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의 길은 우리의 길과 같지 않소.”
율리시스 제2장 마무리 부분...
겉으로는 겸손과 신앙의 표명처럼 보이는 이 말은, 실상 아일랜드 식민지 현실 속에서 ‘현상 유지’를 합리화하는 논리로 읽힌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진리 진술이 아니라, 영국 제국에 대한 협조와 타협의 세계관이 압축된 표현이다.
1. 성경 인용의 표면과 이면
이 구절은 구약성경 이사야 55:8–9에서 가져온 것으로, 원래의 의미는 신의 섭리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Deasy는 이를 현실 정치와 역사에 적용해, ‘현재의 질서’가 곧 ‘신의 계획’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는 역사 속 비극과 불평등조차도 ‘하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변화보다 순응을 권유한다. 이런 발언은 종교적 권위를 빌린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
2. 식민지 협조자의 시선
20세기 초 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 시기 협조자(collaborator)나 현실 타협자는 독립 운동이나 급진적 개혁보다 질서와 안정, 개인의 안위를 우선시했다. Deasy는 바로 그런 유형이다. 그는 영국 제국과 가톨릭 교회가 제공하는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불평등 구조를 ‘하늘이 정한 것’으로 포장한다. 그의 발언 속 “창조주의 길”은 결국 제국의 길과 겹쳐 보인다.
3. 언어 속에 감춰진 정치성
Deasy의 언어는 중립적이거나 순수 신학적이지 않다. “우리의 길”을 인간의 한계로 축소시키고, “창조주의 길”을 현 체제와 동일시함으로써, 저항은 ‘하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 된다. 이러한 프레임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매우 유효하다. 종교적 어휘를 통해 정치적 입장을 은폐하고, 상대방의 도덕적 발언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4. 스티븐 디델러스의 의식과 대비
스티븐은 Deasy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지만, 그의 침묵과 미묘한 거리 두기는 작가 조이스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스티븐은 이미 가톨릭, 가족, 제국의 삼중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품고 있다. 그는 과거의 굴레를 ‘나를 형성하는 재료’로 삼되, 그 속박에 종속되지 않으려 한다. 즉, 스티븐에게 “창조주의 길”은 타인의 권위에 기대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구축하는 자기 창조의 길이다.
5. 조이스의 작가 의도
조이스는 Deasy와 스티븐의 대화를 통해 아일랜드 식민지 사회의 두 극단을 병치한다. 한쪽은 ‘섭리’라는 이름으로 현실에 안주하는 보수적 세계관, 다른 한쪽은 개인의 자각과 예술을 통한 해방이다. 독자는 Deasy의 발언에서 표면적 경건함과 그 뒤에 숨은 정치성을 읽어내고, 스티븐의 침묵에서 비판적 의식을 감지하게 된다. 조이스는 직접 설교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러니와 대비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6. 오늘날의 함의
Deasy의 발언은 과거 식민지 상황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큰 그림’을 핑계로 불평등과 부정을 외면하거나, 기득권 질서를 ‘하늘의 뜻’처럼 포장하는 담론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언어는 개인의 비판 능력을 마비시키고, 현실 변화를 지연시킨다. 조이스가 스티븐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그런 언어에 저항하는 내적 자각의 중요성이다.
결론
“창조주의 길은 우리의 길과 같지 않소.”라는 말은 성경의 한 구절이지만, 『율리시스』 속에서는 식민지 협조자의 논리로 변용된다. 조이스는 이를 통해 현실 타협과 권위주의를 비판하며, 스티븐의 의식을 통해 자기 창조와 해방의 길을 제시한다. 창조주의 길이란 타인의 뜻에 종속되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고 선택하는 길이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여기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