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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16명의 신학자들이 세월호 사건 이후 1년 동안 광화문과 팽목항 사이의 현장에서, 그리고 강단에서 기도하고 고뇌한 바탕 위에 세월호 사건과 그것에 임하는 기독인들의 마음과 태도에 대한 신학적인 성찰을 담아냈다. 세월호 사건에서 발견되는 하느님과 하느님을 버리고 냉소와 외면으로 치닫는 기독인들 사이의 모순을 질타하고 바른 기독인, 나아가 옳은 종교인, 정의로운 신앙인의 모습을 찾아가는 치열한 자기고백과 학구의 글들이다.
■ 출판사 서평
세월호 참사, 실재의 침입 그리고 행위의 시민적 주체
세월호 사건은 대한민국의 상징계가 은폐하고 있던 실재가 우리의 현실 속으로 난입한 사건이다. 상징계는 실재의 결여를 은폐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세월호 사건은 바로 이 구조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도록 우리를 ‘실재계의 사막’으로 인도한다. 그 실재의 사막에서 저자는 국가의 의미, 국민의 안전, 신자본주의적 경제 구조, 삶과 구원의 의미, 교회의 의미 등을 적나라하게 고찰하고자 한다. 알면서 행하는 냉소의 시대,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환영이 평범한 삶의 한 복판에서 악을 생산하는 시대에 저자는 지젝을 빌려 ‘시민적 주체’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의지해온 신학의 상징계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어떻게 신학의 실재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죽었지만, 오히려 그 죽음을 통해 무능력한 인간들의 삶과 함께하기로 결단하신 하나님의 성육신, 그 약함과 강함의 생명적 연대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데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에서 세월호 이후 신학을 보다
저자는 세월호 이후를 다루어가는 정부의 태도 속에서 민주주의의 위협을 감지한다. 유족들의 진상 규명을 위한 호소를 보상금을 받아내기 위한 전략으로 탈바꿈시킨 정부와 미디어의 여론조작이 아우슈비츠 유대인 학살의 조작을 반복하고 있음을 본 것이다. 또한 저자는 유대인의 적극적으로 신학적 정당성을 제공했던 당시 독일교회의 모습 속에서, 세월호 사건 이후 교회의 위험한 몸짓을 간파하고 있다. 이를 저자는 눈먼 국가, 귀먹은 교회 그리고 재갈물린 언론으로 압축하여 표현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나치 친위대 장교가 장담했던 말, “역사가 어떻게 쓰일지 정하는 것은 우리가 될 것이다”를 떠 올리며, 세월호 침몰 이후 교회와 신학은 어떻게 역사라는 고통을 연대하는 공동체의 관점에서 기록해 나갈것인지 묻는다.
세월호 이후의 신약성서 읽기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신학적으로 성찰하면서, 한국의 민중 신학과 정치 신학이 태동하였음을 저자는 우리에게 주지시킨다. 그때의 우리는 ‘그를 잊지 않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기 위해 값비싼 향유를 예수에게 바친 여인, 예수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가 행한 것도 기억하라고 하였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저자는 이를 기억의 윤리라 한다. 오늘날 ‘자식 잃은 라헬’들은 책임지지 않으려 하며 단지 위로를 ‘선물’로 건네려는 이들의 ‘위로 선물’을 거절한다. 그 고통은 잊히지 않고 기억되어야 한다. 그래야 고통의 트라우마를 헤쳐 나갈 수 있다. 하여 세월호 이후의 성서 읽기가 ‘통각’(痛覺)의 읽기가 되었음을 밝힌다.
