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김홍도-조선 3대 풍속화가
조선 시대 서민의 일상생활 모습을
풍속화로 화폭에 담다.
■김홍도
*시다-조선 후기
*출생.사망-1745 ~ 1806
*호-단원
*직업-도화서 화원
김홍도는 조선의 3대 풍속화 가로
영. 정조의 문예부흥기부터 순조 연간 초기에
활동했다.
스스로의 재능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고,
정조의 신임을 얻어 나중에 화원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안 기찰 방과 연풍현감 등
지방 수령까지 지냈다.
어린 시절 양반 출신의 화가로 유명한 강세황의
지도를 받아 그림을 그렸고,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어 정조의 신임 속에
당대 최고의 화가로 자리 잡았다.
산수, 인물, 도석, 불화, 화조, 풍속 등
모든 장르에 능하였고,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조선 3대 풍속화가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
※강세황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평론가로 그림 제작과
화평 활동을 했으며 당시 화단에 한국적인
남종 문인 화풍을 정착시켰다.
또한,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고, 풍속화·인물화를
유행시켜, 새로운 서양화 법을 수용하는데
기여하였다.
무동
그림에 나오는 악기들은 삼현육각으로
북, 장구, 피리(2개), 대금, 해금의 여섯 악기이다
김홍도는 영조, 정조 시대에 활동하며
조선의 화풍에 지대한 변화를 일으키며,
청나라를 통해 익힌 것으로 보이는 서양 화법을
과감하게 도입해서 색채의 농담과 명암으로
원근감을 드러낸 훈연 기법을 도입했다.
대표 작품은 <서당>, <씨름> 등이 있는데
농사짓는 사람, 빨래하는 아낙 등을 그렸으며
이는 당대로서는 상당히 놀라운 전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학자들은 김홍도의 풍속화가
정조의 개혁 정치와 관련이 깊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훈염 비법
색채의 농담과 명암으로 원근감 표현
서당
이 그림은 김홍도의 다른 그림과 같이 배경이 없어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여백으로 남겨 두고
대신 인물은 굵은 선으로 단순하게 그려
김홍도 특유의 필법을 느낄 수 있다
씨름
대장간 풍속도
자리 짜기
담배 썰기
김홍도는 전통 화단의 정수라고 평가받아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탱화, 산수화, 인물화, 영모화 할 것 없이
모든 장르에서 완벽한 화풍을 보여준다.
※탱화-불교의 신앙 내용을 그린 그림
※영모화-새와 짐승을 소재로 그린 그림
소림 명월
작호도
송하취생도
김홍도의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상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어진화사로서의 활동이다.
김홍도는 29세 때인 1773년에는 영조 어진 및
당시 세손의 초상을 그리는데 동참 화가로
참여하였다.
단원도
김홍도의 집 단원에서 정란, 강희언과 함께
모임을 가졌던 때를 회상하며 그린 그림.
초가로 지은 집이 단출해 보이지만 고즈넉하게
운치가 있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시서화(시, 서예, 그림) 3가지를
모두 취미로 삼거나 단련하는 문인들이 많아
한 장르에 통달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또한 장르 하나에 국한된 '문인 화가'들이
많았던 반면 김홍도는 '직업 화가'로서
그림에만 충실했으며 재능이 더해져 장르에
국한 받지 않고 다재다능하게 소화한
조선 시대를 통틀어서 유일무이한 화가다.
화성원행의 궤도
정조의 화성 행차 후에 편찬된 그림으로
행차의 주요 장면을 그려 넣었으며 김홍도가
총지휘를 맡아 최고의 화원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