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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贈呈), 동년(同年)
문백 정순택
동년(同年)은 같은 해에 태어난 것과 진사에 급제한 것을 아우르는 단어였다. 동년에게 증정한 시는 임사소에게 3수, 한성지에게 2수, 박군현에게 1수 모두 6수였다. 한성지는 시문에, 병신년에 함께 태어났다고 했고 박군현은 신유년의 동년이라 했으니 송강 26세에 진사 된 해이다. 임사소는 시문에만 나와 동갑인지 진사 동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사(固辭)하던 벼슬살이를 늙고 병든 몸으로 받아들여 임지에 나가는 것이 안타까워 시문에 녹여내며, 정이 많이도 묻어나는 통에 동갑내기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 후손의 기록에는 송강보다 2살 위인 1534년생으로 되어 있어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여튼 얼마나 정이 넘쳤으면 임지에까지 함께 가 점검했겠는가. 동갑내기 벗, 임사소가 책임을 맡은 죽산현은 정월 해일(亥日)에 담은 맑은 삼해주가 넘쳐났다. 재정이 풍부하다는 증거였다. ‘가난은 나라임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물자가 부족하면 사람의 마음이 좁아져 이끌기 힘들었다. 강원 관찰사로 나갔을 때 삶에 지친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해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 그때 백성은 물자가 풍부할 때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을 알아 ‘상소’하여 세금 감면을 청했고, 일선의 사또들에게 백성의 편에서 일하라는 ‘유읍제문’이란 훈령을 내렸으며, 마음을 고양시키기 위해 강원도는 신선이 사는 곳이므로 백성 모두가 신선과 같다는 ‘관동별곡’을 지어 배포했으며. 하나하나 알아야 할 것 16가지를 뽑아 ‘훈민가’라 하여 노래하였다. 그런 것이 효과를 봐 관할 주민들이 스스로 움직여 13개월의 임기를 마쳤을 때는 한 단계 높아진 생활상이라 흐뭇했으나 처음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초임 원님으로서는 물자 풍부한 것이 퍽, 다행한 일이어서 한시름 놓였었다. 또한 임사소는 돈을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며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정확히 꿰뚫는 인물이었다. 그런 벗이 밤에 달을 보면서 근심스러운 일을 어찌 풀 것인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 정도면 누워 있어도 잘 돌아갈 것 같았다. 더 이상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새벽녘에 돌아가기로 작정하였다.
한성지에 대한 기록은 아무리 뒤져도 안 보였다. 시 2수로 모든 걸 가늠할 수밖에 없었다. 한성지가 태어나면서 그분과 관계 깊은 동해 바다로 술을 관장하는 신이 곧장 떨어졌다고 하였으니 주성이라 일컬어졌을 만큼 애주가였을 것이다. 술은 먹을거리의 대명사로 교류하려면 필수적이다. 대인관계가 좋다면 원만한 인품으로 매사가 부드러울 것인데 상서로운 구름이 동갑내기 벗에게서 돌아가려는 통에 송강은 술로서 달래고자 하면서도 공조참판에게 문인들의 음풍농월(吟風弄月)이 어디 있는지 묻고 싶었다. 즉 한성지의 찰방 벼슬살이에서 조기에 물러나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또한 동해 바다는 태곳적부터 흘러 다함이 없는데 인간 세상을 보면 일이 뒤얽혀 갈피 잡을 수 없을 정도이니 모두가 물 위에 뜬 개구리밥 신세였다. 이별하고 모이기를 거듭하는 동안 하늘과 대지가 늙어가니 동갑내기 벗과 오랫동안 취하고 싶었다.
