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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7장
제 17 장 반 석
(대 지)
一. 갈 증(1-3)
二. 생 수(4-7)
三. 전 쟁(8-16)
(본문 강해)
一. 갈 증(1-3)
. 17: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르비딤은 호렙산에서 가까운 곳으로 현재 '와디 화이란'지방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신 광야를 떠나 이곳에 이르렀으나 마실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게 되었다. 신 광야에서는 먹을 양식이 없어서 주림으로 인한 고통을 당했고, 이번에는 마실 물이 없어서 갈함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이다. 말씀을 순종해서 나갈 때 오는 여러 가지 고난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유익과 연단을 위해서 주시는 은혜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생명길을 걸어 나갈 때에 오는 여러 가지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거나 낙심하지 말고 믿음과 인내로써 잘 이겨 나가야 한다.
. 17: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 능력과 기사를 직접보고 체험하면서도 어려운 시험이 닥치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떠나 모세를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시험하곤 했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없는 물을 그들에게 주어서 마시게 할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에게 이를 요구하며 되지도 않는 억지 생떼를 쓰며 다투고 있는 것이다. 다툼은 지체 중에 역사하는 정욕으로 인해 난다고 했다(약4:1 참조). 누구나 믿음에서 떠나면 육신의 정욕으로 기울어져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켜 다툼과 시기와 싸움만 일으킨다. 다투고 싸운다고 얻는 것이 아니다(약4:1-2).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함으로 얻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고 책망했다.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 계신가, 또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겠는가 도와주시지 않겠는가, 구원해 주시겠는가 구원해 주시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는가 안 버리셨는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이는 불 신앙이요, 하나님 앞에 큰 죄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 불신앙의 죄악을 책망한 것이다.
. 17:3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다시 원망했다. 원망은 일이 잘못되어 진데 대한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교인들도 이스라엘 사람처럼 원망하기를 잘한다. 교회에서는 교역자 원망, 가정에서는 남편 원망, 직장에 나가서는 윗사람 원망, 또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등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원망을 잘한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원망은 믿음을 떠난 데서 나온다. 왜냐하면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한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되어지는 것과 인간의 생사 화복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이스라엘이 현재 물이 없어 갈함으로 죽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그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앞길을 열어 주실 것을 믿고 참고 기다리는 것이 참 신앙이다.
예수께서 유대인의 시기와 빌라도의 불법 재판과 제자가 은 삼십에 팔아 넘겨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되었지만 "내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고 하여 그 일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되어진 "하나님께서 주신 잔"이라고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는 기도를 하고 그 고난의 잔을 달게 받으셨다. 예수님께서 원망하시고자 했다면, 은 삼십에 스승을 배신하고 팔아먹은 제자 가룟 유다를 원망할 수 있었고, 불의한 재판을 한 나약한 빌라도를 원망할 수 있었고, 또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여 주었는데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그 군중들을 원망할 수 있었고, 시기로 예수님을 죽인 유대교 지도자들을 원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참 신앙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다 쓰러지고 망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성도는 누구나 하나님의 주권을 확실히 믿고 아무리 죽을 지경에 빠질지라도 기다리며 그에게 부르짖는 신앙에 서야 한다.
二. 생 수(4-7)
. 17: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하겠나이다
모세는 그들과 다투지 않고 하나님께만 부르짖었다. 남과 다투고 싸우고 원망한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살길이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라고 했고,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다.
. 17:5-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이 내려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호렙산 반석 위에 설 것이니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가서 그 반석을 쳐서 물이 나게 하라는 것이었다.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요한계시록4:2에는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계신다고 하였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일어서시겠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려고 일어서실 것을 가리킨다. 즉 이스라엘 백성을 돌봐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시고 생명을 건져 주시려고 일어서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곤경에 처할 때에 내버려두시지 않고 건져 주시고자 일어서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도행전7:55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앉아 계시지 않고 서신 것은 주를 위해서 핍박과 환난을 당하는 성도를 위해 특별히 돌봐 주시기 위해서 서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험에 빠져 원망하고 다투는 이스라엘을 도와주지 않으면 다 망하겠기 때문에 건져 주시려고 일어서셨고 조금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질을 당해 죽게 될지도 모르는 모세를 살려 주어야 되겠기 때문에 호렙산 반석 위에 서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모세를 대하여"서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건져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 때에 모세는 이 말씀을 믿고 감사했다. 하나님이 특별히 돌에 맞아 죽게 될 모세를 살리시고, 시험에 빠져서 모세를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 주시고자 자기를 통하여 일하시고자 한 것을 볼 때 모세는 감사가 나왔고, 담대한 믿음과 용기가 솟았다. 그리하여 모세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용기와 담력을 힘입어 반석을 향해서 용기 백배하여 가게 되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지팡이로 반석을 치니 반석에서 물이 쏟아져 나와 이스라엘 백성이 다 마시고 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생수를 주신다. 생수를 주실 때 믿고 순종하는 모세를 통해서 주셨다.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한 목적은
첫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심을 알게 해주시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지 인도하시지 않는지를 의심하여 시험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그들을 인도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알게 하기 위한 증거로써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신 것이다.
