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p 중간 좌우정 ₩→ 좌의정 | 12p 중간 생량→ 생략 |
22p 순지(淳地) → 址 | 23p 끝, 우의정에 품서 되었다. |
25p 첫줄 정2품 → 종2품 | 중간에 해주이며→ 해주김씨 |
43p 위 다섯줄 벼슬이 從仕郎→從事郎이었다. 이조에 → 조선 |
48p 위3줄 사모 (思慕) 위6줄 궤진→ 존 |
56p 1줄 익호→ 시호 2줄 사비지→ 사패지(賜牌地) |
시문5줄 도둑를 → 도둑을 |
58p 제목중 의금부 → 의정부 | 첫줄 장청공 → 장정공 |
3줄 감찰사 → 관찰사 4줄 원종공신(原從功臣) 11줄 대재학 → 대제학 |
59p 7줄 보닌 → 보니 |
60p 3줄 합방→ 합격 밑6줄 적성 식현리→ 績城(적성) →적성 (赤城) |
62p 밑2줄 한성부 좌윤 (漢城府左尹) → 좌윤(左尹) |
67p 밑에서6줄 제직시→ 재직시 | 69p 중간 여러데에 → 여러대에 |
83p 누락부분: 교육은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나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19세로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학도병으로 입대하여 각종 전투에 참여했고 장교가 되어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예편 후 구미에 있는 금호공고 교장으로 6년 금호여고 교장으로 6년을 거쳐 90대 노인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효(孝)하고는 멀어지고 부모에게 불효식이 되고 말았다. 민간학교의 교장 재직시 학생들에게 부모에 대한 효를 가르치던 중 금호여고 교장6년 임기를 두달 앞둔 어느날, 한 제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당시 나에게 큰 감동을 준 편지가 되어서 여기에 전문을 소개한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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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p 위2줄 효가 되는냐 → 되느냐 | 12줄 학생에게 온편지 밑 “나”는 |
90p 밑에서 위로10줄 춘수→ 춘수당 | 115p 사진3.덕천가강→도꾸가와이에야스 |
125p 밑에서6번줄 북풍화을 → 북풍화를 |
129p 사진밑3번째 국립중앙박물과→ 관 | 146p 밑 16줄 검사(劍事)→ 檢事 |
163p 위3줄 세사지→ 세가지 | 199p 밑 사진 설명중 재주→ 제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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