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역별 주요 자연재해 유형. 허리케인은 하늘색, 토네이도는 붉은색, 지진은 초록색·노란색·갈색으로 표시돼 있다. <자료원: www.hazardscaucus.org>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민간 우주여행까지 가능한 시대가 됐다. 조만간 지구를 벗어나 화성, 달 같은 우주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이다. 이러한 기술 진보로 우리는 지구를 손바닥처럼 훤하게 알고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각종 자연재해를 살펴보면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국토 면적을 자랑하는 미국은 동서남북으로 다양한 기후가 나타난다. 그렇다 보니 홍수, 지진, 가뭄, 산불, 허리케인 등 각종 자연재해가 미국 전역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미국의 면적은 우리나라보다 100배 가까이 크다. 그렇다 보니 지역별로 발생하는 자연재해의 유형도 다양하다. 뉴욕, 워싱턴, 마이애미 등이 위치한 동부 해안 지역에선 허리케인이 가장 대표적인 재해다. 북쪽 지역에선 한파가 극성을 부린다. 중부 지역에 허리케인과 우박, 서부 지역에선 지진, 가뭄, 산불 등이 대표적인 자연재해로 꼽힌다.
2014년에도 미국은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었다. 새해부터 서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이례적인 한파가 밀어닥쳐 동북부 주요 지역이 영하의 날씨로 꽁꽁 얼어붙었다. 2014년 1월 미국 북동부 지역의 평균 온도는 섭씨 영하 6.9도로 평년보다 2.3도 낮았다. 특히 1월 초엔 최고 60cm가 넘는 폭설로 공항과 고속도로가 폐쇄됐다. 이로 인해 한파가 엄습한 지역뿐만 아니라 미국 서부 등 전역에서 교통대란이 빚어졌다.
네브래스카 주 필거를 휩쓴 쌍둥이 토네이도.
미국 중부 지역에서는 토네이도가 예년보다 더 극성을 부렸다. 중부에서는 사람이나 동물도 휩쓸고 갈 만큼 강력한 토네이도로 인해 매년 인적·물적 피해가 빚어지곤 한다. 2014년 6월 중순 캔자스 주 바로 위에 위치한 네브래스카 주에서는 보기 드문 쌍둥이 토네이도까지 등장했다. 최대 풍속이 시속 260km가 넘는 2개의 바람 기둥으로 마을의 70% 이상이 초토화되고 2명의 사상자와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2014년 상반기에만 800개에 가까운 토네이도가 발생해 50명에 가까운 사람이 사망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속담이 있다. 2014년 7월 마지막 일요일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 베니스 해변에서는 그야말로 맑은 날 해안에 날벼락이 떨어져 1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로스앤젤레스가 위치한 캘리포니아는 사막기후로, 연간 강수량이 500~700mm에 불과한 건조 지역이다. 이마저도 대개 겨울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려 여름철에는 비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미국 자연재해 통계(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를 보더라도 1959~2012년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벼락사고로 숨진 사람은 31명인데, 플로리다 468명, 텍사스 215명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숫자다. 벼락 사고는 요세미티 국립공원 같은 산악지역에 주로 발생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로스앤젤레스 베니스 해변에서 발생한 낙뢰 사고는 갑작스럽고 위력이 커 현지 기상 전문가들조차도 이변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 외에도 느닷없는 폭우로 온 마을이 물에 잠기고, 산불로 고급 주택이 불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8월 초에는 2개의 허리케인이 동시에 하와이로 돌진해 많은 관광객과 주민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이처럼 미국에선 크고 작은 지진, 산불, 홍수 등 자연재해에 대한 소식이 끊임없이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재해가 일상화된 나라, 바로 미국이 그렇다.
넓은 영토에서 다양한 자연재해가 발생하다 보니 미국의 재해 발생 건수, 피해액 등은 집계하는 기관마다 다소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각종 기관에서 발표하는 자료를 단편적으로 살펴보더라도 미국이 겪는 피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UN 산하 프리벤션웹(PreventionWeb)의 자료에 따르면, 1980~2010년 미국에선 640건의 자연재해로 1만 2,366명이 목숨을 잃었다. 자연재해로 매년 399명이 죽고, 176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형태별로 보면 허리케인·토네이도 같은 폭풍의 피해가 가장 크고 이 외에도 홍수, 산불, 이상기후, 지진 등으로 피해가 발생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가져온 자연재해는 2005년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다. 카트리나의 피해액은 자그마치 1,250억 달러에 달한다. 카트리나가 미국 산업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해양 석유시추선 30대가 파손되고 정유소 9개가 문을 닫았다. 이로 인해 미국 원유 생산시설의 19%가 피해를 입었다. 해일에 의한 침수 피해 등으로 30만 채의 가옥이 파손된 뉴올리언스 시에선 거의 대부분의 주민이 실업자가 됐다. 또한 산림 130만 에이커가 훼손됐는데, 이에 따른 피해 금액만 자그마치 50억 달러에 달했다.
