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70년대의 대표적인 포크송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이 노래는 1956년에 처음 만들어진 노래로 이 노래를 처음 부른 사람은 가수 나애심 씨였고 테너 가수 임만섭 씨도 불렀습니다.
정식으로 취입한 건 현인 씨가 최초라더군요. 그러니까 트로트 가수, 성악가수, 포크가수가 다 부른 국민 애창곡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노래의 노랫말을 지은 사람은 50년대 전후 시인 박인환 씨로, 6.25 전쟁 이후의 황폐함과 메마른 도시 문명으로 인한 절망감, 비애, 상실감 등을 서정적으로 노래했던 시인 박인환 씨는 1970년대 초만 해도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었지만, 포크가수 박인희 씨가 <세월이 가면>과 <목마와 숙녀>를 부르고 낭송함으로써 대중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었죠.
그런 점에서 박인희 씨는 우리에게 잊혀 가던 50년대 시인을 부활시킨 공로자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이 노래가 만들어진 유래를 한번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956년 이른 봄. 전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어느 정도 복구되어 제 모습을 찾아가는 명동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경상도 집>이라는 술집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몇 명의 문인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명동의 <댄디보이>란 별명을 지닌 애주가 박인환 씨도 있었고 가수 나애심 씨도 함께 있었습니다.
몇 차례 술잔이 돌고 취기가 오르자 일행들은 모두 나애심 씨에게 노래를 청했으나 나애심 씨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 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박인환 씨가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더니 즉석에서 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그 자리에는 작곡가 이진섭 씨도 있었는데 그 시를 보니 너무 기가 막히게 좋아 이진섭 씨가 또 그 자리에서 그 시를 받아 단숨에 악보를 그렸고 그 악보를 들고 나애심 씨가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데 그 노래가 바로 <세월이 가면>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나서 송지영 씨와 나애심 씨가 자리를 뜨고, 테너 임만섭 씨와 명동백작이라는 별명의 소설가 이봉구 씨가 새로 합석을 합니다.
임만섭 씨는 그 <세월이 가면> 악보를 받아 들고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정식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랫소리가 어찌나 크고 아름답던지 명동거리를 지나던 행인들이 죄다 그 술집 문 앞으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정말 낭만적이었던 문화의 거리, 옛 명동거리의 풍취가 느껴지는 에피소드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박인환 씨의 또 다른 시 <목마와 숙녀>도 이런 식으로 즉흥적으로 지어진 시라고 하는 것 같은데 글세 정확한 건 저도 잘 모르겠군요. 이런 박인환 씨의 시를 들으면 너무 애상적인 분위기에 환상적인 시어들이 나열돼있어 들을 땐 참 좋은 것 같은데 다 듣고 나면 뭘 말하는 건지 잘 모를 때가 많죠.
박인환 씨의 절친한 친구였던 시인 김수영 씨도 그런 점에서 박인환 씨에게 욕을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저도 박인환 씨가 단순한 이미지즘에 빠져 현실을 잊게 한다는 점에서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그건 <세월이 가면>이나 <목마와 숙녀>에 해당되는 얘기고 박인환 씨의 다른 시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박인환 시인의 얘기가 나왔으니 그의 시 세계를 제대로 엿볼 수 있게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의 시 말고 다른 시 한 편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우리들의 죽음보다도 더한 냉혹하고 절실한 회상과 체험일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여러 차례의 살육에 복종한 생명보다도 더한 복수와 고독을 아는 고뇌와 저항일지도 모른다 ....
제 생각에 김수영 씨는 전쟁 이후의 겉으로 나타난 여러 가지 부조리들을 현실로 보고 시를 썼고, 나중에는 4.19를 기점으로 강렬한 현실의식을 추구하면서 참여시 운동을 주창하게 되지만, 박인환 씨는 아마 전후 사람들의 그 황폐하고 방황하던 마음, 뭔가에 위로 받고 싶은 상실감을 현실로 보고 그런 시들을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가을을 맞아 괜히 고독감과 마음의 방황을 느끼게 되는 우리들에게 이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는 더욱 더 가슴깊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싶군요.
아마 박인환 씨도 나중에 4.19를 겪고 5.16을 겪었다면 분명히 우리 민족의 현실에 대해 토로하는 위대한 시를 많이 남기셨을 것 같은데, 1956년 <세월이 가면>이란 이 시를 쓴지 얼마 안돼서 30살의 나이로 그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심장마비로 요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죽을 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술에 만취되어 집에 돌아와 <생명수를 달라!>라고 외친 한마디로 그 말을 하고 그만 쓰러져 죽었다고 합니다.
그럼 가을이면 우리의 가슴을 아련히 적셔주는 애상적인 노래, 비극적인 시대를 살다간 천재시인의 노래를 위한 즉흥시, <세월이 가면>이란 노래를 박인희 씨의 음성으로 들으시면서 가을을 한번 느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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