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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은 2014년 1월15일 아침 8시5분 인천공항에서 태국행 진에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더구나 이번 여행은 태국과 캄보디아 2개국을 여행하는 상품이다.
여행전 난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내와 딸만 여행를 권했는데 아내와 딸은
극구 함께 가자는 성화에 할수없이 함께 하기에 이르렀다.
진에어는 내가 알던 바와 달리 비행기의 좌석수가 적을뿐 비행기의 좌석 공간이 좁은것은 아니었다.
6시간의 긴 비행끝에 태국시간으로 정오 12시에 태국 수완나 품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가이드를 만나고 버스에 타보니 하나투어 전체인원은 28명이었다.
인원이 많으면 통제가 어렵고 시간을 안지켜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아서 염려되었다.
가이드가 자신을 소개한 후 태국은 국토가 한반도의 5배 크기인데 반해 인구는 6700만여명 밖에
안되어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은편이라 소개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15년전에 한번 왔었고 이번이 두번째 태국여행이어서 태국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첫 관광으로 태국의 한강 격인 왓아룬 강으로 가서 배를 타고 수상가옥 관광에 나섰는데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강 양쪽에 있는 수상가옥을 관광하는 것인데 15년전에 비해 수상가옥이
급격히 줄어 수상가옥 관광이 아니라 강 드라이브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상관광이 끝난후 왓포사원이라는 곳에 갔는데 왓포사원은 방콕에서 왕궁사원 다음으로 크고
오래된 사원으로 왕궁 바로 옆에 있었다.
왓포사원은 방콕이라는 도시가 성립되기전 아유타야 시대때인 17세기에 만들어진 사원으로
열반을 의미하는 와불을 모시고 있어 열반사원이라고도 한다 하며
또한 이곳은 태국 전통 마사지사를 길러내는 교육장으로 명성이 높다고 한다.
특별히 멋있다 거나 감명 받은 것은 없는것 같고 불교 국가답게 부처님 불상이 많고
특히 높이가 104미터에 달하는 높은 탑들이 많았다.
사원 벽과 지붕에 도자기 조각들이 붙어 있어 햇빛을 받으면 반짝거려 아름다움을
더하고 야간에는 인공조명을 받아 다양한 색채로 변모한다고 한다.
15년전에 왔을때는 왕궁사원을 관광을 했었는데 왕궁사원이나 왓포사원과 그리 큰 차이를 못 느낀것 같다.
사원 관광이 끝나고 저녁식사를 하러가는데 태국의 퇴근시간과 맞물려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20분거리를 1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태국도 원래 교통지옥의 나라중 하나란다.
메뉴는 쌈밥이었고 우리나라의 쌈밥 보다는 현저히 맛이 떨어졌다.
언제나 해외여행중 먹는 한식은 20% 부족한 맛이긴 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우리일행들과 서로 말없이 서먹했었는데 식사중 누군가 공기밥을
추가로 주문하려 쭈뼛 거리기에 내가 큰소리로 엉터리 코믹 태국말로 공기밥을 주문하니 순간
모든 일행들은 저사람이 태국말을 할줄 아나...?
하나 하는 눈초리로 의아해 하는데 잠시후 또 누군가 김치를 주문하려기에 내가 또 좀전처럼 엉터리 태국말을 했더니
그제서야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그이후 난 우리팀에 개그.코메디언이 되어 4박 5일 내내 웃긴사람으로 찍혀 팀의
분위기 메이커가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후 사람들은 나와 눈만 마주쳐도 웃음보를 참지 못해 했다.
식사후 가이드는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지대인 아란으로 이동 할 것인데 버스를 4시간 타야한다는 말에 일행들은
모두 놀랐다. 놀라는 이유를 굳이 대자면 6시간 넘는 비행으로 피곤한데 또 4시간의 장시간 이동이라니...
