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사월. 그 계절이 원체 길지 않음을 감안하더라도 유독 떠나감이 이르렀던, 그러나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히 아름답고, 음유 시인들이 두고두고 노래하기에 충분히 운치 있던 나날. 머리 위 떨어지는 벚나무잎에 빈 첫사랑, 한 해의 개막을 체감하며 뒤늦게 급조한 삶의 목표, 꽃샘추위가 한풀 꺾이기만을 기다려온 버킷리스트… 묵은해 겨울이 가면, 새롭게 작열하는 태양 아래 죽자던 기약. 소망과 기대가 범람하던 그해 사월. 불행히도 그 모든 것을 실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었다.
볕이 따사롭던 어느 날 벚꽃은 만개했고, 불과 이 주를 채우지 못한 채 전부 져버렸다. 발아래 소복이 쌓인 분홍색 잎과 헐벗어 볼품없는 가지 사이로 훤히 드러난 하늘을 번갈아 응시하다가 돌연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봄의 농간이구나! 원대하길 바랐던 나의 계획은 주위를 채 정리하기도 전 그렇게 수포로 돌아가버렸다. 고대하던 봄은 기껏해야 짙은 여훈餘薰만을 흔적으로 둔 채 약삭빠르게 물러가고, 오뉴월이 코앞에 당도한 것이다. 안온한 죽음을 준비하기에 봄은 너무도 짧았다. 죽기 위해 견뎌야 했던 겨울은 그토록 길었음에도.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스팔트 바닥을 뚫고 꾸역꾸역 고개를 드민 민들레가 문득 내 눈에 들어왔다. 새순을 돋우기 시작한 초목도. 그 순간 생각하기를, 하루하루 이어지는 광채 없는 삶이 겨울과 닮았다면, 봄은 박동하는 심장과 닮았더라. 겨우내 잠들었던 것을 깨우는 볕뉘, 새 생명을 창조하는 온기, 보란 듯이 기적을 행하며 죽을 이유의 결여를 낳고 그로 하여금 삶을 연명할 것을 강요하는, 은밀하고 두려운, 그 치밀함이. 고요히 박동하는 이 심장의 일과 참 닮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첫댓글 몇월 같은 것을 표기할 때는 '사월'보단 '4월'로 표기하는 게 좀 더 보기가 편해요.
한자도 있고 글씨체도 그렇고 수능 특강 문학 지문에 나올 것 같아요 진짜 잘 쓰셨다는 뜻입니다 멋져요
봄이라는 계절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정서를 엿볼 수 있어서 신선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길가에 자란 꽃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쓰인 비유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몰입감이 정말 좋다 글을 읽는데 화자가 내 앞에서 직접 말해주는것 같아요
글을 읽는데 문장과 단어의 조합이 무게감 있고 고급진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이점이 인상에 남습니다.
보통 봄을 주제로 하는 글은 아름다운 분위기인대 이 글은 봄을 다룬 시각으로 바라보아서 그런지 신선하네요
봄을 박동하는 심장과 닮았다고하는 비유적 표현이 마음에 들었어요 전체적으로 몰입이 잘되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