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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엄탑사구미불교대학 원문보기 글쓴이: 법조
가는 길 |
-구미시청-구미I.C-경부고속도로-88고속도로-대흥사 (330km 5시간 소요) | |||
-해남 대흥사 - 해남 미황사 (25km 30분소요) | ||||
오는 길 |
-해남 미황사 출발 - 88고속도로 - 경부고속도로 - 구미IC - 구미시청 도착 (376.2km 5시30분간 소요) | |||
연락처 |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799번지 ☎ 061-534-5502 대흥사 | |||
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247번지 ☎ 061-533-3521 미황사 | ||||
날 짜 |
차량 |
장소 |
시 간 |
순 례 일 정 |
8월18일 |
yes 관광 |
대흥사. |
07:00 ~ 12:00 |
구미시청출발 - 해남 대흥사 도착 |
미황사. |
12:00 ~ 12:30 |
대흥사 점심공양(12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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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 13:30 |
대흥사 참배 및 순례 사찰 관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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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0 ~ 14:00 |
대흥사에서 미황사로 이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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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 ~ 15:00 |
미황사 기도및 참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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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 ~ 20:30 |
미황사에서 구미시청도착 해산 | ||
순례전용계좌 |
농협:301-01076047-11(심명숙) | |||
동 참 금 |
₩30,000원(가족2인:5만원) | |||
총무:수경지(심명숙) |
010-8582-3674 | |||
❀댓글신청:실명.연락처남기시고.궁금사항은총무님께전화요망 | ||||
❀준비물:중식은순례단에서지원.간단한간식및식수.108배할수있는복장. | ||||
❀달리는법당차량법회(집전:법륜서영문,실담이홍기) | ||||
❶출발10분전까지집결지에꼭시간엄수(정시출발) | ||||
구미 불교대학순례단장:명정(김용태)합장 |
❂제17차 구미불교 대학 순례지 안내❂ |
대흥사(大興寺)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륜산(頭崙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의 본사 이다.
현재 해남,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광주 등 9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며, 서·남해 지역 사찰을 주도하고 있다.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사찰명은 대둔사(大芚寺)였으나, 근대 초기에 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삼재불입지처)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만년불훼지지)”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한 도량이다. 이후 대흥사는 한국불교의 종통이 이어지는 곳(종통소귀지처)으로 한국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도량으로 변모하였다. 즉 풍담(風潭) 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 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 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 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강사(大講師)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3 대종사 가운데 한 분인 초의선사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넓은 산간분지에 위치한 대흥사는 크게 남원과 북원그리고 별원의(표충사,대광명전,박물관) 3구역으로 나뉘어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봉향각, 가허루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남원 뒤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사명대사의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달마산 미황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말사) 달마산 기슭에 자리잡은 미황사는 우리 나라 육지 가장 남쪽에 있는 절이다. 미황사 사적비에 따르면 통일신라 경덕왕 8년(749)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조선 선조 31년(1598)에 다시 지었고, 영조 30년 (1754)에 수리하였다고 한다. 석가모니 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 붕이다. 주춧돌은 앞면 4개와 옆면 2개를 특이하게 연꽃무늬에 자라, 게 따위를 조각한 돌을 사용하였으며 나머지는 자연석을 썼 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 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식인데 가운데에 불교어인 ‘범(梵)’를 선명하게 새겨 놓았다. 미황사 뒷산에는 ‘토말(土末)’이라고 쓰여진 비석이 있는데 우 리 나라 육지의 끝을 표시한 것이다. 미황사 사적비(事蹟碑)에 의하면 의조화상(義 照和尙)이 신라 경덕왕(景德王) 8년(749)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1592)으 로 전화(戰禍)를 입은 후 조선 선조(宣祖) 31년(1598) 중창하였으며, 그후 영조 30 년(1754)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單層) 팔작집으로 외3출목(外三出目) 내4출목(內四出目)의 다포계(多包系) 포작(包作)집이다. 살미첨차(山彌檐遮)의 외부로 뻗은 앙서(仰舌)나 내부에서 판형(板形)으로 장식된 살미첨차들로 보아 조선 중기의 다포건축임을 짐작할 수 있다.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중앙에 '범(梵)'자를 선명하게 그렸고 처마는 겹처마이다. 막돌 허튼층쌓기 기단 이며 전면에 괘불걸이 1쌍이 있고, 초석중(礎石中) 전면(前面) 4개와 측면 2개, 합 (合) 6개는 연화문(蓮花文)을 조각한 둥근 초석으로 서남쪽 우주(隅柱) 초석은 연화 문(蓮花文) 사이에 자라를 양각(陽刻)하였고 중앙향우측(中央向右側) 평주(平柱) 초 석(礎石)은 게와 자라를 양각하여 특이하며 후면(後面)과 측면의 기타 초석은 자연 석 초석이다. 기둥은 배흘림이 약한 원주(圓柱)이며 기둥머리에는 창방(昌枋)과 평 방(平枋)을 결구(結構)하였는데 전면 중앙간 좌우 평주 머리에는 안초공(按草工) 형 식의 부재를 끼워 외부로는 용두를 조각하고 내부는 연화문을 초각(草刻)하였다.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 전 ·후면에는 공간포(空間包) 2조(組)씩을, 측면에는 1조 (組)씩을 두었다. 초제공(初諸工), 이제공(二諸工), 삼제공(三諸工)의 외부는 세장(細 長)한 앙설형(仰舌形)으로 조각되었고 쇠서의 밑부분에는 연봉이 조각되었다. 산미 (山彌)의 외부는 날카로운 수설형(垂舌形)으로 되었고 운공(雲工)은 봉두(鳳頭)가 조각되었다. 각 제공의 내부는 한 몸처럼 연결되어 초각(草刻)되었는데 끝부분에는 연꽃과 연봉, 연밥이 조각되었다. 이 위로는 주심포(柱心包)에서는 (대량(大樑) 또 는 충량(衝樑))을 받게 되었고 공간포(空間包)에서는 봉황(鳳凰)이 조각된 부재가 결구(結構)되었다. 후면 어간(御間)에서의 각 제공의 내·외부는 쇠서가 없이 교두형 (翹頭型)으로 간략히 처리되었다. 내·외부의 각 첨차는 교두형으로 되었다. 내부는 후면(後面) 고주(高柱)에 의지하여 후불벽(後佛壁)을 세우고 우물마루 위에 는 불단을 배설하여 조선조 후기의 3존불을 안치하였으며 불단의 상부(上部)로는 구출목(九出目)의 섬세한 공포로 결구한 정(丁)자형의 닫집이 시설되었다. 닫집의 내부에는 구름과 용을 조각하여 매달아 놓았다. 천장은 중앙부는 평우물천장이고 둘레에는 빗우물천장으로 되었으며 내부의 단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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