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상공소(1)
소재지:경북 칠곡군 가산면 학산리 토실
본래 학산리는 인동군 석적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둔현동과 원주동 일부를 병합하여 학산의 이름을 따서 학산리라 하고 칠곡군 가산면에 편입되었다. 한편 이곳은 석적면 성곡리와 가산면 학산리, 학상리의 경계에 있는 유학산(830m)의 북쪽 뒷편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에는 꽤 큰 들이 있다.
천주교 신자가 처음 살기 시작한 것을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이미 1900년대 초에 하판리의 인동 장씨 몇 가정이 살았다. 마침 그 무렵 자수성가하여 살림이 부유한 김기생이란 분이 1910년경 여기서 조금 떨어져 있는 인동 옥계동에 사는 예배당 신자들의 권유로 몇 차례 예배당에 나갔다. 그는 이웃 마을인 하판리에 사는 천주교 신자인 인동 장씨와 함께 우연히 대구까지 동행하게 되어 계산성당 부근에서 볼 일을 보고 성당에 들렀는데, 마침 미사성제가 봉헌되고 있었다. 미사에 참례한 후 이 종교가 참된 종교라는 것을 깨닫고 바로 예비자 교리를 받기 시작하여 38세인 1920년경 ‘클레멘스’라는 본명으로 영세 입교하였다. 그는 영세를 한 후에 즉시 이 지방 지방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대구주보 1256호 참조
학상공소(2) 소재지: 경북 칠곡군 가산면 학상리 토실
신자수가 차츰 늘어남에 따라 1924년 경부터 김기생 클레멘스의 집에서 공소 예절을 하였다.
판공성사 때에는 가실(낙산)성당 신부님을 모셔와 미사도 봉헌했다. 그는 당시 왜관성당 정재문 안드레아 회장, 김석숭 가밀로 전교회장, 인동 금전동 방사권 베드로 회장 등의 지도와 도움으로 전교에 열을 올려 부근의 석우동, 하판, 심곡, 학하, 신장, 칠곡과 멀리 군위, 선산 등지를 왕래하면서 전교활동을 펼쳤다.
1928년 왜관성당이 설립되자 그 관할 공소가 되었으며 1957년 칠곡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됨에 따라 칠곡성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1958년 칠곡성당 모안세 안스가리오 신부의 도움으로 대지 200평(김기생 클레멘스 공소회장의 소유) 위에 15평의 공소 건물을 세웠다.
대구주보 1258호 참조
학상공소 (3)
소재지:경북 칠곡군 가산면 학산리 토실
그후 해평 및 선산성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가 지금은 동명성당(1978년 7월5일 본당승격) 관할 공소가 되었다.
한편 1964년, 김 클레멘스 회장이 서거한 후 장상훈 프란치스코 회장 때인 1965년경에 공소 건물을 당시 교통이 편리한 하판동에 새로 지었다. 1966년, 군 장교로 제대한 김항묵 라우렌시오(김기생 클레멘스 회장의 아들)가 새 공소회장이 되었다.
1957년부터는 칠곡성당 김 베드로 회장이 나와서 매주 공소기도를 했으며 이어서 이곳 출신인 마리아 고레띠가 여전교회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68년에는 마 아녜스가 공소 전교회장으로 임명되어 얼마간 이 공소에서 전교회장을 했다. 그때 김기생 클레멘스 공소회장 집에서 공소 교회묘지터를 헌납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공소의 젊은이들에게 전교가 잘 되어 당시 학교에 다니던 황 아우구스티노, 이 암브로시오, 장 예로니모 등 학생들이 많아서 활기찬 큰 공소였다. 부근 마을에 전교가 잘 됨에 따라 1960년대 중엽에 장천면에 장천공소가 설립되었다. 특히 1968년, 칠곡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박병원 필립보 신부의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대구주보1259호 참조(2002년 8월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