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칼빈과 마찬가지로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의 원동력은 성서에 있었다. 츠빙글리는 그리스어를 1513년에 배웠고, 히브리어는 1519년부터 배웠다. 원어 공부에 몰두한 결과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자유자재로 인용할 수 있었고, 1522년에는 히브리어에 정통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확성에 있어서 기존의 라틴어 성서보다 비교우위에 있었던 원전 연구를 통해서 진리를 깨닫기에 용이한 환경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반가톨릭, 반교황주의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견고한 진과도 같았던 교황주의자들의 논리를 무너뜨리고 성서의 권위에 눈을 뜨게 만든 개혁자의 외침은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구분선 아래에 W. P. 스티븐스의 책을 통해서 개혁자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성서의 권위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데 있다. 츠빙글리는 진리가 오류에 대립되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말에 대립된다고 보았다. 교회의 전통은 제아무리 공의회나 교황이 공표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인간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이 투쟁에서 츠빙글리는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는 로마서 3장 4절 말씀을 자주 언급하였다.
성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이 성서를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에 대한 교리는 하나님 자신이 그 말씀을 통해 가장 분명하게 형성하신다."(Z I 378.17-18; LCC xxiv. 89-90)
츠빙글리는 하나님 말씀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주장하였다. 그는 성서에서 어떤 부조화도 용인하지 않았으며, 성서의 모든 책들은 일치의 영이신 성령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서로 조화된다고 주장했다.(Z V 735.21-3) 따라서 그는 예를 들어 부처가 그랬던 것처럼, 명백하게 상반되는 문구들이 서로 일치된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부처는 로마서 주석에서 그런 본문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츠빙글리는 자구에 얽매이는 문자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마태와 마가가 말하는 것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비록 츠빙글리가 요한복음을 신약성서에서 가장 고귀한 책이라고 칭하면서 성서의 몇몇 책들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루터처럼 정경 중의 정경을 두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부처나 칼뱅처럼 성서 전체에 호소하였다. 동시에 그는 루터와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을 정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히에로니무스를 따라, 그는 초대교회에서 요한계시록이 정경으로 간주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츠빙글리는 그 책이 요한의 마음과 정신을 결여하고 있다고 보았다.
츠빙글리는 성서와 교회전통 사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했다. 성서와 대비하여, 교부나 공의회나 교황의 발언들은 인간의 말이다. 그러므로 가톨릭 적대자들과의 논쟁에서 그는 교부들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왜냐하면 "교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지 하나님의 말씀이 교부들에게 복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Z III 50.5-9) 교부들이 아니라 성서가 "주인이고, 교사이며, 안내자"이다.(Z I 307.1-4) 어쨌든 공의회나 교부들이 항상 그 뜻을 같이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공의회나 교부들이 성서에 의해, 츠빙글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자 표준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평가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Z I 302.35-303.10)
그렇지만 츠빙글리가 단지 하나의 책, 즉 성서의 사람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자신의 견해가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교부들, 공의회들, 교황들을 인용하였다. 그는 또한 적대자들의 근거에 대해 그들과 논쟁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무기로 그들과 싸우기 위해 교부와 공의회와 교황을 활용하였다. 『주석』(A Commentary)에서 일련의 교부문헌들을 인용한 후에, 츠빙글리는 자신이 교부들을 인용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밝혔다.
