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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찬란한 역사 유산 깊이 새겨 후손에 전하자.
《ㅡ. 꼭 일독 하시고 가슴에 새겨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자 .ㅡ》
인묵 김형식
●.우리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동이민족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9200년의 장구한 역사속에서 인류의 주역이 된 조상님들의 빛난 업적이 있음에도 이를 잊고 살지 않는지. 여기에 그 훌륭한 흔적 발췌해 올리니 참회하는 마음으로 우리 다같이 가슴속에 새겨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자 .
1).태호복희(太昊伏羲,BC3528~BC3413)씨를 모르는가.
이분은 대한민국 태극기의 원조(原祖)시다.
배달국 5세 태우의(太虞儀,BC3686~ BC3512) 환웅의 막내아들 태호복희(太昊伏羲,BC3528~BC3413) 씨의 하도와 팔괘로 비롯된 역철학은 서양과학의 발전에 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가 그린 하도(河圖)를 보면 북방에 1水가 있고, 남방에 2火가 있고, 동방에 3木이 있고 서방에 4金이 있다.
또 1水 2火 3木 4金은 춘하추동과 동서남북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데 1 2 3 4를 다 더하면 10 이 된다.
따라서 10 이라는 개념은 춘하추동과 동서남북, 즉 시간과 공간을 통일하고 조화해서 인간과 만물을 성숙시키는 perfect number, 완전수가 되는 것이다.
태호 복희씨는 송화강에서 하도(河圖)를 계시받아 지금의 대한민국의 태극기의 팔괘를 최초로 그으신 분이다. 태극·음양·오행·팔괘의 창시자이다.
뒤에 역학을 계승 발절시켜 나간 성인들이 문왕, 주공, 공자, 소강절, 김일부 인데, 모두 우리 동이족 혈통 출신이다. 주역(周易)이라 불리게 된 것은 복희 8괘가 후일 신농씨를 거쳐 주周나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자연의 변화 이치를 담고 있는 역(易)은 천지만물과 인간이 나아갈 법도를 밝히고 있다. 역(易)은 동방의 성철(聖哲)들에 의해 그 맥이 이어져 왔다.
2). 태호복희씨의 하도와 팔괘로 비롯된 역철학은 서양과학의 발전에 까지 큰 영향을 미치다.
*.도서관(圖書館)이라는 말의 어원,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아인슈타인, 닐스보어 그리고 라이프니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들여다 보자.
아인슈타인이 자기의 학설에 붙일 명칭을 고심하다가 팔괘의 효를 구성하는 음양 개념에서 힌트를 얻어 ‘Relativity’ (상대성) 이라는 단어를 가려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는 음양의 이치를 담은 태극문양에서 힌트를 얻어 양성자(+)와 전자(-)로 이루어진 원자모델을 발견하는 업적을 세웠으며, 후에 태극마크를 가문의 문장(紋章)으로 삼기도 했다.
빅뱅 이론의 거장 스티븐 호킹은 ‘양자역학이 지금까지 해놓은 것은 동양철학의 기본개념인 태극, 음양, 팔괘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유럽의 과학사상의 연원을 상세히 추구해 가면, 모두가 ‘라이프니쯔’로 통한다고 말한다.
라이프니쯔는 1671년 25세때 세계에서 처음으로 4칙연산을 할 수 있는 계산기를 발명했다.
1701년 ‘강희제’의 측근으로 있던 선교사 ‘부베’로 부터의 편지에서 우연히 두 장의 ‘태극도’를 입수 하였다.
그는 태극도의 64괘의 배열이 바로 0에서 63에 이르는 2진법 수학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라이프니쯔는 ‘나의 불가사의한 새로운 2진법의 발견은 5천 여년 전 고대 복희왕이 발견한 철학서이며 문학서인 주역에서 나온 것이다’ 라고 고백하였다.
이와 같이 태호복희씨의 하도와 팔괘로 비롯된 역철학은 서양과학의 발전에 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태호복희씨는 자랑스러운 우리 조상이다.뿌듯하지 않는가
3).마방진(魔方陣,magic square)은 낙서(洛書)로부터 유래하고 있다. 약 4천여년 전, 우(禹) 임금이 치수공사를 하던 중에 물 속에서 나온 거북이 등에 있는 무늬를 보고 낙서洛書를 그리게 되었다.