버스에 오르기전 난 아내와 딸에게 버스의 맨 뒷자리를 확보에 힘쓰라고 말하고 결국 뒷자리 확보에 성공했다
그렇게 뒷자리에 급급하는 이유는 장시간 차를 타고 가다보면 허리도 아플것이고
또 피곤할때 누워자기가 딱 좋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버스는 출발했고 지루할 정도로 지겹게 달렸다.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도로를 쉼없이 끝없이 달렸고 허리는 아팠고 피곤이 엄습해 왔지만 나 혼자만이
잠을 자지 않고 여행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간다는 기대에 그나마 간혹 불빛이 비치는
주유소나 상점들이 보일때마다 몸을 이리저리 구부리며 밖을 보려 안간힘을 썼다
일행들은 대부분 잠들어 있었지만 나 홀로 일행을 지키듯 그렇게 힘들게 4시간후 도착한 호텔은 남루했다.
피곤한 몸을 편히 쉰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일행들은 어이가 없어 가이드에게 호텔이 왜 이렇게 안좋으냐고
물었더니 국경지역이라 좋은호텔이 없다는 말과 내일아침 식사를 끝내고 7시30분 출발이라는 말에 일행들은
피곤한데 그렇게 일정을 빨리 시작하냐고 항의 했더니 두나라를 여행하는 것이라 어쩔수 없다는
가이드 말에 할수없이 내일을 위해 서둘러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국경으로 가서 태국을 나가는 출국심사,캄보디아로 입국하는 입국심사를 받았는데
왜 우리나라 인천공항이 세계 1위인지 알것 같았다.
모든 행렬이 줄이 길게 늘어져 서 있지만 줄어들지가 않았다.
짐작컨데 공항내 직원들의 능력이 떨어지든지 아니면 시스템이 그런건지 엄청 느렸다.
대략 계산을 해보니 인천공항 6명 통과할 시간에 이곳은 겨우 한명 통과하는 수준이라
인천공항의 세계 1위 능력을 가히 믿을만 했다.
겨우 캄보디아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와서 버스에 올랐다.
가이드 왈, 캄보디아 국토는 우리 남한의 1.8 크기로 인구는 1600만명 밖에 안된단다.
이유를 묻자 오랜전쟁과 내전으로 그렇고 특히 1975년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이던 크메르주 정권이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린 후 1979년까지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최대 200만 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부유층을 학살한 킬링필드사건이 있었다 하니 대략 짐작이 되었다.
또한 현재 캄보디아가 빈민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킬링필드 사건때 모든 지식인들이
학살 당하여 나라를 이끌러 갈 인재들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차창밖으로 보여지는 캄보디아는 정말 가난한 듯 했고 집들은 나무 판자등으로 얼기설기 지어서
가축을 키우는 우리인지 사람이 사는 집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분명 사람이 사는 집이란다.
그렇게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가는 도중에 특이한 것은 도로가 1자로 쭉 뻗어 있어 운전대 핸들을
거의 움직이지 않아도 될 정도였고 양쪽 길 옆으로는 평야지대로 모두 논으로서 사방이 산이
하나도 없어 막힘없이 지평선 끝이 보이지 않았다.
태어나서 영화속 말고 끝없는 지평선을 목격하긴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서도 앙코르 왓 사원이 있는 도시 씨엠립까지는 버스로 3시30분을 더 가야한다는 말에
우리일행은 또 경악하며 가이드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평야는 정말 넓고 커서 국토가 작은 우리나라로서는 부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가는중 창밖으로 보이는 연못,호수, 개울등 모든 물들이 흙탕물이고 구정물이었고
캄보디아에서 이틀을 체류하는 동안 호텔을 제외하고는 맑은물을 본적이 한번도 없다.
가이드에게 이유를 질문해보니 캄보디아는 아직 하수도 시설이 전혀되어 있지 않아
모든 오,폐수를 그냥 방류 할수 밖에 없어서 그렇다는 답변이다.
더불어 일본이나 주변국가들이 우물을 파서 펌프시설을 해주었어도 지하 30미터정도 밖에 파지 않아
그물을 먹은 사람들이 전염병과 피부병이 돌아 빨래정도만 하고 그나마 우리기업들이 파준 우물은
지하 150미터정도를 뚫어 펌프시설을 해주어 물이 깨끗해서 식수로 요긴하게 쓰기 때문에 그런이유 때문인지
캄보디아인들이 한국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버스는 지루하고 힘겹게 달린 끝에 우리일행을 씨엠립에 토해 놓았고 어제 저녁부터
우리일행을 위해 고생한 버스가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허기에 지친 일행은 점심으로 수끼라는 우리의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역시 맛은 별로..
