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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정사의 파행을 생생히 전달한다!
결정적 순간, 헌법탄생 리얼다큐 『두 얼굴의 헌법』. 이 책은 저자가 오랜 기자 생활과 재선의 야당의원 시절 만난 정치인들로부터 직접 듣고 취재한 내용과 국회의사기록을 토대로 대한민국 헌법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과 헌법이 겪어온 풍상을 생생히 전달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 헌법을 오만한 독재자들의 음모에서 지켜내고 세도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의 장식품이 되지 않도록 길잡이가 되어 줄길 바라며 헌법을 지키고자 당부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1948년 헌법이 탄생되기까지 우여곡절을 다루며 2장은 1952년 5.26 부산정치 파동과 발췌 개헌을 통해 우리 헌법이 어떠한 수난을 당했는지 알려준다. 3장은 제헌국회 의사당 제헌의원들의 생생한 일상을, 4장은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 제주 강정마을 현장을 방문한 저자가 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이 사태의 잘못된 점을 간접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저자 김진배(金珍培)는 그는 영원한 기자요, 평생 글쟁이다. 1959년 경향신문 수습기자를 시작으로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서 기자, 부장, 논설위원으로 일했다. 1968년 동아일보 국회출입기자 때는 청와대 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 공화당 재정위원장 등 4인체제가 주무른 ‘정치자금의 내막’을 폭로해 호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헌법제정에서 조각까지’, ‘정치파동’, ‘선거로 본 헌정 40년’ 등 많은 글을 신문과 월간지에 썼다. 1975년 3월 동아언론자유 파동으로 해직되었다.
1981년 정계에 입문, 11대와 15대 야당의원을 지냈으며, 2001~2004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으로 일했다. 최근에는 폐암을 극복하고 기고와 저술 활동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1934년생. 고려대 법대 졸업. 역저서로 『백성의 권리(1』959), 『비화 제1공화국』(공동집필, 1975), 『가인 김병로』(1984), 『인동초의 새벽』(1987), 『사람을 알고 사람을 말하라』( 1992) 등이 있다.
머리말 4
추천하는 글
김종인 11 | 김진현 13 | 윤여준 15 | 이이화 17
이야기 한 자리 : 헌법의 탄생
1장 이승만 헌법
식순에 없었던 목사의 기도 26 | 이승만의 화술 29 | 헌법기초위원 선출 내막 31 | 대세를 이룬 의원내각제 34 | “대통령제 아니면 민주주의 안 돼!” 37 | 그런 대통령 않겠다는 폭탄선언 38 | 좋은 재료 써야 좋은 집 지어 41 | 헌법기초위원장 서상일 43 | “시방 볼 것 같으면 이 양반이…….” 45 | 정중한 명령 편지 47 | 김준연 헌법의 탄생 49
2장 다시 보는 헌법심의 풍경
헷갈리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 51 | ‘ 대한민국’ 작명의 순간 53 | 광복된 나라의 아버지들 58 | 왜 대통령제인가 60 | 진땀 빼는 유진오 64 | 군주국 냄새나는 큰 대 자 67 | 인민인가, 국민인가 68 | 느닷없는 배냇병신 소동 70 | 투표로 정해진 국호‘ 대한민국’ 71 | 영토조항 넣은 내력 74 |‘ 뜨거운 감자’ 친일파 처벌 문제 77 | 여성 조항은 왜 없었는가 80 | 처음 선뵌‘ 경제적 민주주의’ 82 | 조봉암의 집요한 주장 86 | 노사 문제 젖혀둔 헌법 92
3장 쫓기는 헌법
