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늘상 긴장이 된다
아무리 쉬운 시험이라도 긴장되기는 어쩔수 없다
하물며 몇개월씩 준비해왔고 한번 실패하고 두번째 도전인 이번 기능사 시험에 대한 긴장도는 배가된다
여러군상이 모였다
평택에서 단체로 몰려온 고등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할배급 수험자까지 18명의 용사들이 전선에 섰다
어떤이는 다섯번째 시험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전기로만 밥벌어먹은지 20년 가까이 되었다고 하며 또 어떤이는 나같이 전혀 생소한 분야에 도전하는 용감무쌍한 사람도 있었다
거기에 나이 40쯤 되어보이는 아줌마가 남편과 같이 시험을 보러오기도 했다
누구나 완장만 차면 힘깨나 쓰는 권력자로 변한다
하물며 시험감독관으로 임명된 이상 마음껏 힘쓰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
시작부터가 심상찮다
수험자를 겁주는 말투부터 행동거지가 조선을 점령한 일본군 만큼이나 기세등등하다
시험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약간의 전율이 온다
그토록 침착하자고 다짐했고 시험본 경험도 있건만 시험은 시험인 모양이다
시험문제를 본순간 더욱 흥분이 되며 안정감이 흐트러진다
늘상 연습해오던 문제에서 비틀기를 해 변형된 문제가 출제되었다
분명 지난 4일간 똑 같은 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에 오늘도 같은 문제려니 했던 짐작이 보기좋게 빗나갔다
시험지를 꺼내놓고 하나하나 도면을 확인한다
아무리 비틀기를 했기로 서니 기본에 충실했던 사람이라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다만 흥분하거나 착각을 해서 실수로 이어지니 모두 낙방을 하는 것이다
타이머 접점이 3개씩 나오는 난이도 앞에 잠시 주춤했지만 그래도 연습할때의 페이스를 찾아 침착하게 도면을 완성해 나갔다
시험 시작 30분이 흘러서야 심장이 안정되고 자신감이 붙었다
이미 한차례 경험한 것도 그렇고 충분한 연습끝에 도면을 완전 이해한데다가 시험장소 위치가 한쪽 구석으로 배치받아 나름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시험을 치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험전 각종 예상도면으로 만든 제어판>
아 오늘은 합격할수 있겠구나
무언가 모를 근거없는 자신감에다 나름대로의 자만감 그리고 침착해지는 환경등이 어울려 작업속도는 나도 모르게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힘들든 배관작업이며 휴즈고리 연결등 좀 까다로운 부분의 작업이 왠지모르게 척척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이러다간 내가 수석합격하지 않을까하는 건방진 상상도 해보고 옆자리 노인네 작업속도도 슬슬 체크하는 여유를 보이며 모든 일을 쾌속정을 타고 가듯 매끄럽게 진행시켜 나갔다
시험장안에는 인력공단에서 나온 감독관과 그를 보조할 감독관 2명 그리고 고등학생 진행요원2명등 총 다섯명이 수시로 돌아다니며 수험생을 돕기도 하고 때로는 부정행위를 하지 않나 매의 눈으로 감시를 하기도 하고 여자들이나 고등학생들에게는 다소 관대한 모습으로 자기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마음껏 휘두른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어디가서 그런 힘깨나 쓰는 일을 해보겠는가
몇가지 질문을 감독관에게 던져보았다
애매하기도 한 문제이기도 하고 감독관의 의중에 따라 당락이 갈려졌다고 하도 난리들이갈래 아는 문제도 몇번씩 감독관에게 질문하는 걸 마다 하지 않았다
더 이상 탈락의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절하게 답해줄것을 기대했던 바람은 무참하게 깨어진채 "도면대로 하세요" 라는 퉁명스런 대답을 날린채 감독관은 내옆에서 떠날줄을 모른다
그도 그럴것이 마침 내자리가 감독하기는 딱 좋은 위치고 벽에 기대어 적당히 시간보내기 좋은 구석자리기 때문이었다
