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지식을 전하려는 정성어린 마음을 가지고 어느 고급스런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소위 '투사적 동일시'(염력, 심령술)로 타인의 마음 속에 침투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게 만드는 기인!
심한 경계선성격자와 대면하는 과정에서 이따끔 겪는 그 복잡한 기운을, 품위 있을 것으로 예상한 모임에서 뜻밖에 겪게 되니 나의 정신 역시 그 인격의 조각난 파편에 전염되어 의지와 무관하게 들썩거린다.
투사적동일시란 '기'로 상대를 제압하여 잡아먹는 야수나 원시인류가 위험한 외부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작동시키던 원초적 방어기제다. 자기 정신의 일부분을 외부대상 속으로 '쏘아 집어넣음'으로써 내부긴장을 덜어내고 외부대상의 상태를 파악하며, 자신의 심리상태를 전염시켜 대상의 마음을 마치 자신의 마음처럼 지배, 조정하는 심리술이다. (소중하거나 이상적인 대상에게 자기 인격의 좋은부분을 쏘아 넣어 맡기거나, 친밀관계를 맺거나, 의사소통하는 긍정적인 투사적동일시도 있다.) 오늘날 이 심령술은 무당, 기인, 조폭, 격투사, 유흥업, 사이비 종교가, 생존경쟁이 치열한 집단원, 브로커, 경계선 인격구조를 지닌 자들이 주로 사용한다.
정신분석 임상 장면에서 원시적 정신구조 내지 병리적 인격조직의 비율이 높은 내담자는, 분석가에 대한 기대가 좌절되거나, 자신에 관한 '견디기 힘든 부정적인 진실'을 지각해야하는 순간, 그것을 견디는 대신 분열시킨다. 그리고 불안한 감정들을 담아둔 분열된 인격부분을 미립자 분말화하여 분석가를 향해 내뿜는다(비우기, 투사적동일시). "제발 이토록 힘든 나를 제대로 공감해주던가, 내 힘듬을 모조리 가져가 대신 처리해 줘...!"
그 때 분석가는 '언어와 생각활동으로 정리(의미화)'하지 못한 그 내담자의 괴기스런 지각과 불안과 병리성을 회피없이 담아주고 버텨주어야 한다. 그것이 그의 역할 중 하나이다. 그 결과 내담자의 투사물에 정신이 전염되어 교란되는 무척이나 힘든 상태에 처하게 되지만, 꿋꿋이 버티며 '그것'을 내담자 대신 소화(정신화)하여 '변형'시키려 애쓰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면 보복 없는 그 정성이 내담자에게 긍정적으로 감응되어 내담자의 무의식은 이내 분석가를 '보호'하려는 마음으로 전회하게 된다. 이런 힘든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좌절을 일으키는 부정적 현실에 대한 고통감정과 지각을 감당하지 못해 그것을 분열시키고 외부로 축출해댐으로써 내적 빈곤의 악순환을 반복하는 경계선인격 구조가 조금씩 안정되고 통합된 방향으로 발달해간다.
그러나 도움을 요청하는 정신분석 관계가 아닌 소위 사회관계에서 병리적 인격조직을 지닌 자가 시기심과 부정적인 투사적동일시를 누군가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쏘는 순간 인생 상황은 복잡해진다. 일단 타자에게 쏘면(=병 옮기기, 몹쓸 짓 저지르기, 오물 묻히기- "넌 내 '먹이'이자 배설통이야..") 돌이킬 수 없고 희생자가 생기기에, 응분의 책임을 져야하는 '윤리 차원'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타자에게 미친 악영향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거나 '도덕규범'('아버지의 이름')에 더이상 구애받지 않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정신성을 응집하고 통제하는 경계(방어장벽) 일반을 상실한 '정신증' 영역에 함입되어 붕괴된다.
'정신분석 만남'은 여러 조건들에 서로가 합의하여 이루어지는 안전하고 상호주체적이며 심층적인 관계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에선 '안전한 심층 대화'가 보장받는 환경이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자기애가 취약하여 자신이 잘난 존재라는 걸 끊임없이 확인받아야만 불편감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부정적 감정을 '겪지' 않기 위해 사회적 만남의 순간 무의식에서 '권력의 높고 낮음, 유능함과 무능함' 등의 평가에 민감해지게 된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신경을 건드리는 불편한 자극을 받으면, 내부에서 부정적 감정(시기심, 수치, 분노, 불안)과 이에 대한 원시적 방어가 곧바로 활성화된다. 즉 부정적인 감정과 지각을 내부에 담아 견뎌내고 소화해내지 못한 채 외부대상 속으로 맹렬히 쏘아 집어넣게 된다.