낙서洛書에는 1에서 9까지 수가 배열되어 있는데 276 951 438, 이것을 서양에서는 마방진(魔方陣magic square)이라 하며 교과서에도 나온다.
미국의 수학자 프랭크 슐츠F.Swetz는 『낙서洛書의 유산Legacy of the Luoshu』에서 ‘낙서는 비단길을 통해 동서양을 왕래한 아랍인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인도, 동남아, 중동, 유럽 문화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2,500년 전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도 이것을 받아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피타고라스가 자연수의 체계에 눈을 뜬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오늘의 서양 과학문명은 끊임없이 피타고라스로부터 영감을 받아왔다고 했다.
낙서洛書의 수를 그대로 옮기면 3차 마방진이 되는데, 가로·세로·대각선의 합계가 모두 15가 된다. 마방진은 인도·페르시아·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중동과 유럽으로 전해졌다. 마방진은 한마디로 숫자 속에 숨겨진 우주의 질서와 균형을 의미한다. 참으로 자랑스럽고
경의 스럽다.
●.주역으로 본 지구촌의 앞날
1).현대과학에서 밝히고 있는 시간의 큰 주기(Cosmic Year)
과학에서는 지구 탄생 이래로 빙하기가 다섯 번에서 일곱 번 있었다고 하고, 또 지구의 남극과 북극이 뒤바뀌어지는 큰 변화가 자그마치 2백 회나 있었다고 한다.
남극대륙의 빙하에 3,623m나 되는 구멍을 낸 러시아, 미국, 프랑스의 공동 탐사팀은 빙하에 남겨진 기록으로부터 335,000년 245,000년 13만5,000년 간격으로 빙하기와 간빙기 사이의 전이를 발견하였다.
(Bernhard Stauffer. "Climate change: Cornucopia of ice core results". Nature 399. 1999. 412쪽)
가장 널리 인용되고 있는 2만에서 2백만 년 전 플라이스토신기(更新世)의 빙하량 변화를 조사한 SPECMAP(Spectral Mapping Project) 시간 척도는 지난 해빙기 중심을 12만7,000년으로 보고하고 있다.
(J. Imbrie. et. al. Milankovitch and Climate. edited by A. L. Berger et. al. Reidel. Dordrwcht. 1984. 269쪽: J. Imbrie. et. al. "XX the structure and origin of major glaciatiXX cycles: I. Linear respXXses to Milankovitch forcing". Paleoceanography 7. 1992. 701쪽)
더욱이 산호층 단구의 연대는 12만8,000 ~ 12만2,000년 전 해수면이 최대 정점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C. H. Stirling. et. al. "Timing and duratiXX of the Last Interglacial:Evidence for a restricted interval of widespread coral reef growth". Earth and Planetary Science Letter 160. 1998. 745쪽)
과학자들은 ‘지난 100만년 동안 지구에 7번의 빙하기가 찾아왔었다’고 하는데, 약 14만년에 한번씩 빙하기가 도래했다고 한다.
2).제3의 역(易), 후천(後天) 우주 가을의 역易이 정역(正易) 팔괘다
선천(先天) 우주 봄여름의 이치를 나타내는 역易인 복희팔괘와 문왕팔괘를 이어 등장한 제3의 역(易), 후천(後天) 우주 가을의 역易이 정역(正易) 팔괘다.
3).정역팔괘를 밝힌 인물이 바로 일부(一夫) 김항(金恒) 선생이다.
150여 년 전, 다가 올 후천 가을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는 정역팔괘를 밝힌 인물이 바로 일부(一夫) 김항(金恒) 선생이다.
대학자 김일부(金一夫 ·1826~1898)선생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지금의 충남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 당골의 선비 가정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성리학을 깊이 연구했다.
