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내용 중 뒷부분의 줄거리는,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시험하기 위해 풍채가 좋은 거지를 골라 집으로 데리고 온 뒤 값비싼 비단옷을 입히고 기름진 음식을 먹이면서 함께 지낸다. 열흘 동안 함께 있으면서 물을 문(問)를 가르치고 무학대사가 글을 짚으라고 하면 물을 문자를 짚으라고 가르쳐 준다. 결과는 남의 대문 밑을 찾아다니며 구걸하고 살 팔자라고 했다. 같은 글자를 놓고서도 이렇게 서로 뜻이 다른 풀이를 하였다. 거지는 돌아와서 이성계에게 사실대로 보고 하였다.
이성계 ; 수고했다. 자, 이것은 그 동안 수고했다고 주는 사례이니 받아 가거라. 거지 : 대인, 참으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거지는 몇 번을 거듭 인사하고 돌아갔다. 이성계는 아무래도 의심이 남아서 다시 한 번 무학대사를 더 시험하기로 했다. 마침 이성계의 노비 중에는 열 살 난 쌍둥이 사내애가 있었다. 목소리와 얼굴, 몸체까지 똑같고 행동도 같았기 때문에 일반인은 구별하기 어려웠다. 다만 그 부모들만 본능적인 느낌으로 알았지만 이따금 착각하기도 했다. 이성계는 쌍둥이 아비를 조용히 불렀다.
이성계 : 너는 즉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절대로 내가 시켰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아니 된다. 내가 가라는 곳에 가면 스님 한 분이 계실 것이다. 그분에게 가서 아들 중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 감별시켜 달라고 하여라. 네가 친부모라고 하지 말고, 갑자기 쌍둥이 부모가 횡액을 당해 죽었기에 친척인 네가 맡았다고 해라. 누가 형인지 동생인지 가려달라고……,
쌍둥이 아비 : 네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쌍둥이 아들을 데리고 무학대사에게 갔던 하인이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쌍둥이 아비 : 주인님, 원 세상에 소인은 정말로 놀랐습니다유. 그분은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더구먼유.
이성계 : 그렇게 뜸 들이지 말고 어서 고하라
쌍둥이 아비 : 소인 놈 자식에게 작대기를 옆으로 눞힌 글자(한일:一)를 짚으라고 허대유. 아이들이 그것을 짚었는데 나중에 짚은 아이가 형이라고 맞추대유. 워째서 그러냐고 물었지유. 그랬더니 윗 상(上) 자를 쓰자면 한 일 자를 나중에 쓰고, 아래 하(下) 자를 쓰자면 한 일 자를 먼저 쓰는 때문이라고 허대유. 그러면서 소인 놈에게 ‘돌아가거든 네 주인에게 일러라. 공연히 빈도를 시험코자 시간을 헛되게 낭비하지 말고 대업을 이루기에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하더이다. 귀신이나 다름없는 분이라구유.
이성계 : 으음 수고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알겠느냐?
쌍둥이 아비 : 알겠습니다유.
이성계 : 알았다. 그만 물러가거라. 이성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날부터 새로운 결심을 하였다. 이성계는 재산이 넉넉한 편이기에 무학대사가 알려준 곳에 절을 지었다. 그리고 새로 지은 절을 석왕사라고 이름 짓고, 길주의 명적사에 방치된 오백 나한상을 한 분씩 모셔왔다. 무학대사가 이르길 한 번에 꼭 한 분씩 모셔와야지 한꺼번에 두세 분씩 모셔오면 안된다고 했기에 그 말대로 한 분씩만 옮겨온 것이다.
이성계와 무학대사는 이렇게 깊은 인연이 있었다. 이성계는 등극한 후 삼천리 방방곡곡에 사람을 풀어서 오랫동안 수소문한 끝에 무학대사를 겨우 찾아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성계는 무학대사를 국사로 모시게 된 것이다.
이성계가 고려의 신하로서 새 나라를 열 개 된 것은 이신벌군(以臣伐君:신하가 임금을 치는 일)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의한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나라를 개국한 초기에 무학대사를 국사로 맞아들인 태조 이성계는 천병만마의 구원병을 얻은 기분이었다. 태조가 설법(說法)을 원하자, 기꺼이 응한 후 무학대사는 설법 후 다음을 덧붙여 강조하였다.
“유교에서는 어진 것을 내세우고 불교에서는 자비심을 내세워 서로 상이한 것 같으나 그 뜻은 하나로 통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앞으로 백성을 자녀처럼 어여삐 여기셔야 하옵니다. 그래야만 백성들이 부모처럼 공경하고 따를 것입니다. 관과 민이 서로 화합하면 자연스럽게 나라가 편하고 사직이 튼튼해 집니다. 이제 나라를 세우는 때에 형을 받는 자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자비심을 베풀어 고려에 충성하려다가 죄인이 된 사람을 모조리 방면하소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재가 필요할 때이니 최대한 포용하여야 하옵니다. 만백성을 보살피기를 흡사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대하듯 하시면 저절로 의지하고 따를 것이옵니다. 그리고 두문동에 숨어 버린 고려의 충신들을 예로써 간곡히 맞으려는 사신을 보내십시오. 그분들이 응하지 않으면 가장 젊고 유능한 한두 명의 인재라도 새 조정으로 맞아들여야 하옵니다. 반드시 장차 새나라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일꾼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시면 전하는 역사의 소명감을 외면하는 결과가 되옵니다. 통촉하소서.”
이성계 : 부덕한 과인이 뜻하지 않게 용상에 올랐으나 천의를 거슬리지 않고 덕치(德治)로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오니 앞으로도 더욱 많은 가르침을 주시오. 오늘 말씀하신 뜻 유념하겠소. 그리고 곧 두문동으로 사신을 보내도록 하리다.
그날 국사 무학대사를 맞아 태조 이성계는 오랜만에 술도 많이 마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성계 : 스승을 뵈오니 흡사 과인이 장자방을 만난 듯하오. 유비 현덕이 제갈공명을 만났을 때도 이다지 흐뭇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무학대사 : 전하 지나친 과찬입니다.
이성계 : 자, 이것은 곡차이니 사양말고 드시오.
무학대사 ; 전하, 참으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자리가 무르익어갈 무렵이었다.
이성계 : 국사와 저는 오늘 군신의 예를 떠나서 모처럼 농담이나 합시다. 어떠한지요?
무학 : 전하, 좋구말구요.
이성계 : 그럼 과인이 먼저 하겠소. 국사께서는 그 간 산중에서만 지낸 탓인지 흡사 얼굴이 산도야지 같구려 허허허…….
무학 : 하하하, 전하의 용안은 흡사 자비하신 부처님을 꼭 닮았습니다.
이성계 : 과인은 농담을 청했는데 농담 아닌 아첨을 하다니요?
무학 : 하하하,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지요.
이성계는 돼지띠다. 우리 속담에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무학대사는 자신을 돼지 같다고 놀리려는 태조 이성계에게 점잖게 응수하였다. 이성계 : 하하하, 국사께서는 농담도 과인보다 한 수 위군요. 이성계와 무학대사는 오랜만에 격의 없는 대화로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註) 장자방(張良이라 함):중국(中國) 전한(前漢) 창업(創業)의 공신(功臣). 소하(蕭何)ㆍ한신(韓信)과 함께 한나라(漢) 창업(創業)의 삼걸(三榤)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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