둘째,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땅을 터쳐서 물을 내신 것이 아니요, 강물을 돌려서 물을 내신 것이 아니라 반석을 터쳐서 물을 내시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능력이 무한하신가! 이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사람의 생각대로만 판단하여 원망하거나 의심치 말라는 것이다.
세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이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게 되어 시험에 빠졌는데 그 물이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것이 아니고, 그 물을 주어 먹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살려 내기도 하시고 죽게도 하시는 것을 알고 믿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먹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의 반석이 되시고, 생수의 근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象徵)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린도전서10:4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였다. 우리의 믿음의 굳건한 반석 되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음료를 마심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생명과 참된 만족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물질적인 세상 것은 해갈이 되지 못하고, 설사 일시적으로 해갈을 준다 해도 다시 목마르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다(요4:13-14).
흔히 사람들은 육신적이고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에 목말라하여 그것으로 갈증을 채워 보려 한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무한하여 마치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나듯이 세상 것으로는 만족을 얻지 못하고 일시적 해갈을 주는 것 같으나 곧 다시 목마르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와서 그가 주시는 생수를 마시면 영원한 만족과 위안과 평안이 있고 다시 목마름이 없다.
. 17:7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맛사( )는 "시험"이란 뜻이고 므리바( )는 "다툼"을 뜻한다. 이스라엘이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하였기 때문에 그곳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큰 죄이다(2절 해석 참조).
三. 전 쟁(8-16)
. 17: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아말렉은 에서의 자손이다(창36:12 참조). 에서는 이삭의 맏아들이요 야곱의 형이다. 그러므로 이 싸움은 형제간에 벌어진 싸움이다. 육신에 속한 에서의 후손 아말렉이 영에 속한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운 것이다. 언제나 육신에 속한 자들은 영에 속한 자들의 구원 역사를 방해하고 대적하고 핍박하여 죽이려 한다.
.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을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싸우라고 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겠다고 하였다. 아말렉과 싸워서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다. 이스라엘 흥망이 아말렉과 싸워서 이기느냐 지느냐에 달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고 해놓고 모세 자신은 전쟁에 직접 참전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겠다고 했다.
모세가 아말렉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 중요한가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가를 생각해 볼 때, 모세와 같은 능력 있는 지도자가 앞서 나가서 싸워야 이스라엘의 사기도 충천하고 싸움에도 승리하리라 생각되고, 또 모세가 여호수아와 합력하여 승리한 후에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왜 함께 힘을 합해서 싸우지 아니하고 산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했을까? 그것은 전쟁의 승패가 군대의 수가 많고 무기가 많고 싸움을 잘하는데 있지 않고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삼상17:47, 시33:16, 17 참조). 그러므로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서 기도해야 한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모세가 여호수아와 연합해서 싸워야 이길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요즈음에도 현실주의자는 당장에 눈에 보이는 것만 잘되면 그것이 잘되는 줄 알고 우선 눈에 보이는 외부적이고 물질적 면에만 치중한다. 그러나 당장에 나가서 돈 좀 벌면 잘 살 줄 알고, 당장에 돈이 없으면 죽는 줄 아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본주의이다. 사람의 사는 것이 그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눅12:15-21 참조). 하나님이 살려 주시면 살고 하나님이 데려가면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 또 모든 것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다. 각종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내려온다고 했다(약1:17 참조). 무엇이든지 근원에서 끊어지면 현재 무엇이 좀 있다고 해도 얼마가지 못한다. 나무도 뿌리가 든든해야 잘 산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서 현실주의와 물질주의로 나가서 무엇을 좀 얻었다고 해서 그것이 잘되는 것인 줄로 알면 안 된다. 근원을 하나님께 두고 물질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살게 해주시면 살고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께서 죽게 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줄 알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가야 한다. 또한 환난과 궁핍한 가운데서도 영적 생명을 소유하고 영적으로 부유한 자리에 있으면 그것이 복 있는 자이다.