진사 동기 군현은 고사를 들어 나타냈다. 원헌이 첫째인데 원헌은 보통 자사(子思)로 일컬어지는 공자의 제자로 청렴, 청빈, 고결한 인물이다. 원헌은 공자가 떠난 후에는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은거하였는데 자공이 위나라 재상이 되어 요란히 겉치레하고 나타났을 때 남루한 형색으로 만났다. 그러자 자공은 “어찌 이리 병 드셨소.” 하자 원헌은 “ 나는 병들지 않았소, 재물 없이 사는 자를 가난하다고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 병든 것이오. 나는 가난은 해도 병든 적이 없소.”라고 하였다. 둘째는 풍당으로 그는 90세에 말직인 낭관으로 지내는데, 문제가 지나다가 들려 대화하는 중에 혜안을 발견하고 재상에 앉히려 했으나 원로 한 관계로 실행되지 못했다는 고사가 있다. 송강은 군현을 풍당처럼 늙어 모발이 온통 하얗다고 했는데 그 표현 속에는 벼슬도 포함하고 있었다. 관리가 됨에는 오히려 미진한 듯 낮고 높은 학문이 풍당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송강은 벼슬의 높고 낮음보다 인품으로 평가했는데 진사 동기 군현에서는 서책 천 권으로 학문과 인품의 높이를 나타내면서 늙은 나이에 가친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퍽 부러워하였다. 군현은 항상 절승(絶勝)에 있으면서 황금 가득한 상자가 쌓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餞席贈任士邵 廷老 전석증임사소 정로Ⅰ
餞席臨長道 전석임장도하고
征人倒急觴 정인도급상하여
猶嫌意未已 유혐의미이하니
更赴子眞庄 갱부자진장하네
보내는 자리에서 임정로(任廷老)에게 주다
먼 길 떠나기 임박한 전별 자리에서
갈 사람이 급히 잔을 기울여,
오히려 의심하면 이미 뜻이 아니어
다시 자진(子眞)의 농막으로 달리네
보낼 전餞 자리 석席 줄 贈 맡길 임任 선비 사士 땅 이름 소邵 바를 정廷 늙을 로老 임할 임臨 긴 장長 길 도道 갈 정征 사람 인人 도倒 급할 급急 술잔 상觴 오히려 유猶 의심할 혐嫌 뜻 의意 아닐 미未 이미 이已 다시 갱更 달리 부赴 아들 자子 참 진眞 농막 장庄
임정로(任廷老)라는 분은 풍천 임씨이다. 그 세보에 자(字)를 사소(士邵)라 했으니 따라야 하겠으나 호(號) 같은 느낌이 든다. ‘소(邵)라는 곳의 선비의 뜻’ 때문인데 소옹(邵雍)과 같은 선비가 되겠다고 하여 그리 지칭한 것도 같다. 소옹은 송나라 사람으로 상수론(象數論)을 제창하고 교외에 은둔하였으니, 그분과 같은 선비가 되고자 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이는 스스로 지었을 것이므로 자일 수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하여튼 사소가 먼 길을 앞두고 전별하는 자리를 만들었을 때 가야 할 사람이 과격히도 술잔 기울이는 것을 보고는 이상한 마음이 들었는데, 가는 곳이 죽산현의 현감이란 벼슬자리였고, 사람들은 벼슬에 올랐으니 잘 되었다고 하겠으나 벗은 소옹과 같은 선비가 되고자 하여 호를 그리 삼았으므로 내린 벼슬을 모두 내쳤는데도 그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급히 술잔 기울인 것 같은 의심이 갔다. 그러나 동갑내기 벗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를 정자진(鄭子眞)에 비유하고는 벗이 있는 농막으로 다시 달려가기로 했다.
Ⅱ
久病寧爲客 구병녕위객하여
衰年重別人 쇠년중별인하고
驛亭風雪日 역정풍설일하며
携酒莫論巡 휴주막론순하오
오랜 병 끝에 어찌 나그네가 되어
늙은 나이로 거듭 이별한 사람이
역의 정자에서 눈바람 몰아치는 날
연속하여 돌린 술잔 말하지 말라 하오
오래 구久 병 병病 어찌 녕寧 할 위爲 나그네 객客 약할 쇠衰 해 년年 거듭 중重 이별 별別 사람 인人 정거장 역驛 정자 정亭 바람 풍風 눈 설雪 날 일日 연속할 휴携 술 주酒 말 막莫 말할 론論 돌 순巡
일찍이 진사가 된 사소였다. 벼슬에 뜻을 두었다면 이내 나섰으련만 은둔한 선비로 살았는데 어찌 오랜 병 끝에 원님이 되어 나그네 신세를 자청했는지 모르겠다. 정력이 쇠약해진 나이로 거듭 이별한 사람이 정거장의 정자에서 눈 내리고 바람 몰아치는 날 연이어 돌린 술잔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며 급히 마시는 것이 과격하게 보였다. 이런저런 사연을 애써 감추려는 동갑내기의 아픔이 읽혀 저 송강은 시로서 위로의 말을 대신했다.
