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투갈 기행 / 유럽에 코리아(Corea)를 알린 나라
포르투갈을 찾는 한국인이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아직 우리에게 먼 나라입니다. 지리적으로도 그렇고 역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유럽 철도의 서쪽 끝이 곧 리스본이며, 리스본 북서쪽에 유럽대륙 서쪽 끝인 로카 곶(Roca cape)이 있습니다. 유럽 사람에겐 이곳이 육지의 끝이며 바다의 시작이었습니다. 높이 150m에 달하는 화강암 절벽 위에 등대가 있어 항로 표지가 됩니다. 로카(Roca)는 바위라는 뜻인데 선원들이 이 바위를 리스본의 바위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블랙골드가 있는 신대륙을 찾는 대항해 시대 -- 신대륙 발견의 드라마는 여기 로카 곶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대륙을 찾는 대항해시대는 블랙골드(Black cold)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었습니다. 블랙골드는 후추 가루를 일컫는 은어였습니다. 16세기 유럽의 식단에 소개된 동양의 후추 가루는 그들에게 환상의 조미료였습니다. 후주 가루 산지를 찾아 선점하면 유럽의 부를 두 손에 확실하게 움켜쥘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콜럼버스 역시 황금을 찾아서가 아니라 후추 가루를 찾아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로카 곶 바스코다가마에 신대륙 발견 기념탑이 있고, 바닥에는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발견한 신대륙 지도가 펼쳐져 있어 포르투갈 국민 가슴에 영광스런 역사의 추억이 되어 있지만 알고 보면 신대륙 발견의 선구자라는 영광은 부산물이요, 일차적인 목표는 블랙골드를 찾아서 - 였던 것입니다.
시작은 그랬지만 대항해 시대를 열어가면서 포르투갈은 에스파냐(스페인)와 더불어 도처에 식민지를 거느린 세계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서 일찍부터 아시아에 관심을 가졌던 포르투갈 개척자들에 의해 Corea라는 이름도 유럽에 알렸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Core, 또는 Korea가 된 연유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왕래는 적었지만 포르투갈이 우리에게 낯선 나라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닐까요?
포르투갈어는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다음으로 세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언어로 사용인구가 5대륙에 걸쳐 약 2억 명에 이릅니다. 대항해시대 수 세기 간 유럽인들은 포르투갈어를 통하여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와 같이 먼 지역의 문화와 지리를 알 수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이 실제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것은 스페인의 존재 때문일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은 언제나 스페인과 더불어 다가오곤 하는데 지도를 봐도 이베리아반도의 주인은 스페인이고 포르투갈은 한쪽 구석에 셋방살이 하는 것처럼 위치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중세 약 60년 간은 스페인에 합병된 때도 있었습니다. 1640년 독립을 쟁취하였으나 독립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영국과 종속관계를 맺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포르투갈 사람들은 스페인에 대하여 항상 설움을 받는다는 식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여행사들의 상품에서도 보면 마드리는 경유는 많으나 리스본은 아주 드뭅니다. 이베리아반도의 두 도시 하면 마드리드 다음으로 바르셀로나를 꼽습니다. 리스본은 경유지가 아닌 종착지이기 때문에 마음먹고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유럽일주 상품에도 포르투갈은 끼지 못합니다. 지중해 여행상품에나 들어있는 정도입니다. 근년에 와서 포르투갈을 찾는 한국인이 늘고 있는 것은, 어느 듯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은 대충 둘러본 여행자들이 한 단계 높아진 수준으로 유럽의 못 가본 곳을 마음먹고 찾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대륙 발견으로 시작되는 식민역사
포르투갈 역사는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로마가톨릭교도들에 의한 레콘키스타(국토회복운동)의 역사입니다. 이 땅에는 옛 부터 켈트계의 이베리아족이 살고 있었으나 BC 3세기에는 카르타고의 식민지가 되었고, 포에니전쟁 이후 고대로마의 영토가 되었다가 그리스도교가 들어오면서 라틴화가 이루어졌습니다.