8ㆍ15까지 며칠 남았나 94 | 정세론과 원칙론 96 | “정신 차리시오, 조처하는 방법 있으니까” 98 |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승만식 사회 100 | 조문 읽기 바쁘게‘ 땅, 땅, 땅’ 104 | 마지막의 장엄한 순간 106 | 헌법을 공포한 국회의장 108
이야기 두 자리 : 헌법의 수난
1장 5·26 부산정치파동
1952년의 정국 114 | 세 가지 의문점 116 | 이승만 편 겨우 48명 120 | 계엄 2개월 전후의 공포정치 122 | 재집권 위한 정략계엄 123 | 의원 버스를 들어 올린 공병대 크레인 126 | 국제공산당의 올가미 129 | 조작의 희생자, 7·7구락부 132 |“ 이 천박을 깰 놈!” 135 | 국회는 뭘 하자는 거냐는 대통령 137 | 계엄사령관 원용덕 140 | 해괴한 계엄 포고문 143 | 사단 병력인가, 중대 병력인가 145 | 공포정치의 신호탄 146 | 자금조달책으로 지목된 오위영 150 | 조작 사건에 끼어든 유령 151
2장 양두구육의 발췌개헌안
정부 개정안의 심의 경과 155 | 참담한 1월 19일 158 | 두 갈래 자유당 160 | 국회 경시에 대한 반발 사태 163 | 이활, 양우정의 말 166 | 권력자의 궤변 168 | 야당의원 소환 통고장 170 | 서민호와 태완선 172 | 데모대에 포위당한 국회의사당 175 | 도화선은 대통령 담화 177 | 소환 문제 조사특위 179 |
이승만의 답변 181 | 대통령 규탄 결의 184 | 민의의 가면을 쓰고 186 | 김병로 대법원장의 증언 187 | 한밤중에 날아든 전통 190 | 원주 귀향보고에서 생긴 일 193
3장 헌법에 대한 선전포고
재적 3분의 2보다 한 사람 많은 123 197 | 송구스럽고 죄송하여 죽음으로 보답할 뿐 199 | 공무원은 방황, 국회는 당황 201 | 이재형 집에 찾아온 새벽 손님 204 | 한 표의 의미 206 | 장택상이라는 사람 209 | 발췌개헌의 전위부대 신라회 212 | 5월의 훈풍 속에 214 | 52명의 합동파 216 | 원외 자유당 1호 양우정 218 | “대통령이 왜 돈 없어?” 219 | 인기 높아진다는데 불안하기만 222 | “병신이야, 병신!” 226 | 장면이 숨은 부산 미 육군병원 230 | 서민호 의원 사건 232 | 서상환 법무장관의 증언 235
4장 민의로 위장한 전방위공격
‘관제데모’에 성역 없다 238 | 미국과 유엔의 반응 241 | 얼어붙은 신문들 243 | 편집국에 난입한 괴청년들 244 | 잇따른 부통령 사표 소동 249 | 국제구락부의 호헌구국 선언 254 | 남포동의 조병옥 259 | 난장판으로 끝난 호헌구국 선언 261 | 뒤늦게 발견된 김성수의 메시지 265 | 김성수의 격렬한 독재 규탄 268 | 고재욱과 김상만, 그리고 신도성의 증언 272 | 인촌의 사임서와 사임성명 273 | 1952년 그 지루한 여름 274 | 치안국 정보과 이 경감의 귀띔 276 | 두 사람의 수괴 277 | 막간의 헛소리 한 토막 279 | 악마의 5ㆍ24사태 281 | 현상금 붙은‘ 악의 축’ 282 |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 284 | 법당 불상 뒤에 숨겨진 초등학생 286 | 수수께끼의 막후지도자 한동석 287
5장 짓밟힌 헌법
국회의장을 협박한 장택상 총리 289 | 대통령 출석 요구 291 | 혼선을 빚은 대통령 임기 292 | 국회에 보낸 이승만의 협박장 295 | 민의부대 급기야 국회로 297 | 여당의 유회전술 298 | 야당 맹장이 여당 참모장으로 300 | 짓밟힌 타협은 없다 302 | 국회 보이콧 303 | 드디어 본회의에 상정된 발췌개헌안 305 | 국회는 죄가 없는가 306 | 여야 합의면 그만인가 307 | 왜 대통령직선제인가 310 | 임시가 아닌‘ 임시의장’ 312 | 발췌의 묘미 314 | 코앞에 닥친 대통령 임기 만료 317 | 불출석은 무정부주의자 318 | 3분의 1에 좌우된 헌법 321 | 개헌안 답변에 나선 체신부 장관 324 | 야당안을 급조 제안한 이종형 의원 326 | 개헌이라 하는 것은 328 | 공권력의 폭력화 330 | 화씨벽 고사 333 | 안갯속에서 드러나는 머리 335 | 해괴한 국회 해산결의안 337 | 국회의원 수용소의 수문장 338 | 오욕의 날, 7월 4일 342
이야기 세 자리 : 제헌 2년의 풍경
1장 건국의 아버지들
산모는 누구인가 349 | 43대 0의 유엔 결의 351 | 가능한 지역에서의 선거 352 | 부산했던 유권자 등록 354 | 춘천에서 본 총선거 357 | 이승만의 날 359 | 천차만별의 복장 363 | 여관방에서 만난 의원 동지들 365 | 뒤죽박죽 속의 질서 370
