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원권 지폐는 신사임당으로 결정 나서 몇 장 내 지갑속에 들어 앉았다. 그처럼 많은 세월이 흘러도 우리사회는 모범적인 여성상으로 사임당을 기리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음을 확연히 보여주는 화페의 인물로 선정하기가 사임당이라고 해서 큰 불만은 없지만 여성으로 최초로 그려지는데서는 마음이 언짢타.
기록에 남겨진 사임당의 삶을 보면 그가 강릉 외가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의 어머니가 무남독녀였던 관계로 계속 친정에서 살았다. 아버지로부터는 충실한 유교교육과 딸의 재능을 알아본 부모로부터 그에 맞는 교육을 받으며 19세에 이원수에게 결혼하게 되는데 무남독녀는 아니었지만 사임당은 그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친정에서 살았다.
시가와 몇 차례 왕래는 하였지만 세 딸과 네 아들을 낳아기르며 시가로 옮겨 생활한건 결혼한 지 20년이 되어 38세 되던 해였다. 10년 뒤 사임당은 세상을 떠났고 셋째 아들 율곡은 외가의 제사를 모셨다.
결혼하여 출가외인이 된 사임당의 생활 무대가 시가가 아닌 친정이었고 당시의 결혼 풍습과 사회상황을 보면 결혼하면 남편이 아내 집에 가 살면서 자식 낳아 웬만큼 키운 다음 남편 집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결혼 풍습이었다. 이러한 결혼풍습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전기에 이르기까지 지켜졌다.
16세기 초에 살았던 신사임당은 내려오던 고래의 결혼풍습에 충실했던 것이다. 삼종지도라던가 남존여비란 말은 한국 여성의 삶을 단적으로 규정해온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말들은 단군이래 수 천년에 걸친 전통이 안겨준 여성들의 숙명이 아니다.
조선후기, 임진왜란 후인 17세기 무렵,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 윤리가 민중에게로까지 널리 퍼지면서 정착된 것이다. 이러한 결혼풍습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전기에 이르기까지 지켜졌다. 16세기 초에 살았던 신사임당은 내려오던 결혼풍습에 혜택을 충실하게 받았던 것이다.
조선 전기까지는 시집살이란 말이 없었고, 가족내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다. 재산상속도 아들딸 차별이 없었고 제사 또한 아들이 없으면 당연히 딸과 사위가 모셨다. 친손자와 외손자를 차별하지 않았으며, 외손자가 제사 모시는 일이 흔했다. 율곡이 그 좋은 예다.
신사임당이 슈퍼울트라 캡 짱 우먼이 될 수 있었던 건 타고난 능력이 출중해서만이 아닌 시대 상황과 또 자신의 남편 이원수라는 사람과 집안 분위기가 큰 영향을 끼쳤다.
사임당보다 약 60년 뒤에 태어난 허난설헌이 사임당 못지않은 출중한 여성이었으면서도 비운의 삶을 마쳤던 것은 난설헌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달라져있었던 데다가 난설헌의 인생에는 운이 따르지도 않았다.
좋은 남편도 시어머니도 아니었고 자식마저 잃어버리는 난설헌이 중국 낙양의 종이값을 올려 놓았다는 평을 들을 만큼 출중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비탄에 젖어 요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은 난설헌의 시대가 사임당의 시대와 사뭇 다른 탓이 컸을 겄이다.
역사 속의 인물들의 행적을 따라가다보면 그 성공과 좌절이 거의 그 인물의 성향과 자질로 귀착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류의 평가는 한 인물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다지 올바른 평가가 아닌 것같다.
내가 필명으로 쓰고 있는 로자 룩셈부르크나 그 외 여타의 인물도 그 시대 사회적 제약에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던가.(그래도 로자의 시대는 우리 조선조 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지만)
조선조 두 유명한 여류 예술가들의 인생역정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우리가 매일 그 위력을 절감하는 돈, 늘상 함께 살아내지 않으면 안되는 돈의 최고 가치 오만원권에서 늘상 봐야하는 인물이 나는 허난설헌이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허난설헌의 시작품을 허균이 세상에 알리는 과정에서 허균의 의도적인 편집에 의해 변형되어 졌다고는 하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우한 천재. 남존여비, 여필종부 등의 유교적 사상과 가치관에 희생된 사람은 돈의 주인공이 아직도 될 수 없는 현실. 승자가 독식하는 사회문화의 부산물들을 보고있노라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참 갈길이 먼 사회같다.