8세기 초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침입해온 이슬람교도들에 정복당해 이베리아반도 태반이 약 800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한때 유럽에서 피레네산맥 너머는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로 분류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었습니다.
레콘키스타는 이에 노한 이베리아북부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11세기 말에 시작된 이 운동은 1496년 그라나다를 함락함으로서 이슬람을 이베리아반도에서 완전히 쫒아내는데 성공합니다. 이 국토회복운동 과정에서 포르투갈은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되고 이어 대항해시대를 열게 됩니다.
포르투갈 왕 존 1세의 3남인 엔리케 왕자(1394-1460)는 전 생애를 해양탐사에 바침으로서 조국을 빛낸 항해 왕입니다. 그는 15세기 초에 해양탐사연구소를 만들고 당대의 유명한 항해가 과학자들을 모아 포르투갈로 하여금 지리학적 발견의 선구자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해안의 탐사 및 무역에 관하여 조사할 수 있는 특권과 함께 왕실로부터 넉넉한 후원을 받아 새로운 해도를 그려내고 항해술을 개발하였으며 원양항해에 적합한 범선을 건조했습니다.
지중해에서 명성을 떨치던 베니스출신 항해자와 카탈로니아 지방의 해도 제작자들이 그의 연구소에 모여 미래지향적인 해양탐사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항해가들에게 발견지역의 무역권은 물론 식민지배권까지 주면서 신대륙 발견에 총력을 다 하게 만들었습니다.
북아프리카 세우타를 시작으로 카나리아제도를 비롯한 대서양의 여러 섬들, 인도양 항로의 완전한 장악, 그리고 15세기 중엽에는 적도 근처의 아프리카 서안에까지 도달하면서 세계사에 없던 식민지를 만들어 갔습니다. 이에 자극받은 스페인도 해외탐험에 나서 이사벨라 여왕의 원조를 받은 콜럼버스가 1492년 서인도제도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후 두 나라는 신대륙 아메리카에 상륙, 광대한 영토를 경쟁적으로 획득하고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얻으면서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견고한 선박과 강력한 함포를 가진 포르투갈 무역함대는 발 닿는 곳마다 탐사자료를 정리해서 해도를 제작했습니다. 그래서 해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3대요소인 선박 함포 해도를 모두 갖출 수 있었습니다.
무역함대는 토착민을 화포의 위력으로 제압해서 식민지화 하는 것이 상투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힘이 모자란다고 판단될 때는 식민화를 포기하고 실속 있는 교역에 열을 올렸습니다. 표면에선 기독교를 전파했습니다. 항해가 무역업자 선교사, 이 세 그룹은 서로 목적은 다르지만 서로 잘 협력했습니다.
1516년 중국과 교역을 시작했고, 1542년에는 일본까지 발길이 닿았습니다. 이어 1557년에는 마카오를 건설해서 극동지역 무역의 교두보를 만들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앙골라와 모잠비크, 인도네시아 티모르, 말레이시아의 말라카 지역, 남미의 브라질 등이 모두 포르투갈 수중에 들어갔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다 독립했습니다. 마카오가 마지막으로 1999년 12월 20일 중국에 반환되었습니다.
위대한 업적인 <지리상의 발견>은 과거 배가 드나들던 곳에 기념으로 세워진 블랭 타워 앞 광장에 세계지도와 함께 새겨졌을 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지도 옆에는 과거 해안을 따라 항해하면서 발견하고 정복했던 나라들이 연대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길을 걷다보면 심심찮게 눈에 띠는 것이 지구의를 밧줄로 꽁꽁 묶은 모습입니다. 과거의 영광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면입니다. 과거의 영화가 살아있음으로 해서 포르투갈은 유럽의 근대화 과정에서 뒤떨어지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과거에 너무 연연하는 것이 현재를 그르치는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초로 식민지를 가진 나라이자,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식민지를 갖고 있던 나라 포르투갈의 식민역사는 이렇게 마카오를 반환한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후 포르투갈의 새로운 역사는 아직은 새로운 시작이 없습니다.