선생이 태어난 당골의 서쪽에는 띠울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 일찍이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 선생이 국운이 쇠미해짐을 보고 서울에서 낙향하여 은거하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대학자 이서구(李書九)선생의 학통을 계승하여 천문(天文), 역산(曆算), 역학(易學), 시문(詩文)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이운규선생의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수증(守曾), 호는 연담(蓮潭). 운규(雲圭)는 별칭이다.
세종의 열여덟째 아들인 담양군(潭陽君)의 13대손으로, 충남 천안시 목천에서 태어나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감사와 참판을 지냈다.
그는 김일부선생 뿐 아니라 후일 동학(東學)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崔濟愚), 남학(南學)의 김광화(金光華)와 같은 걸출한 인물들의 스승이 된다.
김일부 선생이 36세 되던 해, 하루는 연담 선생이 최제우, 김광화, 김일부를 차례로 불러 말하였다.
최제우와 김광화에게는‘각기 떨어져가는 선도(仙道)와 불도(佛道)를 대표하여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니 주문을 외우고 깊이 근신(謹愼)하라’고 경계하였다.
그리고 일부에 대해서는 “그대는 쇠하여 가는 공자의 도를 이어 장차 크게 천시를 받들 것이니 이런 장할 데가 있나. 이제까지는 ‘너’라 하고 ‘해라’고 했으나 이제부터는 ‘자네’라 하기도 과만한 터인 즉 ‘하소’라 할 것이니 그리 알고, 예서(禮書)만 자꾸 볼 것이 아니라『서전(書傳)』을 많이 읽으소.
그러노라면 자연 감동이 되어 크게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고, 후일 정녕코 책을 지을 터이니 그 속에 나의 이 글 한 수만 넣어 주소.”하고 글 한 수를 내어주니 이러했다.
.“관담막여수(觀淡莫如水)하고 호행의행인(好德宜行仁)을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하니 권군심차진(勸君尋此眞)하소. 맑은 것을 보는 것은 물만 같음이 없고 덕德을 좋아하는 것은 인仁을 행함이 마땅하구나.
빛이 천심월(天心月)에서 동하니 그대에게 권하노니 이 진리를 찾아보소.”연담 선생은 이 글을 남겨놓고 마을을 떠나 행방을 감추었다.
4).공부에 일심한 김일부 선생
일부 선생은 연담 선생의 유훈에 따라 예학(禮學)과 문사(文詞)에 힘쓰던 종래의 공부 방법을 바꿔『서전』을 읽고『주역』을 탐구하였다.
또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수행법으로 정신과 육신을 계발하기위해 조석으로 뒷산에 오르내리며 어떤 때는 날밤이 새도록 가무(歌舞)를 하다가 새벽녘에야 갓에 서리를 하얗게 싣고 도포 자락이 찢어진 채 돌아오곤 했다 한다.
김일부 선생은 공부에만 정진할 뿐 가사를 돌보지 않아 집안 살림이 극히 가난하였다.
그 부인이 겨울에도 맨발로 짚신을 신고 다녔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일반 선비들처럼 글만 읽은 것이 아니라 뒷산으로 가서 춤추고 노래 부르기를 반복하자 종문(宗門)에서도 이단지학을 한다하여 족보에서 이름을 빼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공부에 진력했던 선생은 후에 자신의 마음을『정역正易』에 이렇게 써놓았다.
六十平生狂一夫는 自笑人笑恒多笑라. 笑中有笑笑何笑오. 能笑其笑笑而歌를.
육십평생에 미친(狂) 한지아비(一夫)는 스스로 웃고 남이 웃으니 항상 웃음이 많구나. 웃음 속에 웃음이 있으니 무슨 웃음을 웃는고. 능히 그웃음을 웃고, 웃으며 노래하는구나.『 ( 正易』「十五一言」중에서)
선생은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의 열쇠를 풀기 위해 더욱 정진하여 주야로 가무하면서 탐구에 진력을 다하는 가운데, 눈을 감으나 뜨나 환하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신이 갈수록 청명해졌다.
일부 선생의 끊임없는 정진으로 36세로부터 19년 만에 드디어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으니, 그 때가 선생이 54세 되던 1879년이었다. 그리고 기묘(1879)년 이후부터는 눈앞에 이상한 괘(卦)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천지가 모두 이 낯모르는 팔괘의 상으로 뒤덮여보였다.
