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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1-6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러분이 성경말씀 중 가장 좋아하는 말씀은 어떤 말씀인지요? 사람이 가장 자주 생각하고 붙드는 것이 그 사람의 삶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가장 많이 묵상하고 생각하는 말씀이 곧 자신의 신앙의 삶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계시록 3장 15절의 말씀을 좋아했습니다. 네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고등학교 2학년때 강하게 제 마음에 도전을 준 말씀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지만 당시에 한국 교회의 암담한 미래를 생각하면서 장차 제 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고민하던 시기에 주셨던 말씀입니다. 미국에 와서 목회를 하면서는 데살로니가 전서 5:16-18절의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한번 은혜로 주신 말씀이 평생 가기도 하지만 시기와 형편에 따라 은혜를 주시는 말씀과 우리가 소망으로 붙드는 말씀은 다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요즘 자주 묵상하며 기도할 때 마다 생각나는 말씀은 어떤 말씀이신지요?
세계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읽고 묵상한 성경 구절은 어떤 말씀일까 하여 미국의 기독교매체 크리스쳔 투데이가 미국 최대 인터넷 성경 사이트인 ‘바이블게이트웨이’에서 2013년 가장 많이 검색된 구절들을 발표 했습니다. 어느 말씀이 1위를 차지했을까요? 오늘의 본문 시편 23편일까요? 그것은 요한복음 3장 16절 이었습니다. 이는 242개국에서 유입된 15억회 이상의 검색 결과를 분석한 것입니다. 몰론 인터넷을 사용할수 있는 사람들로 제한 된 것이기에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많이 검색된 성경 구절이 렘29장11 절(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미래와 희망을 ), 그 다음이 빌4장13절, 그 다음이 롬8장28절, 그리고 다음으로는 시편 23편 1∼6절이었답니다.
스마트폰용 성경 어플리케이션으로 유명한 <유버전>에서 2014년 가장 많은 유저가 즐겨 찾은 성경 구절 탑 10을 발표했습니다. 1 위는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이 선정됐는데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는 말씀입니다.
한편, <유버전>은 국가별 가장 선호하는 말씀 구절도 공개했습니다. 1) 북미에선 미국이 빌 4장 8절을, 캐나다는 렘 29장 11절을 선호했고, 중남미에선 멕시코가 사 41장 10절, 브라질이 빌4장 8절을 아프리카에선 남아공이 렘 29장 11절, 나이지리아가 빌 4장 8절을 선호했으며, 유럽에선 영국이 렘 29장 11절, 호주 역시 렘 29장 11절을 많이 읽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만이 <유버전> 집계에 랭크됐는데요 한국인들이 앱을 통해 가장 많이 읽은 구절은 렘 33장 2 - 3절로, 각각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말씀을 담고 있었습니다. 한편 성경중에서 어느 책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에베소서, 야고보서, 디도서 등이 상위에 올랐고, 구약성경에서 가장 인기있는 책도 말라기(19위)였답니다. 왜 그런가 헸더니 성경 책도 짧을 수록 인기가 높은 경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말씀은 항상 선택하는 기준이 우리라는 것입니다. 형편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사모하는 말씀이 달라짐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것은 어쩌면 연약함을 가진 우리들의 당연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항상 동일하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달라지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게 감동되고 내가 사모하는 말씀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웃 교회에서 시무하는 후배 전도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저희 교회에 와서 설교 한 번 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이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아, 좋지요.”
얼마 후 이웃 교회의 전도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주보에 실을 예배 순서를 짜고 있는데, 설교할 성경 본문과 제목을 알려주시죠.” 그래서 목사님이 본문을 불러주었습니다. “본문은 시편 23편 1절부터 6절까지입니다." 전도사님이 그 말을 받아 되뇌이며 또 물었습니다. “그럼 제목은요?” 이에 목사님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고 대답했습니다. 전도사님이 이번에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고 받아 적으면서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요?” 제목이 덜 끝난것 같아 물었는데 이 때 목사님이 핀잔을 하는투로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전도사님은 “네 알겠습니다. 목사님, 그럼 주일에 뵙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목사님은 시편 23편을 본문으로 하여 열심히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의 목자가 되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얻는 유익이 얼마나 많은 지를 죽 나열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푸른 풀밭으로 이끌어 주시면 거기에서 꼴을 배불리 먹고, 맑은 시냇물 가에서 시원한 물을 마음껏 마시게 될 것을 힘주어 설교할 생각이었습니다. 약속한 날이 되어 준비한 설교 원고를 소중히 챙겨 이웃 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반갑게 맞이하는 전도사님과 교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되어 건네주는 주보를 받아 들고는 강단으로 올라갔습니다. 잠시 기도를 하고 자리에 앉아 주보를 펼쳤습니다.
