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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는 안개비에 날아가도 288의 동기애가 빛난 치악산 종주
1. 일자: 2014. 11. 1 (토)
2. 장소: 치악산(1282m)
3. 행로/시간
[성남지킴터(08:40, 430m, 상원사 5.2km) -> (간이 주차장, 남대봉 3.7km) -> (상원골) -> (샘터) -> 상원사(10:33, 1060m) -> 남대봉(10:50, 1182m, 향로봉 3.9km) -> (치악평전) -> (식사, 12:15~58) -> 향로봉(13:10, 1042m, 비로봉 5.9km) -> 곧은치(13:35, 860m, 비로봉 4.8km) -> 970봉/활공장(13:48) -> (원통재) -> 황골 갈림(14:59, 비로봉 1.9km) -> (전망대) -> 비로봉(15:40, 구룡사 4.9km) -> (사다리병창) -> 세렴폭포 입구(17:10) -> 구룡사 지킴터(18:00) / 21.4km]
< 치악산 종주 산행을 준비하며 >
지지난 대간 산행 중에 아이넷님의 치악산 종주 계획을 듣고 마음이 동해, 선뜻 함께 가겠다고 약속해 버렸다. 지난 대간을 앞두고 아이넷임과 밴드를 하면서 청량리에서 6시 40분에 원주행 첫 기차 있다는 말을 듣고, 기차여행이 땡긴다. 사실 지지난 주 내내 북한산과 치악산을 저울질했는데, 마음을 결정한다. 그래 치악산으로 가자. 대간 산행이 후반기에 접어들며, 장거리 종주산행에 구미가 당긴다. 아마도 여름 소백산 종주의 아름다운 풍광이 기억에 깊이 새겨젔나 보다.
지나 기록을 뒤적인다. “치악산, 산 앉음새가 흡사 거대한 도마뱀을
연상시킴. 머리를 북동으로 치들고, 발로 무섭도록 잔뜩 땅바닥을
움켜쥐고, 몸을 구부리며, 산 줄기가 시작되는 오대산으로
기어가는 형국이랄까, 아니면 태백산 넘어 동해로 물을 찾아가는 시늉일까. 덩치가 크면 거기 의지하는 인정도 절로 따르는 법이라. 이 산에는
그만큼 유적들이 오래 전부터 골골이 깃을 치고 앉아 있다. 구룡사, 구룡소, 상원사, 영원사 등이 그 일부이다.”출처는
모르지만 멋진 표현이다.
월요일 아침, 밴드에
‘치악산 번개산행’ 공지를 올린다. 청량리 역에서 기차 타고 원주역에서 택시 타고 성남을 들머리로 구룡사까지 8시간
남짓 산행을 하고, 원주로 돌아와 목욕하고 뒤풀이 하고 귀경하면 훌륭한 하루 산행이 가능하다. 계획만으로도 마음은 또 풍성을 탄다.
이제까지 4번 치악산에 올랐다. 입석사-구룡사, 황골-구룡사, 관음사-곧은치, 성남리-남대봉-금대리 코스였다. 금대봉에서 향로봉 지나 원통재로 이어지는 능선을 제외하고는 종주 코스의 반은 이미 경험했다. 미싱 링크를 잇는 산행을 해야겠다.
총 21.4km 거리의 만만치 않은 구간이다. 전체 코스를 3등분 해본다. 성남지킴터-남대봉 5.9km 2시간 30분, 남대봉-비로봉 9.8km 3시간 30분, 비로봉-구룡사 지킴터 5.6km 2시간 30분, 식사 시간을 포함하면 9시간의 산행이 예상된다.
< 치악산 종주 고도표 >
< 희망사항 >
아이넷, 까막바위, 옥혜 그리고 명동. 이렇게 넷이 산행을 함께 한다. 일 년 육개월 격주로 대간 길을 함께 하지만, 별도로 산행을 하는 건 처음이다. 그래서 더욱 설렌다. 마음 맞는 이들과 서로가 좋아하는 ‘짓’을 하러 간다. 그것도 기차를 타고. 아니 즐거울 수 있겠는가? 즐~~겨야겠다.
