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하는 사람들은 베니스의 플로리안 Florian 카페를 안다, 비엔나의 카페 자허와 더불어. 플로리안 바에서 만난 어느 한국 젊은이는 가이드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고 들었다고 내게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좀 겸손하게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카페라는 표현이 많다. 이런 역사성을 그들 역시 자랑한다. 여기저기에 1720 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심지어는 에스프레소 머신에도 그 숫자를 써 놓았다.
산 마르코 광장에는 수 많은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 중앙에서는 실내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우아하게 테이블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흰색 상의에 흰색 넥타이를 맨 웨이터에게 주문을 할 수도 있지만 역시 나는 그러지 못했다. 카페에 들어가 바에서 커피를 마시고자 했지만 입구를 찾기가 어려워 웨이터에게 물어야 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중년 여인이 캐시어를 하고 있었지만 그 여인은 나의 주문을 받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 하라고 했다. 들어가서도 어디서 주문을 하고 어디서 마셔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격이 다른 카페였다. 결국 바에서 마시기는 했지만 그 보다는 우아함을 보이며 마시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카페였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웨이터와 바리스타도 그 격을 느끼게 해주었다.
두 대의 라 마르조코 머신이 있었다. 이태리와서 처음으로 마르조꼬를 보았다. 두 명의 바리스타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다른 곳은 대부분 심발리를 쓰는 데 당신들은 왜 마르조꼬를 쓰는가하고 물었더니 Cimbali is good, but Marzocco is the best라고 대답했다. 자신들이 직접 볶은 원두를 쓰고 있으며 생두를 농장과 계약해서 가져온다고 말했다.
바리스타는 예쁜 잔에 담긴 카푸치노를 내밀었다. 맛이 좋았다. 고소하나 싱겁지 않다. 계피향이 느껴진다. 카푸치노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는데 언제 계피가루를 넣었을까? 바리스타는 곱게 거품을 내어 에스프레소 위에 조심스럽게 부었다. 액체 상태의 우유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고소한 맛이 중심이 되고 쓴 맛이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에 우유의 양을 줄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특히 카푸치노 컵이 작기 때문에 우유가 1온스를 초과해 들어가면 거품층이 얇아진다. 마신 후에 입에 남는 약간 쌉쌀함이 기분 좋았다. 스페샬티 계열로 힘이 좀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여운이 한참 갔다. 마르조꼬의 특성도 느낄 수 있었다.
베니스를 떠나기 전날 다시 한번 플로리안을 찾았다. 바리스타와 안부인사를 나눈 후 바에 앉아 메뉴책을 펼쳤다. 무언가 기념이 될만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개업 290주년 기념으로 개발한 상품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사진처럼 원두 하나가 거품 위에 떠 있다. 스푼으로 꺼내어 입에 넣고 씹어보니 그대로 부스러진다. 컵을 입에 대고 기울이니 크림이 입술에 닿는다. 차갑다. 그러나 부드럽다. 크림으로 차가워진 입술에 갑자기 뜨거운 커피가 닿았다. 크림으로 덮혀져 거의 식지 않은 것이다. 뜨거움 속에서 알 수 없는 향과 맛이 퍼진다. Solerno와 Anisette 술의 독특한 맛이다. 커피라기 보다는 칵테일의 느낌이 더 강하다. 한참 마시고 있는데 바리스타가 다가와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 어쩌겠는가?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