이야기 네 자리 : 헌법의 현장
부록
헌법의 주인은 누구인가 398 | 등장인물 406 | 제헌헌법 전문(全文) 438
◆ 이 책은…
● 사실과 증언을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
- 저자가 오랜 기자생활과 재선의 야당의원 시절 만난 정치인들로부터 직접 듣고 취재한 내용과 국회의사록을 토대로 하고 있다.
- 따라서 이전에 밝혀지지 않았던 생생한 증언과 비화들을 많이 담고 있으며, 현대사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 뿐만 아니라 익히 여러 저술을 통해 보여준 저자의 필치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제헌국회 의사당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이화 선생의 추천사 : “저자의 글은 치밀한 자료 수집과 탄탄한 이론, 그리고 이야기 구성능력과 함께 리얼한 문장 표현이 잘 어우러져 있으며, 소설가적 표현 능력과 이론가적 짜임새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역사적 사료로서의 의미
1. 60∼70년대 현역 기자 시절, 당시 생존해 있던 제헌의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추록한 내용
2. - 제헌 헌법에서 ‘인민’이란 용어 대신 ‘국민’이란 말을 쓰게 된 배경
3. - 대한민국 대신 ‘태한민국’이나 다른 국호가 탄생할 뻔한 뒷이야기
4. - 정체를 민주공화국이 아닌 ‘민주동화국’으로 하자고 제안한 제헌의원
5. - 이승만은 자기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제헌헌법을 만드는 과정에 어떻게 개입했나?
6. - 나쁜 개헌의 선례를 남긴 ‘발췌개헌’ 과정의 비사
7. - 이승만의 독재에 주눅이 들어 비굴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여준 장면 박사의 일화
8. -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던 인촌 김성수의 민주 투사로서의 면모
● 제헌국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안들
9.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던가? 오늘의 문제는 단지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제헌국회에서부터 치열한 논쟁 대상이었다. 당시의 격론 과정은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 제공
10.
11. - 친일청산
“우리가 장마당에 가서 쌀을 살 때에 1등미, 2등미, 등외가 있습니다. 흙도 없고 돌도 없고 피도 없으면 1등미입니다. 새 나라를 건설하는데 순수한 1등미, 반민족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을 공무원으로 써야 할 것입니다. 왜놈들은 우리 독립운동자들을 극렬하게 찾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는데 조선 사람이 일본놈 행세를 하며 악질적으로 모리하던 사람이 해방 후 조금도 과오를 느끼지 않고 마찬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처지에서 빨리 새 나라의 새 공무원을 채용하는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12. - 국회 프락치 사건 (종복 문제)
“1948년 국회의원들은 친일파로 몰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혹시 ‘공산당’으로 몰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2년을 넘기고 재선하기는커녕 감옥으로 직행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꼈다. 이승만은 이를 은밀한 이화장의 사랑채뿐 아니라 지금 국회 본회의장에서 보는 것처럼 공개적으로 의원들을 위협했다. 2010년대 들어 일부 언론은 물론 여의도의 국회 주변에서까지 정부를 세게 몰아붙이는 언동에 대해 ‘종북’ 딱지를 붙이는 만큼이나 치명적이었다.”
