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리를 넘어
▲안부에 내렸다가 바위 능선으로 올라간다.
▲천태산 갈림봉으로 올라간다.
▲우측은 영국사를 품고 있는 천태산 방향이다. 천태산 아래에 있는 영국사(寧國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8년(668년)에 원각국사(圓覺國師)가 창건하였고, 효소왕(孝昭王)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피난하였던 곳으로 알려졌다. 고려 고종(高宗) 때 감역(監役) 안종필(安鍾弼)이 왕명으로 탑·부도·금당(金堂)을 중건하고, 국청사(國淸寺)라고 하였다. 뒤에 다시 공민왕에 의하여 영국사로 불리게 되었다.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홍건적들이 황해도를 건너서 개경까지 육박하자 왕은 이 절로 피난하였다. 국태민안의 기도를 계속하는 한편, 이원(伊院) 마니산성에 근위병을 포진하여 놓았다. 이 절 맞은편에 팽이를 깎아놓은 듯한 뾰족한 봉우리가 있는데 왕은 그 봉우리에 왕비를 기거하도록 해놓고 옥새를 맡겨두었다. 그 뒤 마니산성의 근위병들이 홍건적을 함정에 빠뜨려 무찌르고 개경을 수복하여 난을 평정하자, 공민왕은 부처님께 감사드리고 평군민안(平君民安)이 되었으니 절 이름을 영국사로 바꾸라 하고 현판을 써준 뒤 떠났다 한다. 또, 일설에는 조선 태조 때 세사국사(洗師國師)가 산 이름을 지륵으로, 절 이름을 영국사로 하였다 하나 신빙성이 없다. 그 뒤 1893년(고종 30년) 춘계(春溪) 등이 삼축당(三祝堂)을 중수하였으며, 1934년 영동군수 이해용 등이 사찰을 중수하였다. 1942년에 옛 절터에 있던 삼층석탑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고, 1979년에는 법산(法山)이 대웅전과 요사 등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 제533호인 영국사삼층석탑을 비롯하여, 보물 제534호인 영국사원각국사비(寧國寺圓覺國師碑), 보물 제535호 영국사삼층석탑(寧國寺望塔峰三層石塔), 보물 제532호인 영국사부도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천연기념물 제223호로 지정된 수령 약 1,300년의 은행나무가 있다. 또한, 절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높이 3.5m의 석성지(石城址)가 남아 있다.
▲감투봉(敢鬪峰701m봉(천태산 갈림봉) :대성산 방향으로 좌측으로 간다. 누군가가 이정표 기둥에 감투봉이라 써놓았지만 지도상에는 아무런표식도 안되어 있다. 그런데 앱에는 감투봉이라 알려주니 헷갈린다.
▲감투봉에서 좌측으로 장령지맥 마루금은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이곳부터 지맥마루금은 천성장마 산행코스인 장령산까지 같이 가게 된다.
▲갈림봉 등로는 암릉으로 되어 있어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고
험하다.
▲상당히 가파른 된비알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그러면서 제원면을 벗어나 영동군 양산면과 금산군 군북면의 면계 아니 충청북도와 충청남도의 도계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한참을 내려오니 평평한 안부 능선이 나오는데 여기부터는 길도 좋아 알바를 할 일도 없고 장령산까지 무사히
갈 수 있다.
▲도가실 갈림길: 우측 아래쪽에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이 등로는 영동군 양상면 누교리 도가실 마을로 내려가는 등로인 듯하다. 누교리는 천태산 끝자락에 걸쳐 있으며, 마을 앞으로 천이 흐르는 산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누다리(누교), 명덕, 산직촌, 아래도가실(하도가실, 하도덕). 안내골(안내곡). 영국동(영국사), 지력골(지력동) 등이 있는데 누교는 마을에 누다리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명덕은 처음에 명씨들이 들어와 살았다고 하며. 산직촌은 옛날에 산지기들이 살았다고 한다. 영국동은 영국사(만월사)가 있는 마을이다. 지력골은 천태산 어귀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천태산을 지륵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영국사에는 공민왕에 얽힌 전해온다. 문화 유적으로 영국사 망탑봉3층석탑, 영국사 대웅전 등영국사 내에 문화재들이 많다.
▲무명봉 갈림봉 이정표(천태산3.6km, 대성산) 우측 대성산 방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