나는 교부들의 유력한 글에서 이것들을 인용하였다. 이는 본래 명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확정된 것을 인간의 권위를 빌려 뒷받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런 견해를 주장하는 최초의 사람이 아니라는 점과 이것이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연약한 형제들에게 명백하게 하고자 함이다.(Z III 816.1-4: Works iii. 247-8)
『주석』의 이 인용문은 성만찬에 관한 논의에서 등장한다. 다른 어떤 주제보다 이 주제가 츠빙글리로 하여금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교부들을 고찰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인용의 폭이 넓어졌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언제나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전체적으로 히에로니무스의 인용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보다 두 배나 많은데, 그것은 히에로니무스가 언어학이나 석의 문제들에 관한 구약성서 주석들에서 매우 빈번하게 인용된 데서 기인한다.)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대한 루터와의 논쟁에서 츠빙글리는 루터의 견해가 교부들의 견해와 상반되고 스콜라학자들의 견해와도 다르다고 주장하였다.(Z V 943.11-14)
츠빙글리는 공의회에 호소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공의회들 간의 불일치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그런 호소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들에게 종속시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공의회에 호소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금 감금하여, 거만하게 뽐내는 주교들의 손에 속박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Z II 449.17-19)(중략)
그러나 츠빙글리의 성서 중심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표적인 두 작품인 『주석』과 『하나님의 섭리(The Providence of God)에서 그는 성서 이외의 저술들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사실상 비성서적인 저술가들을 경멸하며 무시해 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그들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츠빙글리는 자신의 글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그렇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자신의 첫 번째 종교개혁 저술에서 진술한 식으로 말하면, 그는 신약성서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더 익숙한 사람들을 위해 이교도의 주장을 인용하였다.(Z I 98.3-6) 그는 자신이 비성서적인 저술가들을 인용하는 데 대해서 신약성서의 바울의 예(행 17:28)와 구약성서의 이드로의 경우를 들어 변호하였다. "그들이 말한 선하고 참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여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합시다. 또한 이집트인들에게서 탈취한 것들로 참되신 하나님의 전을 꾸밉시다."(Z XIII 382.28-31) 이처럼 비성서적인 저술가들을 인용한다는 점에서 츠빙글리는 그의 동시대 인문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교부들의 전통에 속해 있었다. 히에로니무스와 아우구스티누스를 좇아 그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츠빙글리의 하나님의 섭리에서 성서는 배경이 되고 있고 철학적인 주장이 전면에 나타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자신이 플라톤, 피타고라스, 세네카와 같은 비성서적인 작가들을 인용하는 데 대해 방어하였다. 츠빙글리는 "그들이 거룩하고 순수하고 영원하며 확실한 정신에서 나온 사상을 선포할 때 그들의 작품들을 보고 신성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이 책에서 내가 말한 모든 것과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근원, 즉 최고신의 본성과 특징에서 나온 것이다. 플라톤도 이 근원을 맛보았고, 세네카도 이를 마셨다."고 덧붙였다.(Z VI iii. 106.5-8, 106.16-107.1; Works ii. 151) 하지만 츠빙글리는 책 말미에서 비록 자신이 철학적 주장들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주장의 근거는 성서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그가 진리의 준거는 성서라고 보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츠빙글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루터보다 비성서적인 작가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용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비성서적인 작품들이 독자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성서적 계시를 기억하도록, 그리고 비성서적 작가들보다는 성서의 계시를 향하도록 그들을 이끌었다. 그가 주석에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니, 우리는 그 말씀을 인간의 지혜로 우쭐해진 자들, 그래서 결국 자신들이 받은 순수한 것들을 더럽힌 자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바로 이 점을 이야기한 것이다. 츠빙글리는 오로지 성서의 증언만이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S IV 56.18)
하지만 여기서 루터와의 중요한 차이가 있다. 츠빙글리는 루터만큼 예리하게 성서계시의 유일성을 꿰뚫어보지는 못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그가 아우구스티누스와 오리게네스가 그랬듯이 비성서적 저자들을 성서의 빛에서 해석한 데서 기인한다. 예를 들면, 비성서적 저자들이 복수형태로 하나님들이라고 말할 때, 츠빙글리는 히브리어에서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복수형태인 것처럼 그것들도 한 분 하나님을 언급하는 것으로 취급했다. 따라서 츠빙글리는 비성서적 저자들을 상당한정도로 그리스도교인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이 그로 하여금 성서의 권위를 주장하면서도 그들을 긍정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도록 하였다.
<약어표>
LCC 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London, 1953-70).
S M. Schuler and J. Schulthess, Huldreich Zwingli's Werke (Zurich, 1828-42).
Works ii W. j. Hinke, The Latin Works of Huldreich Zwingli, ii (Philadelphia, 1922; repr as Zwingli on Prividence and Other Essays, Durham, NC, 1983).
Z Huldreich Zwinglis Smtliche Werke (Berlin, Leipzig, Zurich, 1905- ).
W. P. 스티븐스 지음, 박경수 옮김, 『츠빙글리의 생애와 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7), pp. 65-70.
첫댓글 성경을 많이 보신 분인데, 철학적 방법론을 사용한 것은 당시의 신학적 경향성으로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네,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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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외 자료를 조금 참고했을지라도 츠빙글리의 신학은 철저히 성경 중심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맞아요.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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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가 츠빙글리를 비판했지만 주요 종교개혁자들 중 가장 진보하고 발전한 개혁자로서 성경을 강조한 분은 츠빙글리 같습니다.
네, 공감합니다.
내용을 잘 읽었습니다. 저의 안목과 지식을 넓히는 좋은 글입니다.
공감합니다.
루터의 탁상담화를 읽고 있는데, 츠빙글리를 함께 보면서 종교개혁에 대해 더욱 풍성히 알게 되어서 너무나 좋습니다.
네, 저도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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