세월호 참사, 국가, 그리고 책임과 돌봄의 윤리
저자는 세월호 침몰 사건을 민변의 기록을 바탕으로 학살 vs. 교통사고식 이분법으로 진단하는 관점들을 지양하고, 그 사건에 기여한 복잡한 원인들을 다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사건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복잡한 요인들이 함께 공모해 빗어냈을 참사를 어느 특정 시각이나 요인으로 환원하여 문제의 근본 원인을 도출해 내는 사고방식 자체가 세월호 침몰 사건에 이르게 하는 근원적인 요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이런 참사의 반복을 가져오지 않기 위해서, 저자는 이제 신념 윤리에서 책임 윤리로의 사유전환이 요청된다고 주장한다. 이 책임의 윤리를 가장 실제적으로 구현해야 할 기관이 국가이지만, 이 사건 이후 국가기관은 책임을 지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신념에 기반하여 자기편과 적을 구분하고 악마화시키는 일에 더 열중하고 있다. 책임의 윤리는 판단을 강요하는 정의의 윤리보다는 돌봄의 윤리로 나아가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민낯을 드러낸 한국 개신교의 두 갈래
저자는 세월호 침몰 이후 개신교 각계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활동들을 치밀하게 보고하고 있다. 개신교의 다양한 활동들을 보고하는 것은 개신교만이 참다운 활동을 했다거나 정의로웠다는 식의 선전을 도모하기 위함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고통의 현장 한 복판에서 하나님이 여전히 개신교인들을 통해 활동하고 계심을 확증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개신교가 정치적으로 획일적인 입장 속에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민주이념과 보수이념의 양 극단을 모두 다 포함하며 움직이는 복잡한 지체임을 증언한다. 이 다양한 개신교 내 움직임들을 포착하면서, 저자는 묻는다, 하나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유족들의 시위를 종북 세력으로 설정하는 정치 지향성의 분석
저자는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고 언급한 교종의 시각과 유족들의 시위를 종북 세력으로 설정하는 이들의 시각을 대비시키면서, 고통당하는 이들과 연대한다는 의미로 단 리본을 정치적 편향으로 규정하는 정치적 관점이 어떻게 제기되고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중립’이란 상대방의 편을 들지 않는 입장을 의미하며, 따라서 정치적으로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지 않는 모든 세력은 ‘종북’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이념의 기제들이 작동하면서, 참사의 책임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핵심적인 문제는 이러한 이념적 기제들이 용산 참사로부터 계속 작동하고 있으면서, 문제의 근원을 전혀 치유하거나 교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언론 보도에 대한 기독교 문화 윤리적 비판
저자는 세월호 참사 보도에 드러난 문제점들을 찰스 테일러와 노암 촘스키의 이론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비판하고자 한다. 테일러는 현대 사회는 불안을 먹이 삼아 개인주의와 도구적 이성과 온건한 독재가 작동하는 사회로 규정한다. 촘스키는 더 나아가 정부와 기업이 언론을 통해 노동자의 정신을 통제하고, 순간적 소비생활의 감각적 즐거움을 통해 개인적 쾌락에 몰입하도록 조종함을 밝혀 주었다. 세월호 참사 보도는 테일러와 촘스키가 밝혀준 정부와 언론의 밀착관계가 바로 그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언론의 권력지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시민사회의 자발적 행동과 네트워크 구성을 통한 민주적 여론의 형성과 반영을 위한 대안들을 모색해야 할 때임을 저자는 역설한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신자유주의의 야만적 얼굴
저자는 세월호를 침몰로 몰아간 근본원인을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최대이윤의 창출을 목적으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내몰아가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규정한다. 신자유주의는 단지 경제 이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경제 정책이다. 즉 신자유주의는 시장 논리를 사회에 관철시키기 위한 법적 제도적 틀을 규정하는 국가 개입의 원리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경제환원주의적인 시각은 심지어 타인의 고통마저도 비용과 보상으로 환원해 이해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신학은 고통과 눈물의 현장을 중심으로 세계와 사회와 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재편하는 작업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세월호 이후의 경제를 위한 신학적 시론
저자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시장근본주의에 있다고 보고, 이를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제안하는 생명경제의 관점으로 극복해 보고자하며, 더 나아가 이를 한국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문하고자 한다. WCC가 주장하는 생명경제는 우분투, 즉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정신 속에서 전체 생명의 관계성과 공동체성을 성찰하는 가운데 경제 문제를 돈과 양의 문제를 넘어선 인간적 가치의 문제로 보고자 하는 신학적 노력이다. 삶과 죽음의 불이적(不二的) 관계에 대한 통찰은 생명경제의 성찰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한국적 생명경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저자는 예견한다.
한국 교회는 자본주의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자본을 지배하는 계층과 자본의 지배를 받는 계층 간의 구조적 갈등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보는 저자는 하나님나라를 믿는 신학적 관점은 사회적 약자에 우선성을 둘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당파적 해석의 신학적 당위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강력한 경쟁력에 기반한 승자독식의 체제 속에서 살아남는데 익숙한 한국 교회는 자본주의적 구조와 대단히 높은 친화력을 갖는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이미 한국 교회는 자본주의화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저자는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약하심을 다시 신학과 목회의 주제로 삼아, 강자가 지배하는 세상과는 다른 질서를 구현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회복해야 함을 역설한다.
