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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종
이사야 49:1-7
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하나님의 종의 노래(2)] 예언자가 바벨론에서 시온에 있는 동포들에게 전하였다. `먼 해변과 섬들의 주민들에 이르기까지 온 세상의 만민들아, 이 말을 똑똑히 들어라! 내 어머니의 몸 속에 있을 때에 이미 여호와께서 나를 주님의 종으로 선택하여 예언자의 직책을 맡겨 주셨다.)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주께서 내 머리 위로 손을 펴서 항상 나를 보호해 주신다. 그리고 항상 필요할 때마다 주께서 내 입에 칼처럼 날카로운 말씀을 넣어 주시고 또 나를 먼 곳의 표적에까지 명중시키는 화살로 만들어 주의 화살통에 숨겨 놓으셨다.)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주께서 나를 예언자로 세우시면서 `네가 나의 종이다! 내 일을 네게 맡겼으니, 내가 네게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종이 된 백성 이스라엘이 결국 세계 만방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그런데도 나는 전에 이런 탄식을 하였다. `내가 헛수고만 하였다. 내가 있는 힘을 다 쏟았으나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주께서 내 억울한 사정을 풀어 주셨고, 나의 수고에 대하여 갚아 주셨다,)
5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이미 나를 모태에서부터 선택하여 종으로 삼으시고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서 주께로 데려오게 하시고 나를 존귀하게 높여 주시며 권능을 주신 여호와께서 이제는 나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내가 네게 맡겨 준 일은 이스라엘 지파들을 다시 회복시키고 야곱의 후손들 가운데서 살아남은 이들을 모두 고향 땅으로 데려오는 것만이 아니다. 나는 너를 세계 만민의 빛으로 세워서 온 세상의 어둠과 혼란을 없애고 땅끝까지 이르는 세계 만민이 너를 통하여 나의 구원과 해방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하겠다.')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해방의 약속] 지금 바벨론에서 폭군들을 섬기며 모든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구세주이신 거룩한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해방될 때에 세상의 왕들이 모두 바라보고 네 앞에서 일어설 것이다. 세상의 지배자들이 일어나 네게 경배할 것이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으로서 언제나 약속을 지켜 주시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본문은 메시야 자신이 부른 노래로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로서의 사명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1-3) 태와 복중이라는 말은 선택의 주도권이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소명을 받은 이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셨다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이와 유사한 고백이 많이 나옵니다. 바울 사도는 “나를 모태로부터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불러주신”(갈 1:15)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선택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고유한 권한입니다. 이사야는 지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선택이, 즉 그의 구원하심이 이처럼 하나님의 고유한 행위라는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4)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은 깊은 절망감을 맛보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듣기 싫은 말에는 귀를 닫습니다. 이것은 모든 선지자들의 공통적인 경험입니다. 자신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그저 공중에서 흩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깊은 상실감을 느낍니다. 주님은 “너는 내 종이다 네가 내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49:3) 말씀하셨지만, 영광 대신 찾아오는 것은 씁쓸한 자괴감뿐입니다. 선지자는 어쩌면 패배 혹은 실패를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전해진 말씀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하여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 스스로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패배자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패배하지 않으십니다.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5-7) 믿음 안에서 선지자는 자기 연민에서 빠져나와 자기 삶을 직시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에 계시다는 확신이 그를 당당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패배자로 여겼던 하나님의 종들을 새로운 소명의 자리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6) 종이 유능해서가 아니라,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죄를 진심으로 아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들을 통해 땅 끝까지 당신의 구원이 미치게 하려 하십니다.
적용: 우리는 땅 끝까지 세상 끝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사명과 이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고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 중에 인생에 있어 최대의 날은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라 하셨습니다. 사명은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실 때 무슨 목적으로 보내셨는가?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한문으로 사명(使命)은 심부름 사(使)이며 목숨 명(命)자입니다. 사람은 의미가 있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 사 명 >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허락하신 이 귀중한 주일을 잊지 않고 나오셔서 예배하는 모든 분들에게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감동과 은혜가 가득한 시간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49장 1-7절의 말씀 제일 마지막 문장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새끼’에서 오리알 중에 제일 늦게 부화한 새끼는 오리가 아니라 백조 새끼입니다. 그런데 오리들은 자신들과 생김새가 다른 그 백조새끼를 미운 오리새끼 취급하며 구박합니다. 그 백조새끼는 자신이 절말 미운 오리새끼라고 생각합니다. 어디가도 환영을 받지 못한 채 따돌림과 차별을 당합니다. 그런데 어느 봄날, 자신의 몸에 있는 날개에 힘이 생기기 시작하고, 힘차게 하늘을 날아오릅니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아름다운 백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 백조에게 문제는 자신을 백조가 아니라 미운 오리새끼로 알고 있던 자신의 잘못된 생각, 그 편견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아름다운 백조로 자랐다고 해도 미운 오리새끼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자신을 아름다운 한 마리의 백조로 온전히 인식하기까지 많은 아픔의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편견을 극복한 후에 비로소 백조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의 본래의 모습과 다른, 편견에 사로잡힌 채, 움츠리고 있거나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깊은 편견에 사로잡혀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작은 자로 보는 이스라엘 백성의 편견을 깨뜨리고, 본래의 자아를 찾아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음성입니다.