贈竹山倅任士邵 증죽산쉬임사소
官澄三亥酒 관징삼해주하고
村臥老同年 촌와노동년한데
鞭轡寧嫌屈 평비녕혐굴하니
江山不用錢 강산불용전하지
世情看了了 세정간료료하고
新月對悁悁 신월대연연하니
萬事惟今夕 만사유금석하여
歸鞍拂曙烟 귀안불서연하오
죽산원 임정로에게 주다
관청에는 맑은 삼해주 넘치고
마을에는 늙은 동년배 누워 있는데
고삐 잡혀 채찍질이어도 정녕 굽히기 싫어하니
강산에서는 돈 안 쓰겠지
세상의 정을 명확히 보고
뜨는 달 근심스레 대하니
세상만사 오늘 저녁과 같을 것
새벽안개에 뿌리치고 말안장에 올라 돌아가리다
줄 贈 대나무 죽竹 뫼 산山 원<군수> 쉬倅 맡길 임任 선비 사士 땅 이름 소邵 관가 관官 맑을 징澄 셋 삼三 돼지 해亥 술 주酒 마을 촌村 누을 와臥 늙을 노老 같을 동同 해 년年 채찍 편鞭 고삐 비轡 정녕 녕寧 싫어할 혐嫌 굽힐 굴屈 강 강江 아니 불不 쓸 용用 돈 전錢 세상 세世 정 정情 볼 간看 마칠 료了 새 신新 달 월月 대할 대對 분연할 연悁 일만 만萬 일 사事 오직 유惟 이제 금今 저녁 석夕 돌아갈 귀歸 말안장 안鞍 떨칠 불拂 새벽 서曙 안개 연烟
송강은 동년배 임정로가 성치 않은 몸으로 늘그막에 죽산 원님이 되어 나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함께 나서 살폈을 때, 관청에는 맑은 삼해주가 넘쳤다. 그리 넉넉한 재정이라면 늙은 동년배 원님이 누워 있어도 저절로 이뤄질 것 같았다. 그는 고삐 잡혀 채찍질을 당하여도 정녕 굽히기 싫어할 인물이니 돈을 허투루 쓰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의 물정을 정확히 보고 그날 밤 뜨는 달을 보며 근심스러운 일을 어찌 대할 것인지 심사숙고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일을 처리함이 오늘 저녁과 같을 것이니 새벽안개에 잡는 손 뿌리치고 말안장에 올라 돌아가기로 했다. 늙은 동갑내기의 첫 부임이 잘 마무리되기를 간절히 빌면서 송강은 손을 흔들었다.
