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개막(82년)
82년 3월27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삼성 - MBC전을 시작으로 대망의 프로야구가 막을 올렸다. MBC 이종도는 10회말 7-7 동점상황에서 삼성 이선희 공을 받아쳐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개막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박철순 22연승과 백인천 4할타(82년)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더블A에서 뛰던 박철순은 원년 멤버로 OB 유니폼을 입었다. 박철순은 4월 12일부터 9월 18일까지 161일동안 30경기에 등판해 22연승 신화를 쏘았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다 MBC 청룡의 창단 감독 겸 선수로 자리를 옮긴 백인천은 전무후무한 4할 (0.412) 타율의 기록을 남겼다.
장명부 30승(83년)
83년 삼미 슈퍼스타스 유니폼을 입은 재일동포 투수 장명부는 그해 30승을 올려 시즌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86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55승 79패 18세이브의 성적을 올렸다. 이후 장명부는 삼성과 롯데에서 코치를 하다가 91년 마약사범으로 구속돼 국내 프로야구계에서 영구제명됐다. 일본으로 건너가 어려운 시절을 보내다 지난 4월 13일 자신이 운영하는 와카야마현 마작하우스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최동원 한국시리즈 4승(84년)
83년 롯데에 입단한 투수 최동원은 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1패로 불후의 기록을 세웠다. 장태수를 삼진으로 잡으며 시리즈를 시작한 최동원은 장태수를 삼진으로 처리하며 롯데의 첫우승을 확정지었다. 최동원은 시즌 최다승 부문에도 장명부에 이어 27승으로 2위에 올라있다.
한집 두가족 서울 2팀 라이벌 후끈(85년)
82년 대전에 둥지를 툰 OB 베어스는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85년 서울로 연고지를 옮겼다. MBC 청룡에 OB 베어스 두팀이 잠실구장을 나눠쓰면서 한지붕 두가족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90년 MBC청룡이 LG 트윈스로 주인이 바뀌고 99년 OB가 두산으로 이름이 달라졌지만 두팀은 여전히 팽팽한 라이벌을 구축하며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잠실 관중 난동(90년)
90년 8월26일 잠실구장에서 해태가 LG에 대패한데 격분한 해태팬들이 외야 철문을 부수고 그라운드에 난입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흥분한 팬들은 불을 지르고 기물을 부수고 그라운드를 점거하는 난동을 부렸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삼성 투수가 경기중 해태팬이 던진 소주병에 맞아서 응급실로 후송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선동열 0점대 방어율 3번
‘국보급 투수’ 해태 선동열은 86년 방어율 0.99, 87년 0.89, 93년 0.78등 3차례에 걸쳐 0점대 방어율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93년 0.78은 역대 최고 방어율이며 96년 일본 주니치에 입단할때까지 통산 146승 40패 132세이브 방어율 1.20을 기록했다.
해태 86~89년 4연속 우승
선동열이 이끈 해태는 86~89년 4년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큰 경기에 유독 강한 해태는 김성한-김봉연-김준환 등 막강 타선과 투타의 조화로 삼성과 빙그레를 제물로 4연속 우승하며 무적시대를 누렸다. 김응룡감독은 4연속 우승을 비롯해 해태의 통산 9차례 우승을 지휘했다.
8개구단 시대 활짝(91년)
90년 쌍방울 레이더스가 여덟번째 구단으로 창단되고 본격적으로 1군 레이스에 합류한 91년 프로야구 8개구단 시대가 열렸다. 김인식 감독을 창단 감독으로 첫해 공동 6위를 기록한 쌍방울은 2000년 SK로 매각될때까지 줄곧 하위권에서 맴돌았지만 근성의 야구로 꾸준한 관심을 모았다.
한·일 슈퍼게임. 야구교류 활짝 (91년)
91년 한·일 슈퍼게임을 통해 양국 프로야구가 첫 교류를 시작했다. 일본 투수의 포크볼 등을 처음 접한 국내 야구는 이후 기술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슈퍼게임을 통해 선동열 이종범 등의 실력이 알려지면서 일본에 진출하게 됐다. 슈퍼게임은 이후 95년 99년 두차례 더 열렸다.