13. - 교육 문제
“무상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국가에서 교육시킬 의무, 즉 인민이 교육을 받을 의무가 있는 동시에 국가에서 그것을 교육시킬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시방 우리들이 당하고 있는 것은 소학교 학생의 월사금을 내는 것보다 후원금이라든지 그런 것을 내는 것이 월사금의 수십 배가 됩니다. 그러니까 무상으로 한다는 것은 대단히 의의가 적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것을 ‘국가가 그 의무를 진다’ 완전히 의무를 지는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그런 해석으로서 이것이 무상으로 규정된 것으로 저는 믿고 있습니다.”
14. - 경제 민주화
“모든 사람의 자유 활동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특별히 약한 사람은 붙들어주고 강한 사람은 조정하는 그런 정신 밑에서 경제 문제, 사회 문제, 문화 문제에 관해서는 단순히 자유를 주자는 데에 그치지 아니하고, 국가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견해서 어떠한 사람은 도와주기도 하고 어떠한 사람은 제한하는 그런 체제를 채용해봤습니다. 재산권에 관한 규정도 이런 정신의 발로입니다. 종래에는 재산권은 오로지 신성하고 불가침하다고 이렇게 규정되었던 것인데, 이 헌법에는 재산권은 보장되지만 그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15. - 여성 조항
“어째서 헌법에서 서른한 번이나 ‘국민’이란 말을 했고 헌법의 전문 그 끝에 자손의 안전을 말하여 놓고 국민과 자손을 염려하고 국민과 자손을 살피는 결혼문제와 가정 문제에 대해서 한 조목도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1항에도 가입시키지 않은 이 초안이야말로 ‘바람 없는 타이어’와 마찬가지예요. ‘마개 빠진 사이다’와 마찬가지의 비애를 거듭 발견했다는 말씀입니다.”
16. - 영토 문제
“영토에 관한 조항은 안 넣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우리는 연방국가가 아니고 단일국가이니까 안 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헌법에 적용된 범위가 38선 이남뿐만 아니라 우리 조선 고유의 영토 전체를 영토로 삼아가지고 성립되는 국가의 형태를 표시한 것입니다.”
17. - 노사관계 조항
“오늘날 조선에 있어서 우리 민족을 사상적으로 분열시키고 모든 혼란, 모든 상쟁을 일으키고 있는 그 원인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문제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모순에 대해서 그것을 수정한다든지 여기에 대한 특별한 결정안이 없다고 하면 여기에 나열된 모든 정치적 자유평등이라는 것은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18. - 지역별 의원 성향의 차이
“이승만 발췌개헌에 앞장 선 자유당 합동파는 경남북과 강원 출신 의원들이었다. 그들의 아성으로 불린 경북은 34개 선거구 가운데 10명으로서 34%, 경남은 32개 선거구 가운데 9명으로서 28.1%, 강원은 12개 선거구 가운데 4명으로서 33.3%였다. 서울은 16개 선거구 가운데 3명, 18.8%, 경기는 30개 선거구 가운데 7명으로서 23.3%였다.”
