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워터 자격증을 따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오픈워터 자격증만으로는 펀 다이빙을 즐기기엔 제약이 많다는걸 알았다.
친구에게 내 생각을 말하니, 역시 은채 생각도 같은 모양이다. 우린 역시 친구다.
우리는 5일 후, 어드벤스드 오픈워터 과정으로 들어갔다.
어드벤스드 오픈워터 과정은 진정으로 즐기며 다이빙을 할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되어있다.
단순한 스킬을 배우는 것이 아닌, 테마에 따른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젤 처음으로 수중사진을 택했다. 크로커 다일에서 하게 되었다.
방카를 타고 포인트 지점으로 갔는데 파도가 심상치 않았다. 꼭 바이킹을 탄 기분이었다.
입수시에도 큰 파도 때문에 물을 먹지 않으려고 파도를 등지고 있었다.
드디어 로프를 타고 내려갔다. 귀가 너무 아팠다. 이퀄라이징이 아애 안된 것 같다.
은채한테 떨어진 감기가 나에게 온거같다. 내려가긴 했으나, 너울이 굉장히 심하고 시야가 최악이었다. 모래와 섞여 부유물질들이 눈앞에서 둥둥 떠다닌다. 강사님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했다.
수중사진 촬영은커녕 앞으로 전진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20분만에 포기하고 올라왔다. 올라오니 방카가 없다. 기막히다!
우리말고 펀다이버가 있었는데 우리를 떨거놓고 거기로 간 모양이다. 파도가 너무 세게 쳐서 정신을 못차리겠다. 다른 방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는데 그 배의 다이버들이 올라오고, 보트맨은 우리에게 웃음을 흘리며 야속하게도 사라져간다.
서로에게 몸을 의지하며 길다고 생각한 시간을 기다리니 우리 방카가 왔다. 날씨가 안좋아서 그런지, 아님 몸이 안좋아서 그런지 으슬으슬하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알았다. 쌍코피가 터졌었다는걸... ...
결국, 난 앓아누웠다. 거의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토록 매일 즐기던 산 미구엘도 이젠 안땡긴다. 비두 계속 오고 거의 방안에 콕 처박혀 있었다.
방 안에서 은채가 가져온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냉정과 열정사이`인데 꽤 재미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반나절을 이태리 속을 헤메었다.
은채는 감기가 완쾌되었는지 내가 쉬고 있을 동안 펀다이빙을 했다. 기운이 넘치나보다.
이상하다. 여기가 집같다...
낮잠을 자다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난 내 방에 있었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고 있었는데 꿈을 꾸면서도 계속 `어~ 난 보라카이에 있는데...`하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꿈 속에서의 내 방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여기 온지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처음엔 날짜를 세었는데, 이젠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모르겠다. 여기선 그런건 아무 의미도 없다.
난 몸 여기저기에 2주간 지속되는 타투를 하고, 피부는 어느새 구리빛을 넘어 자빛에 가깝다. 여기 계신 분들은 필리핀 사람이 다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의 하얀 피부는 튄다. 역시 보라카이와는 자빛나는 검은색 피부가 어울린다. 자연과 잘 어울리게끔 한 신의 섭리에 감탄한다.
간간히 라면을 끓여먹어서인지 한국 음식은 별로 생각 안난다. 다만 몽골리안 바베큐가 싫을 뿐이다. 타이 음식점인 `솔루`에서 거한 식사도 했다. 난 너무 맛있게 먹어서 왠만해선 팁에 야박한 내가 넉넉한 팁을 놓고 나왔다. 은채가 `니가 왠일이냐`며 놀란다.
은채가 체했다. 솔루에서 먹고 남은 볶음밥을 궁상을 떨며 집으로 가져와서, 저녁으로 라면과 함께 먹었는데 그게 안좋았던 모양이다.
계속 물만 나온단다. 내가 보기엔 그새 상할리는 없고 물갈이를 하나보다.
먹고싶은 음식이 생각났다. 희안하게도 스테이크다. 경비가 넉넉하지 않은 이유로 며칠동안
고민하다 큰 맘 먹고 보라카이에서 젤로 스테이크를 맛있게 한다는 `스테이크 하우스`로 갔다. 은채는 생각없다고 스테이크 값은 내 돈으로 내란다. 진짜 치사하다.
그토록 기대했던 스테이크는 한 마디로 최악이었다.
내 평생의 최악의 스테이크가 될 것이다.
필리핀 소는 질기길래 돈을 3분의 1이나 더 내고 호주산 수입을 시켰건만, 그 누린내란... ... 앞으로 스테이크 먹을때 그 생각하면 아마 먹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난 아직까지 그 후로 스테이크에 손 대지 않았다.
