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박지
원고지를 채워간다. 글에서 배어나는 맛과 향에 나도 몰래 취해간다. 문향은 피톤치드 보다 신선하게 서재를 채운다. 살림살이도 이웃이 좋아야 풍성해지듯 글살이도 이웃이 좋으면 빛이 난다. 문우들과 퇴고를 하면서 이름씨 하나를 제자리에 놓으니 문맥과 문향이 동시에 살아났다.
무는 배추, 고추와 함께 3대 채소로 친근한 식재료다. 열량은 낮고 비타민과 무기염류를 함유하고 있다. 「고구마 서리는 해도 무서리는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트림 한 방이면 금방 들통이 난다. 무에 고단위 디아스타제가 함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는 지방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무우는 밭에서 나는 인삼’이라느니 ‘무시 먹고 트림만 안 하면 인삼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무우 또는 무시라는 방언이 무 보다 정겨움은 더 진하다. 무를 한문으로 노복蘆菔, 나복蘿葍, 청근菁根 이라 한다. 수년 전부터 겨울이면 거의 매일 무를 날것으로 세로로 반쪽씩 먹지만 여간해서 트림이 나질 않는다. 겉모양이 균등해진 것 말고 맛은 오히려 예전만 못하다. 디아스타제를 비롯한 영양 함량이 전 같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서글프게 한다.
보통 무는 조선무로 통하며 깍두기, 짠지, 동치미, 채 나물, 말랭이, 김장속 등으로 쓰인다. 단무지는 왜무로 담는다. 총각김치를 담그는 알타리무도 있고 겉은 강화 순무인데 속은 잘 익은 수박색이 나는 수박무도 있다. 열무는 뿌리보다 잎이 번창하는 특징이 있는가 하면, 자주무는 콜라비와 혼돈될 정도로 외양이 닮았다.
기나긴 겨울밤 건넌방 구들목에서 형제들이 이불 밑에 부챗살로 다리를 펴고 노닥거렸다. 그러다 출출해지면 무서리로 허기를 달랬다. 고구마와 밤도 있었지만 앞니나 손톱으로 껍질을 벗겨 우선 먹기로는 무가 손쉬웠다. 고약한 냄새를 동반한 방기에 웃음꽃을 피웠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실소를 머금는다.
가을걷이 무렵 밭 두덩 위로 반이나 솟아오른 녹색 무를 뽑아먹던 맛은 내가 기억하는 무맛의 극치였다. 그을린 보리 까끄라기를 태워 먹던 시기엔 봄 아지랑이가 저만치 보일 듯 말 듯 했다. 갈아엎은 고구마 이삭은 대여섯 개를 모아야 한줌이 되는 잔챙이 들이었지만 흙만 털고 먹기는 굵은 고구마보다 맛있었다. 뿐이랴. 참외 서리는 악동들의 일상이었다.
초등시절 단무지는 도시락을 온통 노랗게 물들였다. 있는 집 아이들은 무말랭이무침에 달걀프라이를 얹었다. 깍두기보다 국물이 덜 흘러 고급스러웠다. 학교 앞 분식집 깍두기는 손가락 마디 크기로 자잘하였고, 설렁탕집 깍두기는 입을 제법 벌려야 할 크기에 국물이 잘박하였다.
무청으로 김치를 담글 때는 진한 멸치젓이 들어가 짭조름해야 제 맛이 났다. 멸치 뼈가 무청 사이에 걸쳐있어도 어머니는 골라내지 말 것을 강조하셨다. 김장김치 속살은 가지런히 썰어 차렸고, 명란이 섞인 아가미 깍두기는 겨울에만 접하는 별미로 작은 접시에 담아 아버지 할머니 상에 올랐다. 명태탕 이나 대구탕에는 무가 듬뿍 들어가야 시원한 맛이 났다.
엄마와 누나들과 내가 둘러앉은 두레상에는 배추포기를 감쌌던 겉 부분과 무짠지를 사발에 담아냈다. 무 속 맛이 제대로 살아있는 김치를 꼽자면 통째 담근 무저림이었다. 한 손으로는 뿌리 부분을 쥐고 한 손으로는 숟가락을 쥐고 머리부터 앞니로 베어 먹었다. 주사위 크기로 다듬어 담근 깍두기도 색다른 맛을 가졌다. 신건지는 듬성듬성 썰어야 제 맛이 났다. 동치미와 혼돈하면서 나박김치와 함께 숟가락으로 떠먹는 맛깔스런 물김치였다.
두툼하게 무편을 깔고 굵은 멸치며 고춧가루를 듬뿍 얹어 바특하게 끓여 내는 왁다지는 요즘의 부대찌개 보다 맛이 좋았다. 어쩌다 갈치나 조기라도 한 동강 들어있는 날이면 식구들은 수저질이 빨라지기 마련이었다. 급히 먹느라 잔가시라도 목에 걸리는 날에는 종일 캑캑거리기 일쑤였다. 추억을 호출하는 맛을 만나면 형언할 수 없는 아련함으로 혀는 몸살을 앓았다.
수필은 감동을 담는 기록이라서 문우끼리 퇴고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승가僧家에 법랍法臘이있고 속가에 세랍世臘이 있다. 등단 이후의 세월을 문랍文臘이라 일러도 아무도 나무라지는 않을 터. 『충무김밥』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김밥에 딸려 나온 깍두기에 대한 설명글을 늘어놓았다. 맛이 하도 선명하더라고 썼더니 김 작가께서 어정쩡한 내 글을 읽곤 그렇게 담근 김치를 「섞박지」라 한다고 일러주었다.
「섞박지」를 검색 하면서 김치 마다 내력, 종류, 담그는 법을 상식적 범주나마 제법 알게 되었다. 추운 지방에서는 백김치, 보쌈김치, 동치미를 많이 담근다. 호남지역 김치는 매운맛이 많고, 영남지방 김치는 짠맛이 많다. 중부나 그 이북 쪽에서는 새우젓, 조기젓을, 남부지방에서는 멸치젓, 갈치젓을 많이 쓴다. 「섞박지」는 경기지방에서 주로 담갔는데 피난길을 따라 남도까지 전래되기에 이르렀다.
잊었던 섞박지 맛이 다시 입맛을 돋운다. 새우젓 향기와 잘 달인 멸치젓 맛이 타임머신을 타고 침샘을 자극한다. 이름은 모르고 모양과 맛만 알았던 무김치를 우연히 글로 썼고, 문우 덕에 이름을 알게 되어 공부를 많이 한다.
반찬가계를 하는 김 보살에게 「섞박지」를 주문하였다. 요즘 무로는 맛을 내기 어렵다면서도 아름드리 플라스틱 통에 한가득 담아 왔다. 충무김밥에 따라 나왔던 「섞박지」보다 푸릇푸릇 무잎이 많이 섞였다. 「섞박지」가 품은 맛과 향이 추억에서 현실로 조급증을 일으키며 밀려들었다.
식도락도 아니고, 막연하게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어리광도 아니다. 어느 식당에서도 맛볼 수 없는 고급스런 맛이 입맛을 만족시킨다. 『충무김밥』에 끄적거려 놓은 자질구레한 글을 『섞박지』로 압축하니 글에도 맛이 살아난다. 통영 갈 일이 생기면 옛 뱃머리를 찾아 충무김밥에 섞박지를 다시 한 번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