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한 자여(게라의 아들 시므이 I)
자식 잘못 키워 도망가는 저 놈은 정녕 비루한 자다. 제 장인 어른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던 자인데다가, 어릴 적 아비에게도, 형들에게도 존재감 제로의 은따가 아니더냐.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지 않으랴. 그런데도 가식과 위선으로 나라를 통째로 삼키더니 결국 그대로 게워내고, 제 살자고 죽어라 내빼는 꼬락서니 참, 가소롭다. 시바는 이때를 이용해 제가 모시는 므비보셋의 재산을 가로채고, 후새는 의리를 중요시여겨 다윗 편에 서지만, 나는 저런 놈에게 합당한 대우는 욕이다, 욕.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받는 법. 꼴 좋다.
나도 욕했지만, 이를 부득부득 갈며 나를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아비새 이 놈, 너나 나나 매일반이다. 나도 욕하고, 너도 욕하고. 그리고 저주의 대가는 저 다윗이 아니더냐. 그 놈이 남기고, 그 놈을 흉내 낸 시의 모음집을 봐라. 복수를 간청하고, 은근슬쩍 돌려 까는, 몸서리 처지는 저주는 얼마나 많냐. 그런데 망해서 도망가는 왕을 저주 좀 했기로서니 대수냐. 없는 데서야 나랏님 욕하는 것은 허가된 것이고, 걸음아 날 살려라 도피하는 다윗에게야 대놓고 욕 좀 할 수 있는 거지, 뭘 그리 난리야 난리긴.
난, 그렇게 살아왔다. 태어나니 좋은 집안, 가문이었고, 머리가 남보다 나쁘지 않았고, 재물운이 내 사는 날 동안 반드시 나를 따르는데, 지지리 못난 것들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을 것들이다. 헌데, 내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눈 뜨고 볼 것은, 없이 살던 것들이 가진 놈이 되고, 권력까지 꿰차는 것은 내 못 본다. 그건 세상 망조다. 이제 제자리 찾아 돌아가는 것이니, 하나님 마음에 합한 지 모르나, 내 성에 차지 않는 다윗, 너는 비루한 자다. 썩 꺼져라. 근데 언 놈이 나를 비루하다는 거야. 이 비루한 놈들아.
왕 앞에 엎드려(게라의 아들 시므이II)
난, 개처럼 짖었다. 내 마을 앞을 지나가는 그 작자를 욕할 때, 많이 깎아 말했는데 실제로는 저주이다만, 그때는 나 혼자이었다. 그자는 도망가는 위급한 상황에도,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양심을 선택하는 자’라는 것을 내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마음껏 욕을 퍼댔더랬지. 어찌나 시원하던지. 똥개는 저리 짖을 때 신이 난다. 살맛 난다. 지금은 압살롬의 반란을 잠재우고 도성으로 돌아가는 그는 욕망을 따라 내 목을 칠 공산이 이전 보다 높다. 그러니 납작 엎드려 빌밖에. 살아야 하니까.
이럴 때는 남보다 빨라야 한다. 마누라는 나더러 왜 이리 둔하냐고 지청구지만, 내 실상을 몰라서 그렇다. 내가 얼마나 잽싼데. 치고 오는 아랫것들 밟을 때, 넘사벽 상사의 차 문을 열어줄 때. 개떼를 모아야 한다. 내 패거리가 많다는 것을 보여야 날 덜 깔볼 터. 우리가 남이가, 를 외치는 내 씨족 베냐민 사람 1천 명을 끌어모았고, 다윗의 지파인 유다 사람들과 같이 움직였다. 반란으로 민심이 갈가리 찢긴 마당에 내 목을 따면, 득보다 실이 많다. 떼거리에 엄중히 명했다. 지엄한 분부를 내리는 내 목소리가 왜 이리 멋있는지 나, 원, 참.
