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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경남의 문학비를 찾아서 ▒ 밀양 편 / 경남문학 가을호
운영(이두애) 추천 0 조회 170 11.10.30 11:32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경남의 문학비를 찾아서 ▒ 밀양 편

충절의 고장 밀양의 문학비를 찾아서

 

                                                                                              이두애

 

밀양은 충절의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고,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문화의 향기가 그윽한 곳이다. 게다가 발길 닿는 곳 마다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밀양은 문화재’라고 말하고 싶다. 문학시비를 찾아서 정리해 보니 밀양을 빛낸 당대의 문장가들은 역사적 인물이었다. 시비가 있는 이곳들은 유형문화재, 문화재자료, 기념물로 등록된 곳이다. 밀양출신인 그들의 업적과 작품을 소개하려한다. 이분들의 빼어남 때문에 근대문인들의 시비조성이 미흡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변계량<고시조>시비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대문장가였던 변계량선 -

 

밀양시 초동면 신호리 입구 큰길가에 변계량 비각이 있다. 일명 3현비각이라고 불리며, 고려말 판서 변옥란과 그의 아들 춘당 변중량, 춘정 변계량의 유적을 기념하기 위해서 1946년에 후손들이 그 행적을 기록하여 세운비석이고 뒤쪽에 시비가 있다.

변계량(1369-1430)은, 자는 거경, 호는 춘정, 시호는 문숙. 공의 나이 17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교주부, 진덕박사 등을 지내셨다. 태종의 뒤를 이어 세종시절에는 성균관 대사성,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의정부 참찬 등의 고위직을 역임하였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를 풍미하든 정도전과 권근을 중심으로 하는 관인문학가의 대표 인물 중의 한분으로 일컬어질 만큼 문장과 학문에 뛰어난 분이다. 선비들이 우러러 보는 문장가 중의 문장가로 추앙받는 관직인 대제학을 20년 가까이 역임하였다. 여러 차례의 과거시험을 관장하며 인재를 발굴하여 나라의 힘을 키우는 일에 기여하셨다. 당시에 명나라로 보내는 각종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선생의 손을 거쳐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대표저서 <화산별곡>과 자신의 문집인 <춘정집>이 전한다.

사진1) 변계량 선생의 시비, 변계량비각

선생이 남긴 고시조 한수를 소개한다. 이 시조는 청구영언에 실려 있다. 비문에는 3개의 시가 있는데 마지막 시를 해석하면 이렇다.

내게 좋다 하고 남 싫은 일 하지 말며 / 남이 한다 하고 의(義)아니면 쫓지 말라 /

우리는 천성을 지키어 생긴 대로 하리라 /

이 시는 선생의 타고난 착한 성품과 됨됨이를 그대로 엿 볼 수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교훈이 되는 시이다.

 

?점필재 김종직선생의 문집책판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 교육자, 작가-

 

김종직선생의 자취는 부북면 후사포리에 있는 예림서원과 제대리에 추원재라는 생가지에 가면 느낄 수 있다. 자는 계온·효관, 호는 점필재, 시호는 문충, 본관은 선산이다. 영남사림학파의 개조인 선생의 시문을 모은 문집책판이 있다. 시집23권, 문집2권이며 무오사적, 문인록 등이 부록으로 붙어있고 예림서원에 보존되고 있다. 고려 말 정몽주·길재의 학통을 이은 아버지로부터 수학, 후일 사림의 조종이 된 그는 문장·사학에도 능하였다. 절의를 중요시하여 도학의 맥을 이어가는 중추적 구실을 하였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나 많은 시문과 일기를 남겼다. 특히 신종호 등과 함께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사실을 보더라도 문장가로서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무오사화의 단서가 된 <조의제문>은 중국의 고사를 인용, 의제와 단종을 비유하였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한 것으로, 깊은 역사적 식견과 절의를 중요시하는 도학자로서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2)김종직선생의 문집책판, 점필재김종직 동상

<지덕가>를 소개한다.

강물의 치렁치렁함이여 / 그 어찌 다함이 있으랴

해와 달의 아름다운 빛이여 / 오로지 임금의 큰 덕이로다.

이시는 청구풍아에 수록되어 있다. 삼국시대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초에 이르는 동안 우리나라 명현이 지은 시를 뽑아서 평석을 붙인 판본이다.