날씨가 변수다. 목요일까지도 치악산의 토요일 일기예보는 오전비 60%다. 60%란 의미는 과거 유사 기상상태일 때 10번 주 6번은 비가 왔다는 말이다. 예보가 틀리거나 예보가 햇님으로 바뀌기를 바래본다.
< 원주 가는 길에 >
11월 첫날, 5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선다. 청량리까지 6시 30분까지 가기 위해선 도리 없다. 거의 첫 차 일 듯한 버스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다. 새벽 일을 나가는 이들이다. 토요일 새벽은 생각보다 분주하다.
사당에서 4호선 첫 전철을 타고 동대문에서 1호선으로 갈아 타 청량리에 내리니 6시 15분, 30년이 넘어 다시 찾은 청량리역, 그 규모에 놀라고 이리 저리로 연결된 철도 플랫폼이 혼란스러웠다. 대합실에는 옥혜님과 행진님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기차에 오른다. 배낭을 내려 놓고 식당차에서 간단한 요기를 한다. 많은 일들이 새로운 경험이다. 원주행 기차도 그렇고 기차에서 식당차에서 매식을 하는 일도 그렇고……
기차가 플랫폼을 출발한다. 희뿌연 날씨에 스치는 풍경은 우중충하다. 지하철과 전철이 지나는 곳의 풍경은 많이 다르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기차 노변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양평을 지난다. 풍경은 여전히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 스르르 잠이 든다.
여주, 만종을 지나 원주역으로 기차는 미끄러져 들어간다. 100km가 넘는 길을 5~6곳을 역에 정차하고도 1시간 남짓 만에 달려왔다. 천천히 간다 생각했는데 엄청난 속도로 온 것이다. 비록 기차 여행의 매력은 기대만큼 크지 않았지만 무사히 원주에 도착했다.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산거북님과 만나 한 차로 들머리로 향한다. 6명이 탄 비좁은 택시에서도 웃음꽃이 피어난다.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 성남에서 남대봉 >
성남지킴터에서 계곡을 따라 차가 2.5km 정도 더 올라갈 수 있으나, ‘제대로 종주’를 외치는 아이넷님 잔소리에 버스 종점에서 택시를 내린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비도 방수복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걱정이다. 다행히 이슬비 수준이고 곧 그칠 기세다. 들머리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길을 나선다.
< 원주역에서 / 성남 들머리에서 >
남자 5명이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계곡 옆으로 난 포도를 걸어 오른다. 기분이 상쾌하다. 평소 꿈꿔 오던 산행이다. 오전 산행은 아이넷님이 대세다. 원칙을 지키는 산행을 해야 한단다. 말이 많다. 새로 산 라이카 카메라로 사진 한 장 찍어 달라는 부탁에 ‘비’ 맞는다며 거절한다. ㅋㅋ 카메라를 새색시 다루듯 한다.
다녀 온 산행이야기를 한다. 영월 태화산이 화제가 되었고 정상 찍고 원점 회귀한 내 경험을 애기해 주었더니, ‘야매’산행이라 폄하한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거래하듯 산과 적당히 타협함을 비꼬는 말이다. 졸지에 ‘야매 명동’이란 닉네임을 얻었다. 기타 ‘대세넷, 율목, 밤꽃향기’등등의 주제로 왁자지껄 하며 고도를 높여갔다. 도로 끝이 나타나고 비탈이 시작된다. 상원사에서 일용품을 십시일반으로 날라 달라는 팻말을 기점으로 새로이 산과 접속한다. 계곡물 소리가 세차다. 곱게 단풍 든 계곡이 운치 있다. 이 경치를 담지 못하면 돌아 와 후회할 것 같아, 비를 맞으며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 낸다.
