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진리의 핵심은 내면의 문제로서 세상과 반대의 개념이다.
나. 내면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는 겉 사람의 눈에는 계시되지 않는다.
2. 본론
가. 진리의 핵심은 내면의 문제로서 세상과 반대로 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이 세상과는 완전히 반대로 간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종교인들의 눈에는 조롱거리다.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 말씀의 핵심은 항상 내면의 문제에 관한 것으로서 그 방법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그리고 겉사람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 들어오는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혼란케 하는 이유다. 이것들이 감각적 욕망으로 변하여 나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나의 근본(근원)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그래서 자세히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분석하여야 한다.
보는 것(눈), 듣는 것(귀), 냄새 맛는 것(코), 맛보는 것(입), 감촉을 느끼는 것(몸),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의)의 대상은 세상(코스모스)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들이며 사랑스러운 것들이다. 여기서 갈애(渴愛)가 일어난다. 이 갈애가 바로 창세기 2장의 선악(좋아함, 싫어함) 지식나무에서 열리는 그 열매다. 끝없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 열매들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갈애의 열매를 맺는다.
좋아하는 것은 취하고 싫어하는 것은 밀어낸다. 이것들이 내 안에서 존재하는 그 뱀의 뿌리다. 그래서 나의 근본인 하나님이 거하시는 몸 된 성전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우리의 몸과 마음의 속성은 이 갈애들을 참으로 인식하게 되고 숨겨진 마음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몸 된 성전)을 못 보게 만든다.
선악(좋아함, 싫어함) 지시나무 열매들이 마음에 열려서 발생하는 갈애들은 모두 나로 알게 하는 요소들이다. 세상(코스모스)인 오은(眼耳鼻舌身과 意)을 나와 일치시키는 것을 맘모나라 한다. 무더기인 오은을 참으로 잘못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에덴동산 안에 있는 그 뱀이 뿌리다.
인생은 변하는 몸과 마음을 초월하지 못하여 뱀을 주인으로 섬기게 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은 변하는 것으로 참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몸과 마음은 맘모나(돈, 재물)를 양식으로 삼고 살아간다. 이것이 근본을 속이는 것이다. 몸과 마음은 나의 원함대로 되지 않고 그 고유 성질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은 ‘나’라고 할 만한 요소가 없다.
느껴지는 모든 것은 괴로움으로 휘장 안에서만 일어난다. 그러므로 휘장 너머를 들여다볼 수 있는 선정(善政) 이외의 모든 것은 괴로움이다. 괴로움은 움켜쥐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버려야 할 것이다. 바로 재물로 번역한 맘모나다. 이 맘모나를 버려야 한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인생들의 먹을거리인 이 재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느낌에서 속고 사는데 느낌이 바로 재앙이다. 느낌이 맘모나의 속성이며 그 핵심이다. 세상에서는 좋은 느낌을 찾아다닌다. 몸과 마음의 속성을 따라 움직이는 동물들은 먹이를 구하는 것과 우두머리가 되는 것, 종족을 퍼트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인간 위의 차원은 그런 것이 거의 없다. 더 높은 차원일수록 마음의 속성에서 벗어난다. 높은 천상에는 마음 작용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휘장의 속성, 뱀으로부터 나오는 이 맘모나의 그 실체를 해체해 버리셨다. 이것이 십자가의 핵심이다. 십자가(장대)에 달리기 시작하면 몸과 마음의 속성을 알고 그것에 따라 살지 않게 된다. 생명의 빛인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면에 오셔서 카타볼레스 코스무(몸과 마음을 개간)와 메타노에노(바꾸다)의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나. 내면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는 겉 사람의 눈에는 계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면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는 겉 사람의 눈에는 계시 되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창 1:1부터 시작하여 계시록까지 이어지는 것이 성경 전체의 핵심이다. 맘모나의 실상을 해체하여 알고 그 뿌리인 뱀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 뱀의 머리를 발로 밟아 죽여야 한다(창 3:15) 마음을 초월하기 위한 과정이다.
길가 밭, 돌밭, 가시덤불 밭을 해체하여 갈아엎어서 옥토 밭으로 가꾸는 이야기다. 말씀의 씨를 뿌리고 키워서 열매를 맺어 창고에 들이기 위함이다.
마음 안에 있는 맘모나의 속성인 갈애(渴愛)들이 허무하고 빛바랜 때가 될 때 하나님의 몸 된 성전이 내면에 보이기 시작한다. 생명의 빛이다.
이러한, 때가 비로소 하나님(관사 없음)과 맘모나를 겸하여 섬길 수 없을 때가 되어야 참 열매로 드러난다.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예수께서 강조하시는 진리다.
그래서 내면의 훈련이 필요하다. 쉽게 되는 것이 아니므로 아무나 이 길을 갈 수 없다. 예수를 따라간다는 것은 내면의 실체를 드러내어 다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거꾸로 가는 세계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