- 집권과 정권 연장을 위한 이승만의 행태
몽니 : “여러분이 그런 헌법을 만들겠다면 만들어보시오. 나는 그런 정부에 들어가 일하지 않을 것이오.” <의원내각제 헌법 아래서는 대통령 못 하겠다며>
협박 : “정신 차리시오. 몇 사람, 몇 분자들이 쑤군쑤군해가지고서 이 방면, 저 방면 헌법을 통과하는 것을 하루라도 지체하자는 태도가 보인다고 할 것 같으면 여기서부터 조처하는 방법이 있으니까 생각들 하시오!” <대통령 직선제 제헌작업을 서두르라는 이승만이 국회 발언>
금권공작 : 대통령은 저고리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양우정 의원에게 전했다. “아껴서 써요. 부족하면 또 줄게.” 개헌공작을 위해 이 대통령으로부터 양 의원에게 건넨 돈이 3억 원이었고, 1952년 5월 현재 임시수도 부산의 쌀 한 가마 시세는 50만 원이었다. <양 의원이 후일 밝힌 내용>
관제데모 동원 : 민중이 공분을 참지 못하여 대다수의 각 군, 각 도 정식 대표들이 경무대에 와서 국회 해산을 요청하고 있는 터이므로 국회의원 제씨는 이것을 각오하시고 속히 민간공론을 따라 결정해서 분쟁을 정돈시키게 하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발췌 개헌에 응하라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뜻이라는 대 국회 서한>
색깔 덧씌우기 : 국회프락치 사건 조작을 비롯해 민간인이든 국회의원들이든 관계없이 그들을 싸잡아 빨갱이로 모는 것이 야당의 기를 죽이는 만병통치약이었다. 약효는 입증되었고 그러한 뒤집어씌우기 수법은 3ㆍ15부정선거에 항의하여 거리로 나온 고등학생에게까지 ‘공산 오열’의 딱지를 붙였다.
● 책의 구성
이 책은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헌법의 탄생’으로서 1948년 제헌헌법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
2장은 ‘헌법의 수난’으로서 1952년의 5·26 부산정치파동과 발췌개헌을 통해 우리의 헌법이 어떻게 유린되었는지를,
3장은 ‘제헌 2년의 풍경’으로서 제헌국회 의사당과 제헌의원들의 생생한 일상을,
4장은 ‘헌법의 현장’으로서 저자 용산참사, 쌍용차사태, 제주 강정마을 현장을 수차례 직접 방문하여 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부록으로 등장인물 소개와 제헌헌법 전문 등을 싣고 있다.
● 제목 ‘두 얼굴의 헌법’의 뜻
처음 정한 책 제목은 ‘그놈의 헌법, 우리의 헌법’이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헌법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것으로 오해할 염려가 있다며 좀 점잖은 이름으로 바꾸기를 바랐다. 실은 ‘그놈의 헌법’이란 말은 저자가 한 말이 아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사람의 대통령들이 자기가 손수 만든 헌법으로 오래 해 먹기 어렵거나 불편을 느끼자 ‘그놈의 헌법’이라며 헌신짝처럼 버리고 헌법 같지 않은 이름만의 헌법을 흉기처럼 휘두른 데서 따온 말이다. 이 말로 할까 저 말로 할까 책 제목을 생각하다 막판에 ‘두 얼굴의 헌법’으로 낙착되었다. 헌법은 그 자체는 하나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권력자나 가진 자의 흉기가 되기도 하고, 보통사람들의 보호자, 민주주의의 보루가 되기도 한다는 뜻에서 ‘두 얼굴의 헌법’이라 지었다.
이 책은 실용서도 교양서도 오락서도 아니요, 고상하다거나 심오한 이론서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우리가 ‘민주공화국’이라는 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고, 누구도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우리가 지켜온 보편적인 시민사회의 기본원칙을 침해당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 추천하는 글
헌정사의 파행을 쉽고 자세하게 서술 - 김종인
이 책은 저자가 기자 시절 개헌 과정을 체험한 많은 과거 정치인들과의 접촉과, 야당 국회의원 재선이라는 그의 정치 체험을 근거로 우리 제헌헌법의 제정 과정에서부터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 정치파동 속에 단행한 발췌개헌과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헌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헌정사의 파행을 매우 자세하고 쉽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독자들이 대한민국의 헌정사를 회고하여 본다는 의미에서 꼭 한번 읽어볼 만하다.
어떤 이론서가 이만한 설득력이 있을까 - 김진현
이 책은 저자의 헌법 관찰, 헌법 체험, 그리고 헌법 바로잡기가 얼마나 다부진가를 확인하는 글이다. 1948년부터 1987년까지 상처받고 찢겨지고 모욕당한 대한민국 헌법의 운명과 정치를 생생한 저널리즘의 향기로 분석하고 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덕수궁, 용산, 제주도 강정마을로 취재를 다니는 저자에게서 마치 나 혼자만이라도 이 대한민국의 고뇌를 헌법적 가치와 헌법제도의 정착으로 풀겠다고 온몸을 바치는 순교자의 열정을 느낀다.