모세는 당장 싸움터에 나가서 몇 사람 죽이고 창과 칼과 무기와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셔야 이기는 것을 믿고 기도하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갔다. 싸움은 아말렉과 진을 친 전쟁 마당에서 하지만 전쟁의 승패는 산꼭대기 기도하는 장소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모세는 산 위로 올라가고 여호수아는 전쟁터에 나가 싸우도록 한 것이다.
. 17: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여호수아는 모세의 말대로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는 산 위에 올라갔으며 아론과 훌도 기도하는 모세를 돕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다.
. 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손을 든 것"은 자기 마음과 심령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기울여 기도하는 태도이다. 영이 하나님을 향하고 마음이 하나님께 도달하고 하나님과 접촉이 될 때 하나님과 영적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율법을 받기 전에도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야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모세가 손을 들고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 기울여 하나님과 교통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모세에게 왔고, 모세에게 온 하나님의 능력이 그대로 여호수아에게로 갔고, 여호수아에게 간 하나님의 능력이 백성에게로 갔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능력과 말씀과 힘을 가지고 아말렉을 쳐서 이길 수 있었다. 모세가 손을 내리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져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이 중단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이 여호수아에게 나가지 못하고, 또 백성에게도 나가지 못하므로 아말렉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있다. 하나님의 힘과 역사로 이기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손을 드는 일은 이스라엘 전체의 생명과 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다.
오늘날도 교인들의 영적 생명의 역사가 창성하느냐 쇠퇴하느냐 하는 것이 교역자에게 달려있다. 교역자가 모세처럼 손을 드는 생활을 힘써 잘하면 그 교회의 교인들이 마귀를 이기고 영적 생명이 창성해지고 반대로 교역자가 손을 드는 생활을 제대로 못하면 교인들이 영력이 없어서 마귀를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역자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깊이 깨닫고 교역자는 언제나 하나님께 일심 정력을 기울여서 기도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을 받아서 교인들을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모세가 팔을 오래 들고 있으므로 피곤하여 팔이 내려왔는데, 아론과 훌이 그 팔을 붙들어 주었다. "훌"은 유다의 증손 갈렙의 아들로 그 이름의 뜻은 "고귀한 자"라는 뜻이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훌을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남편이라고 했다.
모세가 일어서서 손을 들고 있는데 몇 시간 혹은 하루종일 손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모세가 힘이 세고 강건하였으나 하루 종일 해가 지기까지 긴 시간을 계속하여 손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세가 이렇게 피곤해서 그의 손이 내려오게 될 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이스라엘이 망하겠으므로 돌을 가져다가 모세를 돌 위에 앉히고 큰 돌 옆에서 한편 손은 아론이 받들고 다른 편 손은 훌이 받들어서 해가 지도록 손이 내려오지 않게 했다. 이와 같이 모세의 손을 받들어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와 준 아론과 훌의 후손이 복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아론과 훌같이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와 준 성도는 복을 받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가 피곤하고 지쳐서 손이 내려와 싸움에 지게 될 때 받들어 주지 않고 오히려 아말렉에게 진 것은 다 모세 때문이라고 비방이나 하고 원망이나 하면 결국 다 망하게 되고 말 것이다. 모세가 위대한 지도자이지만 육체를 가진 사람이므로 피곤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그의 손을 받들어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하시는 구원 운동을 돕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아론과 훌처럼 교역자를 잘 받들어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 되도록 하는 사람은 복 받는다.
. 17: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모세가 기도해 주었으므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쳐서 칼날로 아말렉을 다 쳐서 파할 수가 있었다.
.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대적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멸망시키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손상을 주고,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자를 하나님이 반드시 멸망시키신다.
. 17: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모세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하여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였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는 나의 기"라는 뜻으로 여호와는 나의 승리가 되신다는 말이다.
. 17:16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였더라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대대로 싸워서 멸절 시키시겠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대적하면 여호와께서 대대로 싸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