명당자리라고 쾌재를 불렀던 나는 그 감독관이 괜히 신경쓰이고 마치 부정행위를 감시당하는 듯한 중압감에 서서히 페이스가 흔들리는걸 느꼈다
그래도 워낙 진행속도가 빨랐고 작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충분히 했기 때문에 평소대비 한시간 정도 앞당겨 거의 마무리 작업을 끝내가고 있었다
내 옆에서 시험보는 노인네는 얼추 내정도 나이가 되어보이는 분이었는데 내가 배관작업을 거의 다 마칠때인데도 제어판도 완성못시켜 끙끙대더니 결국 중도기권하고 보따리를 싸서 나가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자재들을 챙겨나가는 여유를 보이긴 했으나 왠지 쓸쓸해 보이고 처량해 보이는 느낌은 어쩔수가 없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느낌도 별반 다르지 않을게다
시험을 마무리 하려고 막바지 스위치 작업을 할때였다
갑자기 스위치 동작이 되지 않는다
분명 시험시작전에 테스트를 몇번씩 했고 이번 시험의 함정이라고 해서 수십차례 연습을 했던 그 문제의 셀렉터스위치다
자동과 수동위치를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하고 시험 감독관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해 수십명이 고배를 마셨든 그 스위치다
<많은 사람이 연결방향을 헷갈려한 셀렉터 스위치>
아뿔싸
연결위치가 잘못 되었구나
부랴부랴 배선을 뜯어내고 다시 연결작업을 하고 테스트를 해보았다
그런데 계속 불량으로 동작이 안된다
이런 씨발
불량품을 주다니...
아니 그런데 분명 시험시작전에 불량품을 시험해서 바꿔가라고 했잖아
이제 비록 불량품이라고 판정이 나더라도 시험 시작이 4시간도 넘어가는 시간에 부품을 바꿔줄 인심좋은 감독관들이 아니다
한명이라도 떨어뜨려 감독관의 위신을 세우려고 하는 마당에 언감생심 그런 기대는 할수도 없다
당황하면 모든것이 흐트러 진다
제정신을 차리고 다시 점검의 점검을 거듭한 결과 그 제품은 불량이 아니고 나의 착각임이 밝혀졌다
다시 수정을 하고 다른 작업을 하기까지 20여분을 까먹었다
겨우 정신을 차릴무렵 또다시 악몽이 재연되었다
갑자기 손발에 마비가 왔다
쥐가나서 꼼짝을 할수 없었다
이러다가 시험이고 뭐고 비명횡사하지 않나하는 방정맞은 생각도 해보고 손발을 문질러 마사지를 하는등 또 다시 10여분을 허비한채 시험종료전 20여분을 남겨놓고 제정신을 차렸다
피치를 올린다
워낙 전반부에 빠르게 작업을 해놓은 탓에 10여분을 남기고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작업을 끝냈다
물론 삑삑이라 불리는 테스터로 수차례 도통테스트도 마친 상태였다
<시험장에서 테스터로 사용한 삑삑이>
나는 느긋하게 다시한번 내가 만든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분명 조금전까지 여러번 체크하고 확인을 하지 않았든가
그리고 수석을 할지 모른다고 거드름까지 떨며 자신감을 보이지 않았든가
비록 손발에 쥐가나고 약간의 착오는 있었지만 대세는 이미 끝났다고 여유를 부리지 않았든가
이런 젠장 ㅠㅠ
새들박는걸 두군데 빠뜨렸다
<배관 고정용으로 쓰이는 새들>
"우째 이런 실수가 있을수 있나"
손발에 다시 쥐가 난다
To be continued
첫댓글 안녕하세요?
시골농부님의 글을 우연히 접하고 오늘 가입한 새내기 입니다.
연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기능사 시험과 기능장 시험에 도전하시는 모습 보시고 인생공부도 한수 배울겸 가입했습니다. 저는 57세의 교정직공무원으로 재직중에 있으며 이번 2회때 실생활이나 학교와는 전혀 무관한 전기기능사 시험을 치룬 초보입니다. 시골농부님의 다음 후기가 궁금해집니다. 글솜씨기 너무 좋고 재미있습니다.
살벌하고 고통스런 몇시간의 시험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연출했습니다.
배고프고 , 진땀나고, 포기할까 망설이던 시간이었습니다.
전쟁터에 들어간 이상 죽을 각오해야 합니다.
평소 훈련 많이하고 재수 좋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