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신록 : 조선 정조때 왕명으로, 조선 초기에서 17세기 중반까지 407명의 名臣들에 대한 기록을 모아 엮은 책.
(임유겸, 임추, 임권, 임희재, 임호신, 임숙영 이상 6명)
1. 백파內 선조님중에 명신록에 수록되신분은 두 분이 계십니다.
가. 14세조 諱 熙載임희재(문숙공)
선조님은 백파內 장사랑공파 중시조이신 諱 치화 선조님의 부친되시고, 세조 1년 식년시 장원급제 등 3회 급제와 우찬성을 지내시고 贈 시호 호문공이신 諱 원준의 孫, 이조판서를 지내신 諱 사홍의 둘째가 되십니다.
선조님의 자는 경여 호는 물암 또는 눌암, 김종직의 문하로 성종 17년 사마시 진사 장원에 이어 연산 4년 식년시로 급제하시어 벼슬은 부제학에 이르셨고 갑자사화로 화를 입으셨으나 복권되시어 贈諡 문숙공이시다.
나. 17세조 諱 叔英임숙영(소암공)
선조님은 백파내 죽애공파 중시조에 대과 3회 급제하시어 한성부 판윤을 지내신 諱 열 선조님의 曾孫이시며 찰방공 諱 숭로가 조부가 되심.
선조님의 初名은 상이고 자는 무숙 호는 소암 또는 동해산인이시며, 선조 34년 사마시 진사에 합격하시고 성균관에 10년 수학하시는 동안 유생들의 상소는 거의 공의 손에서 나왔고, 광해 3년 별시 문과의 대책문에서 척족의 횡포를 비난하는 글을 올려 논박의 대상이 되기도 하셨으며, 문장이 뛰어나시고 經史, 古文에 힘써 중국 육조의 사륙문에 뛰어나시어 특히 《통군정서》는 청나라 학자들로 부터 천년 이래의 절조가 해외에서 나왔다 극찬 했다함. 교육에도 힘쓰시어 이경항, 강여재 등 다수의 문인을 배출하셨고, 구암서원(현 암사동 소재)에 배향 되시었다.
2. 중파內 선조님중에는 네 분이신데 모두 소간공 가문에서 나시었다.
가. 13세조 諱 由謙임유겸(소간공)
선조님의 자는 숙양으로 諱 중선의 증손, 할아버지는 贈 호조참판 諱 효돈이시고 부친은 수안군수 諱 한으로 이조판서에 贈職되시었다.
공께서는 성종 11년 사마시를 거쳐 성종 20년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시어,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 하시었으며 시호는 소간으로 소간공파의 중시조가 되신다.
공께서는 소박함을 좋아하셨고, 나이든 재상들과 교유하여 기로계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칠로회라 불렀다.
나. 14세조 諱 樞임추(관찰사공)
선조님의 자는 사균으로 소간공의 장자이시며, 정헌공의 형이 되신다.
공께서는 중종 2년 사마시 생원을거쳐 진사 이어서 같은해 식년시로 급제하시어 좌승지 한성우윤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시었다.
다. 14세조 諱 權임권(정헌공)
선조님의 자는 사경 호는 정곡, 별호는 정용재 또는 정용, 시호는 정헌이시며 명종 1년에는 위사원종공신에 책록되셨고, 중종실록과 인종실록의 편수에도 참여하셨다.
공께서는 중종 2년 형과 함께 진사시를 거쳐 중종 8년 식년시에 급제하시어 우참찬 동지경연사 오위도총관 등을 역임하시었다.
라. 15세조 諱 虎臣임호신(정간공)
선조님의 자는 무백 호는 지족암, 관찰사공 諱 추의 아들이시다. 중종 23년 진사를 거쳐 중종 26년 식년시에 급제하시어 경연특진관 한성부좌윤 형조판서 등을 역임 하시었다.
공께서는 명종 6년에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청백리에 녹선되시었고 시호는 정간이시다.
본 자료는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