기억과 망각, 세월호 사건의 역사화의 과제
저자는 한국근대사를 설명하는 핵심 단어가 망각과 기억이라고 단언한다. 고통스런 과거의 문제를 현실 속에서 도저히 풀 수 없을 때 우리는 다 잊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말들을 되풀이해 왔다. 하지만 이 망각을 통한 해결책이라는 환상 속에서 진정으로 은폐된 것은 바로 아무 것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자는 외면과 비겁이다. 부끄러운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기억하려는 역사화의 의지를 통해서만 우리는 새롭게 미래를 창출해 나갈 수 있다. 다른 길은 없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가 이 망각과의 싸움에서 물러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돌아보는 기술문명
세월호 사건은 지난 시대의 문제들이 축적되어 터져 나온 사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가 살아갈 미래시대의 징후들을 예언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윤창출을 위한 경영 합리화라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해고와 비정규직 고용 우선의 풍토는 우리 사회의 미래 경제가 나아가는 길을 내다볼 때, 조만간 해소되거나 극복되기 보다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저자는 보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제2 기계시대, 즉 디지털 기계의 시대가 보다 더 확고하게 정착하게 되면, 이제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치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런 지난 시대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제 기계와 공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월호 생존 청소년의 애도에 대한 목회상담적 접근
저자는 여기서 세월호의 원인분석과 진단보다는 오히려 끔찍한 사건을 살아남아야 했던 생존 청소년들의 애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서, 고통 속에 삶으로 돌아온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저자는 살아남은 이들의 가슴 깊이 남겨진 트라우마를 상담적으로 어떻게 배려하고 치유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우선 저자는 그들이 먼저 간 이들에 대해 충분한 애도의 시간과 표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생존 학생들이 고통을 우회하기 보다는 오히려 고통의 자리에서 충분한 애도의 시간과 표현을 갖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세월호 참사와 한국정치 그리고 포스트모던 유교 영성
저자는 이번 세월호의 사건을 우선적으로 한국 정치와 경제가 신자유주의적으로 무분별하게 합병되면서 야기시킨 사건으로 본다. 그러면서 그러한 한국 사회와 정치의 모습에서 예전 서구의 19세기적 제국주의 부르주아 윤리의 확대와 연장을 본다. 여기서 저자는 인습적인 기독교의 근본주의적 믿음과 신앙 대신에 동아시아 전통의 신유교적 인간 신뢰에 주목하면서 그 신유교적 인간 내면의 영성을 우리 사회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으로 제안한다. 그것은 인간 개개인의 탄생과 더불어 담지되는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말하는 것으로서 한나 아렌트가 지시한 ‘탄생성’으로서의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과도 연결된다고 본다. 즉 인간 누구나에게 내적으로 놓여있는 聖의 가능성을 말하고, 저자는 이를 ‘聖의 평범성의 확대’라고 표현하는데, 이 가능성을 인간적인 힘으로 보편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인간적인 사회로의 전회를 호소한다.
권력의 자기유지와 종교적 세상 넘기
신학적으로 초월은 기존의 반생명적 흐름에 대한 저항과 극복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초월이 데려다주는 지평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나의 힘으로 쟁취된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선물처럼 주어진 선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바로 이 은총 속에서 저자는 종교적 초월의 힘을 통해 사람과 세계를 사랑하는 힘을 찾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은총과 초월의 진실을 보지 않고, 권력의 눈으로 세상을 재단할 때, 우리 인간은 끝없이 희생양을 찾고, 호모 사케르를 양산한다. 이렇게 인간이 사물화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바로 이러한 권력 작용이 어떤 극악의 개인이나 기구로부터 유래하기 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이들의 삶 속에 내재한 악의 본성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런 상황이 우리 주위에서 이어지고 있는 근원적 원인을 저자는 ‘생각없는 도덕’에서 찾는다. 이제 세월호 사건은 그러한 평범한 이들의 생각 없는 도덕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해 주고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법화경의 불타는 집의 비유를 통해 본 세월호 참사
저자는 법화경에 나오는 불타는 집의 비유를 통해 세월호 사건을 조명한다. 이 비유 속에서 단지 세월호 사건이라는 한 사건에 대한 극복을 모색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 삶이 지닌 헛됨과 모순의 원인까지도 성찰해 보기를 저자는 원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이 거짓된 세상으로부터 참된 세계로 나아가는 길 혹은 방편은 무엇일까를 저자는 독자들에게 함께 생각해 보기를 권면한다. 결과적으로 세월호 사건은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를 폭로하는 사건이었다. 이 탐욕의 빛에서 어쩌면 세월호 사건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근원적으로 다르게 보고 다르게 살아가도록 권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