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초 조선에 기독교가 전해진 시절에 한 노비가 장로고 양반은 성도였는데, 그 양반이 교회에서 노비를 깎듯이 장로로 모시고 신학공부까지 도와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성경의 진리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사고의 제약까지 탈피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구나" 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 였다.
바울이 친히 편지로 협박같은?설득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갈등의 깊이가 그리 얕지는 않았나 보다. 그들이 살던 로마제국시절의 노비의 처지는 매우 열악했을 것이고, 빌레몬 또한 오네시모를 다른이들이 노비를 대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당연한 상황에서 먹튀한 오네시모 때문에 빌레몬 역시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바울의 부탁은 빌레몬의 입장에서 이건 뭐 안들어 줄 수 없는 노릇이다. 너도 나한테 빚진 것이 있음을 기억하라는데 어찌 그말을 듣지 않을 수 있으랴? 그리고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일은 선한 일이고 또 자진해서 하기를 바울은 원하고 있다.
바울은 한편 빌레몬에게서 도망친 오네시모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내가 오네시모라면 그냥 당신의 수발을 들면 안되겠냐고, 굳이 꼭 돌아가야겠냐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 오네시모에게 빌레몬에게 다시 돌아가면 따뜻이 맞아줄것이라고 설득한다. 오네시모 입장에서도 바울의 편지가 이해가 되고 그 상황을 자연스레 받아드릴수 있을까? 도망친 노비의 신분임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 그런 자신을 바울과 같이 대해달라니.. 스스로는 황송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다. 오네시모의 마음을 묵상하다 보니 예수님이 떠올랐다. 하나님께 우리를 자신과 같이 대해달라고 친히 십자가 달리신 모습. 생각해보면 나역시 황송하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보내며 그는 내 마음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마음은 무엇일까? 6절을 보면 믿음의 교제를 함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가진 모든 선한 것을 충분히 깨달아 그리스도께 이르기를 원한다고 나와있다.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약한 자들의 친구가 되어준 것 처럼 , 빌레몬 너도 다시 돌아온 오네시모를 종이 아니라 형제처럼 따뜻하게 대하라고 가르치시는 것같다. 그가 잠시 떠나게 된것으로 인하여 영원히 그대를 섬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비온뒤에 땅이 굳듯이 말이다.
서두에 이야기 했던 그 양반은 혹 빌레몬서를 깊이 읽은 사람이지 않을까?
나역시 다양한 관계와 상황속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 마음을 본받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