< 상원사 가는 길에 1 >
계곡의 물이 흐르고, 나뭇잎의 색이 변하고, 조릿대는 푸르름을 더 해 가고, 치악의 가을은 깊어간다. 평소 같으면 갈수기인데 가을답지 않은 비로 계곡에는 물이 넘쳐난다. 철 계단 앞에서 포즈를 취해본다. 비는 부슬부슬 그칠 기미가 없다.
< 상원사 가는 길에 2 >
행진님이 아이넷님의 라이카 카메라와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기록을 남기느라 분주하다. 마지막 철 다리를 지나 고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몸은 힘에 겹지만 오늘 산행은 참 즐겁다. 무엇보다 같은 취미로 살아가는 이들이 산 길을 걸으며 그 좋아하는 산 이야기를 마음껏 하니 말이다. 산거북님은 화대종주의 후유증으로 다리가 편치 않다 하면서도 선두로 우릴 이끌어 주신다. 졸업산행이 화제가 된다. 비행기 타고 1박 2일 제주도 산행을 가자는 의견이 대세다. 행진PD가 현지 지인을 통해 맞춤 계획할 수 있다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벌써 내년 5월이 기대된다.
< 상원사 가는 길에 3 >
샘터를 지나 한차례 된비알을 한번 더 치고 오르자 상원사의 일주문이 보인다. 2년 전에도 공사 중이었는데 여전하다. 공사가 중단된 것인지, 꼼꼼히 챙겨가며 하느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지는 몰라도 주변이 어수선하다. 텅 빈 절 집 마당에 선다. 동종과 석탑이 연무 속에서 의젓이 서 있다. 평소 사람들로 붐비던 마당은 조용하다. 그래도 백구는 여전히 건재하다. 어슬렁거리는 폼이 조금 더 의젓해졌다.
< 상원사에서 >
치악의 치(雉) 자가 까치라 우기다. 꿩을 주장하는 아이넷에게 한 방 먹었다. 역시 내 애기는 야매란다. ㅎㅎ 사진 찍고 물 한 모금 먹고 잠시 여유를 가져본다. 남대봉으로 오른다. 우회로로 가지 않고 절 뒤 희미한 길을 찾아 나선다. 아이넷님이 길이 아니라 궁시렁된다. 절에서 등로를 막아 놓은 지 꽤 된 탓으로 조릿대를 헤치며 길을 만들며 간다. 눈 속을 걸은 듯 종아리가 묵직하다. 덕분에 10여분 빠르게 남대봉에 도착했다.
< 남대봉 가는 길 >
< 남대봉에서 비로봉 >
1181미터 남대봉은 정상석 하나 없는 평범한 봉우리다. 배가 고파왔지만 불을 피우기 적당치 않다는 이유로 간식을 나누어 먹는다. 남대봉까지는 예상보다 10여분 느린 행보다.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지만 연무는 여전하다. 오늘 산행 내내 풍광을 즐기기는 어려울 듯하다. 향로봉을 향해 길을 나선다.
길이 조금은 평탄해 진다. 지난 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인지 컨디션이 좋지 않다. 몸이 무겁고 졸음도 쏟아진다. 잎이 진 앙상한 나무, 희뿌연 하늘, 가끔씩 나타나는 조릿대, 키 작은 억새…… 향로봉 가는 길의 소묘다. 그래도 아이넷님의 새 카메라가 단조로운 길에 활력소를 주었다. 무언가 조금이라도 새로운 광경이 목격되면 ‘라이카’를 외치며 찍어 달라 한다. 귀찮아 하면서도 애장품을 뿌듯해 하는 카메라 주인, 그러나 정작 찍새는 대개 행진님이다.
< 남대봉과 향로봉에서 >
남대봉에서 향로봉까지의 거리는 3.9km, 결코 짧지 않다. 12시가 지나자 또 허기가 져 온다. 지나 온 길은 분명 치악평전이었건만 체감할 정도로 특이한 지형이 없었다. 향로봉을 목적에 둔 널찍한 헬기장에 멈추어 선다. 식당이 차려진다. 김밥, 라면, 과일, 빵 등등 각자 준비한 음식들이 상에 오른다. 단연 인기는 옥혜님의 라면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을 준다.