그런데 특이한 것은 태국이나 캄보디아의 한국인 식당인데도 소주가 10불이고 맥주는 7불씩이었다.
너무 비싼 나머지 주인에게 항의하듯 이유를 물으니 관세 때문이라 그렇단다.
그러나 술과 다르게 국산담배는 한보루에 10달러란다.
난 담배를 피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한국의 담배값에 50%에도 못미치는 가격일 것이다.
의아해서 담배는 왜 싸냐고 물었더니 면세라 그렇다는 주인의 간단한 대답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담배에 세금이 얼마나 비싸게 붙는지 계산이 나오는것 같다.
식사후 버스는 앙코르 왓 사원으로 또 1시간 40분을 가야한다는 말에 이제는 가이드가 무섭고
버스가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버스는 달리고 일행들을 잠에 빠져들고 지루한 시간 끝에
드디어 앙코르 왓 사원에 도착했다.
앙코르 왓 사원은 앙코르 지방에 있는 힌두교 대사원과 앙코르기 미술의 최성기를 대표하는 석조물로서
유명하고 그 이름은 왕성사에서 와전되었고 비쉬누신과 동격이라고 믿었던 스리야바르만 2세(재위 1113~50경)가
창건하였으나, 이 왕을 신왕으로서 모신 분묘사원의 성격상 완공은 다음 왕 시대에 이루어졌다는
가이드의 거창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난 우리나라의 역사도 외우기가 벅차는 머리라 다른나라의
역사까지는 버거워 더 이상은 기억할 능력이 안되어 듣기를 거부했다.
내가 보고 느낀 앙코르 왓 사원은 늘~ TV에서 많이 보아서인지 특별히 멋있거나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없었다.
다만 약 1천년 전에 지었다는데 과연 인간이 지은것이 맞는건지 의심이 갈 뿐이었다.
사원이 너무 크고 넓어서 일행을 2인1조로 나누어 가이드를 포함하여 툭툭이(오토바이를 개조하여 만든 삼륜차)를
15대에 나눠타고 이동하며 구경을 했는데 일렬로 달리는 툭툭이 행렬 자체도 장관이었다.
그런데 캄보디아 꼬마들 5살정도 부터 12살정도 미만의 아이들이 동냥을 구걸하거나 기념품을 팔면서
구걸하는데 정말 눈뜨고 못본다는 목불인견이었다.
꽤재재하고 지저분하고 신발도 신지 않고 1달러나 우리돈 천원을 소리치며 애걸,구걸함에
차마 뿌리칠수가 없어 우리일행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불쌍한 꼬마들에게 천원씩을 나눠주곤 했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입장권을 검표하는 20대 젊은 청년들이 우리에게 한국말로 헤이~사탕있어~? 껌있어~? 하며
달라기에 어이가 없어 가이드에게 그들이 왜 사탕과 껌을 구걸하냐고 물으니 가이드 왈, 글쎄요..?
잘은 몰라도 아마도 구걸한 사탕과 껌을 모아서 주변사람들에게 되팔지 않나..? 생각됩니다..라는 답변이었다.
캄보디아 꼬마들과 청년들은 우리나라 사람보면 1달러,천원,사탕,껌이라는 말만 외칠 정도였다.
앙코르 왓 사원의 모든 건축이 돌로 되어있는 석조물이라 세상의 모든 돌들이 지겨울때쯤 사원 관광을 끝내고
저녁식사로 압살라 부페라는 곳으로 갔는데 음식의 가지 수는 많았지만 한국사람들은 평소 칠순,결혼식 같은
잔치에가서 부페를 자주 접한데다 이곳의 부페는 입에 맞지 않아 실망들을 하는 눈치였지만 떼거지로 몰려온
러시아 관광객들을 맛있는 듯 많이,자주 날라다 먹는 모습이었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부페의 중앙무대에서는 캄보디아 전통 춤 공연을 시작했는데 일행들과 함게 10여분 정도
관람하다 가이드의 인솔하에 부페를 나와서 호텔방을 배정 받았는데 호텔은 기가 막힐정도로 훌륭했다.