贈朴君見同年 名文龍 증박군현동년 명문룡
辛酉同年 半死亡 신유동년하여 반사망한데
惟吾君見 在輝陽 유오군현하고 재휘양하오
貧同原憲 家徒壁 빈동원헌하니 가도벽하며
老似馮唐 髮盡霜 노사풍당으로 발진상이오
愛酒不能 謀秫米 애주불능해도 모출미하고
做官猶未 學低昻 추관유미하나 학저앙하여
靑氈子有 書千卷 청전자유하며 서천권하니
絶勝黃金 貯滿箱 절승황금하고 저만상하오
같이 진사된 박문룡(朴文龍)에게 주다
신유년 같은 해 진사 되어 반은 죽어 사라졌는데
오직 박문룡 그대와 내가 있어 밝은 빛이오
가난하기는 원헌(原憲)과 같아 집은 다만 벽뿐이며
풍당(馮唐)②처럼 늙어 모발이 온통 서리가 내렸소
술은 좋아하나 차조와 쌀을 도모치 않는 능력이고
관리가 됨에는 오히려 미진한 듯 낮고도 높은 학문
푸른 모직 자리, 어르신과 천 권의 책이 있으니
절승(絶勝)및 황금이 상자에 가득 쌓인 것 아니오
줄 증贈 진실할 박朴 임금 군君 나타날 현見 함께 동同 해 년年 이름 명名 글월 문文 용 룡龍 매울 신辛 닭 유酉 반 반半 죽을 사死 없어질 망亡 오직 유惟 나 오吾 있을 재在 빛날 휘輝 볕 양陽 가난할 빈貧 으뜸 원原 법 헌憲 집 가家 다만 도徒바람벽 벽壁 늙을 노老 같을 사似 성 풍馮 당나라 당唐 터럭 발髮 다할 진盡 서리 상霜 애愛 주酒 불不 능能 꾀 모謀 차조 출秫 쌀 미米 지을 주做 벼슬 관官 오히려 유猶 아닐 미未 배울 학學 낮을 저低 높을 앙昻 푸를 청靑 모직 자리 전氈 어르신 자子 있을 유有 책 서書 일천 천千 권 권卷 으뜸 절絶 뛰어날 승勝 누를 황黃 쇠 금金 쌓을 저貯 찰 만滿 상자 상箱
君見을 군견으로 보고 그대를 본다는 정도로 느끼기 십상이나, 박문룡의 자(字)이므로 당시 군견으로 불릴 수도 있겠으나 군현으로 불렸을 것 같다. 본다는 것보다 나타난다는 뜻이 크기 때문이다. 자(字)는 이름을 대신하여 널리 불리라고 성년식에 스승 등이 지어 내리므로 어떤 의미를 내포하였을 것이다. 군(君)은 임금, 아버지, 아내, 남편, 선조, 그대, 귀신 존칭의 뜻이 있다. 또한 현(見)은 나타나다, 드러나다, 있다, 보이다의 뜻이 있고 견(見)은 보다, 만나 보다, 당하다의 뜻이 있으므로 군현(君見)이라 하여 임금이 나타난 것 같은 인물이기를 바라며 성년이 된 이에게 이름을 대신하여 불리기를 바랐을 것으로 보았다.
매화당 박문룡은 1561년 송강과 함께 진사시에 급제하였는데 시 제목에 벼슬이 적히지 않았으니, 대과에는 응시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떤 문헌에는 같은 해 식년시에 급제하여 안의 군수를 지냈다고 하였다. 식년시는 3년 걸러 치렀다. 1562년에 실시한 과거는 별시라 하였고, 1563년의 과거를 식년시라고 했으므로 매화당의 신유년 식년시의 설은 오류일 것이다. 즉 송강과 함께 진사시에 합격한 것을 식년시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하는 것은 식년시의 2등(等) 4위(位)이면 보통 내직의 벼슬살이이언만 흔적이 안 보이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그런 분을 늘그막에 만난 송강 정철은 칠언율시로 말하였다.
1561년에 급제한 사람의 반은 죽어 사라졌는데 그대와 나는 아직 밝은 빛이구려. 당신은 가난하기가 공자의 제자 원헌과 같아 집에 가면 벽만 덩그러니 마주하지. 90세의 미관말직에 머문 풍당처럼 지식이 풍부하고 모발에 서리가 내렸소이다. 또한 그대는 술은 좋아하나 술 담을 쌀과 차조를 마련하려는 생각은 없고, 관리되는 데에 오히려 높은 학문이나 미진한 듯도 보이지요. 그리고 남이 가지지 않은 푸른색의 모직으로 만든 자리와 가친이 계시며 천 권의 책이 있으니, 절승에 묻혀 황금이 가득한 상자가 쌓인 것 아니오. 함께 급제한 벗이 부럽기 그지없소.