그러다가 설교할 예배의 순서를 살펴보던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날의 성경 본문인 시편23:1-6 다음에 설교 제목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기가 막혔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제목을 불러주었는데 핀잔처럼 한 말이 제목으로 따라붙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것도 모른 전도사님은 목사님의 심정을 모르고서 예배를 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찬송을 하면서 고민을 하고, 기도를 하면서도 고민을 했습니다. ‘제목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설교를 해야 할 것인가?’ 고민 끝에 목사님은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 그냥 제목대로 설교를 하자!” 그리고서 준비한 설교의 원고는 덮고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설교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시편 23편에 나오는 양은 그 풍성한 풀밭에서 풀도 뜯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누워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바로 목자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목자를 신뢰하는 마음이 그와 같은 평안과 만족감을 심어준 것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나에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고 나는 그 하나님의 양이 되어 따라가니 참으로 만족하고 평안할수 밖에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하고 외쳤습니다. 이 때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아멘, 아멘” 하며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제 설교도 다 마친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면 되었지 뭐가 더 필요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의 목자라고 믿으시는지요? 생각으로 믿는 것이 아니고 실재로 그렇게 믿고 사시는지요? 우리는 시편 23편은 수없이 읽고 묵상하고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그것을 느끼고 고백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우리의 삶에 부족함이 없는 삶이 있으셨나요? 그런데 오히려 그 말씀을 알고 믿고 있는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늘 부족함 뿐입니다. 한국 축구 대표 감독 히딩크가 사용해서 유명해진 말이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우리는 언제나 배가 고픕니다. 기도를 하면 왜 그리 구할 것이 많은지요. 왜 그렇습니까? 다윗처럼 하나님만 나의 목자라고 믿고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시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뒷바라지 해야 하며 편안한 삶을 위해 땀을 흘려야 합니다.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수고도 해야 합니다. 목자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면 풀은 양들이 뜯어 먹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먹을 것이 없어서 근심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일을 위한 염려로 부족함을 느낍니다. 항상 내일을 위해 살다보니 우리 삶은 오늘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그러므로 내일일은 염려하지 마라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마 6:34)
제가 알기로는 양들은 절대 누워서 잠을 자지 않는 짐승이랍니다. 그런데 필립 켈러목사는 "양과 목자" 라는 책에서 양들은 생리상 다음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주지 않는 한 절대로 눕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첫째, 두려운 것이 없어야 하고 둘째, 자기들 안에 싸움이 없어야 하고 셋째, 파리나 기생충 등으로 괴롭히는 것이 없어야 하고 넷째, 배부르게 꼴을 먹어야 비로서 눕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이 풀밭에 누웠다는 것은 그 양이 얼마나 평안하며 만족한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묘사입니다. 그러나 ‘푸른 풀밭과 잔잔한 시냇물 때문에 양이 만족하고 평안해 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양이 누리는 평안과 만족은 근본적으로 목자가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목자가 없으면 푸른 풀밭도, 잔잔한 시내도 양에게는 공포의 자리일 뿐입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를 지킬 수 없는 짐승들은 결코 누워서 잠을 자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도망갈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웅크리고 잠을 잔다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짐승인데 집에서 기르는 짐승들은 배를 드러내놓고 자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를 지켜주는 주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불안, 불만족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분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양들이 누리고 있는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이 "그것이면 되었지 뭐가 더 필요해" 하는 평안이 없다면 우리는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인생 문제의 답을 얻은 것 같아서 흥분이 되고 감동이 되지 않고 진부한 말처럼 여겨지거나 과대 약광고 처럼 여겨진다면 우리는 아직 초장에 누워 잘만한 믿음의 양들이 되지 않은것입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은퇴를 앞두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복음이 교회 밖에만 필요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은 교회 안에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 불신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불신자가 아니라 믿기는 믿는데 먼저 믿을 것을 보여주라는 믿음이 강한 것입니다. “푸른 초장이요? 잔잔한 물가요? 정말이예요? 그러면 한번 먼저 보여주세요, 그러면 내가 따라가겠습니다.” 보여주면 다 따라가겠지요. 믿음이
