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나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가?
2016년 12월 1일. 순천에서 완주 소양면으로 이사를 왔다. 아는 사람 없고 갈데도 없었다. 모르는 곳에 왔으니 적응도 하고 경제 활동도 하고 싶었다. 가까운 곳에 콩나물 공장이 있었다. 나는 무슨일이든 해보고 싶어 취직을 하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아무 직장이나 들어 가지 말고, 당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인 무엇지 고민해봐, 송광사 절이나 다니고 도서관에서 사람들 만나 봐.”했다. 나는 속으로 대꾸했다.‘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얼까? 이나이에 원한다고 할 수 있나? 하고 싶은 일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격증도 없고, 기술이나 능력도 없는 내가 가고 싶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래도 심심해서, 가까운 송광사 절에 가서 108배를 하러 다녔다. 소양면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날 송광사 주지 스님이 떡메마을 일자리를, 군청 일자리센터는 인덕마을 사무장 자리를 소개 해주었다. 한편 도서관에서 만난 언니는 휴양림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산과 들을 좋아하는 나는 휴양림쪽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
순천에서 살 때 미디어센터에서 월말이 되면 좋은 영화를 상영했다. 그때 상영한 일본 영화 중“우드잡”을 보았다. 젊은 남자 주인공이 첩첩산중 오지 마을에서 임업 연수 과정에 펼쳐지는 울창한 숲과 마을과 사람들 이야기이다.
그 영화를 보면서‘ 아 나도 저런 숲속에서 일 하고 싶다.’고 소망했는데 이루어졌다.
17년 2월, 드디어 입사를 하였다. 휴양림 아래 만경강 생물과학관에서 일을 하였다. 과학관에는 대형 수족관이 있다. 수족관 안에 민물고기를 전시했다. 휴양림 시랑골에 투명 어항 어포기와 통발을 이용하여 민물고기를 잡았다. 비오는날은 수족관 청소하고 맑은 날에는 꽃을 심고, 화단 잡초제거, 무궁화 전지 작업 캐라반과 야외 화장실 청소를 하였다. 캠핑객들은 식사 메뉴는 동일했다. 기본 삼겹살을 굽고, 당연히 라면에 햅반을 먹으며 일회용 쓰레기를 열심히 배출했다.
19년 2월부터는 휴양림 입구 매표소에서 손님들 입장료를 받았다. 휴양림 내에는 숙박시설, 하루 정자, 저수지 산책. 짚라인등을 즐기러 오는 곳이다. 톨케이트 노동자가 부럽지는 않았지만, 다른 곳에서 일하는 매표 직원들을 보면 편해 보였다. 개인공간에 눈치볼 상사와 동료가 없다. 매표 일은 혼자 손님들 상대를 하였다. 내외부에는 CCTV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사무실에서 나를 지켜는 것이다. 궂이 불편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악착같이 입장료를 받으려 했다. 시간이 흐르자, 군민이나 65세 노인들은 신분증 없어도 입장을 허용했다. 그런데 군청직원과 시의원, 기자들이 신분을 밝히고 무료 입장 시켜달라고 한다. 일반 시민들은 당연히 입장료 내고 들어온다. 그래서 나름에 기준을 정했다. “공적인 일인가요? 사적인 일인가요? ”말했지만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주로 책을 읽었다.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졌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불편했다. 나만 편한 자리에 있는 것 같아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손님들이 음료수를 주는 것도 불편했다. 내가 백조가 된 것으로 착각을 했다.
우연히 담당 관리자와 농담을 하면서 다른 곳에 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말을 받아 관리자는 나를 숙박시설 청소로 배치했다. 이 관리자를 나는‘길동’이라 부른다. 객실 관리하는 곳에는 60세 이상 언니들 5명, 60세 이하 직원 3명 이다.
새학기 학교처럼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적응해야 했다. 언니들과 함께 객실 청소를 하였다. 야외 화장실 청소, 휴양림 환경 관리, 숙박객이 사용한 방 청소등등 할 일이 많았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2월부터 5월까지 손님을 받지 않았다. 우리는 넓고 넓은 휴양림 산속을 헤메 다녔다. 산 속에 무궁화 전지 작업, 저수지 산책로에 있는 상사화를 캐서 지압로 옆에다 심었다. 그동안 손을 대지 않았던 울타리 나무들을 톱과 전지 가위로 잘랐다.
일도 일이지만, 언니들 개성이 강하고 경험이 축적되어 아는 것도 많다. 시어머니 다섯 분을 모신 듯 했다. 생각과 일하는 방법도 달랐다. 자기랑 맞는 사람과 배척하는 사람들 사이에 시기와 질투가 오고 간다. 드라마 만큼이나 오해와 질투속에 흥미진진하다.
처음에 나는 길동이를 무서워하며 미워했다.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 내 동의를 받지 않고 객실청소로 배치해서 기분이 상했다. 나도 객실 청소로 옮겨 달라고 할 참이였다. 나는 소 닭 보듯이 인사도 하지 않았다. 사람을 미워하니 불편하고 힘들었다. 일하는 언니가 길동이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해 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굳어진 마음이 풀렸다. 마음을 여니 길동이의 본 모습이 보였다. 지금은 길동에게 말대꾸를 하고 농담 주고 사이가 됐다.
20년 6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풀렸다. 휴양림내 펜션도 다시 문을 열었다. 당연히 객실 청소를 할거라고 생각했다. 휴양림 돌아가는 상황도 알게 되고, 말많은 언니들 성격도 대강 파악을 했다. 2인 일조 객실 청소도 언니들과 손발을 얼추 맞추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위치가 또 갑자기 바뀌였다. 매표소 앞에서 발열 체크를 하란다. 길동이 왈 “ 나이 먹은 언니들을 최전선에 보내겠어. 그나마 젊고 자전거 타고 운동도 하잖아.”‘’나 참 어이가 없네”
그리하여 출근하면 아홉시에 녹색 파라솔을 펼치고 야외 테이블에 앉는다. 휴양림 아침은 마치 여행을 온 듯 하다. 신선한 바람결에 나뭇잎 살랑거리는 소리와 각가지 새들이 숲 속을 배회한다.
숲속 곤충들이 날아다니고, 기어다니고, 다람쥐와 고라니가 가끔 달려 다닌다. 더운날 점심시간 부터는 곤욕스럽다. 에어콘 빵빵한 차안의 손님들에게 방문일지와 체온계를 들이 댄다. 태양열과 복사열, 차량에서 나오는 열과 매연으로 얼굴이 따갑고 귀는 시끄럽다.
올 여름도 열심히 일하시는 모든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무사하고 행복하시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