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
박의호 / 생명공학
출발선에서 신호 기다리는 이동 침대들. 창백한 얼굴에 죽음처럼
굳은 두려움. 검푸른 눈빛들이 천정에 응결된다. 환자복 아래로 얼
음 같은 냉기가 스며든다. 희미하게 다가오는 중앙수술실 표지. 삶
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생각으로 몸은 더 굳는다. 푸른 천을 두른 제
품들은 지정된 작업실로 배송된다.
시간과 의식이 일순간 사라진다. 포장을 해체당한 택배물들은 우주
선 같은 공간에서 정교하게 수리된다. 작업장은 블랙홀. 서로 같아
야 편한 세상. 인간 평균치를 재현한 뇌 표준설계도. 로봇 같은 작
업자들이 일상인 듯 뇌를 해체하고 조립한다. 자동화 기계들이 도
우며 뇌 규격화를 완성한다. 작업 끝난 시작품들은 중환자실로 배
송되어 결승선을 긋는다.
평균치로 조작된 복제품들이 깨어난다. 죽은 듯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짧은 토막 시간으로 하는 죽음 연습. 뇌 일부가 사라진 듯
허전함이 엄습하며 몸이 다시 굳는다. 잃어버린 시간과 부품들. 머
릿속 상념 찌꺼기들은 그대로다. 실패한 규격화, 다시 어제처럼 제
각각 살아갈 불량 마네킹들. 푸른 바탕의 꽃무늬 의상들이 유난히
우울하다.
첫댓글 박의호 교수님의 시는 강용호 미디어위원장께서 명예교수회 카페 News & Activities에 시인 등단 소식으로 소개했습니다. 작가의 허락을 얻어 한 편을 <<늘푸른나무>>14호에 게재하기로 했기에 이곳에 소개합니다. 시인의 세계와 형식이 남다릅니다. 작가는 시를 읽는 독자가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답니다. 게재를 허락하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