더구나 호텔 정원에 누워있는 수영장은 정말 원더~풀장이었다.ㅎㅎㅎ
일행들은 그동안 먼길을 힘들게 달려온 보람을 특급호텔로서 보상받는 느낌이어서 모두들 만족해 했다.
캄보디아의 모든 집들은 가축을 키우나 생각이 될 정도로 초라한데 호텔은 어찌하여
특급 호텔이냐고 가이드에게 물으니 호텔들은 외국자본이 들어와 운영중이란다.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자 일행들은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 샤워들을 마치고 7시에 로비로 모였다.
맛사지를 받으러 가기 위해..호텔근처의 맛사지 샵으로 이동하여 한방에서 일행모두가
동시에 맛사지를 받았고 맛사지는 훌륭했다.
더구나 2시간동안 이어지는 황제 대접에 일행들은 행복의 겨워 깊은잠에 빠진이들도 많았으니...
이제 13살인 딸도 맛사지를 즐겁게 받으며 여행의 참맛을 만끽하는 것 같아 아빠로서 감개무량...? 같은 기분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빌자면 태국 맛사지는 혈을 누르는 기법이고 캄보디아 맛사지는 관절,근육등을 주무르는 기법
차이라는데 사람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캄보디아 맛사지가 압권인 듯 했다.
그렇게 2시간이 어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끝났는데 다음에 또 캄보디아에
올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받으리라 다짐해 본다.
호텔로 돌아와서 내일 일정을 위해 내일아침에 7시까지 로비로 모이라는 가이드 말에
우리가 해외여행을 왔지, 군대를 왔냐는 나의 항의에 일행들은 웃음보를 터트렸다.
사실 이번 여행이 강행군의 연속으로 일행들은 엄청 힘들어 했다.
로비에 7시까지 모이려면 5시30분에 기상해야한다. 씻고, 아침먹고 ,가방싸고 하면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내내 5시30분에 일어났으니...
가이드가 가고나니 시간은 밤 10시, 배가 고프다는 아내와 딸에게 피자를 사주고자 일행중 한가족을 불러내어
호텔 레스토랑으로 가서 피자 2판과 맥주 4병을 주문했는데 피자는 영~~~~ 피자 빵 도우가 딱딱한 걸로 보아
도우를 만들때 숙성 시키지 않은듯 했고 또한 냉동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데운것 같아 한판은 먹지 못하고 남기고
일행가족과 피자맛이 없다며 궁시렁대며 그나마 맥주로서 깊어 가는 이국의 밤 정취를 맘껏 즐겼다.
방으로 돌아온 우리가족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다음날 아침.
오늘은 톤레삽이라는 호수로 관광가는 일정인데 톤레샵 호수는 우리나라 경상남도 크기의 호수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시작으로 출발.. 톤레 샵호수에 도착하자 또 더럽고 신발도 신지 않고 사람의 형상 같지않은
꼬마들이 몰려들어 구걸하는데 일행들은 안할수없는 외화반출이 시작되었고 가관인 것은 더럽고 지저분한
아낙네들이 젖먹이 아기를 젖에 물린채로 천원 달라고 절규하듯 울부짖는 아낙네들은 정~말 불쌍했다.
모르긴해도 이 세상에 이보다 더 불쌍한 이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주로 톤레삽 호수 주변 수상가옥에 사는 베트남인들 이란다.
캄보디아에 웬 베트남인 이냐고 따지듯이 묻는 일행에게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들은 베트남전쟁때 전쟁을 피해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가 베트남 전쟁이 끝나서
다시 배를타고 베트남으로 돌아갔는데 국경에서 그들을 막았단다.
이유는 나라가 어려울때 나라를 등지고 떠났다가 전쟁이 끝났다고 돌아오는 사람을 배신자라는 이유로 막았다는 것이다.
가이드 설명에 베트남을, 피난민을, 그누구도 원망할수 없는 운명같은 인생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또 캄보디아 국가는 자국민도 도와주지 못하는 판국에 타국민을 도와줄수 있는 여력이 없어
그렇게 호수 근처에서 기생하듯 힘겹게 살아가는 이유란다.