 

?사명대사 표충비, 유허비

-조선중기 승려. 의승병대장,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명승-

 

사명대사는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에서 출생하셨다. 이름은 응규이며 자는 이환, 호는 사명당, 송운, 법명은 유정, 시호는 자통혼제존자이다. 사명대사의 유적지는 무안면에 표충비, 고라리에 생가지를 비롯한 유허비, 사명대사유적지 조성기념비, 표충사 등 여러 곳에서 업적을 찾을 수 있다. 대사는 금강산에서 수도하던 1590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건봉사에서 승병을 규합, 1593년 평양성 탈환작전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특히 1604년 강화교섭을 위해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 전란 당시 잡혀간 3천5백여 명의 동포들을 데리고 귀국했다. <사명집책판>시문집 6권이 전하는데 오언시, 칠언시, 잡문과 시가 실려 있다. 대사는 “번뇌를 하지 않고 쓴 글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사진3) 사명대사의 시, 사명대사유적지 조성기념비, 유허비, 표충비

표충비는 나라에 큰 사건이 있을 때를 전후하여 비면에 자연적으로 땀방울이 맺혀서 마치 구슬땀처럼 흐른다. 사람들은 나라와 겨레를 염려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고 신성시하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54년에 걸친 승려생활을 하신 행적과 임진, 정유왜란 때에 빛나는 구국의 충렬을 찬양한 내용이다. 이의현이 글을 짓고 김진상이 글씨를 썼다.

큰 우주의 공간은 다함이 없고 / 적지는 냄새와 소리도 없는 것 / 이제 설법을 듣고 무엇을 번거로워 물으리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속에 있네 /

이 시는 사명대사 62세 때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아들에게 선학을 가르쳐 깨우치게 한 내용이다. 불도를 가르쳐 준 시이다.

 

?이재금<도래재>시비

-밀양의 향토시인 밀양남천강변에 유유한 문학얼-

 

이재금시인은 1941년 밀양시 부북면 오례리에서 태어났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후 부산에서 교편을 잡았다. 귀향하여 세종고, 밀성여중 밀성여상 등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1988년에 '밀양문학회'를 결성하여 (말똥 굴러가는 날) 등의 시집을 상제함으로써 한국 시단의 주목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나아가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활발한 문단 활동을 하던 중에 애석하게도 1977년 신병으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이재금의 마지막 시집(나는 어디 있는가)에 <작별>이라는 시는 현실과 작별하려니 사랑하는 사람, 어머니, 꾀꼬리, 고향집에 있는 호박모종까지 잊을 수 없음을 쓸쓸하게 표현한 것이 아련하다. 생전에 뜻을 같이 했던 문우. 친지. 후학들이 추모의 정을 금할 길 없어 유고시집(나는 어디 있는가)를 출간하였다. 아울러 남천강 기슭에 이재금 시비를 세웠다. 그의 시성과 발자취는 이 강물과 더불어 길이길이 흐르고 있다. <도래재>문학시비를 소개한다.

 

사진4)이재금<도래재>시비,이재금<도래재>시비

언양 땅 넘어가면 석남고개 / 밀양 땅 넘어오면 도래재고개 / 일흔일곱 굽이굽이 소쩍새 울어 / 실안개 피는 자락 눈물 맺힌다 / 돌아서서 가신님 돌아오는 고개/

도래재는 밀양시에서 24번 국도를 따라 산외면 금곡리에서 1077호 도로로 내려서서 표충사 쪽으로 간다. 산동초등학교를 지나 삼거동에서 좌측으로 계속가면 태산준령 도래재를 넘어 가게 된다.

 

문학과 밀양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밀양 편 문학시비 조사에서 참 안타까운 부분이 많았다. 문화와 예술이 살아있는 곳이라지만 문학부분에서 다른 시군에 비해 너무나 미흡했다. 이재금 문학시비는 현대문인의 시비로 밀양에서 유일하다. 시비가 있는 남천강변을 따라 야외조각공원이 잘 꾸며져 있다.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시비 하나씩 조성해 누구나 시를 읽을 수 있는 문학공간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밀양출신인 오규원시인, 이제하 작가를 비롯해 출향문인들은 많지만 이들의 발자취를 찾을 곳도 없다. 문학은 모든 예술의 어머니이다. 있어야 할 유명문인 시비, 생가지, 문학관, 예술촌 하나 없지 않는가! 올해 10월은 밀양예총이 3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문인들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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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1.10.31 13:09

    첫댓글 ㅁ모양이 ?로 표시 되네요. ~~~

  • 11.11.01 17:37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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