파도 들으며 마시는 포도주의 맛
포르투갈은 우리나라보다 약간 큰 국토에 1천4백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노천 카페에서 식사를 하며 잠시나마 한가롭게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도 여행의 한 멋입니다. 검은 옷을 즐겨 입는 그들은 라틴계로 낙천적이고 친절하며 젊은 여성들도 별로 꾸밈이 없습니다. 유럽에서는 경제발전이 뒤진 나라이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 나름의 스타일대로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 합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두 가지는 포도주와 파도(Fado)라는 대중음악입니다. 쓸모 있는 껍데기를 제공하는 콜크(colk) 나무는 와인을 위한 신의 선물입니다. 콜크로 와인 병을 막는 풍습은 포르투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은 포도 재배에 가장 적합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데 1년에 자그마치 10억 리터의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이곳 와인 중 우리에게 낮 익은 것은 Roses와 Port. Maduro등입니다. 포트(Port)는 듀로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생산되어 포르토에서 숙성시킵니다. Port는 Porto에서 딴 이름입니다.
때와 장소, 식사 종류에 따라 와인은 달라집니다. 북서부에서 생산되는 Vinhos Varde는 반드시 차게 마셔야 하고 가벼운 식사와 함께 할 때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가장 널리 선호되는 와인은 Maduro로 포르투갈 전 지역에서 재배되는데 어떤 음식에도 어울립니다.
아시아에서 인기 있는 Rose 역시 모든 경우에 적합합니다. Madeira는 알콜 함량이 18도에서 20도 사이로 강화된 것이며 와인 중 귀족에 속합니다. Port와 더불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좋은 맛을 내는 와인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구별해서 선택할 만큼 와인의 세계에 익숙하지 못하지만 포르투갈에 간 김에 눈여겨 볼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파도(Pado)라는 대중음악은 쉽게 우리 가슴도 파고듭니다. 철저한 노래 형식의 음악인 파도의 전통적인 주제는 <삶과 사랑의 피할 수 없는 슬픔과 갈망>입니다. 선원들의 외로움과 고달픔과 향수, 또는 그 가족들의 고독과 그리움을 담고 있는 이 노래는 항구마을에서 시작되어 도시에 전해졌습니다. Fado의 라틴어 어원은 Fate, 즉 운명입니다.
파도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플라멩고가 화려하고 정열적이라면 포르투갈의 파도는 소박한 가운데 절제된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플라멩고는 비극적인 절망을 주제로 삼지만 파도는 운명과도 같은 슬픔과 우울함을 노래로 다루고 있습니다. 꾸밈없는 순수한 내면을 끌어내어 한을 표출하는 듯한 어조로 토로하는 음악인 것입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러한 차이는 투우에서도 나타납니다. 포르투갈의 투우는 소를 관중 앞에서 죽이지 않습니다. 스페인에서 투우가 전해졌고 초기에는 같은 방법의 투우를 즐겼으나 18세기 조제1세가 소를 죽이지 못하도록 금지시킨 이후 현재와 같은 <포르투갈식 투우>로 정착했습니다. 스페인에서와 같이 소가 죽느냐 투우사가 죽느냐의 잔혹함이나 스릴은 없지만, 대신 맨손으로 사나운 소를 제압하는 투우사들의 놀라운 기교와 용기, 코믹한 경기매너에서 신선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는 법인지 이렇게 내향적으로 발달한 온화함으로 인해 국민성도 변했습니다. 적극성이 결여되고 회의적이며 지나치게 센치멘탈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포르투갈에서는 신대륙 발견의 선구자 후예 같은 패기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조용히 역사의 한 페이지에 존재하는 포르투갈이 있을 뿐입니다.
포르투갈 가는 길
우리나라와는 비자 면제협정이 체결되어 있으므로 60일 이내는 비자 없이 입국하여 관광할 수 있습니다. 입국카드를 작성하여 여권과 함께 제출하면, 여권에 입국스탬프를 찍고 입국카드 사본을 내줍니다. 이 사본을 잘 보관했다가 출국 때 제출해야 합니다. 기차로 입국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침대차로 입국할 경우에는 차장이 입국수속을 대신해 줍니다.