평소보다 긴 식사시간을 가졌다. 1시가 지난다. 아직 절반도 못 왔는데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서두른다. 향로봉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나무 안내판이 정상석을 대신한다. 먼저 온 이들이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하고 있다. 서로 단체 사진을 찍어주었다.
향로봉을 지나며 등산객을 여러 목격한다. 곧은치까지 평탄한 길을 이어간다. 발에 속도가 조금씩 붙는다. 변화된 환경은 그간의 단조로운 길을 잊게 만들어 준다. 곧은치를 지나며 긴 오름이 이어진다. 예전 원주 사는 친구와 함께 오른 기억이 있는 등로다. 잠깐이면 되겠지 하고 걷는데 오르막은 예상외로 길었다. 앞서 가던 거북님이 거미줄에 물방울이 맺혔다며 라이카를 찾는다. 접사 모드로 나도 사진을 찍어 보지만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아웃포커스 등 전문 용어들이 등장한다. 행진님이 아이넷님에게 카메라의 기능을 열심히 설명해 준다. 그 사이 선두는 활공장으로 오른다.
28산악클럽과 멤버들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고, 우스개 소리로 아이넷님이 차기 대장을 꿈꾼다는 설이 등장했다. 산악회 이름은 ‘미녀넷 산악회’로 지으면 대박 날 것이란 농담이 이어진다. 단조로운 행로에 활력소가 되는 건 늘 아이넷님이다. 특히 ‘넷’이란 닉네임은 변화무쌍하게 아류명을 만들어낸다. 덕분에 산행 내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 곧은치에서 >
아직 비로봉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 한다. 다시 긴 오름이 이어진다. 이 언덕을 넘어야 황골에서 이어지는 갈림과 만나리라. 연무는 여전하다. 활공장에서 한 시간을 더 걸어 황골 갈림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익숙한 길이다. 고도도 이미 정상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수준으로 높아져 있다. 귤 한 알을 먹고 여유를 가져본다. 난 평소 산에서 귤을 먹으면 껍질을 숲에 버렸는데, 그 행위는 껍질에 묻어 있는 농약성분이 작은 동물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한다. 내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 황골 갈림 부근 풍경 >
숲은 여전히 몽환적이다. 머리는 늘 젖은 상태로 보지 않아도 착 달라붙은 깻잎머리일 것이다. 사진 찍을 때마다 내 몰골이 걱정된다. 짧은 휴식을 취하고 길을 이어간다. 한참 등산로 정비 공사가 진행 중이다. 비로봉까지는 그리 험하지 않은 곳인데 계단이 놓여지고 있었다. 헬기로 목재를 실어 나르고 조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군데군데 놓여진 생수 병 다발의 존재였다. 처음엔 인부들 식수이겠거니 했는데, 거북님이 시멘트 혼합용 재료라는 특이한 ‘설’을 제기한다. 머리를 탁 친다. 맞다. 커다란 생수통의 존재는 공사용 물 공급이다. 커다란 물통보다는 2리터 생수가 가격은 조금 더 나갈지는 몰라도 공사에는 효과적이다. 물론 식수공급의 역할도 겸할 것이다. 관찰력과 상상력은 산에서 필수적이다. 놀라운 발견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공사중인 길을 따라 오르자 커다란 전망 터가 나타났다. 비록 연무로 경치는 없지만 마음으로 풍경을 상상하며 라이카로 타이머를 설정하여 단체사진을 찍는다. 오늘은 라이카가 대세다. 내 큰 똑딱이는 보조 신세로 전락했다. ㅋㅋ
< 거미줄의 물방울 / 공사중인 전망대에서 >
비로봉은 지척이었다. 계곡 갈림에서 거북님이 다음 주 대간 공룡능선 길에서 천불동으로 하산하겠다 한다. 아무래도 무릎 사정이 좋지 않나 보다. 긴 계단을 올라 비로봉 정상석에 선다. 공단 직원이 4시 전에 하산 하라 하며 지키고 서 있다. 뿌연 연무 속에서 치악 정수리에 오른 감동을 느껴본다. 돌아가며 사진을 찍으며 288이 이곳에 다녀 갔음을 남긴다.