헌법이 겪어 온 풍상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는 책 - 윤여준
우리가 심각한 정치적 혼란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국가 지도자나 국민 모두 헌법을 잘 모르거나 또는 제대로 지키려 하지 않았던 탓이라고 생각될 때가 많다. 이제는 국민도 헌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지키는 노력을 기울여서 권력자들이 반드시 헌법의 정신과 원칙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우리 헌법이 겪어 온 온갖 풍상을 다큐멘터리처럼 엮어서 헌정사의 주요 대목을 손에 잡힐 듯 실감 나게 보여준다.
참된 민주주의를 알려주는 교양서 - 이이화
제목만 보아도 이 책은 범상한 서생들의 연구서가 아니요, 그렇다고 무게를 잡는 사상서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중간 제목도 참으로 안 읽어보고는 못 배기게 썼으니 ‘현대사 에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쌍용자동차나 강정마을 사태가 왜 잘못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과거를 담고 있지만 결코 현실을 벗어난 공허한 이야기가 아니다.
〈참담한 1월 19일〉
1952년 1월 19일 오후 2시 30분 대한민국 국회는 이승만 대통령이 제안한 상하양원제와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헌법개정안을 한 사람의 찬성토론도 없이 부결시키고 말았다.
국무총리서리로서 개헌안 제안 설명을 했던 허정 씨는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64년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당시를 회고했다.
“그때 공기로 보아서 안 되도록 되어 있었던 거야. 개헌안을 국회에서 표결하기 전날인가 경무대에 들어가 보고했어. ‘제힘으로는 어렵습니다. 철회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이박사는 ‘왜 미스터 허까지 나를 반대하느냐.’고 화를 내셨어요. 나는 이렇게 여쭈었어. ‘국회의원들은 저마다 10만 선량으로 자처하고 있고 자기 나름으로 다 애국자로 생각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건 부결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어요. 누가 보아도 뻔한 일을 이박사는 ‘미스터 허! 두고 봐. 무슨 결과가 나올지’라고 되풀이하셨어. 왜 뻔히 안 될 줄 알면서 그걸 내놓고 또 표결까지 하도록 방치한 걸 보면 대통령 당신 나름으로 무슨 계획이 있었던 것 같아.”
우양 허정이 전한 이러한 이 대통령의 태도는 그가 이미 어떤 계책을 국회의 표결과 관계없이 구상하고 있거나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한다. 국회를 박살낼 분노에 찬 음모의 진원지는 바로 경무대 집무실, 원용덕에게 친필 계엄사령관 임명장을 써준 10평의 초라한 방이었다.--- 「2부 헌법의 수난, 2장 양두구육의 발췌개헌안」
〈두 갈래 자유당〉
오위영은 정치파동의 뒷이야기를 취재하던 1970년대 초 필자에게 이렇게 전한다.
자유당 창당 작업에 한창 바쁜 1951년 10월 어느 날 이대통령은 오의원을 대통령 관저로 부른다.
“오의원이 수고하고 있다지?”
“네. 그런데 선생님은 왜 정당을 직접 하시려고 합니까. 선생님께서는 국가원수로서 초연하게 계시고 정당 끼리 정당 대결로 나가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면 당적을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선생님은 왜 정당을 직접 이끌어나가려 하십니까.”
“그래, 좋은 대로 해봐.”
오의원이 느끼기로는 대통령은 아무래도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보였다고 한다.