이겨야만 사는 사회임이 이 돈의 인물을 지정하는데서도 보여진다.
글을 마치면서 허난설헌의 詩 작품을 하나 감상해 보겠습니다.
출전 : '난설헌집(蘭雪軒集)'(1608)
手把金剪刀(수파금전도) 가위로 싹둑싹둑 옷 마르느라면 夜寒十指直(야한십지직) 추운 밤에 손끝이 호호 불리네 爲人作嫁衣(위인작가의) 시집살이 길옷음 밤낮이건만 年年還獨宿(년년환독숙) 이 내 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빈녀음'이란 제목이 뜻하는 것은 '가난한 여인의 노래'라는 뜻이다. 가난한 여인의 안타까운 처지를 노래한 이 작품은 자신의 소망은 가슴 속에 묻어둔 채 남의 옷을 짓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당시의 불평등한 사회 현실을 우회적으로 고발한 현실비판적인 참여시이다.
조선조 여류 문학을 대표하는 허난설헌의 불우한 삶이 투영된 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여인의 고달픈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시는, 주로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함으로써 애상적 시풍의 개성적인 시세계를 이룩한 허난설헌의 작품세계를 잘 드러내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밤새워 바느질을 하건만 가난 때문에 시집갈 날은 점점 멀어져가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는 오언절구(五言絶句)의 한시(漢詩), 전4수로 이루어진 연작시 중, 제4수이다.
로자
申師任堂 : 1504 ~ 1551.
이름은 인선. 호는 사임당, 임사재
가지와 방아개비
수박과들쥐
어숭이와 개구리
산차조기와 사마귀
맨드라미와 쇠똥벌레
원추리와 개구리
양귀비와 도마뱀
오이와 개구리
윤여관
비슷한 취향인가 봅니다 요즘은 예술이 취향이 되기도하고 취향이 예술이 되기도 하지만
어젠 콜비츠 작품들을 보여주시더니 오늘은 허초희 작품을....
사람소리님, 독일에 계시면 콜비츠 조각이 있는 성당인가?에 가보셨겠네요? 위에서 쏟아지는 빛, 아이들을 온몸으로 감싼 어머니
한 10년쯤 전에 후배가 대학가에 카페 차린다길래 제목을 난설헌과 바스키아라고 져줬었는데 너무 잘되서 건물주가 나가라는 바람에 대전으로 쫒겨나고 또 이름 져줬는데 갠지스의 바람 역시 잘되네요
이친구가 요즘 이야기가게 훈수를 제대로 해주고 있는데 허초희 시도 다잊어서 기억이 잘 안나네요
2009-07-01 03:41:45
꿈책
잠깐 보니까 신사임당이랑 박근혜가 닮았네 어쩌네 하는 말도 있는 모양이던에 어이가 없어서... 저도 신사임당보다는 허난설헌을 넣는 게 더 나았다고 생각해요.
2009-07-01 10:32:43
나도원
현모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되긴 했지만 신사임당 역시 뛰어난 예술가였으니 저도 큰 불만은 없습니다. 특히 그의 미술작품들은 경이롭고요. 이렇게 역사적 인물의 어떤 면이 시대적 필요로 후대에 강조되는 경우가 꽤 많은데, 어떻게 보면 신사임당에게도 좀 억울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맹자 엄마, 한석봉 엄마도 어쩌면.. ^^
2009-07-01 11:37:15
대표물고기
사임당이 예술가적 면모를 갖추었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솔직히 작품을 제대로 본적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그냥 율곡의 모친 정도로만 알고 있는 제가 부끄럽긴 합니다만.... 기회가 되시면 사임당의 작품도 구경시켜 주세요... 글고..5만원 뒷면의 그림은 사임당의 그림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2009-07-01 12:13:30
로자 ☆
아, 그런가요? 그럼 그 여성은 누굴까요? 사임당은 시보다 초충도라는 우리에게 알려져 엽서로도 나온 그림이 참 아기자기하데요. 강릉에 가면 팔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