짧은 내 식견으로 생각해보니 옛날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 전후로 일본에 살았던 재일교포들도 이들과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별반 차이없는 삶으로 많은 설움을 당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들의 생계 수단으로는 큰고기가 없는(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너무 잡아 클수가 없다고 함)
호수 특성상 피래미 만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거나 관광객들에게 구걸로 목숨을 연명하듯
살아간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자 일행들은 더 따뜻한 마음으로 천원짜리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딸과 아내도 일행과 한마음이 되어 외화반출에 동참했다.
호수는 크고 넓었지만 온통 흙탕물로 누군가 강물을 온통 마구 휘저어 놓아 표현이 좀 거시기 하지만 개판 물 같았다.
관광후 점심으로 먹은 김치찌게가 이곳 캄보디아의 모든 일정을 끝으로 하고 느낀점은 캄보디아에는
앙코르 왓 사원을 주 목적으로 관광을 온건데 캄보디아의 기억은 앙코르 왓 사원보다 꼬마들,
아낙네들의 1달러,천원짜리 구걸이 기억에 더 강하게 남는다.
버스는 다시 태국으로 되돌아 달리는데 7시간 30분 걸린다는 가이드말에 일행은 절규하듯이 탄식의 신음을 토해낸다.
그 먼길..또 무슨 인내심으로 가야할지...
우리가족은 버스 뒷좌석에 교대로 누워가며 캄보디아를 뒤로, 뒤로 밀어내며 힘겹게 태국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낮 12시에 출발한 버스는 중간에 기름으로 배를 잔뜩 채우고 계속 방귀로 매연를 뿜듯 태국으로,
태국으로 몸을 굴려 밤 7시30분에 태국 파타야에 도착했다.
장시간 차량이동으로 일행들은 온몽이 욱신거리는 듯했고 어제받은 캄보디아의 맛사지를 그리워하며
저녁으로 삼겹살로 식사를 했는데 이번여행 처음으로 식사에 만족하는 듯했다.
그동안 많은 체력소모와 부족한 영양을 삼겹살로 맘껏 보신을 하고 이번 여행 처음 옵션으로
1인당 60달러의 파타야 야간 시티투어에 나섰다.
서울 남대문과 흡사한 시장으로가 구경과 쇼핑을 병행했는데 물가가 싸서 그런지 일행들은
여러가지들을 구매했고 난 4천원을 주고 선그라스를 샀는데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다.
딸은 24000원을 주고 산 핸드백에 흡족해 했다.
그렇게 1시간을 구경하고 다음코스는 파타야의 최고 환락가..? 유흥가..? 로 향했는데 가서보니
아마도 내가 하와이는 못가 보았지만 하와이 다음으로 가장 세계적인 관광지로 느껴질만큼
태국인과 동양인은 별로 없고 대부분 서양인이 많아서 정말 여기가 태국인지 헷갈릴 만큼
코쟁이들이 많았고 화려하고 서구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는 곳이었다.
가이드를 앞세워 일행들과 구경하며 가던중 가이드가 멈춘곳은 무에타이 경기가 열리는 카페였다.
카페는 콜라,사이다,주스등 음료권 1달러로 입장이 가능했고 즉석에서 태국 무에타이 선수와
관광을 온 러시아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링에 올라 즉석경기를 했지만 태국선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 싱거웠고 이어진 건 뱀쇼였다.
뱀 조련사로 보이는 남자가 뱀자루 3개중 코브라 한마리를 꺼냈고 성난 코브라는 조련사를 물려하고,
피하는 쇼인데 보는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하며 때로는 물릴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마다
비명소리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쇼가 끝나자 관람객들은 링위로 1달러 짜리들을 팁으로 던져 주었다.
아마도 조련사의 수입은 오로지 뱀쇼를 하고 관객의 팁으로만 운영되는~듯 했다.
그 다음은 성인남자의 장딴지 만큼이나 굵은 구렁이를 꺼내어 조련사가 목에 두르더니
관광객들에게 링으로 올라와서 구렁이 체험을 하란다.
