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아’ 영원히 잊지 않게
생존자 4만 명 증언 영상 기록
홀로코스트 성역화 앞장선 스티븐 스필버그
유대인들은 2차 세계대전 때 발생한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에 대해 씻지 못할 한을 품고 있다. ‘쇼아’(Shoah; 히브리어로 ‘절멸’이란 뜻이며 보통 홀로코스트를 지칭)는 비(非)교전 상황에서 무고한 인명을 대규모로 살상한 인류사 최대의 반(反)인도적 범죄다. 할리우드의 유대인 제작자·감독들은 65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홀로코스트 또는 독일 나치 관련 영화를 자주 만들어 대중에게 이 역사적 비극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특히 천재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사진)는 홀로코스트 관련 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스필버그는 1946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우크라이나-폴란드계 유대인이다. 부모의 이혼 후 아버지와 함께 캘리포니아주 새러토가로 이주한 스필버그는 유년 시절 정통파 유대식 교육을 받았다. 이후 롱비치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영화를 전공했으나 중도에 자퇴하고 유니버설영화사의 편집담당으로 들어간다. 그의 자질을 알아본 유대인 시드니 샤인버그 유니버설사 부회장은 그를 적극 밀어준다. 그는 69년부터 장편영화 감독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71년 스필버그는 데니스 위버 주연의 TV영화 ‘결투’를 내놓는다. 고속도로에서 대형트럭과 승용차 간에 벌어지는 신경전을 역동성 있게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에 대한 대중과 평론가의 뜨거운 반응으로 스필버그는 일약 중견감독으로 자리 잡는다. 이후 눈부신 성공을 이어간다. 그는 오스카 감독상을 두 차례 수상(93년 ‘쉰들러리스트’, 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했다. 그의 대작인 ‘인디애나존스’ 시리즈, ‘ET’, ‘조스’, ‘쥐라기 공원’ 시리즈, ‘우주전쟁’ 등은 모두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유대인 동료 2명과 드림웍스 설립
스필버그는 94년 제작자 제프리 카첸버그와 연예흥행사 데이비드 게펜 등 동료 유대인 2명과 동업으로 드림웍스영화사를 설립했다. 제작·배급을 겸업한 이 신진 영화사는 무수한 히트작을 쏟아내면서 짧은 시간에 할리우드 메이저영화사 반열에 올랐다. 스필버그는 많은 유대인 배우와 작업했다. 오랫동안 단역만 전전하던 러시아계 유대인 해리슨 포드는 ‘인디애나존스’ 시리즈로 대스타가 되었다. ‘슈거랜드’ ‘익스프레스’의 골디 혼, ‘조스’의 리처드 드레퓌스, ‘쉰들러리스트’의 벤 킹슬리 등은 스필버그 영화에 출연한 중견 유대인 배우들이다.
스필버그는 홀로코스트나 독일 나치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쉰들러리스트’는 대표적인 홀로코스트물이다. ‘인디애나존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도 나치잔당이 주류를 이룬다. 영화 외에도 스필버그는 홀로코스트와 관련한 특이한 사업을 벌였다. 95년 말 유대인 재력가의 도움으로 ‘쇼아 영상역사재단(Shoah Visual History Foundation)’을 설립했다. 이 단체의 주 활동은 나치 수용소 생환자의 증언을 영상물로 제작하는 것이다.
스필버그의 생각은 이렇다. 지구상에 생존해 있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 앞으로 모두 사라지면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잊혀질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이들 생환자의 증언을 영상자료로 만들어 이를 영구히 보존한다는 것이다.
스필버그는 전 세계 49개국에 흩어진 3만8569명에 달하는 쇼아 생존자의 증언을 수년간 비디오로 녹취했다. 이들의 국적도 무척 다양하다. 완성된 영상자료는 로스앤젤레스 소재 사이먼 비젠털 센터(나치전범추적기구), 워싱턴 홀로코스트 기념관, 뉴욕 유대유산박물관, 파리 유대문헌센터, 예루살렘 야드 바쉠(Yad Vashem; 홀로코스트 기념관) 등 5개소에 각 1부씩 보관돼 있다.
인디언·집시 등의 피해도 기억해야
인류 역사상 대량학살(Genocide) 사건은 많았다. 신대륙 개척 초기 유럽인의 토착 인디언 말살, 1차 세계대전 초기 오토만터키의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 학살,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 유고 내전과 르완다·부룬디 전쟁의 인종 청소,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등이다. 홀로코스트 기간에 유대인만 희생된 것도 아니다. 유럽인의 피를 더럽히는 하층민족이라는 이유로 유럽 집시는 거의 전멸됐다. 소련군 포로 수백만 명도 사라졌다. 장애인, 동성애자, 여호와의 증인 신도 상당수도 나치 수용소에서 살해되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제외한 여타 참극의 피해자들은 잊혀져 가고 있다.
미국과 세계 각지에서 경이적 성공을 거둔 유대인들은 아직도 자신들을 ‘희생자’(Victim)라고 믿는다. 특히 최대의 참극인 홀로코스트는 유대인 정체성의 일부를 이룬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쇼아를 성역화했다. 미국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또는 출판물로 비판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반인도주의자로 몰려 사회에서 매장당하기 때문이다. 이제 홀로코스트는 모든 교육 과정과 영화 등 영상물을 통해 거의 종교적 수준에 이르렀다. 극소수 홀로코스트 부정주의자가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전혀 공론에 부쳐지지 않는다.
홀로코스트는 분명히 그 어떤 유사한 학살 사건과 비교할 수 없는 인류사의 대(大)참극이다. 희생자 숫자에 대해 이견이 있지만 국제사회는 이 역사적 비극에 대해 공분한다. 다만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희생자로 규정하는 한편 비유대인에 경계심을 보이는 데 대해선 많은 이들이 의아하게 바라본다.
유대인 사회가 이런 기류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혹독한 교훈을 체득했다. 그들의 장기인 사려 깊고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