2014년 3월 말 스위스재보험사(Swiss Reinsurance Company)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3년 전 세계에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액은 1,4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로 인해 보험사들이 입은 피해액은 450억 달러다. 이 중 미국에서 발생한 피해액은 전체의 20%가 넘는 320억 달러이고, 보험사 손실액은 19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정부는 자연재해 예방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막대한 금액을 투입하고 있다. 2013년 4월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2011~2013년 미국 연방정부는 대략 1,360억 달러의 재난 예산을 사용했다. 여기에 50개 주에서 별도로 집행한 비용까지 합치면 집행액은 이보다 훨씬 더 증가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 FEMA)이 지출한 금액만도 500억 달러가 넘는다.
자연재해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파괴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재해로 인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와 제품들이 생겨나고 있다. 과거에도 행해지던 대비책뿐만 아니라 최첨단 기술까지 가미되는 추세다.
미국 중부 지역에서는 토네이도를 피할 수 있는 대피시설 비즈니스가 각광받고 있다. 토네이도는 최대 풍속이 시속 200마일(약 320km)을 넘기도 하는데, 최근 수년간 계속된 토네이도 피해로 미국 중부 지역에서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대피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대피소의 형태도 기존 주택의 지하실 구조, 간이 화장실 같은 별도의 구조물까지 다양하다. 이런 대피소의 가격은 기본적으로 수천 달러에서 많게는 수만 달러에 이른다. 고가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토네이도가 많이 발생하면서 대피 시설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자연재해가 닥치면 대부분의 생활 인프라가 파괴되어 먹고 마시는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가 힘들어진다. 이 중에서도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식수가 가장 큰 문제다. 실제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쳤을 때 뉴올리언스 지역에서는 1달러짜리 생수 한 병이 수십 달러에 팔려서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식수 문제를 해결해주는 ‘마실 수 있는 책.’ <자료원: 페이지 드링크 페이스북>
이러한 점에 착안해 미국의 비영리기관 페이지 드링킹 페이퍼(Page Drinking Paper)는 ‘마실 수 있는 책(Drinkable Book)’을 개발했다. 당초 이 책은 아프리카처럼 식수를 구하기 힘든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책 종이로 물을 정수해 식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책을 제작하는 비용은 몇 달러 수준으로, 필터로 쓸 수 있는 페이지당 10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 장으로 짧게는 수일, 길게는 한 달까지 정수 필터로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기능은 뛰어나다. 책 한 권으로 최대 1년간 마실 수 있는 물을 정수할 수 있는 셈이다.
아이오세이프(IoSafe)는 2005년부터 허리케인, 홍수, 산불 등 재난으로부터 컴퓨터 파일, 자료 등을 보관하기 위한 외장하드 드라이버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예기치 못한 각종 자연재해로부터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한 개념의 외장하드 제품이다. 극한의 환경에서 각종 파일을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수심 3m, 1,500도 고온에서도 3일가량 저장된 컴퓨터 파일들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데, 가격은 900달러 수준으로 클라우딩 기반 서비스보다 저렴하다.
이미지 목록 아이오세이프의 파일 저장용 외장하드. <자료원: iosafe.com> | 2012년 절수형 제품 디자인. <자료원: en.red-dot.org> |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같은 지역에서는 절수형 제품이 주목받고 있다. 물 사용량을 절반 이상 줄여주는 수도꼭지와 샤워헤드 등이 인기다. 특히 최근에는 수도꼭지 등에 사용한 물의 양을 표시해주는 기능까지 추가됐다.
이 외에도 건물, 주택 등의 침수 예방을 위한 차단 패널도 인기다. 오래전부터 사용돼온 모래주머니가 아니라 짧은 시간에 시공 가능한 이 패널은 최근 각종 홍수 위기에서 그 효과가 검증되면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해서 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최신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2004년 설립된 일본 사이버다인(Cyberdyne)에서 출시한 HAL 로봇은 영화 <아이언 맨>에 나온 슈트 개념과 비슷하다. 이 로봇 슈트는 사람이 힘을 쓰기 위해서 뇌신경에서 근육으로 보내는 신호를 포착해 움직이는데, 사람의 힘을 10배 가까이 증가시킬 수 있다. 슈트의 무게는 20kg이 넘고, 배터리로 작동하며 3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주로 재해 현장에서 다친 사람을 구조하거나 탈출구를 확보하는 데 사용된다.
사이버다인 로봇 슈트의 시범 장면. <자료원: www.cyberdyne.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