도저히 못먹겠어서 레스토랑에서 키우는 개가 2층으로 올라오길래 개와 나눠먹었다. 개가 어슬렁거리자 종업원이 개를 쫒아버리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간 개는 내가 준 스테이크 맛을 못잊는지 슬픈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나는 이왕 인심쓰는김에 확 써버릴려구, 아니 스테이크를 내 눈앞에서 처치하고 싶어서 1층으로 뼈까지 통째로 날려버렸다.
은채는 개 목에 걸리면 어떻하냐고 걱정한다. 별게 다 걱정이다. 저 개도 바보는 아닌데... 그나저나 여기 종업원들이 자기네 스테이크가 무지 맛있어서 내가 뼈까지 먹었다고 생각하는건 아닐지... ...
3일을 쉰 후, 다시 교육에 들어갔다. 박차를 가하기 위해 오늘은 두 깡 뛰기로 했다.
첫 다이빙은 난파선 다이빙이다. 포인트는 카미아 Ⅱ!
지금까지의 다이빙 중 최대 수심이다. 32.7미터...
하지만 이퀄라이징이 잘 되어서 순조롭게 내려갔다. 내려가다 보니 난파선이 보인다.
생각보단 작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보다.
배는 녹이 슬어 회색에 주황빛이 어우러졌고 퍼르스름한 이끼가 해초와 더불어 흐느적거린다. 수심이 깊어지니 대형 어류도 눈에 뛴다. 신기할 따름이다.
수심이 깊은만큼, 혹시 질소마취가 온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계산 문제를 풀었다. 물 속에서 산수 문제를 풀려니 느낌이 이상하고 헷갈린다.
틀린 것 같다. 에라~ 모르겠다..
갑자기 손등이 따끔거린다. 물 속에선 신체가 조금만 이상해도 무섭다.
내가 겁이 많은건지... 바늘로 쑤시는 듯한 통증은 잠시 후 무디어졌다.
안전정지할 때, 그 이유를 알았다. 해파리란걸... 무수한 해파리들이 나에게로 쏟아져온다.
피할 수가 없다. 강사님은 웃으며 다이빙용 나이프로 해파리들을 갈기갈기 찢고있다.
그래도 소용없다. 안전정지고 뭐고 물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까의 그 계산 문제는 다이빙하기 전에 푼 문제랑 같은 문제인데 순서만 바꿔놓은 거란다. 허탈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필수과정인 나침반을 연습했다. 첨엔 머리에 잘 들어왔는데 자꾸 하다보니 머리가 지끈거리며 어지럽다. 오늘은 해가 쨍쨍 난다.
나침반을 손목에 차고 뚫어져라 쳐다보며 걸음을 옮기는데 머리 위에선 태양이 이글거린다. 어지로움을 삭히고 로프 가든으로 갔다. 로프 가든은 바닥에 로프가 사각형을 그리고 있다. 로프 가든은 휑~했다. 시야도 그리 좋질 못했다. 강사님이 시키는대로 그럭저럭 따라했다. 물고기가 많았는데 한 마리가 자꾸 내 팔에 들러붙는다. 팔을 휘휘 내져었다.
도망가지도 않는다. 재미있나보다. 짜증나서 잡을려는 시늉을 했더니 손가락을 뻑!하고 물고 도망간다. 열대어들은 이빨이 있어서 아프다. 너무 얄미워서 잡아서 회쳐먹고 싶다.
50분동안 나의 킥 사이클도 재보고, 나침반과 씨름하고 올라왔다.
나름대로 열심히 보낸 하루였다.
또 게으름이 발동했다.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학생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또 이틀을 쉰 후에 자연주의 과정을 했다.
이번엔 널널하게 바다 생물을 관찰하며 저번에 제대로 못했던 수중사진을 병행했다.
신기한 생물이 있으면 사진을 찍었다. 누디 브랜치와 산호에 기생하는 웜, 그리고 라이언 피쉬도 찍었다.
나중에 필름을 인화하고 나니, 초점 맞은 것이 몇 장 안되었다. 생각보다 어렵군...!
오후에는 코랄 가든에서 부력 정밀 조절을 했다.
사실, 조류 다이빙을 하고 싶었으나 물때가 아니어서 다음을 기약했다. 하지만 부력 정밀 조절은 정말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젠 완벽하게 어떤 상황에서든 당황하지 않고 부력조절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드벤스드 오픈워터 과정을 6일만에 마쳤다.
해파리에게 쏘인 손등은 퉁퉁 부르터서 보기에도 징그럽게 뻘겋다. 해파리가 독한 놈인지 아무리 깔라만씨 즙을 바르고 식초를 바르고해도 가라앉질 않는다. 그러나 나에겐 어드벤스드 오픈워터 다이버가 된 훈장이다.
자~! 이제 우리에겐 `대망의 야팍`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