贈韓察訪性之 증한찰방성지
祥雲察訪 性之歸 상운찰방하며 성지귀하니
鄭季涵何 不飮酒 정계함하여서 불음주하오
爲問工曹 參判公 위문공조하여 참판공하소
翰林風月 今何有 한림풍월하고 금하유하지
찰방 한성지(韓性之)에게 주다
상서로운 구름이 찰방 한성지에게서 돌아가니
정계함(鄭季涵)이 어찌 술을 안 마시리오
공조참판(工曹參判)에게 물어야겠소
한림(翰林)의 풍월(風月)이 지금 어디 있는지
줄 증贈 우물 담 한韓 살필 찰察 물을 방訪 바탕 성性 갈 지之 상서로울 상祥 구름 운雲 돌아갈 귀歸 나라 정鄭 끝 계季 잠길 함涵 어찌 하何 아니 불不 마실 음飮 술 주酒 할 위爲 물을 문問 공장 공工 무리 조曹 참여할 참參 판단할 판判 어른 공公 벼슬이름 한翰 수풀 림林 바람 풍風 달 월月 이제 금今 있을 유有
한 찰방에 대한 정보는 오직 하나, 송강과 같은 해 신유년에 태어난 것이다. ‘성지’는 자(字)로 짐작된다. 동해 바닷가가 그분의 고향이거나 찰방 벼슬을 한 곳이리라. 그런데 이 시는 벼슬에서 물러나야 할 즈음에 쓰인 것 같다. 상서로운 구름이 한 찰방에게서 돌아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강에게는 동갑내기가 물러나는 것을 보고 강 건너 불 구경식으로 넘길 수 없는 마음이었다. 술에 취하므로 이기려 하였다. 그러나 한 찰방의 지위를 떨어뜨린 공조참판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학자들이 바람을 읊으며 달을 희롱하는 곳이 지금 어디인지 따지기 위해서였다. 한 찰방이 그 중심에 있음을 알려야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贈別韓察訪性之 증별한찰방성지
君與我 군여아는
同生丙申年 동생병신년한데
生年直酒星 생년직주성하고
酒星何處落 주성하처락하면
落處是東溟 낙처시동명이오
東溟萬古 流不盡 동명만고하고 유불진한데
人世紛紛 水上萍 인세분분하여 수상평하오
離合悠悠 天地老 이합유유하며 천지로하니
與君長醉 花津亭 여군장취하고 화진정하세
찰방 한성지(韓性之)에게 증정하고 이별하다
그대와 나는
병신년에 함께 태어났는데
나던 해에 주성(酒星)이 곧장 떨어졌고
주성이 어디에 떨어졌느냐 하면
떨어진 곳이 이 동해바다라오
동해는 태곳적부터 다함 없이 흐르는데
인간 세상 분분(紛紛)하여 물 위에 뜬 개구리밥
이별하고 모이기 유유(悠悠)하며 하늘과 땅이 늙어가니
그대와 함께 화진(花津)의 정자에서 길이 취해 보세
줄 증贈 이별 별別 한나라 한韓 살필 찰察 찾을 방訪 성품 성性 갈 지之 그대 군君 더불어 할 여與 나 아我 함께 동同 날 생生 남녘 병丙 펼 신申 해 년年 곧을 직直 술 주酒 별 성星 어찌 하何 곳 처處 떨어질 락落 이 시是 동녘 동東 바다 명溟 일만 만萬 옛 고古 흐를 유流 아니 불不 다할 진盡 사람 인人 인간 세世 어지러울 분紛 물 수水 위 상上 개구리밥 평萍 떠날 이離 모을 합合 멀 유悠 하늘 천天 땅 지地 늙을 로老 길 장長 취할 취醉 꽃 화花 나루 진津 정자 정亭
한 찰방이 화진포에 거주했는지 함께 그곳에 갔는지는 짐작되지 않는다. 단지 송강은 그곳에서 동갑내기 한 찰방과 헤어지려 할 때 마음을 자유롭게 펼치려고 이런저런 제약을 안 받는 고시를 택했다. 당신과 나는 1536년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그때 술을 관장하는 별이 곧장 떨어졌었소. 그곳이 어디인가 하면 이곳 동해바다였지요. 동해바다는 태곳적부터 여전히 흐르는데 인간 세상을 보면 어지럽기 그지없어 모두가 물 위에 뜬 개구리밥 신세 같소이다. 사람들은 이별하고 모이는 것이 유유하는 동안 하늘과 땅도 늙어가니 그대와 함께 화진포의 정자에서 오랫동안 취했으면 하오. 종(終)