역사적 배경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바벨론 포로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7절의 내용을 보시면 그 속에 그러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편견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멸시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라는 표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본래의 모습, 참자아가 어떠한 모습인지를 말해 주십니다.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3절)’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로운자(5절)’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6절)’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세상과 환경이 던져주는 잘못된 자아, 편견을 깨뜨리고 하나님이 보시며 생각하는 우리의 참 자아를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인 나의 원래의 모습 나의 참 자아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지금 내 모습 말고 하나님이 이 땅에 내 생명을 주셨을 처음의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릴 때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불편하게 사용하는 장로님 한분이 계십니다. 그는 판검사로 법조계에서 일하신 분인데, 자신은 대학 다닐 때 까지 진정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많이 보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대학시절 자신의 룸메이트가 늘 기쁨으로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게시기 때문에 늘 기쁘고, 감사하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자신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는 고백을 들은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그분을 마음에 모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성경의 창조 사건을 보면, 하나님은 첫날 빛을 만드시고 빛을 낮으로, 어둠을 밤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십니다. 모든 창조마다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십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보시기에 좋으며,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하시는 것은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졌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보시는 것처럼, 우리의 본 자아는 보기에 좋았으며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인이 된 천상병 시인의 ‘귀천’ 이란 시귀를 여러분 다 잘 아실 것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환경과 조건이 당신을 향해서 여러분을 향해서 ‘당신은 불행한 사람’ 이라고 말합니까? 그것은 편견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믿으십시오. 그리고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것들입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용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기본적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갓난아기 때 부모님이 예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인정하셨던, 그래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나는 축복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복의 사람으로 그리고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하는 자가 되며,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복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힘 있게 갈라디아서 3장 9절에서 말합니다.
갈 3:9 /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은 모두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롬 8:28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성경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과 제자들은 길에서 구걸하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저 사람이 소경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묻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대답하기를, ‘누구의 죄도 아니며, 그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당신의 환경과 조건이 당신을 향해서 ‘실패자’ ‘불행한 사람’ ‘운이 없는사람’ 이라고 말하고 있다면, 단호하게 말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이다’라고 말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고백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려움이나 재난을 당할 때, 또 박해받고 죽임을 당한다고 할 때, 과연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더 이상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겠습니까? 굶주리고 헐벗고 위험을 당하고 죽음에 직면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겠습니까?’(롬 8: 35) 그렇습니다. 누구도, 아무것도 이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방해할 수 없는 복된 사람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나는 사명의 사람입니다.
뭔가 할 일이 주어진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고후 5:18 / 이 새로운 일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 미국 남북전쟁 때, 치열했던 ‘프레드릭스버그 대전투’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전투를 한바탕 치르고 난 후, 수많은 부상자를 중간에 남겨 놓은 채 쌍방은 후퇴하여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북군의 한 병사가 자기 진지를 떠나 이쪽으로 오는 모습을 보고 남군 장교는 사격을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그 북군 병사는 사상자가 쓰러져 있는 그 전장을 이리저리 다니며 무엇인가를 찾는 듯 하였습니다. 바로 그 병사는 물통을 들고 이리저리 다니며 부상자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용감한 북군병사가 부상자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광경을 보고 남군의 사격은 중지되었습니다. 이 일로 쌍방은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하루의 휴전을 하고 부상자들을 돌보았습니다. 남군 장교가 이 용감한 북군 병사에게 ‘네 이름이라도 알자’(What's your name?)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북군 병사는 머뭇거리듯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 북군 병사는 머뭇거리듯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My name is ..... Christian'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내가 받은 그 사랑을 전하게 하는 새 일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바로 당신에게도 주신 일이 있다는 것, ‘나는 사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해야 할 일을 주셨고, 나는 그 일을 반드시 해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이 오늘도 여러분을 살맛나게 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인정하시고 나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을 생각하면서 찬양 하나가 생각이 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양이 있는데 그게 국민 찬양이 되었습니다. 그 후속곡으로 나온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라는 찬양입니다.
♬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향하고 있었다는걸
고마워요 그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께 주께서 허락하신 당신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욱 섬기며 이제 나도 세상에 전하리라
당신은 사랑 받기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결 론
사랑하는 여러분. 2015년을 시작하면서 어떤 희망을 갖고 시작하셨습니까? 혹시 내게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이제 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참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나는 참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나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본래 참 아름답게 창조된 귀하고 행복한 사람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나는 축복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듯 내게도 복을 주시고, 복된 사람이 되리라 약속 받은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 이런 우리에게 해야 할 새 일감을 주셨습니다. 나는 사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기대하십니다. 당신이 이 일을 충분히 잘 해낼 것을 기대하십니다. 명심하십시오. 당신이 당신을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이 당신을 향해서 규정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당신의 편견을 넘어 여러분의 참 자아를 회복하십시오.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