이대통령과 오위영 의원. 그가 이승만을 처음 찾아간 것은 정부 수립 훨씬 전인 1946년 가을이었다. 신탁회사인 조선무진 상무인 오위영이 마포장(지금 원효로 한강변 높은 지대. 총독부 정무총감 별장. 정무총감 관저는 지금 충무로 ‘한국의 집’자리)으로 이 박사를 찾아갔을 때 마포장 주변은 몰락한 고관대작의 집처럼 쓸쓸했다. ‘해방조선 최고의 애국자’니 ‘위대한 혁명가’니 하던 칭송은 간 데 없던 인기하강의 시절이었다. 이 박사는 손수 타이프라이터를 양쪽 손가락 두 개로 톡톡 치고 있었다. 앞으로 조선의 경제를 어떻게 일으켜야 할지를 묻는 이 박사가 크게 돋보였다. 그는 여러 정치 지도자들을 찾아가 뵈었었다. 그러나 누구도 경제를 묻는 정치인은 없었다. ‘저런 분이 새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오위영은 이 박사의 식견과 애국심에 폭 빠졌다. 남이 모르는 가운데 물심양면으로 그가 고마워할 만큼 그를 도왔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다시 본 이 박사는 옛날 느꼈던 그 이 박사가 아니었다. 무능한 관료들에게 둘러싸여 국회를 안하무인으로 깔아뭉개려는 데는 반발마저 생겼다. 그럴만한 정당의 기반도, 국회의 세력도 없는 그의 이런 국회 경시는 화를 자초하는 것으로 보였다.--- 「2부 헌법의 수난, 2장 양두구육의 발췌개헌안」
〈한 표의 의미〉
5·26 정치파동 20여 년이 지난 1973년 운경 이재형은 누상동 고풍스런 한옥 행랑채 거실에서 정치파동을 취재하던 필자에게 이런 에피소드를 전하며 덧붙였다.
“창랑 장택상은 참 부지런하고 인간미가 있는 분이었어요.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직접 찾아와서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데는 대놓고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기는 어려운 거 아닙니까. 흔히 정치파동의 책임(악역)을 장택상 총리와 이범석 내무에게 돌리지만 청랑이 철기보다 욕을 덜 먹는 건 이런 인간적인 체취 때문이라고 봐요.” 이재형 의원은 장택상 부의장과 불가원 불가근의 사이였다고 한다. 창랑과 많은 접촉을 가졌으나 그렇다고 창랑이 주도한, 주로 경북 출신 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신라회 멤버도 아니었다. 그는 의원내각제 개헌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어느 파에 깊이 개입하지는 않았다.--- 「2부 헌법의 수난, 3장 헌법에 대한 선전포고」
〈“병신이야 병신!”〉
한창우는 1973년 초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장면 박사에 대해 설명했다.
“김기자, 자네 5·16 때 장면이 안 봤어? 병신이야, 병신! 그때 자기가 피 흘려서 세운 정권의 국무총리라면 수녀원에 숨을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대결했어야 하는 거야. 숨어버리는 장면이나 ‘올 것이 왔다’는 윤보선이나 뭐가 달라. 부산 정치파동 때도 이 양반이 갑자기 없어졌어. 그래 이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을 하고 어떻게 국무총리를 하겠어!”
- 그런데 장 박사는 왜 그렇게 이 박사 앞에서, 또 박정희 앞에서 그렇게 작아졌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보기에는 그래, 이런 생각이 들어. 장 박사는 진심으로 이 박사를 존경했어. 그분이 헌법기초위원이었잖아, 그래 이화장과 국회를 오고 가며 이 박사 하시는 걸 옆에서 지켜보았어. 아주 감탄을 해. 그렇게 박식할 수가 없고 그렇게 결단이 강하고 그렇게 권모술수가 뛰어날 수가 없다고 말이지. 그 바쁜 가운데도 내 방에 자주 들리시고 내 집에도 가끔 들려서 하시는 말씀이 이 박사 칭송이야. 6·25 때 미국대사였어. 이때 이 박사의 다급한 목소리며 이렇게 하라는 지시며 일을 처리하는데 저렇게 정통할 수 있을까 감탄했다는 거야. 이야기가 좀 길어졌지? 허허! 그만한 애국심이나 그만한 식견을 가진 사람, 조선 천지에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 「2부 헌법의 수난, 3장 헌법에 대한 선전포고」
〈남포동의 조병옥〉
84세의 고령인데다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이시영 전 부통령을 모시는 일은 번거로웠다. 우선 건강이 어떠냐가 문제였다. 그를 모시러 간 이상돈 제헌의원은 그 전후 사정을 자세하게 필자에게 설명했다. 같은 전주 이씨다.