없어도 다 따라갈 것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우리 인생의 궁극적 문제의 답을 듣고도 선뜻 붙잡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에게 평안을 주겠다고 속삭이는 또 다른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세상이 주는 평안”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목자가 되어서 사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주어지는 만족과 기쁨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조건이 다 충족되어서 느끼는 평안이 아니라 내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에 얻는 평안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심을 믿기 때문에 가지는 평안입니다. (2)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양들이 목자를 따라가다 보면 골짜기도 지나야 하고 높은 산도 지나야 합니다. 음침한 골짜기 가기 싫은 마음이야 간절하겠지만 나의 영혼은 소생 시키시기 위해 목자가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목자는 그 모든 것을 알고 보고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곳을 지나야 푸른 초장이 있기에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가르침과 지시 사항을 잘 들어야 합니다. 맘에 안들고 귀찮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내 생각에 더 옳아보이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 말을 잘 듣고 공부 잘 못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공부에 달란트가 없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말씀 잘 안듣고 공부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안듣는 이유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다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듯한 위험한 곳을 지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주님께서 그곳으로 우리를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주님께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순종할테니 그것만 해결해 주세요. 그런데 그것 해결해주고 나면 안갈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곳에 보내시고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상을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 보내시는 것입니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남치나이다. 원수 다 물리쳐 놓으면 누구나 가고, 보람도 감격도 다음번에 더 힘든 곳으로 가려는 믿음도 용기도 얻지 못하는 것 입니다. 광야를 지나봐야 하늘의 만나를 먹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비로서 광야에서 주리고 목마름을 지나고 나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선교지가 백두산이 있는 근처에 있어서 매년 4-5차례 백두산을 올랐습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차를 타고 올라가는 코스를 택하지만 비용도 고려해야 하지만 어지간하면 걸어서 올라가는 코스를 택합니다. 걸어서 올라가는 시간은 한시간 정도만 걸어가면 되는 코스입니다. 그런데 2000미터가 넘는 곳에서 걸어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매번 올라갈때마다 그냥 현지 사역자에게 보내버릴 껄 할 정도로 숨이 컥컥 막힙니다. 그런데 올라가보면 언제나 안왔으면 후회했겠네 합니다. 올라갈때마다 도중에서 포기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꼭 나옵니다. 관절이 아프기도 하고 혈압이 상승해 어지럽다고도 하고... 제가 올라가지 않고 현지 사역자에게 맡기면 꼭 그런 사람들은 올라가보지 못하고 내려와 버립니다. 저는 저를 믿고 온 사람들이기에 그 광경을 꼭 보여주어야 하기에 마지막 까지 기다리고 밀어주고 해서 올라가게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울면서도 올라갑니다. 그리고 앞에 펼쳐진 백두산 천지를 보고 이제는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건너편 북한 땅을 보고 속으로 목놓아 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안내하는 사람이 가자하면 그런 결과를 경험합니다.
여행을 할 때도 가이드의 말을 잘 들으면 우리는 가이드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모두 볼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여행을 많이 했어도 그곳의 가이드의 말을 따라야 합니다. 단체 여행객들 중에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교장)선생님 그룹과 목회자 그룹이라 합니다. 항상 가르치려다 보니 그곳에서도 직업병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행을 가도 그러할진데 우리 인생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겠다는데 그것을 거부하면 그야말로 고생에 고생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도 고생을 해야 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인생은 고생입니다. 그러나 고생을 하더라도 헛된 고생은 피해야 합니다. 아무리 잘나고 아는 것이 많다하지만 우리 하나님보다 많이 알고 있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5만번 기도의 응답을 받았던 죠지 뮬러 목사님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고백하고 산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정말 하나님 외에 믿는 것은 다 끊어본 것입니다. 우리는 애 몇 명 기르는 것도 힘든데 죠지 밀러 목사님이 2천 명 가까운 고아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돈이 들겠습니까? 그러나 기도만 하였지 어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독일에 있는 어느 선교 단체에서 "우리가 당신을 돕고 싶은데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는 제안이 왔습니다. 그 때, 뮬러 목사님은 "그것을 왜 내게 묻느냐 하나님께 물으셔야지요. 나는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만 구했으니, 당신들도 하나님께 기도해보고 얼마를 도우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걸 도우면 됩니다." 라고 대답하였답니다. 정말 대단한 믿음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믿음입니다.
죠지 뮬러 목사님은 철저히‘나는 사람의 도움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만 의지하리라.’그렇게 결심을 하고 사역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왜 그런 결심을 했을까? 죠지 밀러 목사님이 짧게 목회를 해봤다고 합니다. 목회하면서 깨달은 것이 교인들이 실제로 하나님이 목자라고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정말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안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돈 버는 문제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고백할수 있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렇게 고백하였던 다윗도 사울의 미움을 받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까? 미친척도 해야 했었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뻔하기도 했으며 사랑하는 아들에게 쫒겨나 망명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하며 산다면 어떤 처지와 어떤 형편에도 소망을 가지게 될것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는 것은 다 좋은데 사실 어려운 것이 바로 내가 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목자가 되셔도 내가 양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 가보지 못합니다. 내가 아는 초장 물가에서 그것이 다 인줄 알고 사는 인생이 될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목자가 되지 못하시는 것은 내가 양이 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 내가 사람이지만 내 힘으로 내 생각으로 얼마든지 살수 있는 실력도 능력도 방법도 내겐 있지만 하나님이 아니다 하시면 그냥 내려놓는 한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큰것에서 포기가 아니라 작은 부분에서부터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곳을 지나봐야 내 믿음의 지경이 넓혀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