< 치악산 정상에서 >
< 비로봉에서 구룡사 지킴 터 >
3시 50분, 생각보다 시간 흐름이 빠르다. 서둘러 하산해야겠다. 이제껏 3번 비로봉에 올랐거늘 맑은 날은 한번도 없었다. 나와 치악과의 인연은 이렇게 정해져 있나 보다. ㅎㅎ
초반 긴 계단을 내려선다. 중간에 멈추어 행진 PD의 연출로 작품사진을 찍어본다. 번거롭게 몸을 움직여 보지만 찍고 보면 날씨 탓으로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사진은 구도 못지 않게 빛이 중요하다.
하산 길의 대세는 행진님이다. 가수 신해철 사망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 할 때는 전문의 이상의 의학적 소견으로 머리에 쏙 들어오게 정황을 요약해 설명한다. 역시 직업은 못 속인다. 또 꿈과 로또에 얽킨 헤피소드도 재미나게 들었다. 덕분에 단조로운 하산 길이 훨씬 풍요로웠다.
< 사다리 병창 하산 길 1 >
세렴폭포 1.1km 이정표를 지난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고도를 내려갈수록 단풍은 울긋불긋하다. 빛이 조금 더 있었으면 환상 이겠다는 아쉬움을 달래서 아래로 아래로 길을 이어간다. 가면서도 멋진 풍광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서서 라이카의 힘을 빌린다.
5시가 지난다. 긴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자 계곡과 갈림이 나타나고 세렴폭포 이정표가 나타났다. 힘겨운 여정이 마무리되어 간다.
< 사다리 병창 하산 길 2 >
어둠이 내려앉는다. 일단 기미를 보인 어둠은 무차별하게 빨리 주위를 삼킨다. 순식간에 빛이 사라져갔다. 터벅터벅, 그러나 결코 느리지 않은 속도로 구룡사를 향해 걷는다. 도중에 키 큰 전나무 군락을 지나고 기세가 대단한 계곡의 물보라도 목격한다. 날이 어두워 구룡사는 바이패스 하고 지킴터로 향한다. 6시가 막 지난다. 트랭글을 끈다. 19.1km의 거리가 찍힌다. 상원사에서 남대봉으로 직행한 결과 거리가 꽤 줄었다. 나머지는 GPS 오류일 것이다. 산거북님의 성능 좋은 기기에 찍힌 거리는 21.5km에 근접한다. 거리야 어쨌건 긴 산행이 이렇게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다. 만사에 감사할 따름이다.
< 구룡사의 가을 / 원주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
< 에필로그 >
다시 속세와 접속한다. 음식점의 호객행위와 코를 자극하는 전 냄새에 내가 산에서 내려왔음을 실감한다. 순간 멍해진다. 이제 무얼 해야 하나? 원주 시내행 버스 시간을 묻는다. 20여분의 여유 시간에 짐을 챙기고 간단히 세면을 했다. 그 사이 버스가 온다. 늦은 시간인데도 만원이다.
원주의 외곽을 달려 30여분 만에 원주역 부근에 내렸다. 작은 고깃집에 들어가 삼겹살을 앞에 두고 뒤풀이를 했다. 즐겁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좋아하는 산, 좋은 사람들, 작은 성취감에다 맛난 음식, 서로의 유대감을 더욱 강하게 해 주는 맑고 강한 액체…… 행복하다.
기차는 10여분 연착되고 기다라는 동안 마지막 사진을 찍으며 오늘의 감동을 다시 나눈다. 사는 것이 즐겁다. 살면서 두고 두고 기억할 만한 추억 하나를 가슴에 담고 청량리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
< 치악산 종주 궤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