그러자 일행들이 하나 둘씩 올라가서 그 징그러운 뱀을 목에 감고 보란듯이 자랑하는데 난 전생에
뱀과 웬수를 졌는지 난 징그러워서 못하고 구경만 하는데 뜻밖에 평소 뱀이라는 말만 나와도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는 아내가 당당히 올라가서 뱀을 목에 두르는것 아닌가..?
지금 저 여자가 내 아내가 맞는지 눈을 씻고 보았지만 분명 내 아내가 맞았다.
내가 지금까지 몰랐던 무서운 여자다..ㅋㅋ
옛날 전설의 고향을 보면 사대부가의 조숙하고 예쁜 며느리가 밤이 늦으면 구미호로 변해
가족을 헤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아내가 그런 여자가 아닌가 의심이 되어 요즘 밤마다
심야에 무서움에 떨며 잠드는 습관이 생겼다.ㅎㅎㅎ
아무튼 조숙한 줄로만 알았던 아내를 다시보는 기회였다.
그렇게 늦은밤에 일정을 마치고 일행을 쏭태우라는 필리핀의 지프니 같은 차로 두대에 나누어
호텔로 오는 도중 가이드가 가족당 과일을 한봉지씩 나누어 주었는데 봉지 안에는 망고와
망고스틴이라는 과일이 들어 있었고 태국에서 처음 배정받은 호텔은 특급 호텔인지 시설에 만족하고
과일중 망고스틴이라는 것을 먹었는데 그 맛이 캬~~~~
난 망고스틴을 처음 먹은건데 겉 모양은 나무에 열려있는 호두 같았고 껍질을 벗겨보니
속은 육쪽 마늘처럼 생겨서 깐 마늘을 먹는것 같은 느낌인데 맛은 새콤달콤하며 가가 막혔다.
이제는 세상에서 과일중 망고스틴이 제일 맛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다음날 아침 산호섬으로 가는 쾌속선을 타고 가다가 섬중간에 선착장을 만들어 그곳에서 패러 쎌러링이라는
해양스포츠 센터가 있어 쾌속선이 멈추었고 이번 여행계약을 할때 하나투어 사장님께서
자신있게 권해주신 옵션이었기에 1인당 30달러씩 내고 망설임 없이 신청했는데 낙하산을 몸에 두르고
모토보트가 강력하게 끌어 하늘에 띄움으로서 쉽게 표현해 바다위를 낙하산을 타고 구경하는 것으로
재미와 스릴을 동시에 느낄수 있는 것으로서 어린딸도 너무 재미있어 했다
물론 딸은 안전요원이 동승해서 탔기에 위험요소는 크게 없었다.
다시 쾌속선에 올라 원래 목적지였던 산호섬에 도착하여 두시간의 자유시간을 주었지만
섬에 도착한 시간이 아침 8시30분이라 수영은 추워서 별로 못하고 근처 관광상품점을 구경하던중
딸이 제트스키를 타고 싶다기에 안전요원과 동승하고 바다 멀리까지
갈때는 안전요원이,되돌아 올때는 딸이 운전하고 오는 코스로 딸은 처음 타서인지 재미있어 했고
자신이 운전 했다는 자부심에 의기양양해 했다.
산호섬을 뒤로하고 점심식사를 마친후 농룩 빌리지라는 우리나라의 거제도 외도처럼 아름답게 꾸며놓은
공원인데 외도는 외도나 하라고..ㅎㅎ 보낼만큼 공원축에도 명함도 못 내밀만큼 농룩 빌리지는 아름다웠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할머니 한분이 200만평의 공원을 꾸민 것이라는데 너무 아름답고 광활했다.
생각을 해보라 200만평의 공원이라니...그 광활하고 아름다운 공원을 개인이 꾸몄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너무 아름답고 황홀함에 여기저기서 김치~,하나,둘,셋,원,투 ,쓰리 찰칵소리가 소음으로 작용할 정도 였으니
독자들은 상상이 갈것으로 믿는다.