혹시 가무에 너무 집중하여 기력이 쇠한 탓이 아닌가 하여 음식을 먹기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혹시 주역에 그런 괘도가 언급되어 있지 않는가 여러 차례 찾아 보기도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어느 날, 『주역』「설괘전(說卦傳)」에서“신야자(神也者)는 묘만물이위언자야(妙萬物而爲言者也)니라.
신(神)이라는 것은 만물을 신묘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라는 대목에 와서“ …고(故) 수화상체(水火相逮)하고 뇌풍이 불상패(雷風不相悖)하고, 산택이 통기(山澤通氣) 연후(然後)에야 능변화(能變化)하여 기성만물야(旣成萬物也)니라.
그러므로 수화(水火)가 서로 미치고 뇌풍(雷風)이 서로 어그러지지 않고 산택(山澤)의 기가 통한 후에야 능히 변화하여 이미 만물이 완성 되느니라”는 말씀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괘도와 완전히 부합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성인이 이미 주역에 말씀하신 것이니 그릴 수밖에 없다’하여 재종질인 김국현으로 하여금 그리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문왕괘도의 뒤를 이어 나타난 제3의 괘도인 정역팔괘(正易八卦)이다.
팔괘도를 다 그리자 홀연 공자가 나타나 일부에게 “내가 일찍이 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것을 그대가 이뤘으니 이런 장할 데가 있나!”하고 무한히 찬양한 후 ‘일부(一夫)’라고 호칭을 했다.
일부(一夫)라는 호칭은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문득 들은 일이 있었으나 그것이 자신에 대한 호칭인줄 몰랐다가, 이제 공자가 말씀하시니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눈앞을 꽉 채우던 괘상은 이후로도 3년 동안이나 어른거리다가 사라졌다.
1881년 선생은『正易 정역』의 서문격인 <대역서(大易序)>를 저술하였다. 이 글에서 선생은 역(易)은 역(曆)이라는 것과 공자는 천지유형지리(天地有形之理)를 통달했는데, 자신의 도는 천지무형지경(天地無形之景)까지 통관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59~60세(1884~1885년)에 정역(正易)을 선포하였다. 이후 1886년에 제자들에 의해 목각판으로 초판이 발행됨으로써『정역正易』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후천개벽의 이치를 밝힌『正易 정역』
1).정역<正易>은 무엇인가.
기존의 역(易)과는 어떻게 다른가?
정역(正易)은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세상의 미래상을 담고 있다. 그 핵심은 앞으로 천지의 시공질서가 바뀌어 1년이 360일이 된다는 것이다.
공자가 서술한『주역』「설괘전」을 보면 앞으로 지구 1년의 날수가 365일이 아닌 360일로 바뀜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
乾之策 二百一十有六 坤之策 一百四十有四 凡三百有六十當期之日.
건지책 이백일십유육 곤지책 일백사십유사 범삼백유육십당기지일『( 주역』「설괘전」) 그러나 이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풀지 못한채 2천여 년을 내려왔는데, 이를 김일부 선생이 비로소 밝혀낸 것이다.
帝堯之朞는三百有六旬有六日이니라
제요지기는삼백유육순유육일이니라
帝舜之朞는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이니라
제순지기는삼백육십오도사분도지일이니라
一夫之朞는三百七十五度니十五를尊空하면
일부지기는삼백칠십오도니십오를존공하면
正吾夫子之朞는當朞三百六十日이니라.
정오일부지기는당기삼백육십일이니라.『( 正易』「十五一言」)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온 지구 자연환경은 360일에서 5와 1/4이라는 윤도수가 붙어서 불안정한 천지질서에 의해 인간은 고통과 번민 속에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 본래의 천지의 운행도수인 360도로 천지일월이 운행하게 되면 모든 인간은 정음정양의 천지질서 속에서 성숙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선천 5만년 상극의 주역(周易)시대가 후천 5만년 상생의 정역(正易)시대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슬기둥의 글 <주역으로 본 지구촌의 앞날>에 고증된 역사를 첨 하였음.)
(마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