바로 갈 수 있는 직항 편은 아직 없고 유럽의 주요도시에서 연결되는 항공편을 이용해야 합니다. 리스본과 포르투, 파루에 국제공항이 있습니다. 비행기는 파리나 로마 취리히 런던이 모두 2시간 거리입니다.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는 매일 3-4편 운항하는데 1시간 거리입니다.
철도는 파리의 오스테리츠 역에서 - 마드리드 - 리스본의 산타 아폴로니아 역을 연결하는 남방특급이 있습니다. 파리에서는 24시간이 소요됩니다. 마드리드에서는 리스본특급과 야간열차인 루시타니아 특급 두 편이 있습니다. 각각 11시간, 12시간 30분이 소요되는데 반드시 예약을 해야 됩니다.
기후 풍토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의 나라입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여 쾌적합니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도 그리 심하지 않은 겁니다. 북부는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비가 많고 습도가 높지만 수도 리스본이 있는 남부는 오히려 건조한 편입니다. 겨울철이 우기인데, 스페인과 국경을 이루는 산맥일대에는 눈이 내려 스키를 탈 수도 있습니다.
북쪽은 산악지대이고 남쪽이 평지입니다. 스페인에서 발원하는 많은 강이 이러한 국토를 따라 흐르는데,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크고 긴 강인 테주 강(Rio Tejo)이 중앙부를 흐릅니다. 이 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리스본이 있습니다. 테주 강을 경계로 북쪽은 포도밭이 많은 산간지대이고, 남쪽은 올리브와 콜크가 많이 생산되는 평탄한 땅이 펼쳐집니다.
숙박과 음식
포르투갈 경제는 우리보다 한 단계 뒤졌다고 보면 됩니다. 유럽에서는 여행비 부담이 적은 편입니다. 관광호텔에 묶을 예정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장급 여관에 해당하는 펜상이 권할만합니다. 값도 우리 장급 여관 수준입니다.
옛 성이나 수도원을 개조해서 손님을 받고 있는 국영호텔 포우사다가 전국에 39곳 있습니다. 왕이나 귀족이 자던 침대에서 잘 수 있고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3가지 등급이 있으며 하루 10만원 내지 20만원 합니다. 원하면 민박도 가능하며 수는 적지만 유스호스텔도 있습니다.
포르투갈 요리는 생선과 쌀이 중심인데 스페인처럼 기름지지 않아 우리 입맛에 잘 맞습니다. 소금에 절인 생선을 넣고 쌀과 함께 끓인 것은 약간 짜게 먹는 사람들 입맛에 꼭 맞습니다. 지리적 특성에 따라 일찍부터 해물요리가 발달하였는데 그 종류가 300종을 넘는다고 합니다.
교육 종교
교육수준은 의외로 낮은 나라입니다. 악착같이 배우려는 열정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교육의 낙후가 세계에 위용을 떨쳤던 포르투갈의 영광을 쇠퇴시킨 요인인지 모릅니다. 무상의 의무교육이 6년인데, 초등교육 4년과 준비교육 2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국립대학은 코임브라대학, 리스본 고전대학, 리스본기술대학, 포르투대학 등 4개 뿐입니다.
근년에 와서 단과대학 - 주로 기술을 가르치는 - 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국민의 97%가 가톨릭으로 신앙심은 두터운 편입니다.
존경하는 인물
신대륙 발견으로 포르투갈은 세계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리스본을 중심으로 하는 역대 왕가의 평판은 좋은 편이 아니지만 항해 왕 엔리케에 대해서만은 모든 계보의 왕가들이 그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대지진 후 리스본 재건을 총지휘한 폼발 후작의 자취도 도처에서 접하게 됩니다.
