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은 한쪽을 지극히 함이니, 한쪽으로 지극히 하면
성실할 수 있다. 성실하면 드러나고, 드러나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감동시키고, 감동시키면 변하고, 변하면 화(化)할 수
있으니, 오직 천하에 지극히 성실한 분이어야 화할 수 있다.〔其次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惟天下至誠
爲能化〕
‘그다음〔其次〕’ 두 글자는 배우는 자를 인도하여 천도(天道)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니,
매우 정(情)이 있다. 여기에서의 ‘곡(曲)’ 자는 일단(一端)과 같은데, 단(端) 자를 바꿔서 곡(曲)이라고 말한 것은 어떠한 큰 사물이 한쪽
구석에서부터 발현된다고 하는 말과 같은 것이다. 이 때문에 ‘곡’ 자를 일편(一偏)으로 풀이했으니, 옳다. 자애(慈愛)에 치우친 사람은
인(仁)의 한쪽이 발현되고, 수오(羞惡)에 치우친 사람은 의(義)의 한쪽이 발현되는 것과 같다. 그 한쪽을 따라 지극한 데까지 미루어 나가면,
《맹자》의 이른바
“인의(仁義)를 이루 다 쓰지 못할 것이다.”라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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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으로 지극히 함은 명(明)으로 말미암아 성실해짐의 증거이다. -
“한쪽으로 지극히 하면 성실할 수 있다.〔曲能有誠〕”라는 것은
당(堂) 아래 지나는 소를 보고 그 죽음을 가엾게 여길 때에 재물의 대소를 따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는 단지 실리(實理)이다. 만일 이로 인해 두 끝을 지극한 데까지 미루어 나가 그 저울과 자를 정밀하게 하면, 공리(功利)의 사사로움에
치우치지 않고 백성들에게 그 중(中)을 사용할 수 있다. 배움을 논한 것을 가지고 말하면, 공자가 여러 제자에게 답변할 때, 각각 그들이 잘할
수 있는 바에 따라 일러주었으니 “한쪽으로 지극히 한다.〔致曲〕”라는 의미가 아닌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