- 대부님, 차를 가지고 모시러 왔습니다.
“호헌구국선언대회에 다들 나온다고 하던가?”
- 네, 재야의 지도자 되시는 분들은 다 나오기로 되어 있답니다.
“장 박사(장면)도 나온다고 하던가?”
- 여러분 들이 나오시도록 부탁했으니까 나오시겠지요.
“그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미국 사람 관계, 대미관계 말이네. 이런 관계로 누구보다 그 사람이 꼭 나와야 해.”
“의관을 준비해라!”
성제 이시영은 한말에 과거 급제를 하고 한성재판소 판사를 한 사람이다. 한말의 관원 말씨가 그대로 튀어나오는 이 우국의 지사는 이제 나이와 관계없이 반독재투쟁의 선봉에 서겠다는 자세다.
간담회장에는 이미 60여 명이 모였다. 그러나 정작 기다리는 장면 전 부통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서상일, 조병옥, 유진산 등 대회를 추진하는 책임자들은 초조하게 장 박사가 이제 오나 저제 오나 기다렸다. 한 30분쯤 기다리다 이제 시작할 움직임이 부산했다. 식당 정면 벽에 ‘호헌구국선언대회’라는 큼직한 글씨가 붙여졌다. 바깥에 붙었던 ‘문화인 간담회’가 삽시간에 둔갑했다.--- 「2부 헌법의 수난, 4장 민의로 위장한 전방위 공격」
〈뒤늦게 발견된 김성수의 메시지〉
인촌 김성수의 생각이 햇빛을 보게 된 것은 지난 1973년 필자가 발굴한 성과다. 필자가 이를 취재하게 된 것은 정치파동 당시 원내 자유당 소속의원으로서 정치파동의 주역의 한 사람이던 정헌주 의원의 증언과 그가 보관해온 김성수의 호헌구국선언대회에서 하려던 식사(메시지) 원문을 입수한 것이 계기다.
왜 김성수나 그 유족이 가지고 있어야 할 이 문서를 정헌주가 가지고 있게 되었을까. 정헌주는 이 박사를 반대하는 원내 자유당의 맹장 중의 한 사람이지만 김성수와 사사로운 연고는 없었다. 정치파동에 분격, 부통령의 자리를 박찬 김성수는 태풍이 지나간 그 이듬해 어느 날 자택을 찾아온 정헌주 의원에게 인촌은 한 문서를 전해준다.
“이건 정 의원이 가지고 있는 게 좋겠소. 다들 고생을 많이 했고 이런 문서를 내가 보관하는 것보다는 정 의원이 간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이런 귀중한 선생님의 문서를 제가 간수하는 것보다 선생님이 친히 간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혹 사정이 있으시다면 선생님 가까운 분에게 맡기시든지…….”
“아니야. 내가 생각이 있어서 그래. 그러니 좀 잘 간직해두소. 내가 특히 정 의원에게 맡기는 것은 뜻이 있어서 그러니까.”
정헌주 의원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민국당 지도자인 김성수와 인사는 드린 적이 있지만 특별한 교분이 없었고 더구나 당을 같이한 일도 없는 그런 사이였다. 그런데도 자기를 신임하고 귀중한 문서를 맡기는 데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 문서, 즉 국제구락부에서 대독하려던 김성수의 식사는 다음과 같은 글로 시작되고 있다.
“친애하는 동지 내빈, 국내외의 동포 여러분!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였습니다. 밖으로는 적색 제국주의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국토는 황폐하고 국민은 유리하여 생사지경을 헤매고 있는데 다시 안으로는 오직 일개인의 그칠 줄 모르는 독재적 탐욕 때문에 국헌은 유린당하고 민주주의는 말살됨에 전 자유세계의 동정과 구원의 손길은 거역되어 국가와 국민을 통틀어 멸망의 구렁으로 몰아넣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메시지는 거침없이 규탄한다. 일찍이 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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