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민
한국기독교장로회 2021년 7월 회보에 실린 글이다. 지난 3년 여 난민에 대한 개입은 개신교 신앙영성에 기인한 것이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개신교 실천영성 관점에서 난민사역(홍주민, 한국디아코니아)
성서신학적으로 영성은 신앙안에서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이고 그 영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위르겐 몰트만은 로마서 5장 5절에서 마음의 영성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습니다.” 성령이 모든 육체에 부어지면 생명의 영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현존하고 하늘과 땅위의 모든 것이 함께 결합되기 때문에 우주적 영성이 생겨난다. 이것이 몰트만이 말하는 새로이 오고 있는 세상의 영이다.
그는 이러한 인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하나님의 영은 땅을 거룩하게 하고 생명을 살아있게 하고 모든 생각을 깨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이기 때문이다.” Juergen Moltmann, Der lebendige Gott und die Fuelle des Lebens, Guetersloh 2014, 158.
영성의 논의와 담론이 무성한 가운데 페터 침머링은 “개신교 영성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개신교 영성은 한편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 하나님의 행동 그리고 (개인적인) 신앙에 집중한다. 다른 한편으로 개신교 영성은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교회 내적인 틀을 넘어서서 세상에 대한 책임을 지향한다. 즉, 종교개혁가들이 새로이 발견한 가족과 직업 그리고 사회 자체를 우리 삶의 예배의 장으로 강조한다.” Peter Zimmering, Evangelische Spiritualitaet, Wurzeln und Zugaenge, Goettingen 2003, 284.
이와 같은 침머링의 개신교 영성에 대한 정의는 개신교 디아코니아의 획을 그은 요한 힌리히 비헤른의 신학적 실천에서 확인된다. 비헤른은 현재의 독일 개신교 디아코니아 사업단의 기초를 놓은 디아코니아 실천가이다. 그의 영향으로 현재 독일에는 개신교의 사회적 실천현장인 디아코니아가 무려 3만 1천 여개에 이른다. 그 안에서 45만 여명의 섬김사역자들과 70여 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을 섬기고 있다.
“사랑은 신앙에 속한다”는 종교개혁의 명제를 다시금 디아코니아 실천으로 불을 지핀 비헤른의 독일 개신교 디아코니아는 한 예로, 필자가 근래에 집중하고 있는 난민 디아코니아 사역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독일은 유럽국가 중 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이다. Eurostat Asylum Statistics, 2019. 2015년 한 해 476,649명, 이듬해 745,545명의 난민이 독일 내 난민 신청을 하였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난민 유입 시 정부를 비롯한 민관협력 기관들이 깊이 개입하게 되는데, 이는 난민과 관련한 사안에 대하여 시민사회와 연계하여 자원봉사나 명예직 등 시민사회의 자발성과 헌신성을 기하는 독일 사회국가의 특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한 사례로서, 하이델베르크 난민수용소는 하이델베르크시 사회국과 개신교 사회실천 재단인 ‘디아코니아’, 가톨릭 사회실천 재단인 ‘카리타스’, 그리고 적십자가 공동 운영하고 있다. 홍주민, “독일 난민 수용을 통해 본 한국의 자화상”, 뉴스앤조이, 2018.7.12. 참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8533
2015년 이래로 본국의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일로 피해온 120만 여명의 난민들의 문제에 대해 신속하게 작동된 정부와 민간의 거버넌스는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필자는 2015년 여름, 한국의 다문화 부처 공무원들 7명과 유럽 다문화도시 벤치마킹 프로젝트의 코디와 통역을 맡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필자는 난민 러시의 가장 핵심이었던 독일에서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바 있다. 특히 필자에게 그 뜨거운 여름의 열기처럼 가슴을 뜨겁게 한 것은 독일 개신교 사회실천의 전위인 디아코니아가 가장 적극적으로 난민문제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2018년 여름, 한국에 상륙한 예멘 난민 500여 명은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전례없는 대규모 예멘 난민 현상에 대해 우왕좌왕하였고, 예멘 난민들이 급기야 하루에 한끼 밖에 못 먹고 거리에 노숙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한국은 1994년 이래 난민 신청 누적수가 2019년 현재 64,357명이며 현재 체류 난민은 32,651명이다. 그 중 난민 인정자는 1,022명으로 4.0%에 불과하다(세계 29.8%). 그리고 한시적으로 머물게 하는 인도적체류자는 2,217명에 불과하여 세계에서 난민 인정률이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한국디아코니아는 즉각 도움행동에 돌입하여 그해 여름 제주를 다섯 번이나 방문하며 구호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특히 한국 개신교인들의 반응이 필자에게는 충격이었다. 당시 필자의 눈에 네 가지의 부류로 분류된 한국 개신교인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열거하면, 무관심 부류, 이슬람 난민에 대해 적대시하는 부류, 그들을 전도하여 개종시키려는 부류, 무조건적 도움을 주려는 부류였다. 한국디아코니아는 마태복음 25장에 그리스도께서 나그네, 난민으로 우리 곁에 오신다는 말씀에 의거하여 전술한 네 번째 입장을 견지하여 오늘까지 임하고 있다.
난민은 여러 이유로 자신의 나라에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다른 나라로 이주한 이들이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의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아 다른 나라로 떠나온 이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일반 이주민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3년 여의 시간을 난민 디아코니아 현장에서 난민들의 벗이 되어 살아간다. 그동안 내전으로 인한 예멘 난민과 시리아 난민, 인종의 문제로 인한 앙골라 난민, 정치적 박해로 인한 이집트 난민, 종교적 이유로 인한 이란 난민 등 다양한 이유로 자국을 떠난 난민들과 함께 동고동락을 이어왔다.
현재 수원에 난민 쉼터와 난민 사회적기업인 케밥하우스, 그 안에서 난민센터의 기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난민 디아코니아 사역을 이어올 수 있던 힘은 무엇일까? 필자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전술한 바처럼, 개신교 실천 영성의 힘이다. 이 땅에 시중드는 이로 오신 디아코노스 주님이 내 안에 오셔서 신앙의 사랑 행동으로 이끌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는 디아코노스 그리스도가 임하여, 난민에게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생명의 영으로, 그리고 경계를 넘어 안타까운 마음과 자비한 마음으로 이 사역에 동참한 많은 이들의 우주적 영성과 함께하게 되었고, 결국은 부활한 디아코노스 그리스도의 영이 이끈 힘이었다.
이러한 난민 디아코니아는 지난 해 여름부터 국내 난민인 노숙인 디아코니아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한 무료급식소의 중단으로 한 끼의 양식이 힘겨운 분들에게 난민이 만든 케밥을 매주 제공하여 1년을 맞았다. 이 또한 디아코노스 그리스도의 영에 의한 사랑행동이다. 케밥으로 평화를 이 세상에 가져오는 것은 과연 꿈일까. 처음엔 난민을 향한 작은 손건넴이 이제는 국내 난민인 노숙인에게로 향한다. 디아코노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실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디아코노스 주님의 영의 이끌림에 우리를 맡기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