건축에서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이 들어왔고 후기 고딕양식에 독자적인 장식을 단 마누엘 양식이 탄생하면 마누엘이 우뚝해지고 미술에서는 성비센테의 제단화를 그린 누노 곤살베스와 비제우파의 그랑 바스코가 유명합니다.
가장 존경받는 한사람을 꼽는다면 바스코 다 가마의 항로개척을 주제로 한 장편 서사시 「루시아다스」를 쓴 국민시인 카몽에스가 단독으로 떠오릅니다.
풍속 언어
포르투갈에도 낮잠 자는 풍습(siesta)이 있습니다. 시에스타라는 용어 자체가 스페인어 임을 상기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따라서 점심시간이 길며 그 시간에는 관청과 은행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습니다. 일반상점의 영업시간은 9시부터 오후 1시, 오후 3시부터 7시까지입니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문을 여는 곳은 레스토랑과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선물가게 정도일 뿐, 대개 문을 닫습니다.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지만 관광명소에서는 영어가 잘 통합니다. 스페인어는 외국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알고 있지만 우리가 일본어에 갖는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어 공개된 장소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97%가 가톨릭이어서 종교적 축제일이 곧 휴일인 경우가 많고, 그 외에 혁명 기념일(4.25) 메이데이(5.1) 포르투갈의 날(6.10) 공화제선언기념일(10.5) 독립기념일(12.1)등이 있는데 최대의 축제일은 6월10일 포르투갈의 날로 거국적으로 존경하는 국민시인 카몽에스의 기일이기도 합니다.
가볼만한 곳 / 리스본
국토를 남북으로 가르며 흐르는 테주 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하구에 수도 리스본이 있습니다. 리스본(Lisbon)은 영어식 발음이고, 포르투갈어로는 리스보아(Lisboa)입니다. BC 12세기에 페니키아 인들이 건설했다지만 포르투갈의 수도가 된 것은 1243년입니다. 알폰소 3세가 등장해 국토회복을 완료하고 수도를 포르토에서 리스본으로 옮겼습니다.
대항해시대에는 이 리스본을 중심으로 포르투갈 문화가 화려한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1755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현재의 리스본은 지진에서 살아남은 구시가지와 새로 조성된 신시가지가 공존하는 차분하고 소박한 도시입니다.
리베르다데 거리는 포르투갈의 샹젤리제라고 부르는 리스본의 메인 스트리트입니다. 대지진 후에 만들어진 이 거리는 폼발 후작 광장에서 테주 강을 향하여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폭 90m, 길이 1.5Km의 대로입니다. 가로수가 우거진 양쪽 인도는 백색과 녹색의 무늬 돌로 포장되어 보도 자체가 하나의 미술작품입니다. 이 거리 양쪽에는 호텔, 각국 항공회사, 은행, 쇼핑센터, 영화관 등이 늘어서 있고 거리 중간쯤부터 남쪽은 번화가로서 고급 레스토랑, 뮤직홀, 카페테라스가 많아 관광에 필수 코스입니다.
리스본에도 광장이 많습니다. 신시가지 건설의 주역이었던 폼발 후작의 동상이 있는 폼발후작광장, 스페인의 지배에 대항해 포르투갈의 독립을 위해 싸운 지사들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레스타우라도레스광장, 리스본의 옛 중심이었던 로시우광장, 대항해 시대의 주무대였던 임페리오광장, 그리고 리스본의 현관이자 최대의 광장으로 한쪽은 강에 면하고 3면은 고풍스러운 건물에 둘러싸여 있는 코메르시우 광장이 있습니다. 대지진 이전 이 자리에는 퍽 아름다운 마누엘 1세의 리베이라 궁전이 있었습니다.
