瘣㿔를 生하여 歲久하나 無效한 것을 治하느니라. "이는 太陰에 風邪가 化하여 虫이 된 것이니라. " 하느니라. 百部 蛇床子 草烏 練樹葉을 煎한 湯으로 浴洗하니, 越月하여 遍身이 마치 白癜風의 狀과 같아지더니 愈하니라.
○ 孕婦가 墮下하여 逾旬하더니 腹腫 發熱 氣喘 脈洪 面赤 舌靑 口臭하느니라. 公이 말하기를 "胎가 未墮하느니라. 面赤은 心火가 盛하고 血이 乾한 것이니라. 舌이 靑하고 口가 臭한 것은 肝氣가 竭하며 胎가 死한 것이니라. " 하느니라. 이에 蛇退를 煎한 湯에 平胃散에 芒硝 歸尾 一倍를 加한 것을 調하여 服하니 곧 胎가 下하며 痛이 또한 편안케 되니라.
劉純(유순)
字는 宗厚이고 關中人이니라. 群書에 博學하였으며 醫道에 더욱 精하였느니라. 父는 叔淵이니 丹溪의 業을 得하였고 公이 이를 繼하였느니라. <傷寒治例> <醫經小學> <玉機微義> 等의 書를 纂하였느니라.
王綸(왕륜)
字는 汝言이고 號는 節齋이며 淛江 慈谿人이니라. 弘治의 時에 官이 廣東布政에 이르니라. 父病으로 인하여 醫에 精하였느니라. <明醫雜著>를 著하여 丹溪가 未發한 것을 發하였으니, 後世가 甚히 尊하고 信하는 方들이었느니라. 古菴이 이를 다시 <心法>의 뒤에 刻하였으니, 이를 <丹溪附餘>라 名하느니라. 또한 <本草集要>를 著하였느니, 모두 다 대대로 大行하였느니라. 그의 兄인 經은 進士에 擧하였고 그의 第도 또한 醫를 알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