외국인선수 제도 도입(98년)
프로야구의 활성화를 위해 외국인선수가 98년 처음 도입됐다. 97년말 트라이아웃을 통해 선발된 현대 조 스트롱, 한화 마이크 부시, 롯데 빅터 콜, LG 마이클 앤더슨, OB 타이론 우즈, 해태 숀 헤어 등이 첫해 용병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해외파 활약과 국내야구 관중 격감(99년)
96년 해태 선동열의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진출, 94년 한양대 박찬호의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입단 등 국내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러시를 이루면서 국내 관중은 격감하기 시작했다. 95년 500만관중을 돌파한 국내 프로야구는 99년 300만명이하로 줄어들었다.
인천 연고팀 변천 수난사(82~2000년)
82년 삼미 슈퍼스타스가 인천 연고팀으로 출발한 뒤 인천 연고팀은 5차례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85년 삼미는 청보 핀토스로 간판을 바꿨고 88년에는 태평양으로 매각됐다. 95년에는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하면서 네번째 인천의 주인이 됐다. 그러나 2000년 현대는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기고 전주를 연고지로 하던 쌍방울을 인수한 SK 와이번스가 인천의 새주인으로 등장했다. SK는 2001년 문을 연 문학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문학구장은 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에 건축된 첫 구장이다.
드림팀 방콕 아시안게임 금 & 시드니 동 메달 (98년 & 2000년)
박찬호 서재응과 이병규 박재홍 등이 참가한 드림팀은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2년뒤 2000년 구대성 이승엽 등이 주축이 된 두번째 드림팀은 시드니 올림픽에서 예선과 3,4위전에서 일본을 잇달아 격파하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선수협 출범(2000년)
2000년 1월 19일 8개구단 350명의 선수들이 발의한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가 발족됐다. 비합리적인 규약을 타파하고 양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프로야구를 발전시키자는 취지였지만 8개구단은 발칵 뒤집혔다. 결국 여론과 정치권의 지지를 얻자 KBO도 선수협의 실체를 인정했다.
이승엽 56호 아시아 홈런 신기록(2003년)
2003년 10월2일 삼성 이승엽은 56호를 쏘아올리며 아시아 시즌최다홈런 역사를 새로 썼다. 9월25일 55호로 왕정치와 타이기록을 작성한 이승엽은 롯데와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서 대기록을 세웠다. 아시아 홈런킹에 오른 이승엽은 같은해 12월 일본 지바 롯데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병역비리 강타(2004년 9월)
정규시즌이 끝나갈 무렵 8개구단 72명의 선수가 병역비리에 연루돼 프로야구계가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브로커가 검거되면서 혐의가 드러난 선수들이 구속되고 파문은 연예계 스타들의 줄입대까지 이어졌다.
포스트 해태이후 현대 신흥명문 약진 (2004년 11월)
95년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는 2003년, 2004년 연속 우승으로 해태이후 연속우승한 유일한 팀이 됐다. 통산 4차례 우승.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는 삼성과 무승부 3차례등 9차전까지 가는 세계 프로야구에 유례가 없는 일전을 기록했다. 한편 한국시리즈 7전8기의 삼성은 2002년 첫 대망의 우승을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우승 한을 풀었다.
FA 심정수 100만달러 시대 (2004년 11월)
2000년 FA가 도입된지 4년만인 2004년 심정수는 삼성에 새 둥지를 틀며 계약금 20억원 연봉 7억5000만원등 4년 최대 60억원의 대박을 터뜨렸다. 이로써 심정수는 평균 연봉이 10억을 돌파해 국내야구에 100만달러 시대를 처음으로 열었다.
김응룡 야구인 출신 첫 프로야구단 사장 (2004년 12월)
삼성 감독으로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김응룡감독은 2004년 12월1일 삼성프로야구단 사장으로 취임했다. 야구 경기인 출신으로는 처음 구단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첫댓글 17. 두산팬은 아니였지만 그때당시 손시헌의 플레이를 볼수 없었다는게 가슴아팠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