아름다움에 취해 1시간30분을 무릉도원을 헤메는 느낌이 끝나고 민속쇼와 코끼리 쇼를 보았는데
특히 코끼리 쇼는 보는이로 하여금 탄성이 절로 나오는 것이 코끼리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추어 춤을 추는것도 앙증 맞지만 붓으로 T셔츠에 LOVE를 쓰고 또 다른 T셔츠에 그림을 그리는 등
여러가지 쇼를 했고 다 그린 작품을 관람객에게 경매를 붙여 판매하는데
서로 사려는 관객으로 소란스럽기까지 했다.
호텔로 돌아와 호텔에서 준비한 저녁식사로 씨푸드 부페인데 야외 수영장 주위에 테이블을 디너쇼
행사식으로 설치하고 준비하여 바다가재,왕새우등 해산물 요리는 물론이고 일반 부페음식까지 준비했는데
야외에서 먹는 식사에다가 음식 또한 진수성찬이라 식사에 참여한 호텔 전 여행객이 굿~을
연발하며 즐거운 식사를 했다.
나나 딸이나 우리가족은 물론 일행들도 해외여행을 가서 먹어본 식사중 최고였노라고 이구동성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옵션인 1인당 30달러짜리 알카자 쇼라는 일명 게이쇼를 보러갔다.
좌석수가 600개인데 꽉 채운채 공연이 시작되었고 공연은 정말 걸작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굉장했다.
전 가수와 댄서들이 트렌스 젠더들로 남자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예쁜데다가
노래와 춤이 뛰어났고무엇보다 무대위의 스테이지 매너가 자연스럽고 세련되어
솔직히 소녀시대보다 월등한 기량을 뽐내는것 같았다.
그들 신분이 트렌스 젠더라는 신분이라 그럴것이지 정상적인 신분이라면
아마도 세계적인 최고의 뮤지션들이라고 단언할수 있을것 같았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이라면 가수들이 모두 립싱크를 한다는 것.
쇼중 웬만한 나라의 음악을 두곡 정도씩 춤을 곁들인 노래를 부르는데 한국음악중
싸이의 강남 스타일일을 부를때는 민족,나라,문화를 초월하여 전 관객이 흥에 겨워
하나로 뭉치는것 같아 한국인으로서 뿌듯~한 자부심이 느껴지며 코끝이 찡해짐을 느꼈다.
가수,댄서들의 화려한 의상,무대 꾸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뷰티~~풀 했다.
1시간 10분의 공연이 끝나고 주연 배우격인 가수와 댄서들이 밖으로 나와서 2달러씩 받고 기념촬영을 해주는데
서로 같이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였지만 난 천성이 게이,트렌스 젠더를 싫어함에 그 광경을 구경으로 만족해 했다.
가이드에 의하면 하루에 3번씩 매일 공연하는데 1년내내 전 좌석이 매진이란다.
아마도 알카자 쇼가 태국의 국위 선양에 엄청 도움이 되었을 것은 자명 할 것이다..
일정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이제 이번 여행이 모두 끝나고 내일 귀국한다는 것에
못내 아쉬워 한 우리가족은 호텔밖으로 나가 맛사지를 받으러 갔다.
맛사지 비용은 1인당 1시간에 200바트에 팁 50바트 란다.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1인당 1만원인 셈이어서 3만원을주고 온가족이 맛사지를 받았다.
만약 맛사지를 옵션으로 했다면 1인당 30달러,3명이명 90달러,한국돈으로 환산하면 10만원 돈이니
가이드들이 옵션으로 얼마나 폭리를 취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지는 것이고 우리는 호텔주변이라
1인당 만원정도지 일반적인 가격은 팁 포함 8천원선이다.
맛사지를 받고 호텔로 돌아오자 온몸이 풀리면서 잠속으로 빨려 들어간 느낌으로 숙면을 취했다.
다음날 아침식사후 쇼핑센타를 들러 수완나 품 국제공항으로 이동 6시간이 걸리는 긴 귀국길에 올랐다.
이번 여행을 되돌아보면 왕복 비행시간,태국과 캄보디아 왕복 오간 시간등 교통으로 할애 된 시간들이
총 32시간이나 되는 강행군으로 기억속에 오래 남을 여행이 될 것이다.
# 사진중 간혹 날짜가 2007년 1월1일로 되어 있는 것은 핸드폰과 카메라,두가지로 찍은 것중
카메라의 날짜 설정이 고장이 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