광장 중앙에는 폼발후작과 조제1세의 기마상이 서 있고 북쪽에는 19세기에 세운 개선문이 있습니다. 광장 남쪽에는 테주강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는데, 여기에서 바라보는 테주강의 경관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임페리오 광장을 지나 테주강으로 나가면 발견기념비(Padrao dos Descobrimentos)를 만납니다. 항해왕 엔리케 500주기를 기념하여 1960년에 세워진 것으로 높이가 53m입니다. 항해중인 범선 모양을 한 이 기념비에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맨 앞 뱃머리에 서있는 사람이 항해 왕 엔리케이고 그 뒤에 신천지 발견에 공이 큰 모험가 천문학자 선교사 등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로 옥상에 오르면 테주강을 비롯하여 대서양 아주다 언덕 등 사방이 눈에 들어옵니. 그리고 광장에 새겨진 세계지도가 보입니다. 옆에 있는 민속박물관에는, 민족 민속 대중예술 부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포르투갈의 특징을 보려면 이곳에 들리면 됩니다.
리스본 특유의 박물관이라면 포르투갈의 해양역사를 볼 수 있는 해양박물관, 포르투갈에서 출토된 고고학적 유물을 중심으로 이집트 아프리카 등지의 인류학 관계 출토품과 자료가 전시된 인류학박물관, 그리고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마차박물관이 있습니다. 1619년부터 19세기 중엽까지의 마차 58대가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 왕과 귀족들이 타던 유서 깊은 마차들이지만 여행용도 있고 퍼레이드용도 있습니다. 마차에는 역사적인 의미도 있지만 장식미술적인 가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상 조르제 성, 로마시대 중심지였던 알파마지구, 아주다궁전 등 대지진 전의 경관이 남아있는 구시가지가 시간을 내어 돌아볼만한 곳들입니다.
신트라
포르투갈의 매력은 때가 묻지 않은 자연입니다. 리스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그런 자연 속에 묻힐 수 있습니다. 리스본에서 북서쪽으로 28Km 거리에 있는 신트라는 영국 시인 바이런이 <에덴동산>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아름다운 경승지입니다. 산과 산 사이로 굽이치는 언덕길에 관광마차가 경쾌하게 달리고 식물원으로 착각할 정도로 청결하고 짙은 녹음 사이로 보이는 왕궁과 저택들. 동화 속에나 나옴직한 산위의 예쁜 성채와 탁 트인 전망 - 신트라는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포르투갈 일급 관광지입니다.
코임브라
코임브라는 1255년 알폰소 3세가 리스본으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200년 동안 포르투갈의 수도였습니다. 1290년에 설립된 코임브라 대학을 비롯하여 박물관과 수도원 등 많은 역사 유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학문과 예술의 도시로서 조용하고 안정감 있는 도시입니다.
알가르브
알가르브는 태양 숭배자들에게 은혜의 땅입니다. 눈부신 햇살과 150마일에 이르는 금빛 모래사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절경의 해안 골프코스, 승마코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갓 잡아 올린 바다고기 요리를 맛보며 여행의 진미를 느껴볼 수 있고 화려한 카지노도 있습니다.
포르투
포르투는 제2의 도시로 12세기 포르투갈 왕국이 태어난 곳입니다. 에머럴드 계곡의 땅이라는 대협곡에 위치하여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입니다. 포도주의 명산지인 미뇨지잡에서 만들어진 와인이 이곳으로 운반되어 포트와인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됩니다. 이곳에서는 20여종의 와인을 혼합하여 3년 이상 묵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와인 공장 관람을 신청하면 친절한 것은 물론 로비에서 와인을 공짜로 시음할 수도 있습니다.
나자레와 파티마
성벽에 둘러싸인 도시 오비도스와 아름다운 해안 어촌 나자레, 그리고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기적의 땅 파티마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5월부터 5개월간 매월 13일에 찬란한 빛을 뿌리며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전쟁이 곧 끝난다는 등의 예언을 했다는 성지입니다. 처음에는 양을 치는 세 어린이 뿐이었으나 다섯 번째인 10월 14일에는 소문을 듣고 7만 명이나 몰려와 성모 마리아를 만났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는데, 그러나 예정된 시간이 되자 구름이 열리고 찬란한 빛이 쏟아지며 성모가 나타났습니다. 바티칸에서도 이를 인정하여 성지로 정하고 그곳에 대 사원을 세우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