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의 자랑거리를 꼽으라면, 서부면 궁리포구와 남당리를 잇는 해안 도로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여기저기 점을 찍어놓은 듯이 흩어져있는 섬들과 석양에 물든 바다 풍경은, 먼 곳으로 여행 떠나온 것처럼 기분을 들뜨게 한다.
해안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놓여있는 모산도 공원에 올라가보면, 햇빛을 받은 천수만 전체가 좌우로 한 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한없이 평화로워보이는 해변 마을이, 옛날에는 왜구들의 침범으로 숱한 시달림을 당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과거 역사는 왜구의 침략에 시달리지 않은 세월이 별로 없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결성과 서부지역 해변마을 역시 왜구의 침략으로 괴로움을 많이 겪었던 사실이 기록으로 증명하고 있다. 다행히도 훌륭한 목민관이 나타나서 지역을 튼튼하게 방어한 경우에는, 그 시련을 덜 겪었던 것 같다.
모산도 공원에 올라가보면 ‘김자 결성현감 승전지비 (金滋 結城縣監 勝戰址碑)’가 서있다. 모산도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승전비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공의 이름은 김자(金滋)이고 벼슬은 결성현감(結城縣監)을 지냈다. 태종 8년(서기 1408년)에 감무벼슬에서 태종 13년(1413년)에 현감벼슬을 지냈다. 모산포는 결성현의 관청에서 서쪽으로 바닷가 25리에 위치하며, 모산당포(母山堂浦), 모산포(母山浦) 등으로 불리었다.(현재는 서부면 신리 안흥동 모산도 공원임) 고려중기 이후 조선시대까지 모산포에는 왜구(倭寇)들의 노략질이 잦았다. 모산포를 통한 왜구의 잦은 약탈과 수난으로 결성현이 붕괴될 정도였다. 특히 태종 8년(1408년)에 결성현 감무였던 공은 대규모 왜구전선 무리가 침략할 것을 미리 파악하고 결성현의 군사를 선두지휘하여 필승의 의지로 왜구를 물리쳤다.
이상의 내용처럼 김자 현감이 결성현 관내의 방위를 튼튼히 하고, 침략한 왜구들을 물리친 기록들은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대동지지, 동국여지승람, 결성현지도, 결성현읍지, 조선환여승람 청백리, 만기요람 등에 승전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이들 주요 문헌의 기록은, 김자 결성현감이 왜선의 침략을 예견하고 미리 대비하였다가 모산포에서 격퇴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산도 공원의 김자 시비는 바다풍경에 취해있는 여행객의 느슨한 마음을 다잡아주고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독도를 빼앗아가겠다는 일본인들의 억지에 정신 바짝 차려서 우리 땅을 단단히 지키라는 무언의 교훈을 주고 있다. 김자 전승비는 잊혀지고 묻혀졌던 역사를 발굴하여, 2007년 12월 20일에 서부향토문화보존회와 결성문화재보호회 주관으로 세웠다. 우리 조상들이 수없이 겪었던 시련의 현장에서 마음을 추스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은 체험이 될 것이다.
첫댓글 충남 홍성군 서부면 모산도 김자현감 승전비
고려중기 이후 조선시대까지 모산포에는 왜구(倭寇)들의 노략질이 잦았다. 모산포를 통한 왜구의 잦은 약탈과 수난으로 결성현이 붕괴될 정도였다.
특히 태종 8년(1408년)에 결성현 감무였던 공은 대규모 왜구전선 무리가 침략할 것을 미리 파악하고 결성현의 군사를 선두지휘하여 필승의 의지로 왜구를 물리쳤다.
이상의 내용처럼 김자 현감이 결성현 관내의 방위를 튼튼히 하고, 침략한 왜구들을 물리친 기록들은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대동지지, 동국여지승람, 결성현지도, 결성현읍지, 조선환여승람 청백리, 만기요람 등에 승전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이들 주요 문헌의 기록은, 김자 결성현감이 왜선의 침략을 예견하고 미리 대비하였다가 모산포에서 격퇴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동지지, 동국여지승람, 결성현지도, 결성현읍지, 조선환여승람 청백리, 만기요람 등에 승전내용이 기록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