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2026년 1월 18일 (일)
2. 날씨: 맑음 (미세먼지)
3. 경로: 두산위브아파트 - 언양성당 - 오상선묘 - 십자가의 길 - 성모동굴 - 화장산 - 조망처(삼각점) - 사각정자 - 오영수묘 갈림길 - 굴암사 - 화장사 - 언양읍성
4. 거리: 약 4.5km
5. 소요시간: 1시간 반
6. 코스정보 : 화장산, 언양성당, 굴암사, 언양읍성
7. 지역: 울산광역시 울주군
8. 트랙:
9. 코스지도
[화장산] 울산시 울주군의 상북면 향산리와 언양읍 송대리에 걸쳐 있는 해발고도 271m 산이다. 화장산(花藏山)은 여지도서(언양)에 "화장굴(花藏窟)은 화장산 산마루에 있다. 굴 앞에 대(臺)가 있으며, 대 위에 화장암 옛터가 있다. 당시 신라 임금이 병에 걸렸는데, 점쟁이가 하는 말이 복숭아꽃이 신령한 약이라고 했다. 추운 겨울날이라 마승(馬勝)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징조를 살피는 사람이 남쪽 지방에 가면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역마를 타고 가서 찾아보니 이 고장 산 아래에 이르러 동굴 집을 바라보니 그 안에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있으며 복숭아꽃이 찬란하게 피어 있었다. 그 오두막집에 가서 보니 단지 한 명의 비구니만 보였는데, 비구니가 웃으며 말하기를 '복숭아가 바로 저입니다.' 하였다. 비구니와 함께 말을 몰아갔다. 임금이 비구니를 보고 크게 기뻐했는데, 임금의 병이 곧장 깨끗이 나았다. 당시 사람들이 이 일을 기이하게 여겨 산의 이름을 '복숭아꽃을 간직했다.'라는 뜻에서 화장산이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에서 지명의 유래를 알 수 있다. 영남읍지(언양)에는 "화장산(花藏山)은 현 북쪽 2리에 있다. 고헌산에서 떨어져 나온 산줄기로서 읍터의 주산(主山)을 이룬다. 산 위에 화장굴이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상북면 송대리에 있는 화장산과 화장굴을 수록하고 있다. 해동지도(언양) 등 군현지도에는 빠짐없이 화장산을 표기하고 있다. 산 중턱에는 화장굴 안에 약수가 있는데,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그것을 마시거나 보게 되면 물에서 냄새가 나거나 아예 물이 말라 버렸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화장산 미타굴(彌陀窟, 일명 굴암사)이라는 암자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말로는 꼬장산 또는 고장산이라고 하는데, 곶(古尸, 岬, 串)에서 유래한 것이다. 화장산은 조선시대 봉산(封山)으로 영남읍지(울산)에는 "고산(高山)은 온양면에 있는데 둘레가 45리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광여도(울산)에는 고산봉산(高山封山)으로 수록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온북면에 있는 화장산(花壯山)을 꼬장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천지가 물바다가 되었을 때, 이 산은 꼬챙이 하나 설 정도의 땅이 물 위에 남아 있었다."라고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송대마을 이야기] 신라때의 일이다. 화장산 아래 어느 사냥꾼 내외와 두 남매가 살고 있었다. 그때 화장산 위의 바위굴에는 한마리의 큰곰이 있어 산의 짐승들을 다 잡아먹고 있었다.사냥꾼 내외는 곰을 잡으려고 활,창을 들고 곰을 찾아 나섰다. 집을 지키고 있던 오누이는 밤이 되어도 부모님이 돌아오지 않아 새벽부터 화장산으로 올라가 부모를 찾기 시작했다.때는 엄동설한, 북풍과 눈보라가 그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남매는 부모를 부르며 이리저리 헤매다가 지쳐 죽고 말았다. 가엾게 죽은 오빠의 정령은 대가되고 누이의 혼은 송이 되어 푸르렀다고 전해오며 송대마을의 유래가 되었다 한다.
[굴암사(窟巖寺)]는 신라 소지왕 때(479∼500) 도화도인(桃花道人)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이를 고증할만한 자료는 없다. 창건 당시의 사찰 이름은 화장암(花藏庵)이었던 것 같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사찰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최근인 1966년 해인사의 승려 안석범(安石凡)이 폐사되어 있었던 이 사찰을 중창하여 이름을 미타굴(彌陀窟)이라 하였는데, 굴암사라는 명칭은 이때부터 함께 칭해졌다고 한다. 굴암사(窟巖寺)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폭 6m, 높이 2m가량의 바위굴이 법당이며, 굴 입구에는 ‘미타굴’이라는 현판이 있다. 굴 내부에 불단을 꾸미고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등을 봉안하였다. 내부는 20여 명이 법회를 볼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이다. 굴 밖에는 바위를 깎아 조성한 마애 지장보살이 있는데 근래의 것으로 보인다. 요사는 두 동이 있다. 이 사찰에는 소지왕에 얽힌 창건 설화가 전한다. 난치병을 얻은 소지왕의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남쪽에서 도화(桃花)를 찾으면 치료될 것이라 하였다. 수소문 끝에 화장산에서 도화라는 이름의 승려를 찾아 설법하게 하니 왕의 병이 3일 만에 나았다. 이에 왕은 승려가 있던 굴에 절을 세웠는데, 이것이 굴암사의 기원이라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언양읍성]은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게 평지에 정사각형으로 쌓은 성이다. 삼국시대부터 흙으로 쌓은 토성이 있었는데, 돌로는 1500년(연산군 6년)에 처음 쌓았다.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617년(광해군 9년)에 새로 쌓았다. 현존하는 이 읍성은 남북이 각 380m로 직사각형을 이루고, 둘레는 1,520m에 이른다. 성의 형태는 전형적인 읍성으로, 각 방향마다 성 중간에 동·서·남·북문이 옹성(甕城)으로 되어 있고, 각 모서리에는 각루(角樓)가 4개소 있으며 문과 각루 사이에는 치(雉)가 있는데, 치는 각 방면마다 2개씩 모두 8개소이다. 예부터 경주·울산·밀양·양산과의 교통 중심지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옛 언양 고을의 읍성이다. 언양읍성은 전국의 중요 읍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14∼15세기의 축조방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나타나는 축성법 변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