그 결과 방어 없이 있다가 돌연히 투사적동일시를 당하는 사람은, 원인모른 채 타인의 부정적 정신성(분열된 자아 파편, 이물질)에 점령당한다. 그 결과 일상의 정신신체적 균형이 깨지고 심한 불안과 자괴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불쾌 감정들의 일부는 당사자의 유아기 상처와 불안이 공명되어 활성화된 것이다. 그런데 상당부분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자로부터 온 이물질이 일으키는 알레르기 반응이다. 정신분석에 입문하지 않은 보통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
보통사람은 웃는 얼굴로 위장하며 자신이 감당 못한 부정적 정서와 지각을 투사적동일시로 쏘아댄 상대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그로인해 자신의 힘든 상태를 자기 탓으로 오인해 억울한 희생양이 되거나, 엉뚱한 대상을 비난해 타인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만다.
경우에 따라 부정적 투사적동일시의 후유증은 개인의 인생을 망가뜨릴 정도로 심각할 수도 있다. ("그토록 지혜롭고 덕망있던 그 분이 왜 언젠가부터 갑자기 이상해졌지? 마치 전혀 딴사람 같애..")
투사적동일시가 강한 사람이 '집단'에 끼어들어 부정적 기운과 말을 내뿜게 되면, 그 집단은 '정체불명의 기운'에 휩싸여 정체성을 잃고 혼란에 휘청이다가 원인모른 채 붕괴되곤 한다.
절대 안전을 보장받기 힘든 인간 환경! 주체적 인생길을 방해하는 어둠의 힘들! 뜻밖에 상처받음, 원인모르게 증폭되는 불안, 무기력, 위축된 자존감, 부정적인 대상 표상, 엉뚱한 화풀이, 심화되는 증상, 나쁜 대상관계의 악순환,,... 이것이 타자 관계 속 무의식적 투사적동일시들이 일으키는 예측하기 힘든 인생 드라마다.
현실에서 주어지는 이러저런 고통들을 비록 힘이 들지만 병리적 방어(분열, 투사적동일시..) 없이 '버텨내야' 비로소 자아가 발달한 건강한 인격이 형성 발달된다. 그러나
자신이 뭔가 정신이 혼미 불안하고 인간관계가 이상하게 꼬인다고 느끼는 사람은 때로 주변에 누군가가 나쁜 기운을 쏘았거나 쏘고 있지 않은 지 둘러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인생을 꼬이게 만드는 어둠의 기운에서 헤어날 수가 있다.
의식의 세계에선 이따끔 법을 위반하더라도 위장을 잘하면 처벌받지 않고 무사할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의 세계'엔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는 예외가 없다. 의식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무의식의 눈'은 도저히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암암리에 타자를 향해 부정적 투사적동일시를 쏘아 타자의 영혼을 오염시키거나 파괴한 행위를 해온 인간은, 진실을 회피하고 망각시키는 방어활동인 '분열, 부인, 투사'로 인해 편집되고 자기미화된 '가짜 세상, 가짜 인생'을 살게 된다. 또는 자신에 대해 진실로 반성을 하지 않은 채 외부대상에게 오랜세월 부정적 투사적동일시를 분출하는 경우, 뜻밖의 순간에 외부세계가 부정적 환각(기괴한 대상)으로 되돌아와 자신을 공격해대거나, 가혹한 초자아에 의해 스스로 처벌당하는 사태에 처하게 된다. '무의식의 힘'에 의해 자신이 자신을 망치거나, 자신이 헤를 끼친 대상으로부터 보복을 유발해 파괴당하는 것이다.
정신분석 관계를 제외한 모든 현실 관계에서, 자신이 감당해내야할 인생 몫을 투사적동일시로 누군가에게로 축출해 대신 떠넘긴 사람은, 그 축출한 자기의 부분을 더이상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자아가 계속 빈곤해지게 된다. 그가 자신의 내면 문제를 외면한 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경우, 그 병리성이 그/녀의 무의식이 무심코 투사되고 그것이 내사된 가족(자식, 배우자, 형제자매..)에게 전염되어 '원인모를' 병증을 앓거나 곤혹스런 사건 사고를 겪게하는 더 심각한 비극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투사적동일시가 만성화된 인격은 큰 사건을 겪어도 그것을 마음에 담아 그 원인을 반성해내지 못한 채, 못견뎌서 외부로 곧바로 축출해 버린다. 그로인해 어떤 경험에서도 배움을 얻지 못한 채, 기존의 병리적 지각과 행동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어~! 이 세상이 위험하고 엉망일 뿐이야~")
'무의식의 법칙'은 가혹할 정도로 절대성과 영속성을 지닌다. "너무 지나쳐!"
출처: 프로이드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