그러고 보니, 위대한 다윗왕님의 장군인 요압의 동생 아비새님의 말씀이 백번 천번 지당하다. 저자는 죽은 개 만도 못한 자다(16:9). 개인 건 맞지만, 아직 죽지 않은 산 개다. 산 개는 살아야지. 개는 개처럼 사는 법. 개처럼 다윗 향해 짖었으나 지금은 비루먹은 개 마냥 꼬리 내리고 살랑거려야 밥 먹고 산다. 처자식 멕인다. 엎드려 짖는다. “네가 개가 되라면 내 개가 된다. 내가 지금부터 다윗의 개야. 나 개새끼야. 멍멍 왈왈.” 그렇게 나는 죽지 않고 살았다. 개가 되어 살아도 살았으니까. 다행이다. 그래, 나는 개다. (삼하 19:18)
지당하신 말씀 / 이 말씀이 좋사오니
시므이가 실수를 자꾸 하지? 그의 행동은 기민하고, 생각은 영민했다. 다윗이 영영 몰락할 듯싶어 강 같은 저주를 퍼부었다. 재기하는 다윗 보고 아차 싶어 무리를 이끌고 번개처럼 내달려 고갤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 이리도 재빠른지라 도망간 종놈 잡으러 신속하게 기동한다. 나이고 뭐고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쫓아가 기어이, 기필코 잡아 왔다. 왕과의 약속도 잊은 채. 이 자는 추노를 했으면 잘 살았을 텐데. 여튼, 그러다 죽었다. 시므이는 왜 그랬지?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 시므이에게 한 번 실수한 인간은 같은 실수 또 저지른다는 말이 딱이다. 다윗의 가슴에 못 박더니, 지혜로운 솔로몬과의 약속을 어겼다. 상한 심령의 사람인지라, 속은 썩어 문드러져도, 속으로는 칼을 갈아도 겉으로는 웃으며 용서했다. 아비의 유지까지 있는 마당에 없는 꼬투리도 잡아 죽일 판인데, 절로 들어왔으니 결코 살려둘 수 없다. 암튼 나름 똑똑한 위인이 왜 이딴 실수 또 해서 죽을꼬.
실수가 아니다. 세계관이다. 약자는 개, 돼지다. 아들에게 쫓겨나는 다윗이나 종살이 힘들어 도망간 놈들은 밟는다. 그런 잡것은 욕을 실컷 해야 직성이 풀리고, 그런 썩을 것은 잡아다 족쳐야 성질이 풀린다. 난데없는 게 왕이 되고 지랄이야. 종놈은 죽어라 일하다 죽어야지 뭔 탈출(exodus)이야. 육시럴 놈들. 놀고들 자빠졌네. 말 한번 시원타. 그 말 참 좋다. 솔로몬 왕 보기에 네가 그렇다. 그게 네가 죽을 지당한 이율세. 잘 가라, 멀리 안 간다. (왕상 2:36-46)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한 못된 짓(게라의 아들 시므이 III)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 어느 새는 죽을 때 딱 한 번 운다고 하고, 다른 새는 그때서야 창공을 향해 날개 펴고 난다는데, 나의 마지막은 어이 없다.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는 모른다. 죽어가던 다윗이 내 손 좀 보라고. 곱게 죽지 못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음을 모르지 않는다. 내 한 짓이 있는데다가 소문이 돌았으니까. 지혜롭다는 말은 영악하다와 같은 말. 솔로몬이 내게 덫을 놓고 기다린다는 것을 내 어찌 모를꼬. 내 개처럼 살아도, 개처럼 죽지 않으리라, 속절 없이 당하지 않으리 다짐했었더랬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다윗에게도 욕을 퍼부은 나인데, 그 버릇 어디 갈까. 이 종놈의 새끼들이 일이 힘드네 마네, 인간다운 삶이 어쩌네 저쩌네, 지랄을 떨면서 도망갔길래 잡아 족치려고 늙은 내가 추노 노릇 했다가, 아뿔싸. 솔로몬과의 맹세를 어겼구나. 기드론 시내를 무심결에 건너다니. 솔로몬의 함정이 아니라 내가 무덤 파고 들어갔구나. 내가 싸질러 놓은 것을 깨끗이 치우고 가야지. 이 더러븐 세상, 살만큼 살았다. 암시렁 안 한 척했지만, 자주 악몽을 꾸었지. 언젠가 그를 만날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지.
개처럼 살았던 삶을 끝내니 후련하다. 이제 곧 그를 만난다. 죽으면서까지 내가 해댔던 저주를 잊지 못했던 그 사람, 왕이라는 체면으로 관후함을 보였고, 신앙의 이름으로 용서했지만, 생각만 해도 끓어오르는 적개심을 그는 감추지 못했나 보다. 이제 그를 만나면, 추악하고 비열한 날 용서했지만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그 사나이 발치 아래 조용히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내 흐르는 눈물로 발을 닦아주리라. 그리고 말하리라. 내 정녕 잘못했습니다. 차마 해서 안 될 짓을 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너무 아프게 했습니다.
(열왕기상 2:3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